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번드 2021. 11. 6.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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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교도소를 나온 후 대구에서의 일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는 네 엄마의 차안에서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어.

네 외삼촌이 타고 다니던 소형차를 몰고 나를 태우러온 네 엄마가 결코 반가운 존재만은 아니더구나.

어차피 나를 위한 인생보다는 가족들을 위하고 이웃들을 위한 인생이 되리라 결심했던 만큼 각오와 결심이 있었을 뿐 그다지 큰 행복을 기대하진 않았기에 별문제는 없었지만 뭔가 모를 불안감과 정신적인 압박감이 나를 누르는 것 같았지.

이 같은 나의 느낌이 그냥 기우에 그치기를 바랐지만 명상을 해서 맑혀놓은 내 정신은 어떤 상황도 놓치는 법은 없었는데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을 했을 뿐 결과는 항상 느낌대로였고 이러한 점 때문에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어.

이 같은 일은 나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동료 수행자들 또한 마찬가지여서 본인들도 모르게 예민해져서 느낌이 발달이 되는데 그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떤 이는 신통까지 생기게 되거든.

아들아!

너와 대화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웬만큼 감지가 된다면 너는 어떨 것 같니?

이러한 일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러한 고통을 모르겠지만 남이 내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도 나를 힘들게 만들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또한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야.

수행을 하면서 힘이 들었던 이유 중에 한가지인 이러한 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내가 한 선택은 모든 것을 신으로 보고 신이 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어.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을 신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지.

내가 하는 어떠한 말과 행동도 신이 알고 있으며 앞에 앉아 대화하는 상대 또한 신이라 여기고 있으니 내 속을 상대가 안다 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내의도가 신 앞에서 떳떳한데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살기로 했으며 상대 속을 내가 알려고 시도하지 않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신이 하는 말로서 존중해 주기로 했다는 거야.

그렇다고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고 적어도 상대방의 말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었어.

내가 이 같은 생각으로 살게 된 것은 내 육신 스승님 가르침의 영향이 가장 컸었고 언젠가 내가 아는 스님이 들려주신 석가모니 부처님 생존당시의 얘기역시 이 같은 내 결심에 일조를 하였으니 잠시 둘러보도록 하자꾸나.

석가 생존 당시 사부대중을 모아놓고 설법을 준비하고 있었던 어느 날 모든 이들이 모였는데도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제자 하나가 신통으로 알아보니 대중들 가운데 한사람이 도적질을 하고도 참회를 하지 않고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을 불러내어 대중들 앞에서 모욕을 주며 꾸짖게 되었다는 거지.

그 모습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도적질을 한사람이 아니라 제자를 불러 호되게 야단을 치셨어.

대중들 앞에서 창피를 주어 잘못한 이가 뉘우칠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꾸짖으신 거지.

이 같은 말을 내가 알고 있었으니 지금껏 내가 느낌으로 상대의 생각을 안다 해도 아는 척도 한 적이 없었고 상대방 말을 무조건 믿어주었던 거야.

그렇다고 상대방 말을 무조건 따라주지는 않았고 당신도 신이고 내 안에도 당신 안에 있는 신과 같은 존재가 있으니 합의점을 찾자는 식의 행동을 하였어.

이러한 것이 말은 쉬우나 행동으로 옮기기는 무진장 어렵더구나.

꼭 화로 위에 올라앉은 것 같았어.

화로 위에 앉아보았냐는 식의 농담은 하지말기 바래.

내가 화로 위에 앉아보진 않았지만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다는 것은 말할 수 있거든.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봉사와 희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러한 일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남의 잘못을 알고도 모른척하기란 정말로 힘이 들기 마련이야.

게다가 잘못하는 것을 방치함으로 인해 상대가 계속해서 잘못을 하도록 부추기는 경우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을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인거지.

물론 교도소에 있을 때 내가 얻은 결론대로 어떤 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가를 선택해서 행동하면 된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러한 점도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어.

가령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내가 안다고 해도 상대방이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러한 상대방과 다툼을 일으키게 되는데 결코 그러한 것이 자연스럽지가 않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되거든.

앞서 부처님이 제자를 나무라셨듯이 스스로 뉘우칠 기회를 줘야 한다 이 말이야.

이 같은 일을 우리단체 내부에서도 가끔씩 목격을 했는데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구나.

모두들 서로가 자신의 주장들만 강하게 하는데 그러한 점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들만이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있고 상대방은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한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한마디로 수행을 해서 생긴 조그마한 재주로 자신이 아주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데 따른 폐단이었지.

