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번드 2021. 10. 28.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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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요 근래 인터넷 여행을 하다가 아주 재미난 사실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너도 알고 있는 중국의 삼국지에 대한 진실을 밝혀놓은 사이트를 알게 되었어.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삼국지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실망스러움 또한 느껴야했어.

어린 시절부터 유비의 도원결의와 삼고초려를 재미있게 봐왔고 관우와 장비의 무용담하며 제갈량의 지혜로움에 감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러한 일들 모두가 나관중이라는 작가가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소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니 너무나 허탈해져 버린 탓이었지 않을까 해.

이러한 사실을 통해 허탈한 마음과는 별도로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역사라는 것은 내나라 사람보다는 남의나라 사람이 훨씬 많이 알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어.

지금까지 역사가 남겨진 예를 보면 다들 정권을 잡은 집권층이 자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 할 수밖에 없었던 변명을 하기위해 역사왜곡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역사를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을 역사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 내가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같은 일을 보면 제대로 된 우리나라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해.

남의 나라 일에 대한 것을 구태여 왜곡시킬 필요가 없는 제삼의 국가들이 좀 더 정확하게 역사에 대해 기록을 하였을 거라는 것이고 여러 사료에 나와 있는 사실을 가감 없이 밝힐 것이란 거지.

마치 내가본 삼국지처럼 말이야.

이러한 점 때문에 내 나라의 역사보다 남의나라 역사를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거지.

그런데 이러한 내 생각도 끝내는 생각으로 그치게 되리라 여겨져.

왜냐 하는 것은 머리를 조금만 굴려보면 알 수가 있어.

그러한 사실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없는 사실도 만들어낼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야.

누가 자신들 나라의 치욕스러운 일을 밝히려고 하겠느냐는 거지.

우리가 목에 힘을 주어 열심히 주장하는 역사왜곡으로부터 우리 자신은 떳떳한가 하는 것은 각자가 생각할 문제라 여겨지고 다만 우리나라의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면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있어.

그렇다고 사실을 받아들여지는 지에 대한 것은 사실 여부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은 알아야 해.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참으로 웃기는 세상이 아닐 수 없음을 분명하게 명심하고서 살아야지 그렇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잘못 말했다가는 역사의 희생물이 되기 십상이거든.

그러한 예로써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들 수 있고 오늘날 우리 곁에서 숨 쉬는 많은 인물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국가에 반하는 말을 한다는 이유로 지탄받고 욕을 얻어먹고 있는 것이 아주 좋은 예들이 되고 있어.

성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우리나라의 프로이드나 칼융이라 할 수도 있으신 마 교수님이 그런 인물이고 나름대로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총대를 메시고 계신 지모 교수님이 그러하며 입바른 소리 한마디 했다가 국수주의에 가득한 여론 때문에 꼬리를 말다시피 하신 조모씨가 그런 인물들이지.

그런데 아들아!

사람들이 사실을 알기보다는 사실이라고 인정되는 것을 사실화 한다는 사실을 네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사실이라는 사실을 네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해.

조금 해석하기가 어렵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드러나 있는, 즉 받아들이는 사실과 진정한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야.

한마디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거라고 보면 돼.

그러한 꿈이 깨어졌을 때를 우리는 허망하다고 하거든.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도 헛되도다.”

 

이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성경에서 말했을 거라 생각해.

이것이 비단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만 여기면 그야말로 착각 중에도 중대한 착각이야.

이 세상 모든 일에 해당되는 일이고 신의 영역인 종교에서는 더욱 극단적인 경우가 왕왕 일어나고 있어. 얼마 전 매스컴에도 나왔지만 기독교의 일파인 모 교회 단체에서 신도들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고 그밖에도 과거90년대 말쯤 다0선교회라는 곳은 성경에 나와 있는 종말이 올 거라 전국이 떠들썩하도록 난리를 친 적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진정으로 구원의 길임을 믿는 행위들에서 비롯된 거지.

이러한 일들이 사이비종교에서만 일어난다고 하면 그야말로 크나큰 착각임을 또 한 번 명심해야 해.

잘못된 종교를 믿는 것을 잘못된 믿음이라 한다고 보면 종교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잘못되게 믿는 것을 믿음이 잘못 된 거라고 하는 것이니 우리는 어쩌면 잘못된 믿음보다는 믿음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구나.

