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89)
아들아!
오늘 우리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앞서 또 한 번의 완벽을 말해야겠구나.
그때 사저가 쫓겨 간 날과 때를 맞춰 내가 잠자리를 제공받고 있던 곳 역시 퇴출의 결정이 내려졌어.
처음에는 내가 남의 오피스텔에 있었고 그곳에서 번역 일을 하시는 분들이 새벽시간 가끔씩 밤새워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나 때문에 불편했던가 보았지.
할 수 없이 식당 옆에 채식물품을 판매하던 곳을 숙소로 삼게 되었는데 앞서 관음사자가 나를 찾아왔던 곳이었어.
차를 마시던 중 나의 사정을 관음 사자에게 말을 했더니 허락을 해주었는데 원칙상 연락 인이나 다른 책임자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일이었지만 그 당시의 사정상 내가 한 단계를 건너뛴 거였어.
다들 나에게 그렇게 좋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남들에게 사정을 할 만큼 겸손하지를 않았거든.
이렇게 억지로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았던 숙소(?) 같지도 않은 잠자리조차 옮겨야만 했는데 그러한 동수 분들의 단호한 식당 폐쇄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더라면 식당사저와 나의 결합은 원만치가 않았음이 틀림없어.
이것 한 가지만 보더라도 나를 위한 동수 분들 모두가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나? 말이야.
자신들조차도 모르게 우리의 결혼을 만들어준 셈이었지.
아들아!
이것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우리 생활에 유익한지 모르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또 한 번 내부를 파헤쳐 보도록 해.
분명 그와 같은 식당 폐쇄 결정은 표면적인 것만 봐서는 남의 앞날에 막대한 지장을 준 것이 되겠지만 조금 더 먼 훗날 그 사저와 내가 결합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기가 막히도록 고마운 일이 된 것이 아닌가 이 말이거든.
그러나 아들아!
이와 같은 말은 어디까지나 헤피 엔딩으로 끝맺음을 이루어 냈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일뿐 만약 네가 이러한 결말을 창출해 내지 못하게 되면 그들 또한 너에게 좋지 못한 일을 해준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
다시 말해서 네가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 말이거든.
알아듣니?
어려운 것 같으니까 한 번 더 설명해달라고?
그래!
이것 역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인 것도 같으니 좀 더 시간을 할애토록 하자꾸나.
내가 너와의 대화를 진행시켜 오는 동안 수시로 말을 하고 있는 매순간 축복 아닌 때가 없다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데 있었어.
어떠한 경우를 마주치더라도 네가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너는 그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천국을 선사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네가 매 순간을 어렵고 고통스럽게 산다면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지옥을 선물하는 셈이라 이거야.
매 순간이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고 나를 도저히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현실에서 어떻게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도저히 인간 같지도 않은 짓들을 하는 자들을 보면서도 축복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너의 물음이 있을 테지만 결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말길 바라.
지금 너의 인생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연꽃과 같아.
혼탁한 진흙이라는 토양 속에서만 필수 있는 연꽃과 같이 주위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은 너의 영혼이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토양과 같다고 여겨야 한다는 거지.
만약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해버리면 모든 것은 종지부를 찍게 되겠지만 네가 고통스럽던 괴롭고 참기 어렵든 관계없이 이세상은 돌아가게 되어있어.
선택의 여지없이 이 세상을 오늘도 어제와 같이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 놓여 있으며 그 선택은 앞서 내가 말한 방식이다 이 말이거든.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누구는 이렇게 되묻기도 하더구나.
“아니! 그렇다면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사람을 죽여 놓고서도 뻔뻔한 사람을 어찌 용서한다는 말인가요?”
“자신이 당해보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등등의 각가지 이유로 나를 공격하기도 하는데 그 말도 일리는 있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그것은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거든.
한마디로 지혜롭지 못한 판단이다 이 말이지.
내가 항시 너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결과를 놓고 내리는 우리의 판단이자 최상의 대응방식이지 차선책이나 궁여지책이 아니란 것을 네가 우선적으로 인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다시 말해서 무엇이 네게 가장 이상적이고 최상의 결말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지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 아니란 거야.
내가 늘 말하는 것들은 항시 결말에 대한 해석이었지 과정에서 일어나는 너의 선택이 아니거든.
우리는 생을 사는 동안 항시 선택의 순간들을 맞이하는데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항시 결과만큼은 최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말이지.
이해가 가니?
헷갈리니까 좀 더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달라고?
그래.
그렇게 해보도록 하자꾸나.
가령 네가 길을 가다가 사자를 만났다고 쳐.
자비로운 네가 사자의 밥이 되는 선택도 할 수 있겠지만 우선 당장 네가 살아야겠다 싶어 몽둥이를 들고서 사자를 쫒는 것이 안 되라는 법이 있는가 말이야.
그것은 동물의 경우이고 사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말로서 나를 힘들게 하지 말길 바라.