모든 사람들이 부처로 보여야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된다고 한 스승님의 말씀과 많은 경전의 말을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거야.

그러한 이유는 스스로 자신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가 있어.

남들이 부처로 보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나 자신의 분별심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

너도 상상해보렴.

남이 너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러한 상대방을 부처로 볼 수 있겠니?

그것도 부처라면 하지 않을 짓을 골라서 하는데 어떻게 부처로 보이겠는가 말이야.

내가 말하고 있는 부처라면 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분별을 하고 있음조차 인식이 안 되고 있다면 아직 부처를 논하기는 거리가 멀어.

모든 사람들이 부처로 보여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은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자들과 나에게 피해를 입히고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조차 부처로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셨지 이것은 부처행위, 저것은 마구니 행위를 구분하신 것은 아니란 것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

그만큼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 어려운거야.

교도소에서는 내가 피해를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을 부처로 보는 공부를 했다면 세상으로 돌아와서는 내가 직접 피해 당사자가 되어서도 남들을 부처로 볼 수 있는가를 공부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산 너머 산이었어.

서울로 올라가서 내가 처음 한일은 그 동안 못 만났던 동수들을 만나는 일이었지.

호주로 돌아가면서 헤어진 후 1년 반을 못 만나는 동안 다들 많이 바뀌어 있더구나.

나를 가장 반겨준 이는 J사형이었는데 함께 채식 햄을 팔기로 하였다가 무산된 뒤로 혼자서 채식 햄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어.

아들아!

이 사형과의 추억을 내가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지금은 비록 우리단체와 길을 달리했지만 그분이 보여준 수행에 대한 열정과 갈망은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어.

나보다 나이는 적었지만 스승님께서 한국에서 처음 법을 펴실 때 입문을 한 초창기 멤버였고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만으로 건너가 어학과 수행을 병행하느라 엄청 고생을 하였으며 한국에 채식 햄을 보급하느라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고 있었는데 그렇게 힘든 채식 햄의 선구자역할을 담당하였지.

호주에서 한국을 처음 나왔을 때 재가자 입장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한다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에 불과할 뿐 이 사형과의 관계를 전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

한번은 둘이 함께 대구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

워낙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컸든 관계로 버스기사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는데 처음 운전기사 뒷자리에서 떠들다 쫓겨나서 중간 자리로 옮겼는데 거기에서도 시끄럽게 군다고 나무라는 바람에 제일 뒷좌석에 가서 얘기를 나누어야 했고 나중에는 가장 뒷좌석에서 말하는 것조차 시끄럽다고 꾸지람을 받아야 했으니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지 않니?

이렇게 두 사람이 기사님의 꾸지람을 애써 무시하고 말을 해야만 했던 것이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 느끼는 에너지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버스기사 분이 알 턱이 없었고 그 당시에는 그 사형과 나조차도 그러한 에너지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에너지의 힘이 작용을 했던 거야.

물론 두 사람모두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공통점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가지 안건에 대한 공통적인 생각들이 무진장 일어나고 있었고 그러한 좋은 생각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그와 내가 알고 있었으니 서로가 열심히 그러한 생각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었어.

이 같은 일은 그냥 말로써 설명해봐야 쓸데없고 스스로 경험해봐야 알아.

과거 영동센터 건립 때 경험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고 동수들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실 때 그토록 열변을 토하며 말을 했던 것 또한 이러한 생각에너지의 힘 때문이었지.

백회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힘이 느껴지면서 나오는 말이 끊임없이 이어져나가고 그 말에 기가 실리기 때문에 멀리서도 그 소리가 쨍쨍하게 들리게 되거든.

듣는 사람이 상대의 이 같은 기가 실린 말에 동조를 할 경우는 너무나 큰 감동을 받게 되지만 거부감을 가질 경우 보통 소음이 아니야.

우리 두 사람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

하지만 그 물음에 앞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거지.

그 사형과 내가 걸어가는 길이 신으로 회귀하는 것을 인식하고 목적으로 삼고 걸어가고 있었기에 물질추구는 하나의 방편일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우리의 인식에 따른 결과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한마디로 물질을 득할 수는 없었다는 말이지.

이 같은 말이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권모술수가 난무한 이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행자들이 계율을 지켜가며 하는 사업방식이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업을 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거라 여겨져.

일례로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조차도 외국의 기업으로 기술이 빠져나가게 되는 것을 우려하여 고발을 한다거나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과거 그들의 기술이 열악하고 무지했을 때 외국의 기업으로부터 그러한 짓을 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어.