인류가 생긴 이래로 최고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금껏 해 놓은 역사속의 일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일의 연속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나마 최근에는 그러한 역사속의 일로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2세께서 사과의 메시지도 발표하셨고 보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여기고 있어.

과거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그 당시의 가톨릭 교리와 어긋난다고 감금을 당해야만 했고 다른 심한 경우에는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화형을 당하기가 예사였고 보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는 더욱 심한현상까지 보이고 있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단 한가지의 이유로 그렇게 화를 내고 심지어 사람의 목숨까지도 빼앗는 거지.

과거 일본의 관동 대지진을 보면 그 때 당시 지진이 일어나 화재가 일어나자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는 누군가의 선동적인 말 한마디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면서 애꿎은 우리 동포들이 수없이 죽어야 했는데 일본인들조차 대문 밖을 나오기가 무서울 정도였다고 하니 뜻이 있는 일본사람들이 조선인들을 구해주고 싶어도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까 감히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는 거야.

이 처럼 전체 분위기라는 것이 거짓을 사실화 시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고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 이 사회전체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거지.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언젠가는 올바른 결과를 창출하게 되겠지만 누군가는 크나큰 희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앞서 내가 말한 몇 몇 분들이 사실여부를 떠나서 그러한 길을 가기 위한 초석과 같은 역할을 자청한 분들이라는 거야.

사람들은 진정으로 이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의견이 절실하다는 사실조차 사실로 받아들이기 인색하다는 사실을 유일한 사실로 만들고자 살아가는 것 같아. 우리나라만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진정한 애국자이고 오로지 자신들만이 이 나라 국민자격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애국자란 자신의 의견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더라도 반대편에서 과감하게 말을 하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거지.

개인의 생활형태 중에도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잘난 점만 내 세우고 남의 장점이나 이로운 점을 인정하길 인색하게 되면 다들 싫어하는 것처럼 국가 간에도 자신들의 국가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으로부터 선택 받았다거나 최고라고 주장하게 되면 다른 국가들로부터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기게 되고 결국 왕따를 당할 수도 있거든. 종교 역시 마찬가지임에는 물론이고 그러한 일들에 대한 결과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

다수의 사람들이 자국의 이익을 말하고 있고 그러한 것이 사실화 되어 있더라도 어느 누군가는 그 반대편에서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때 그 사회가 건강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이러한 일들은 어느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임은 물론이지 않겠어?

누군가가 물건을 팔기위해 물품을 생산했는데 자기비판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만족감에 빠지게 되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냐 이 말인 거지.

그런데 이런 비판적인 말을 하면 아예 사회로부터 매장을 시켜버리려는 분위기이니 이래서야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있기나 한가 말이야.

이러한 일들은 어느 사회 어느 국가도 마찬가지이기도 하며 인류 전체의 일이기도 해.

이러한 일을 부추기는 기득권을 가진 자들과 위정자들이 있다는 것 또한 어떠한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

나 자신은 그렇지 않겠지 하지만 나 자신 또한 그러한 범주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은 나 자신이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 있게 되면 여지없이 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해보면 알 수 있어.

이러한 일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나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것은 물론이지.

예를 들어보자면 내가 있는 공장주변으로 마을이 있는데 중국의 시골마을답게 집집마다 대문 앞 길옆에 돼지 똥을 늘어놓고 있어.

한국 같으면 마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난리가 나겠지만 이곳은 이런 일이 워낙 다반사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누군가 남의 집에 기르는 개를 약을 먹여 죽여서 업어 오더라도 들키지만 않으면 그 뿐이라는 거야.

그래서 밤에 우리 집 개가 짓기만 하면 개 도둑이 왔나싶어 후레쉬를 들고 개를 지키러 나가야 하는 거지.

개가 집을 지키고 나는 개를 지키고……

이 같은 일들이 문화와 생활습관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형성되는 일일뿐 절대적으로  잘못된  일들은 아니라 생각해.

그것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이러한 적용범위에 속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거지.

우리나라만 해도 어린 시절 동네 과수원에서 과일서리며 닭서리를 장난삼아 많이 했었지만 어른들이 아이들 장난이겠거니 했어.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을 하다가는 도둑으로 잡혀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모든 가치관이나 인식들을 달리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니?

혹 너는 이 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일에만 국한된 일일뿐 신의 영역에서는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아들아!

