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번드 2021. 12. 1. 04:16
728x90

아들아!

오늘은 현실에서 벗어나서 또다시 과거로의 여정을 이어가도록 하자꾸나.

지난번 어디까지 말했더라?

!

00마마 사건으로 스님을 찾아뵈었던 일까지 말했지?

스님을 만난 후 대구센터엘 갔을 때는 참으로 해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어.

그 당시 대구 연락인 을 만나서 동수들에게 그러한 일을 알리고 더 이상의 사태확산을 막고자 하였던 것이었는데 연락인의 말씀은 아주 뜻밖이었지.

자신은 도무지 00마마로 가신 분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는데 황당함이 도를 넘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소리인가 싶었고 도대체 연락인 이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싶었지만 그분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더구나.

00마마에게 가신 분 중에는 그분과 막역지우 스님한분이 있었는데 그 스님이 연락인의 집에 머물고 계셨기 때문이었어.

그분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고 자신의 판단으로는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내 생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

이러한 차이점을 살펴 보기위해 우선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살펴보도록 해.

먼저 이들은 에고를 없애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에고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 몸을 때린다거나 나무나 벽에다 자신의 몸을 심하게 부딪치게 한다는 것이었어.

이러한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하는 것은 그들만이 알 터이지만 내가 봤을 때는 에고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에고를 없애겠다고 하는 것 같더구나.

수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에고를 아주 크나큰 장애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것만 없으면 부처가 된다는 믿음을 가기고 있기도 하는데 그만큼 에고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지긴 하지만 에고의 실체를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에고라는 말이 뜻하는 바는 분명히 육신적인자아라고 하는데 그 자아라는 말은 본인 스스로를 일컫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테지만 수행인들이 에고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는 자만심 내지는 뻐기고자 하는 마음을 이름이야.

그렇다면 그와 같이 자만심이나 뻐기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뭘까?

아들아!

너는 이러한 이유를 알겠니?

겸손해 짐으로서 하심을 하기위해서가 아니냐고?

그래!

네가 어쩌면 수행인들보다 더욱더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지난번에도 내가 잠시 말을 했지만 깨닫는다던지 부처를 이룬다는 말의 참된 의미는 사람들로부터 추앙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로지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라 했지 않니.

그런데 그러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자신 몸을 학대하고 혹사 시키는 행위가 필요한지 봉사를 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살펴보면 너무나 확실히 드러나지 않겠어?

센터의 일을 하면서 궂은일은 하기 싫어하고 편안하게 명상만 하기를 추구하던 사람이 벽이나 나무에 몸을 부딪친다고 에고가 사라질까?

우선 당장은 생각을 멈출 수 있겠지만 자신 앞에 상황이 닥치게 되면 여지없이 깨져버린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말이지.

이미 출발부터가 수행한지 5년 이상이라 한정을 지음으로 인해서 분별을 하고 하루5시간 이상 명상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부터가 에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말이야.

자신들만이 스승님으로부터 특별한 공부를 할 자격을 부여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냐는 거지.

일반인들조차 부처로 보아야 한다는 스승님의 가르침과 분명히 반대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스승님을 팔고 있었는데 대만에 입문을 하러 갔다 온 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들어가는 입구부터 스승님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았다고 하더구나.

그러고선 입문식때 하는 말이 용신 호법을 돌려보내도 됩니까?”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말만 들어보더라도 이상하지 않는가 말이지.

용신호법이란 스스로를 보호하는 호법 신장(수호천사) 을 이름인데 왜 스승님의 법문이라면 용신호법을 돌려보내도 되느냐고 묻겠냐 이거야.

사정이 이러한데도 도무지 인정을 않는 것이었어.

심지어 국외 조에서 늦게나마 이 같은 일을 알고 동수들에게 알려서 사태방지를 하라 지시가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같은 팩스를 서울로만 보냈다는 핑계로 대구 동수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니.

지금껏 서울로 국외조가 팩스를 보내면 다시 국내 여러 센터에다가 전문을 띄우는 방식을 따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있었는데 무슨 김밥옆구리 터지는 소린가 말이야.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었지만 그나마 호주에서 함께 지낸바 있던 C사형 부부가 나서서 내편을 들어주는 바람에 동수들이 알게 되었지.

이와 같은 일은 부산센터 역시 마찬가지였어.

다들 알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그 당시 부산센터 총무로 있던 J사형과 오랜만에 만나서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고 그러한 얘기 끝에 서울소식을 말하게 되었는데 옆에서 우리얘기를 듣고 있던 사형 한분이 깜짝 놀라는 거야.

