아들아!(41)
아들아!
오늘은 나의 요즘 일상을 얘기해볼까 해.
너무나 기나긴 과거이야기가 나에게도 지겨운 감을 주고 있고 너와의 대화가 딱딱해져 가는 것 같기도 한데다가 요즘은 많은 일들이 생겼거든.
지난번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H사형이 와서 머물고 있고 며칠 전에는 대전근교에 있는 대학교에 계시는 H박사님이 왔었어.
아무런 수입도 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시고자 번역거리를 들고 찾아오셨는데 어제한국으로 돌아가셨지.
학벌도 없는 내가 번역이라 하면 우스운 일이겠지만 홈페이지를 제작할 때도 눈치와 코치로 해 본적이 있고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박사님 말씀에 용기를 내기로 했던 거야.
너도 알지?
호주 살 때 자주 뵙곤 하던 S교수님 말이야.
S교수님과 박사님은 의형제간이기도 한데 이미 우리단체를 떠나신 지 오래되신 지라 엄격히 따지면 동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의 다 같은 자녀로 본다면 동수를 넘어서 한 형제라 해도 틀리지는 않는지라 아직까지 동수님이라 부르고 있거든.
지금은 인도의 어떤 스승님을 모시고 있는데 내게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한 번씩 묵상 회가 열릴 때면 최소50만 명 이상이 모여서 행사를 한다는 것과 그러한 인파가 모여 행사를 하여도 사소한 사고도 없이 행사를 마친다는 자랑의 말씀을 하시더구나.
속으로는 자신의 스승님을 내게도 소개 시키고 함께 수행하였으면 하셨지만 내 심중을 떠보는 것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갈무리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어.
S교수님이 우리단체를 떠날 때 나를 만나러 왔었지만 못 만나고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의형제이신 박사님과 함께 인도의 유명한 스승을 따라 갔었던 거야.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인지 또다시 실망을 하고 돌아서 나왔고 지금의 스승을 만났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났다며 자랑을 하시더구나.
그런 여러 가지 얘기와 함께 우리단체를 떠나게 된 이유까지도 말씀해주셨는데 94년도 대만국제선에 참석하셨다가 스승님이 동수의 카메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하고 단체를 떠나게 되었다고 하셨지.
나 역시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동수들을 통해 듣고 있었는지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똑 같은 일을 보고 생각을 달리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
내가 전해 듣기로는 스승님의 허락 없이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는데 함부로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뺏긴 걸로 알고 있고 스승님께서 필요이상의 화를 내신 것 같지만 그때 대만의 상황이 스승님에 대한 비방으로 만연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스승님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대만 정치인들이 스승님께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셨고 그 같은 이유로 스승님을 비난할 꼬투리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고 실지로 언론을 통해 비난을 했다고 들었거든.
모르긴 해도 동수를 가장해서 잠입한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나쁘게 이용하기도 했나 보았어.
게다가 들리는 말로는 소를 판돈으로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어떤 이유든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함부로 사진기를 들이댄 사람에게 더욱 큰 잘못이 있는 만큼 스승님의 행동을 문제 삼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만큼 박사님의 실망감을 회복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나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떠나시는 날까지 전해주지는 못했어.
아들아!
너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깨달은 스승은 어떠한 일에도 화를 내서도 안 되고 더구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더욱더 인자함만 보여야 한다고 여기지나 않나 모르겠구나.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서 스승님이 어떤 행동을 하건 그것은 스승님의 문제일 뿐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야.
불교에는 이러한 말이 있어 “달을 보라고하는 데 손가락을 왜 보는가?”
이 말이야말로 스승과 제자 사이를 잘 말해준다고 볼 수 있는데 스승이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할 뿐 달은 제자 스스로가 봐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니.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나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라고 하셨는데 바로 이러한 점을 말씀하시고자 하였지 않나 해.
내가 모시는 스승님의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긴 하겠지만 나로서는 스승님의 진정한 의도도 모르고 있는데다가 스승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은지라 아직까지도 스승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렇다고 박사님의 행동을 나무라거나 비난하지는 않아.
이 세상 모든 일이 인연으로 인해 움직이는 만큼 인연이 있으면 만났다가 인연이 다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무엇을 탓할 수 있으며 오늘의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먼저의 인연을 떠나보내야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떠한 일도 비난할 수 없어.
박사님 역시 우리 스승님을 만나고 나서 오늘날의 스승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시더구나.
부산하게 돌아가시는 박사님을 떠나보내고 돌아와 생각의 나래를 펴다 보니 나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언제든지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져 있고 나 자신의 앞길 또한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 나를 위한 진정한 선택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언제나 내 대답은 지금 내게 다가온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자신을 한정 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그들의 낮은 의식수준 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거야.