애석하게도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렴!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종교가 크리스천과 불교인 것 같으니 우선 두 가지 종교만으로 얘기를 해보도록 해.

이 두가지중 처음 생겨난 불교는 25백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승단을 만들어 자기들만의 수행을 해 오던 것을  3백년의 시간이 흐른 후 아소카왕에 의해서 비로소 종교화 되었다는 것을 지난번 얘기 했을 거야.

불교는 공부자체가 자신 스스로의 불성을 찾는 것이 그 목적인만큼 누구에게도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누구를 대상으로 삼아 신격화 시키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거든.

그런데도 사람들이 워낙 신을 믿고 섬기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불상에다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거야.

스님들 중 자신이 깨우치는 데만 관심이 있으신 스님들의 경우 이러한 행위를 싫어할 뿐 아니라 피하고 있다는 것을 종 종 볼 수 있어.

내가 아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바로 이러한 학승들이지.

그런데 실상을 바라보면 모든 이들이 믿는 불교 속에는 이러한 분들 보다 더 많은 숫자의 신도들이 불교를 우상화 시키고 불상을 보고 절을 하고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거든.

바로 이것이 불교의 본모습보다 자신의 인식과 가치관이 생각하는 불교가 따로 존재 한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불교 자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불교를 믿는다는 거지.

그것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부추기는 스님들 또한 존재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해.

이 같은 일은 누구도 나무랄 수 없어.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르는 법이거든.

그리고 이러한 믿음으로 효험이라는 것을 보기도 하니 기복적인 신앙을 나무랄 도리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야.

오죽 했으면 스님이 굿판을 다 벌렸을까?

스님들이 굿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주팔자에 궁합이니 시중에서 철학관 경영하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을 하는 스님들 또한 많다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불 수 있어.

아들아!

너는 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불교를 비판한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네가 알아야만 해.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을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임을 처음 서두에 말을 했지 않니.

그리고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는 거야.

마치 유치원을 통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그 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 것과 같은 거지.

이러한 기복적인 신앙을 원하고 바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 각자 개인의 인식정도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의 역할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어.

그래서 내가 실체라는 것은 있지도 않고 실체라고 믿는 사실만 존재한다고 하는 거야.

불교가 처음 나타나게 되었을 무렵 그 당시의 위정자들이나 타종교 지도자로부터 탄압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종단을 만들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겨져.

그렇지만 현실은 어떠니?

이미 처음의 취지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는 것을 불수 있지 않니?

이렇게 불교가 초창기의 의도가 순수했고 자성을 밝히는데서 출발하여 지금의 형태로 발전(?)해온 것과는 달리 기독교는 어떠했을지 보자꾸나.

처음 석가모니 부처님의 구도자적인 삶이 그 당시 위정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그와는 반대였어.

자신이 이 세상을 구원하러온 메시아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으니 그 당시 기존 종교지도자들과 위정자들로부터 탄압을 받게 된 거야.

이 세상 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뺏기고 싶어 하겠어?

하다못해 교도소의 죄수들끼리 들어앉아 있는 곳의 감방장도 서로 하려고 하는 판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탄압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서도 수없이 많은 박해와 설움을 딛고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데 이 또한 얼마나 많은 인식과 가치관들이 존재하는 가는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나와 있는 종파만 보더라도 알 수 있어.

같은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복적인 신앙의 형태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들은 내말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지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이런데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고 예수님께서 무얼 말씀하셨는가? 는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않는 것 같아.

내가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실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사람들이 사실 여부를 알고자 하는 것 보다 이러한 사실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

똑 같은 성경말씀을 놓고도 얼마나 많은 해석을 내릴 수 있나 하는 것은 내가 앞에서 몇 번 예를 들어 보여 주었으니 또 다시 예를 들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거야.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안 되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나를 놓고 상대의 기를 죽이려고 시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어.

나는 몇 년을 공부했고 신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어쩌고 하다가 여의찮으면 모태신앙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엄마뱃속에서조차 공부했음을 주장하거든.

그러면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집안내력까지 들먹이게 돼.

자신의 집안이 7대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이고 순교자집안 임을 말하기도 하는 거지.

이러한 일이 크리스천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

불교는 불교대로 자신의 법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전통적인가를 말하고 있어.