자신에게 아침나절 00마마로 간 사저가 전화가 와서 집을 수리해달라고 하더라며 어떻게 이렇게 중대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가 하였지.

결국 부산센터역시 국외 조 지시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었어.

아들아!

이런 것들이 바로 에고라는 거야.

지휘체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이들 일뿐 자신들은 아니라는 것이고 자신이 판단해 봤을 때 이 같은 일은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 같은 행위를 에고라고 여기지도 않는 이들에게 에고를 말해봐야 뭐 할 것인가 말이야.

그저 남들 앞에 나서지 않고 혹 나서더라도 공손하게 말을 하면 된다고 여기며 겸손한 척을 하는 것이 에고를 조금이라도 극복한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에고를 어떻게 넘어선다는 말인지 신기한일이 아닐 수 없었어.

이토록 숨 가쁘게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00마마 일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나서야 이러한 사태의 파장이 수그러들었고 그들과는 완전히 단절이 되었으며 그 같은 센터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잠잠해 지기 시작하면서 J사형과 내가 또다시 일을 벌이게 되었던 거야.

사형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총무 일을 하는 와중에 부산 여자 동수들과 채식사업을 계획하게 되었고 그 같은 사형의 제안에 부산 사람들 특유의 추진력으로 단숨에 7천만 원 상당의 돈이 모였어.

이때 사형과 내가 함께 사업을 도모했던 것은 김치공장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와 같은 일을 생각 하게 된 동기가 그 사형이 대만을 다니면서 김치오더를 받아왔던 경험 때문이기도 했고 나 역시 영동센터에 거주하고 있는 장주 자들로부터 자체적인 경제활동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지.

내게 부탁을 하신 분들이 여러분이었기도 하거니와 과거 98년 당시에도 장주자들이 자체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자급자족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김치공장을 하면 아주 이상적일 것 같았거든.

주변에 노는 땅도 많았고 무엇보다 스승님께서 출가자라해도 자신의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다들 자급자족을 걱정했던 거야.

그런데 이러했던 일들이 지금은 그야말로 퇴색이 되어서 나에게 부탁했던 사실조차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고 있고 오히려 내가 너무나 사회생활에 물들어 있는 것 마냥 핀잔을 들어야 했으니 참으로 개구리 올챙잇적 시절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

과거에는 물질적인 곤궁으로 부탁을 했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 이제는 더 이상 내 도움이 필요 없어졌으니 당연 할 테지만 예전에는 그러한 일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이라도 한다면 나에게 그런 말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왠지 우울해지는구나.

나로서는 나에게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맙지만 그때 당시로서는 그들의 절박함이 생각났기에 내 어려움은 제쳐두고 생각을 했던 거지.

그런데 J사형과 함께 김치공장을 하고자 마음먹고 난 다음이 문제였어.

98년 센터가 처음 생길 당시 영동센터를 건립하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했었는데 그분들이 제동을 걸고 나온 거야.

영동센터가 명상도장으로 쓰여야지 다른 목적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겠니.

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주장도 다분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 또한 들더구나.

말도 안 된다고 여긴 것은 내 개인의 생각이었고 명상의 목적에만 센터가 써져야 한다는 것이 여러분의 의견이었기 때문에 내 개인의 생각을 접기로 했고 우리가 모금해둔 돈을 다른 용도로 쓰기로 했지.

우선은 내가 하고 있던 장사와 관련이 있던 원단 장사를 해보기로 했는데 참으로 황당한 일이 발생되더구나.

내가 호주에서 IMF때문에 재기의 기회가 무산되었듯이 이번 역시도 그러한 일이 발생된 것이었어.

내가 사형을 만나러 부산을 내려 갈 때만 하더라도 원단을 만드는데 쓰이는 생지가격은 안정적인데 비해 원단가격이 높았고 내가 알고 있던 원단 가공업체에 연결하면 중간 업자로서 충분한 승산이 있었는데 우리가 돈을 준비하고 갔을 때는 생지 값이 턱도 없이 올라있는 것이 아니겠니.

미리 판매처 확보와 가공 소 섭외까지 준비가 되었기에 탄탄대로가 보장 된다 여겼는데 또  한 번의 변수가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야.

몇 번의 크나큰 실패를 거듭했기에 나에게는 별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햄 장사로 첫 실패를 맛본 사형으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더구나.

웬만하면 그대로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이대로 해서는 큰 성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같은 모험을 시도할 수는 없었기에 그 돈을 돌려드리자고 했어.