그리고 과거 조미료 경쟁이 얼마나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나 하는 것은 그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분들조차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거래처가 없는 가운데 새로이 창립한다는 것은 거의 망하려고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또한 사업을 해본 사람들은 알아.

이런 거래처가 전무한 상태에서 스스로 거래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온갖 뒷거래가 있기 마련인데 이런 짓을 수행자들은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 그래도 힘든 사업의 길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거지.

그래서 많은 동수들이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고 보다 뜻 깊은 채식관련 사업을 하는데 이 또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수요가 적은 어려움이 있었어.

내가 교도소를 나왔을 때 사형이 나를 반겼던 이유가 아무래도 사업경험이 있는 내가 자신을 도와서 뭔가 활력소가 되어주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야.

그나마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기도 하였고 과거 내가 호주로 떠나기 전 함께 기거를 해가며 지내기도 했었기에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며 이불 장사를 함께 하자던 K선생님이 나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소일거리 삼아 함께 채식 햄 장사를 하게 되었던 거지.

막상 함께하기로 하고 보니 많은 문제점이 보이더구나.

여러 가지의 문제점이 모두 자금에 따른 것인 만큼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어.

사업을 하기위해서 조금이라도 여유 돈이 있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인력을 쓸 자금도 없었거든.

과거 내가 남의 집에 들어가 영업부장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더구나.

모르긴 해도 사형역시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았지만 다른 분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고 자금난을 해소해보려고 죽염장사까지 하고 있었으며 죽염 때문에 대만을 두 번이나 따라갔어야 했어.

국내에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죽염이라는 것이 대만에서는 그때까지 알려져 있지를 않은 것 같았고 막상 죽염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수입 금지품에 속해져 있었기에 쇼핑백에 두개씩 들고 가야만 했는데 통과하다가 뺏겨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지.

소금인데 어떠랴 하지만 법에서 일단 금지하면 무조건 안 되는 것이지 이러한 품목이 되고 안 되고는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거든.

몇 사람이 죽염 5킬로씩을 양손에 들고 대만을 오갔으니 비행기 삯이나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용케 버티어나가는 사형이 어찌 보면 대견하기도 했고 염려 또한 되더구나.

한번은 세 사람이 죽염을 들고 대만을 갔는데 때마침 강도 6.8의 대형지진이 우리가 머물고 있던 기륭시 1키로 앞바다에서 일어난 적도 있었어.

호텔이 크게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지진이었지.

침대위에서 나와 사형하나가 명상을 하고 있었고 J사형은 샤워 중이었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비누칠을 한 채로 나와  호텔이 흔들린 사실을 물어 보는 거야.

가부좌를 한자세로 좌우로 몸이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에 무척 놀랐는데 다른 방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았어.

워낙 자주 당하는 일인지라 무감각한 것 같았는데 다음날 보니 무감각해서이기도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지.

대만의 집집마다 모시고 있는 관음상이 그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 같은 관음상은 어느 집이나 있었고 대만의 우리 동수들 또한 없는 집이 드물다고 하더구나.

이 같은 일은 우리나라 동수들이라 해도 별다를 바 없어.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반 이상은 기복적인 명상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이 같은 사실을 내가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태가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임을 네가 알았으면 해.

지진이 빈번하고 자연재해가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곳일수록 이 같은 기복적인 신앙들이 더욱 발달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고 이 같은 일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

과거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교회의 집사님이시자 우리학교 도덕선생님께서는 학교 내에서도 기도를 도맡아 하실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는데 언젠가 도덕시간에 자신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미신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을 해보았다면서 지금껏 자신이 가지고 있던 종교관을 단번에 바꾸시는 것을 보았어.

가족 중에 누군가 심하게 아팠는데 아무리 병원에서 진찰을 하고 검사를 해봐도 병명이 나타나지 않아서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누군가의 권유로 굿을 했던 모양이었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이 나아버린 것이었고 그 같은 사실에 자신이 지금껏 주장해오던 교리를 어느 정도 수정하기에 이르렀던 거야.

그때 말씀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반드시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말씀이셨어.

지금도 목청을 높여 자신의 신만이 유일하다 외치는 여러 수행자들 또한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해.

그렇다면 미신을 믿어야 하느냐고?

아들아!

내가 누차 너에게 말하고 있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거나 하지는 않아.

어느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고 미신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과 좋고 나쁜 것에 대한 가치도 네가 결정해야지 어떤 경우도 내가 결정해주는 것은 아님을 네가 알아야 해.