자신이 속한 종단이 한국불교의 대표 격인 조계종이라는 사실을 들먹이다 안 되면 여기서도 모태신앙이 등장하는 거지.

그래도 여의찮으면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누군가 결혼을 한 전력이 있는 스님이 있다 싶으면 자신이 순결을 지키고 있는 동정출가의 몸임을 내세워 그 스님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이 말이거든.

이 같은 일은 모두가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고 내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어.

그만큼 내가 믿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강하기 때문이라 여겨지는 거야.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절대 간단하지가 않아.

요 며칠 심양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만난 몇 분을 통해 이 같은 점을 아주 확실하게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 분들의 유형을 예로 들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된 연극 속에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꾸나.

먼저 이분들을  A, B, C, D로 구분하기로 하는데 A는 일반적인 생활을 하시는 분으로 아주 도덕적인 분이셨고 B는 사회적으로 경험도 많이 하셨고 인생의 여러 가지 굴곡 끝에 참스승을 만나서 수행 하신다고 자부하시는 분이셨으며 C는 자신이 이미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계시고 실지로 체험과 신통을 겸하신 분이었으며 D는 모든 것이 신이고 영혼이 경험을 하기위해 연극 중에 있음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곳에도 머무는바 없이 중도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야.

A는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너무나 도덕적이고 가장으로서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셨어.

부인과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 있을 뿐 달리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는 부자에 속하는 분이었는데 이분이 주장하시는 바는 종교 역시현실을 벗어나서는 소용이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과 가족들에게 충실해야 나중에 죽고 나서도 면목이 선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으며 천 오백년 전에는 가기가 속해있는 종친회 사람들의 조상들이 한 형제였지 않겠냐는 생각에 자신과 성이 같은 분들을 위한 봉사까지도 열심히 하는 분이었지.

생각해 보면 일리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삶들을 살아가고 있으니 평범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대표 할 만하다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이야.

그런데 이분과는 조금 다르게 사시는 분이 B인데 이분은 사회적으로 저명인사라는 소리를 듣기 부끄럽지 않는 분이고 대학교를 설립하신 분이기도 하고 박사직함도 가지고 계신 분으로 명상수행을 하시는 분인데 나름대로 풍파를 많이 겪어 나오신 분이거든.

그러다보니 사회생활이란 것이 너무나 허망하고 겉으로 남보기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실상을 들여다보면 온갖 부정이 난무하고 도덕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부질없고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 이상 명예나 재물을 탐하는 일로부터 모든 흥미를 잃어버린 분이었어.

모든 일들을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영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보다 더 편안하고 좋을 수는 없더라는 거지.

다툼도 없고 권모술수도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성찰을 통해 영성을 개발 시켜 나가는 삶이 너무나 좋았던 거야.

이렇게 황홀한 삶을 경험하고 계시는 B와 달리C는 태어날 때부터 특이한 분이었어.

어릴 때 몸이 약해 죽기직전까지 갔었는데 외계인이 나타나서 약을 먹여서 몸이 낫고 살아날 수 있었다는 거야.

크는 과정에서도 남다른 체험들을 무척이나 많이 하셨던 거지.

이분의 경우는 꿈을 꾸는 것도 남들과는 무척이나 달랐어.

꿈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있고 꿈꾸는 자체를 현실에서도 즐길 수 있는 분이야.

예를 들자면 자신이 평상시 집중을 하게 되면 생각하는 것이 나타나게 할 수도 있고 잠을 자면서 꿈을 꾸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른 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지.

이분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남들도 모두 그런 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 체계적인 수행을 시작하고 나서야 자신만이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러다보니 남들과의 대화가 원활하게 되지 않을 경우가 아주 많았고 더러는 공격을 받을 때도 있었던 거지.

또한 이분에게는 남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타심통이 있었거든.

보통 일반인들도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이분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

보통 타심을 하는 분들은 남의 마음을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 같으면 이분은 남의 생각이 일어나고 멈추고 하는 것까지 알 정도로 명확해.

예를 들자면 내가 만약 누구 욕을 하려다가 오계를 범하는 것이 두려워 생각을 멈춘다면 그러한 사실까지도 간파한다는 말이야.

불교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손과 발이 눈이 되고 귀가 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분이었거든.

D는 앞에 말했던 분들 모두가 경험한 것을 조금씩 맛본 사람으로서 누구나가 각자의 경험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사람인거지.