몇몇 분이 좋은 취지에서 모은 돈을 확실하지도 않은 사업에 투자 시켰다가 낭패라도 당하게 되면 그 원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거지.

그러나 며칠의 장고 끝에 그 사형이 내린 결론은 다시 한 번 햄 장사를 하기로 한 거였고 이번에는 대만의 햄이 아닌 일본의 채식 햄을 가지고 승부수를 띄워 보겠다는 것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그 사형으로서는 힘들게 모금이 된 돈을 사업도 못해보고 돌려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이번 기회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고 싶었던 거야.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본행 비행기를 태워 보내면서 어찌 되었건 성공하길 마음속으로 빌었지만 그 사형의 용기와는 달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를 못했고 결국 사형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쓰인 경비를 제한 나머지 돈을 모두 주인들에게 돌려주고 말았지.

아들아!

이때당시 내가 겪고 있었던 자금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이 돈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같은 욕심의 소리를 내가 접수하지 않았어.

아니, 그것보다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수없이 솟아올라오는 가운데 속한 그 같은 생각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야 보다 확실한 내 대답 일거라 생각해.

우선 꿀이 달다고 먹고 나서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고 그 돈이 나를 위해 모금된 돈이 아닌 이상 내가 쓸 수는 없었거든.

물론 그 사형역시 그러한 내 말에 동의를 했고 그 같은 결말을 가져왔던 거지.

그 사형과 내가 계획했던 일들이 무산되고 나서 한동안은 소식이 끊어진 체 지내게 되었는데 한번은 네 고모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어.

그 동안 가끔씩 나를 보고 심심찮게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함께 다니길 권해 왔었는데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나에게 돈을 빌려줄 테니 자신의 교회에서 하는 여름 성경 강연회를 참석하라는 거야.

네 고모가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 귀에 솔깃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네 고모가 믿고 있다는 종교가 혹시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비집단은 아닌가? 했어.

지금이야 내 마음이 무척이나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믿고 있는 명상이 최고의 법문이라 여기고 있었고 어디까지나 사이비라 불리는 종교는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로만 여기고 있었거든.

그리고 때때로 확신에 차있는 네 고모의 믿음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었어.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네 고모의 권유에 따라 함께 가보기로 작정을 하고 따라 나섰던 거야.

집회가 열리는 공주 인근에 위치한 장소를 도착해보니 산속에 그러한 장소가 생겼다는 것도 놀라웠고 수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열린다는 집회에 만 명 이상으로 보이는 인파가 모인 것에 또다시 놀라고 있었어.

며칠에 걸쳐 목사님 몇 분으로부터 성경말씀을 듣고 난후 그분들의 앞뒤 정연한 말씀에 솔직히 수긍이 가고 있었는데 내가 평상시 생각하고 있는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많았기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더구나.

그런데 문제가 발생된 것은 강연이 모두 끝난 3일 후 교제를 하는 시간부터였어.

전도사님과 내가 설전 아닌 설전을 벌려야 했는데 그분은 내게 성경의 말씀을 믿는가를 물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몇가지 질문을 했어.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습니다만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습니다.

만약 인간들이 지금까지 지어놓은 죄와 미래의 죄까지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다 가져 가셨다면 구태여 우리가 성경을 믿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 착하게 살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했더니 그분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없애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게 되면 절대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며 진심으로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지 그렇게 믿지 않는 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지 않겠니.

그렇다면 그러한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될 것 아닌가 했더니 이번에는 또다시 거듭나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거듭났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가 물었더니 그렇다고 말씀 하시기에 그렇다면 나는 그 같은 사실을 믿는다고 하였어.

그랬더니 그 같은 사실을 말로만 할 게 아니라 확실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그런 전도사님 말씀에 내가 참지를 못하고 또다시 죄가 되고 안 되고의 판단을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물었던 거지.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위가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가난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 드렸더니 그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판단하신다고 말씀하시더구나.

속으로 한 생각이 일어났어.

 

만약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면 내가 구태여 당신이나 목사님에게 확인 받아야할 필요가 뭐 있는가?”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들어보니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신 성경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어.

그래서 내가 다시 한 번 더 물어보았지.

 

그렇다면 지금의 성경이 생기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도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고 죽었으며 또다시 태어나고 사라져갔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도 모르고 죽었는데 그 영혼들의 안위가 무척이나 궁금했거든.

그랬더니 그 전도사님 말씀이 걸작이었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그래서 또다시 내가 말을 이었지.