하나님을 믿다가 죽어도 너의 판단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너의 판단일 뿐이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중요할 수 없고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라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신을 믿게 되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미신이라 불리는 것을 통해서도 위안뿐 아니라 신의 축복이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무엇을 축복이라 여기는가에 따라 미신이 아닐 수도 있고 정통종교가 미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내가 최고의 법문이라 믿고 공부하고 있는 우리단체 내에서도 굿을 하거나 점을 치거나 하는 일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는데 자신의 안위나 식구들의 안녕을 위해 하는 일을 어찌 나무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내 개인의 생각이지만 몇 가지 그런 행위를 하시는 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

우리단체에서는 스승님께서 그러한 일을 못하게 하신다는 것과 내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대가만큼은 신께서 틀림없이 주신다는 것을 말이야.

신을 향한 내 삶의 여정에서 신으로 향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육신의 안락이나 평안함을 원했는지는 그러한 자신의 행위에 따른 결과가 명확하게 말해 줄 거라는 거지.

아들아!

이것을 내가 겁을 준다고 여긴다면 크나큰 착각이야.

만약 내가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어떤 일을 했다면 거기에 따른 어떠한 일도 내가 감수하면 되는 것이지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따질 필요도 없어.

하지만 내가 단순하게 내 욕심과 신심이 떨어져서라면 자신의 행위만큼 신으로 향한 여정이 늦어질 것이 아닌가 생각해.

나라면 가족들을 위해 굿을 하거나 어떠한 행위를 해서 일어난 일로 신으로 가는 여정이 늦어진다 해도 개의치 않겠다만 다들 어떠할지는 개인의 마음에 달렸겠지?

말이 옆길로 나온 것 같은데 다음기회에 이 같은 일을 좀 더 심도 있게 얘기하기로 하고 다시 대만에서 있었던 일로 돌아가 보자꾸나.

거래처 사장님께서 관광을 시켜 주시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고 지명은 알 수 없었지만 해변에 위치한 산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으며 아마 우리나라의 부산 태종대 같은 분위기의 관광지 같았는데 가는 도중 산마다 무덤으로 가득 찬 것이 우리나라의 공동묘지보다 더욱 빼곡하게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어.

우리나라 무덤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의 무덤은 문이 있더구나.

마치 사람이 사는 집처럼 무덤 앞에 문 모양의 조형물이 서있고 봉분을 조그마하게 만들어 놓은 무덤이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돈도 태우는가 보았지.

우리나라의 풍습과 별다를 바 없었는데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이란 세상 어디도 비슷한 것 같아.

이렇게 여행 아닌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도 채식 햄 장사를 계속해 나갔지만 결국 사형이 하던 햄 장사가 다른 사형의 개입으로 끝장이 나게 되었고 이일을 통해서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어.

그것은 어떠한 쪽에 초점이 맞춰지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거야.

앞서 장사 편에서도 얘기를 했듯이 사람들이 노력도 해보지 않고 신을 원망하고 세상 탓을 한다고 나무라기도 했었지만 J사형의 경우는 그러한 상황과는 또 다른 양상이었어.

한마디로 노력해도 되지를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인데 사실을 보자면 노력을 할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는 거지.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가 있을 것 같으니 살펴보도록 해.

과서 스승님이 대만에 머무실 때 출가승끼리 탁구시합이 벌어졌는데 한분은 전 국가대표까지 한 프로급 이였고 상대선수는 취미로 탁구를 하는 분이었어.

이 시합에서 프로수준의 출가승이 지고 나서 스승님께 질문을 했던 거야.

 

스승님!

저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지혜안에 집중을 한 채 열심히 만트라를 외워가며 신께 시합을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졌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연유인지요?”

 

하고 물었을 때 스승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상대방선수에게 어떠한 마음상태로 시합에 임했는가를 물어보셨다는 거야.

스승님의 물음에 상대방 출가승이 이렇게 대답을 하였어.

 

저는 오로지 이 시합을 이겨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탁구에 집중하고 시합에 임했습니다.”

 

이 대답에 따라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셨지.

 

이와 같은 결과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어떠한 곳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과 우리의 목표가 무엇 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우리가 만약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목표점에 대한 매진을 하고 거기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지 이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면서 저것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일에 대한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하다는 것이거든.

이것처럼 그 사형의 햄 장사 역시 그러한 점에서 많은 부분 걸림돌이 있었던 거야.

앞서 탁구시합 역시 한 분은 우리의 최대 목적인 명상에 입각하여 신을 항시 생각하다보니 정작 당장 눈앞에 다다른 탁구시합에 집중을 게을리 했고 그러한데 따른 결과를 초래했던 거지.