하지만 수준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표현할 마땅한 말이 없어 이용한 언어일 뿐 결코 높낮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해.
스승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나 자신의 스승 관을 스스로가 한계를 짓고 있음을 본인이 모르고 있는데 모르고 있어야만 지금의 스승을 만날 수 있고 보면 한계를 지어야만 하는 필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니.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거나 모르거나…….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을 우물 크기만 한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우물 크기만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맞는다는 거지.
그래야 우물 안에서 사는 개구리로서 역할에 충실할 수가 있지 만약 우물 밖의 하늘까지 안다면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의 역할을 할 수가 없는 노릇이거든.
가끔씩 보자면 어떤 이들은 이러한 우물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안타까울 정도의 몸부림을 하는 것은 보이지만 정작 우물 안에서 바깥의 하늘을 보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어.
때가 되어 바깥으로부터 줄까지 내려와 있지만 우물 속의 따사로움과 정겨운 이웃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서 나가지를 않고 있는 거야.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우물 밖의 광경과 하늘의 모습을 그저 듣고 즐거워만 하는 것이지.
물론 그래야만 하는 필연성이 있겠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자신의 선택이 우물 밖을 보고자 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우물 밖으로 뛰쳐나가야 함을 나 역시 말해야만 하지 않을까 해.
아들아!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우물 안 개구리일수 있다는 고백을 네게 해야겠구나.
하지만 다른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른 점 또한 있다고 항변하고 싶기도 해.
다른 점이 뭐냐고?
내가 속한 우물 안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우물 밖을 보고 우물밖에 있는 분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우물 밖의 세상을 볼 수도 있을 거라 여기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사람들이 웃을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웃는다 하여도 어쩔 수 없이 진실해야 하는 나를 이해해주렴.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물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이미 우물밖에 나와 있음을 말하고 있는 분의 말씀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해야겠구나.
아니 좀 더 나의 깊은 속을 내보이자면 세상 모든 이들이 우물을 덮어쓰고 있음을 내가보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해.
사람들이 인정하거나 말았거나……
아들아!
내가 솔직한 말을 여러 가지로 해서 미안하지만 나의 의식상태가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데 어찌 내의식이 한곳에 머물고 있겠니.
우물 안에도 들어갔다가 우물바깥을 나갔다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해.
이러한 내 말이 이해가 가니?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음해가 오지 않는 큰일이 발생하니 꼭 이해하기 바라.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문제인 만큼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해.
어제는 관전이라는 곳에서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이별이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라는 누가했는지 모를 이야기는 진실이고 있었어.
네가 중국에 잠시 머물고 있을 당시 본적이 있던 분인데 작년에 너와 함께 냉면 장사하러 갔을 때 돈 가방을 메고 돈 관리하시던 분 기억하지?
그 분께서 북한 소식을 가지고 오셨더구나.
내게는 손위 동서 되시는 분이신데 과거에 물리선생님을 하시던 분이라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하시고 실질적인 실력도 있는 분이긴 하지만 알코올중독자가 되는 바람에 시골노인네로 전락하고 마신분이야.
내가 처음 중국에 들어와 김치공장을 하고자 할 때 가장 필요한 분이라 여기고 어떻게든 함께 사업을 해보기로 했는데 이미 알코올에 중독이 된지 오래되어서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어.
공장 내에서는 어디에서도 술을 못 마시게 했더니 밤에 몰래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거나 술을 사서 담벼락에 감춰두었다가 마시기도 하곤 하였는데 내가 한국에 나가기라도 할라치면 내 세상이다 하며 마시곤 하였지.
급기야 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 우리공장을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별로 생산적인 일도 없었고 필요한 인력도 아니어서 그만두시겠다는 말씀이 내게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분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듯하여 잘 생각하시라고 했지만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돌리지를 않더구나.
떠나시는 날 내 앞에서는 차마 말을 못하고 다른 이에게 말하길 감옥으로부터 석방되는 기분이라 했다는 거야.
아들아!
이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얼마나 이분을 단속했는지 알겠지?
그런데 감옥에서 해방된 것까진 좋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리는 소식으로 간경화에 걸려 배에 복수가 가득 차는 바람에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겠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어.
나로서는 이러한 일을 예견하고 있었으므로 그토록 술을 못 마시게 했던 것인데 본인이 마시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막을 수 없었고 결국 간경화라는 병을 얻고 나서야 술을 끓을 수 있었지.
이래서 이 세상에는 재앙이 끓이지 않고 있고 재난이나 고통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해.
몸이 건강하고 별다른 이상이 없을 때는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막상 병이 들어 몸이 상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가 가능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병이 깊어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보면 방심할 문제는 아닌 성 싶어.