 

과거에도 하나님이 알아서 하셨다면 구태여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천국을 가도록 해주실 것 아닙니까?”

 

이 말에 대한 대답은 더욱 걸작이더구나.

 

지금 당신에게 하나님이 기회를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다면 지옥을 갑니다.”

 

그래서 내가 또다시 물어보았어.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프리카 오지나 산간마을에 대대로 살아와서 예수님 복음이라고는 모르고 살다가 죽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하나요?”

 

이 말에도 역시 대답은 동일하였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이 같은 전도사님의 말에 내 마음속에서는 도대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조차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올라오고 있더구나.

만약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는데 뭐 하러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올 필요가 있었으며 그 같은 사실을 믿는 자는 천국을 보내고 안 믿으면 지옥을 보내는 복잡한 방식이 필요하겠는가 말이야.

그 말에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웃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어.

하나님이 정신 이상자도 아니고 골치 아프게 사람들을 이렇고 저런 방법으로 골탕을 먹여서 어떤 이는 아프리카에 태어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게 하고 바위신이나 태양신 또는 달 신을 섬기게 만들며 아마존 강역의 정글 숲을 헤매는 식인종이 되도록 만들어놓는가 말이지.

위대하고 선택 받은 단군의 민족, 대한민국은 선택도 안하고 왜 하필이면 이스라엘 사람들(선택 받고 위대하다고 믿는 기독교의 하느님을 철저히 배척하는 종족들)만을 그토록 유별나게 잘 대해 주시는가 말이야.

아들아!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어이가 없어지고 있었어.

어떻게 유달리 민족의 자긍심이 강하고 자신들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그냥 한국도 아니고 대~한 민국 사람들이 남의 나라에서 발생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선택한 종교를 그토록 쌔가 빠지게 믿사옵니다.” 을 외칠 수 있는가 참으로 신기하더구나.

나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그래!

바로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그날 전도사님으로부터 한 말씀을 들어야했어.

내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 말문이 막힌 전도사님께서는 내게 협박성 말씀을 하시더구나.

 

상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에는 네가 아무리 까불어봐야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뜻이 다분히 담겨있었지.

그래서 내가 믿는 하나님을 말해야만 했어.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야말로 천지창조를 하신분이라고 말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종, 국가, 종교를 아우르는 하나님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분 말씀은 그 같은 말은 성경에 쓰여 있지도 않기에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된다고 하였어.

오로지 자신들은 피조물인 만큼 하나님이 쓰신 성경에 나온 말씀만 믿어야 하고 그런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더구나.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세뇌가 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

성경이 생긴 과정과 변천사를 들먹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성경이 만약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면 그간에 몇 번이나 고쳐져야 했던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으며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정통적이던 종교가 부패일로에 있었기에 다시금 들고 일어난 나머지 오늘날의 기독교가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가 겨우1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식쟁이인 나보다 그분이 더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성경은 하나님이 쓰신 책이라는 사실만을 주장하더구나.

고집을 넘어선 아집이었고 우물 안에 갇혀서 더 이상 큰 하늘은 보지 않을 작정을 한 개구리를 보는 심정이었어.

게다가 예수님께서 구약의 교리를 뒤엎으신 예들이 숱하게 성경에 나오는 것을 보고도 어찌 되었건 정통성과 선택 받았다는 유대민족과의 연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억지로 짜 맞춘 것 같은 성경을 여과도 없고 비판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순함이 부럽기까지 하더라는 거야.

내가 이 같은 말을 감히 겁도 없이 하는데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걱정과 우려를 하겠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분개해서 사람을 해칠 정도의 마음을 먹는 집단이라면 더 이상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아닐뿐더러 자신들이야말로 사이비 집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거라 생각해.

많은 종교집단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이 그러하며 그 옛날 십자군전쟁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백만을 학살 시킨 지독한 사이비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하거든.

이 같은 비판은 꼭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야.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자신이 믿는 종교가 최고이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나 부처님 또는 알라, 구루, 스승 등이 최고이겠지만 내 것이 최고라고 남의 것을 짓밟는다면 이세상은 결코 전쟁이 끓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는 거지.

아들아!

너도 가만히 사색에 잠겨보렴!

들판에 아름다운 꽃들, 시원한 바람, 높은 산 깊은 계곡,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하는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느 누구의 독점이 될 수 없듯이 하나님을 비롯한 이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이 존중 받아야 하지 않겠니.

특정종교를 믿는 이들만이 주인이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왜 하나님은 이 세상에 많은 종교를 만들 수 있게 허락하였겠냐는 거야.