하지만 상대선수는 일단 시합이 시작된 만큼 시합에 온 신경을 집중했던 것이거든.

아들아!

너는 누가 더 잘했다고 생각하니?

시합에 집중을 한분이 잘했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일로서 누가 잘했나 잘못했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오고 저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온다고 말하고 싶구나.

물론 너는 시합을 하는 것이 목표 인만큼 시합에 전념해야 한다고 할 것이지만 이분들이 모두가 신을 찾고자 노력하고 자신이 신임을 깨닫고자 노력하는 최대의 목표점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으니 시합 중에 신을 생각했음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니?

그렇다면 앞의 출가승이 더 잘한 것이 되겠네? 라는 너의 물음이 이어질 수 있겠지만 그 또한 맞는다고만은 할 수 없어.

뒤의 출가승이 탁구에 전념해서 공을 치는 행위가 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어떻게 그러한 판단을 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야.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에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런 노력을 하면 이런 결과가 오고 저런 노력을 하면 저런 결과가 온다는 말을 하는 거지.

출가승이 어떤 생각을 하고 행위를 하든지 알 필요가 없이 결과가 그러한 사실을 말해주거든.

국가대표 급이 일반적인 수준의 탁구실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나중에 이 같은 일이 실지로 일어나게 되었어.

동수 중 한분이 채식 햄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거지.

좁은 채식 햄 시장에서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거야.

솔직히 나도 그 사형과 동업자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 같은 일로 속이 많이 상하기도 했고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

상대 경쟁자가 동수인데다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와 잘 아는 분이기도 했고 나와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욱 심한 심리적인 갈등을 겪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사형의 사업방식에 크나큰 잘못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신은 진정 공평하게도 더욱 잘할 수 있는 사람의 손을 들어 주신 것 같더구나.

장사를 한다는 사람이 대만을 가면 보름 가까이 명상 속에 잠겨있다 오곤 하니 들쑥날쑥 하는 공급에 짜증이 난 각 지역의 동수들로부터 항의성 전화를 내가 수없이 받아보았거든.

먹는 사람입장에서는 돈을 주고 사먹는데 공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속이 상했을 것이고 그러한 가운데 원활한 공급을 해주는 경쟁자가 나타난 것은 그야말로 신의 뜻이라고 여겼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애타게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사형의 노력이 계속 되었는데 마음대로 잘되지 않는가 보았어.

나와 함께 노력한 사형이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명상을 통해 벗어나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고 나도 함께 속을 태웠지만 설상가상으로 대만의 한 업체가 밀어준 한 컨테이너의 햄이 인천항에 묶이어서 통관이 되지 않는 바람에 시간이 무진장 지체가 되었던 거야.

결국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통해 통관이 되었을 때는 이미 센터마다 냉장고를 사 넣어 주고 미리 햄을 채워 넣어놓은 경쟁자 사형에게 적기는 해도 그나마 고정 거래선 들이 고스란히 넘어가버리고 말았던 거지.

아들아!

혹 너는 내가 이러한 과거 일을 통해 경쟁하던 사형들을 성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모르겠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그러한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노력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고 저런 노력을 하면 저런 결과가 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해.

앞서 나와 햄을 장사하던 사형이 국가대표 급 출신의 출가승과 같은 상태로 사업에 임하였기 때문에 그 같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고 그 사형이 신에게 자신의 사업이 잘되길 바라는 동안 직접 뛰어다니며 노력했던 우리와 경쟁하던 사형들은 지금까지 번창일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물론 두 사람이 하던 동업의 관계가 깨어지고 각자가 다른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들 역시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점은 신을 향한 여정이거든.

그리고 물질이라는 것은 오늘 좋았다가 내일 나빠질 수도 있으니 결코 지금의 풍요로움이 지속되리라는 보장도 없으며 반대로 지금의 빈곤함이 지속된다는 법도 없어.

그리고 이 같은 일을 총괄적으로 분석해보면 알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어느 한 순간도 신이 작용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거야.

 J사형이 장사에 대한 노력을 명상보다 더 많이 하지 못했는가 하는 것은 사형만이 알 테지만 그러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역시 신의 완벽한 조화 속에 있는 것인 만큼 속상해 할 그 무엇도 없어.

다만 이러한 일로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얻을 수 있었나 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고귀하고 귀중한 것이란 것만큼은 내가 말할 수 있거든.

언제나 겪어 나오고 있는 것이지만 물질은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어 있으며 지금 내가 최소한이라고 여기는 마지노선까지 버리고나면 만족하는 마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가 되어야 할 것 같구나.

다음에는 또 다른 주제로 만나기로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