언젠가 내가본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더구나.
“인간의 몸만큼 확실한 의사는 없다”
우리의 몸 안에 하나님이 거하고 있다는 말에 걸맞게 조금만 몸에 이상이 생겨도 바로 경고신호가 보내지는데 우매한 사람들이 그러한 신의 경고음을 무시한 대가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니.
너 역시 언젠가는 술 담배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네가 술 담배를 멀리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고 혹 네가 먹게 되더라도 몸을 생각해가며 적당하게 조절했으면 해.
나 역시 엄청난 폭주와 줄담배를 하던 몸이라 강하게 금하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 20년 가까이 먹고 마셨던 만큼 너는 그러한 과정이 필요 없이 멀리했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심정이라면 욕심일까?
만에 하나라도 네가 정신세계에 발을 들여놓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향락과는 담을 쌓아야 할 거야.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말릴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므로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일수밖에 없구나.
행여 네가 왜 정신세계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술 담배를 금하라는 건지 궁금해 할지 모르니까 거기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보도록 하자꾸나.
이 세상 모든 것이 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정신세계란 우리육체에 속한 두뇌가 만들어 내기도 하고 두뇌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세계를 이름인데 그러한 세계를 알고자 한다면 두뇌를 깨끗이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니.
술 담배를 하게 되면 뇌세포가 몇 개씩 죽는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바 있으니 따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정신을 맑게 해야 참다운 생각과 비전을 볼 수 있거든.
그렇다고 술 담배 하는 분들이 참다운 생각을 못한다거나 비전을 못 본다는 말은 하지 않아.
다만 더욱더 깨끗하고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술 담배와 육식을 금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지.
아들아!
역대 수많은 성인들의 삶이 그러했으며 지금도 진정한 수행인들 대부분이 술 담배와 육식을 멀리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내 주장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니.
혹 너는 과거 어떤 조사는 술과 육식을 가리지 않았음을 내게 말할지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너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네가 막행막식을 했을 때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거나 그러한 네 행위로부터 네 자신이 진정 자유로운가를 스스로 살펴보기 바라.
항시 하는 말이긴 하지만 지금 네가 선택한 길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너의 미래가 결정되는 만큼 네 목표에 따른 너의 노력은 네 스스로의 몫임을 또다시 상기 시켜주고 싶구나.
나 역시 막행막식을 하면서도 정신세계를 향한 여정에 전혀 지장 받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 적도 없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술을 먹고 좋지 않았던 많은 기억들과 술 담배로 인한 금단현상이 무지하게 오래가더라는 것을 경험한 이상 더 이상의 미련은 없어.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온 것 같은데 다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때 거론해보기로 하고 이쯤에서 술 담배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두기로 하자꾸나.
동서가 갑자기 찾아오셨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이만큼 멀리 나오게 되었는데 간경화에 걸린 분이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오셔서 어제 밤늦은 시간까지 몇 가지 일로 토론을 벌리게 되었어.
그 내용이 처형의 수행 문제 때문이었는데 명상을 한답시고 가정 일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일어난 식구들의 불만을 우리에게 하소연 했던 거야.
우리와 함께 일하는 동안 처형이 우리를 따라서 명상을 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재미 삼아 하던 명상이 너무나 좋은 나머지 세상을 등지고 싶은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이 문제가 되고 있었지.
늘 내가 처형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초발심에 젖어있는 처형의 명상 욕심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거든.
항시 명상만 하려고 하고 식구들이 뭐라 하던 신경도 쓰지 않고 우리공장에만 오려고 한다는 거야.
이해를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내용을 알 수 없는 식구들로서는 2년 남짓한 세월 동안 너무나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당황스럽기까지 했을 것이고 우리가 명상법을 전수해준 만큼 그 일에 대한 원망을 우리에게 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
명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명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냐만 이미 명상을 통해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세상을 경험한 처형으로서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들과의 연극이 재미가 없었고 가족이라 해도 연극을 하기 위해 인연을 맺었을 뿐 더 이상 이하도 아님을 알았는지라 애타는 가족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었으니 대화가 원만할 수 없었어.
이래서 과거 많은 스승들이 귀신도 모르게 수행하라고 했지 않았을까 생각해.
괜스레 명상합네 하고 소문이 나다 보니 조금만 잘못해도 공격을 받기 일쑤이고 더구나 식생활이 같지 않다 보니 가족들로서는 이질감까지 느끼게 되었고 급기야 욕을 먹게 된 거지.
어제 동서 되시는 분이 자기 딴에는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듯 공격의 화살을 날렸는데 그 첫 번째 화살이 우리의 도리가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이었어.