그런데 이 네 사람이 모여서 함께 대화를 하다 보니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이 확연하게 드러나더라는 거야.

그날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모두가 생각하는 범위들이 달랐는데 먼저A는 자식에게 욕을 먹지 않을 만큼의 부모로서의 도리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B는 자식이라 해도 무작정 도와주고 챙겨주기만 하면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마음만 생기게 만들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시고 실지로 자식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호텔에서 주무시고 계셨으며 C의 경우 자식도 자신의 인생이 있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성장시키고 나면 부모와는 별개라고 생각하고 일체의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자식에게 원망도 많이 듣고 있었고 가까운 친지로부터도 욕을 많이 얻어먹고 있었어.

D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식으로의 생활을 경험 해보았고 그 같은 의존하는 아들의 입장에도 서 보았으며 현실에서 부모노릇을 못한다고 자식으로부터 원망과 욕을 많이 먹고 있었어.

이분의 지론으로는 자식이 부모를 만나는 것도 인연에 의한 것이고 그 인연을 영혼이 선택하고 내려온 만큼 부모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이세상의 고통을 통해서 얻는 교훈이 어떤 책을 통한 간접경험보다 값어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자식이 현실을 불평불만 하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었고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주겠지만 주지 못한다고 해서 미안해하거나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분은 왜 사람들이 어떤 이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고 또 어떤 이는 부잣집에 태어나겠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모든 것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경험하고자 하는 삶을 살기위해부모조차 선택했던 만큼 부모와는 별도의 삶을 자신이 살아가고 있으며 철저히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 거지.

이분이 이렇게 말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부모와는 별도로 자신들의 인생일수 밖에 없는 것이 똑같이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 해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본인에게 달렸기 때문이라고 하였어.

그런데 이러한 것도 표면적인 일일뿐 현실에서는 더욱 더 많은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러한 관점도 영혼이 있다고 여기는 분들에 한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양한 삶의 한 가지 형태임에 틀림이 없어.

이러한 점만 보더라도 사람들의 인식정도와 가치관이 얼마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야.

이런 가운데 사람들은 각자의 느낀 바에 대한 주장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인식정도를 남에게 주입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는 분노하게 되는 거지.

내가 크게 나누어서  4가지로 분류 했을 뿐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경계도 수많은 분류를 할 수 있고 수없이 많은 가지가 있어.

인구가  60억이면 60억 가지의 삶이 있는 것이고 그 숫자에 따른 종교도 존재 한다는 거야.

단지 수백 개의 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는 있겠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상태만큼은 인구 숫자만큼의 종교와 삶들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거라는 말이지.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믿고자 하는 것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결국 그러한 사실인지 허구인지 조차 볼 수 있고 받아들이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거야.

이러한 점은 자기 스스로 조용하게 내면을 점검해 보면 알 수가 있어.

어떤 책을 잃어도 어떤 부분은 사실인 것 같지만 어떤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인정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바로 이런 경우라는 거지.

내가 이런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뿐 내말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말을 자주하게 되는 거야.

그런데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한가지의 방법이 있긴 해.

그것이 바로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고 하나님이 아닌 것이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지.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에 반하는 것조차 신의 조화 속에서 피어난 또 다른 꽃으로 보게 되면 없어져야 할 사탄이나 마구니 가 아니라 형제자매로 여겨질 수 있다는 거야.

앞서 내가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말을 했던 것은 그 옛날의 어떠한 종교나 과학도 처음 발생 당시의 원형상태로 보존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없으며 각가지의 사정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해온 것을 통해서 모든 것이 진화한다는 말도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이 우리 현실세계에서도 적용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지금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믿음이 그 옛날 내가 믿는 종교의 진정한 모습임을 주장하는 것 보다 하나의 해석이고 다른 이의 주장 또한 또 하나의 해석임을 인정 하자는 거야.

그러한 일을 통해 진정한 화합과 대통합을 이루자는 것이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고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 나가야할 목표점이 아닐까 해.

어떤 분들은 지구가 이런 목표점을 향해 나가게 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이대로 유지 되는 것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도 하지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있어서 지구에서의 이러한 형태의 삶이 결코 아름답지도 천국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알다보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야.

완벽한 조화 속에 있음을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완벽 속에 있음을 말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고 다음에 또 한걸음의 내 삶의 여정을 계속해 보도록 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