심심해서 만들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딴은 그렇기도 해.

하지만 심심해서 만들었다고 해서 여러 가지 선택의 기회를 줘놓고 자신은 정답을 숨긴 체 오답을 말하는 인간들은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말이지.

그날 나는 분명하게 선언하였어.

그렇게 잔인한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고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이기도 하였어.

내가 성경을 믿지 않는 다기 보다 성경을 포함한 더욱더 크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성경을 믿지 않는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도 하였더니 그분은 씁쓸하게 웃으시면서 나는 성경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내가 다시 말하길 지금의 성경을 내가 믿지 않는다 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믿노라 하였고 절대적인 하나님은 믿노라 말씀을 드리면서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어.

솔직히 내입에서 예수님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불쾌해 하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았지.

그것 한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얼마나 그들이 모순덩어리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겠니.

어떻게 자신들만이 예수님을 말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으며 하나님을 자신들 전유물인 듯 생각할 수 있는가 말이야.

정말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통곡을 할일이 아니겠어?

아들아!

내가 조금 흥분을 한 것 같으니 조금 열을 내리기 위해서 조금 먼 옛날로 여행을 해보도록 해.

오늘날로부터 2천 년 전 예수님 탄생 때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 말이거든.

예수님의 탄생당시 유대인들이 구약을 믿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니.

그렇다면 만약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에 기록된 구약이 사실이고 그것이 진리임에 틀림이 없었다면 더 이상 신약이 탄생이 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구약에서 메시아가 탄생한다는 예언이 맞아 들기 위해서 예수님의 탄생이 메시아의 탄생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감을 해.

그렇다면 구약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성경상의 오류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는지 궁금하더구나.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생각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 이상한 기록들이 무척이나 많은 것이 구약인데 그런 것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인간들이 두려워할 내용들은 무척이나 많이 인용하고 우려먹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난번 내가 말했던 00언 들은 이 같은 사실들을 명확하게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인정을 했고 다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범위의 차이로 인해 그들과 노선을 달리했지만 이 시대에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바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는 거야.

결국상대는 하나님입니다 을 반복해서 주장하는 그 전도사님과의 대화를 원할 하게 마치지 못하였고 네 고모가 기대하던 나의 침례 식은 무산이 되었지만 속으로 네 고모가 그다지 나쁜 길에 들어서지는 않았다는 위안을 가지고 그들과 헤어졌어.

지금까지 그들을 성토해놓고서 어떻게 고모네 식구들을 그곳에 있는 것이 좋다고 하느냐고?

아들아!

지금까지 너는 나와의 대화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었니?

내가 항시 말하지 않았는가 말이야.

산에는 무척이나 많은 길이 있고 네 고모역시 어떤 한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보았을 때는 조금 비탈진 곳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거든.

물론 네 고모의 눈에 내가 보이지 않는 관계로 불안해서 자꾸 자신의 길로 나를 데리고 가려 하는 것만 제외하면 그다지 힘든 것은 없었어.

여기까지의 내 말을 들어보면 엄청 그들을 좋지 않게 묘사하고 있는 내 인식을 볼 수 있겠지만 그것도 그 당시로 돌아간 내 인식에 따른 감정의 표현일 뿐 지금의 내 마음은 아니야.

훗날 다시 한 번 내가 믿는 하나님과 그들의 하나님을 말하게 되었을 때 우리들이 사실은 하나를 둘로 표현하였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때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다루어보기로 하자꾸나.

나는 지금도 네 할머니와 네 고모네 식구들이 믿는 그 침례교회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긴 해.

하지만 아들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만의 축복을 말할 때만 내가 그들의 믿음을 존중하고 인정을 하는 것일 뿐 내게 거침없이 마귀가 들었다는 말을 할 때면 결코 그들을 인정할 수가 없어.

물론 이 같은 내말이 그들이 나를 공격을 했기 때문에 감정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보인 반응이고 그런 의미에서 내 말이 조금은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을 거라 여겨지지만 항시 네 고모와의 대화는 패턴이 정해져 있는 거야.

어디까지나 안타까워하고 불안해하는 쪽은 네 고모였고 나는 언제나 그들을 봐도 편안했다 이 말이거든.

그 당시 뿐 아니라 그 일이 있고 난후 몇 년이 더 흐르고 나서 또다시 네 고모가 나를 침례 시키려는 노력이 있게 되는 만큼 그때 가서 다시 한 번 이일에 대한 재미있는 일을 말해 보기로 하고 오늘을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