자신이 아는 어떤 명상하는 사람은 계란을 먹는데 우리보다 도가 높다는 거야.
말인즉슨, 무정란 알을 먹는 것은 살생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먹어도 되는데 우리가 그러한 것도 모르면서 살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어 많은 말을 해야만 했는데 무정란이라 하여도 일단 생명을 담고 있는 이상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아주 사소한 일이 큰일을 만들어내는 도리를 말해야 했지.
아들아!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고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수행을 하기 위한 일로서 내가 선택한 일 일뿐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협박을 하지는 않았는데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남들과 별다르게 행동하는 우리의 행동이 못마땅한가 보았어.
그런데 이러한 나 자신의 수행상의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격한 나 자신의 통제가 필요하거든.
왜 그러냐 하는 것을 잠시 설명해 보자꾸나.
만약 내가 미역에 붙어있는 새우를 무심코 먹게 되었다고 쳐.
한번 이렇게 허용을 하고 나면 다음에는 작은 새우가 멸치를 허용하게 만들고 멸치는 다시 꽁치로 또다시 갈치, 다음번에는 고래까지 발전하다가 물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고 나의 계율은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
누구는 채식하면 깨달을 수 있는가를 묻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
만약 채식자체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채식동물은 모두 깨달아야 하겠지?
채식이 깨달음을 가져다주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이 계율을 지켜나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 그야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죽음이 내게 다가온다 하여도 두려움 없이 내가 걸어갈 길을 가겠노라는 의지 말이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강한 의지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인 것이지.
성경에는 이러한 말이 있는 걸로 알아.
“네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말을 보더라도 자신의 강한 의지와 희생 없이 신성이나 불성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가 봐.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에 수많은 유혹과 방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유혹이나 방해는 밖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이루어지는데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내가 꾼 꿈은 그러한 점을 잘 말해주고 있어.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입문한지 6개월가량 되었을 무렵인 걸로 기억하는데 아주 어린 시절의 친구 하나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을 한잔 마시러 가자고 하더구나.
술을 끓은 지 오래되었고 마시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안 마셔도 되니 옆에 앉아만 있으라는 거야.
간만에 찾아온 친구를 냉대할 수도 없고 마시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된다 하니 그 정도야 못해 주랴 싶어 따라갔지 않겠니.
룸살롱을 가게 되었고 이미 약속이 되어있었던지 친구 대여섯 명 사이사이에 여자접대부를 앉히고 술을 마시고들 있었는데 재미있게 보이는 것이 분위기가 좋아 보였어.
하지만 목숨처럼 여기는 계율이 있는지라 감히 술 마실 생각은 못하고 앉아 있노라니 친구 녀석이 잔을 받으라는 거야.
정색을 하고 안 마신다고 하니 일단 받아만 놓고 마시지는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니.
그래서 마시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하고 받아놓았는데 이번에는 내 머리가 생각을 일으키기 시작하더구나.
그때 마신 술이 양주였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반 화학주와는 달리 양주는 과일을 발효한 술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도 포도주를 드셨다는데 까지 생각의 발전이 일어나는 거야.
일단 핑계거리가 생기고 나자 한잔 정도는 마셔도 된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한잔을 마시고 나자 두 잔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으며 두 잔이 들어가고 나자 이왕 마신 것 까짓것 병째 마시지는 못하랴 싶어 옆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술을 따르기 위해 들고 있던 술병을 뺐어들고 마시기 시작했어.
한참을 정신없이 나팔을 불 듯 마시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는데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술잔을 돌려가며 마시든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들 나만보고 있는 거야.
아뿔싸!
속았구나.
내가 마장에 빠졌다는 것을 그때야 눈치를 챘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린 거지.
이미 술을 마셔버렸고 파계를 했으니 수행이고 뭐고 끝이 났구나 싶어 술병을 내려놓고 통곡을 하다가 꿈에서 깨어났어.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해서 지금도 기억이 또렷한데 아마도 내가 계율을 하찮게 여기자 내면의 스승님께서 체험으로 경고해 주셨던 것 같아.
십 년은 감수한 것 같았는데 이 꿈을 꾼 이후부터 더욱더 계율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거야.
이러한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밤이 깊어 갔는데 동서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나 봐.
처음 올 때와는 달리 말씀이 부드러워졌는데 계산이 누구보다도 빠른 내가 이처럼 절박하게 지키려는 계율이 장난 아니게 여겨졌던가 보았어.
아들아!
아까도 얘기했지만 계율자체가 깨달음을 가져 다 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해.
앞으로도 계속되는 내 삶의 여정에는 이러한 내 생각이 어느 정도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니 오늘은 여기쯤에서 쉬어가도록 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