이 같은 경우는 어떠한 경우에도 적용이 되는 말이지 결코 동물과 사람사이에만 적용시키는 말은 아니야.
누군가 너를 때리려고 할 때 과거의 업장이 왔구나 하고 맞을 수도 있고 맞대응을 할 수도 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네가 어떠한 대응을 하던지 그것은 언제나 정답이고 신의 선택임에 틀림이 없어.
다만 그기에 대한 결과만은 고스란히 네 몫일뿐이지.
나 같은 경우는 이러한 법칙을 운전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지.
워낙 직업이 그런지라 운전을 많이 하고 돌아다녀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무척이나 많은 사고를 겪기도 했거든.
물론 남들과 싸운 일은 허다하였고 심지어 경찰서를 간적도 있었을 정도로 내주장이 심했던 사람이었어.
그랬던 내가 어느 날인가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아주 추하게 보이는 경험을 한 거야.
내가 싸울 때는 몰랐었는데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니 한심해 보였고 그야말로 쓸데없는 고집들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지.
줄기차게 싸워서 이겨도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거든.
아들아!
이것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야.
알지?
네가 업둥이 시절 경찰서를 몇 번이나 들락거려야 했고 면허취소가 두 번이나 되고 나서 일어난 자각이라는 사실을….
이와 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거든.
남들과 경쟁을 해서 아귀다툼을 벌려봐야 뻔 한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버리고 나면 더 이상 그러한 게임들이 하찮게 여겨지고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게 된다 이거지.
이 같은 경우는 어떠한 경우도 마찬가지임은 물론이고…
논쟁이나 토론역시도 아무리 해봐야 결론은 매한가지인데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쓸데없다는 것을 알기까지의 경험을 얻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거야.
이렇게 뻔 한 결과를 미리 알고 과정을 겪지 않는 사람은 지혜로운 이고 그렇지 못한 이는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 일뿐이지.
여기에는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있을 수 없으며 옳고 틀림 역시 없으며 선악이라는 구분역시 있지도 않아.
단지 선택과 경험만이 존재할 뿐이거든.
그러한 결론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그것을 최상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살았던 기억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하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지옥으로부터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나에게 천국의 기쁨을 가져와야 한다 이 말이야.
어떠니?
이제 이해가 되었지?
내가 스승님께 드리는 기도와 너와의 대화 속에서 매 순간이 축복이 아닌 순간이 없다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어.
그것이야말로 장사꾼의 기질을 가진 내가 가장 나를 이롭게 하기위해 선택한 상술 중에도 최상의 상술인거야.
하지만 아들아!
이것은 지금의 내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일 뿐 그 당시의 내 마음은 아니었어.
그때는 아직 내 두뇌의 습관과 집착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었는지 몰라.
지금 역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내가 사저와 살게 된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같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 작동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어.
함께 살다 보니 처음에는 몰랐던 여러 가지의 일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사저가 한국을 와서 겪어야 했던 그 아픔들이 그기에 있었고 그 같은 일을 내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던 거야.
아들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렵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어.
내가 산을 사랑하는데 비유하여 시를 만들기도 했지만 실지로 내가 상대방의 아픔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을 해야만 했던 거지.
거기에는 나의 얄팍한 계산이 곁들여 있었기에 더욱이나 힘이 들었던 거야.
분명히 나의 내면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해석이 되고 받아들여졌지만 나의 두뇌는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였고 언제나 나의 이익을 위한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어.
이 과정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행여 타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게 될까 말을 하지 않겠지만 내가 그들과의 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오래된 독소들이었지.
앞에서도 말을 했지만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의 단점들이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고 내가 싫어하고 멀리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이 표현되지 않은 나의 행동들이 제삼자를 통해 보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야.
이렇게 나의 내면이 나의 두뇌를 훈련을 시키는 동안 내가 꽃집을 그만두게 되었어.
그 동안 나를 위해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던 분들의 고마움을 뒤로하고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꽃집의 아가씨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지.
또 다른 아픔을 만들지 않으려는 나의 생각에서 취한 행동이었는데 냉정하게 돌아서 버렸어.
단칼에 잘라버림으로써 조금이라도 아픔을 줄이려는 나의 행동이 어떻게 비춰졌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가끔씩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만약 그 어떤 경우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상대가 아파할 것을 생각해서 하지 말아야 하는 어떠한 기준이 있다고 한다면 참으로 힘들 거라고 말이야.
아들아!
나는 이일을 통해 큰 교훈 하나를 얻었어.
우리는 흔히들 상대방에게 좋은 것만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만을 사랑이라고 표현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통을 주는 것 역시 사랑일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 아가씨가 나에 대한 관심이 깊어 간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냉정하지 못했던 것은 나의 얄팍한 계산이었음을 부인 할 수는 없어.
하지만 거기에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 역시 동시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거든.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그 아가씨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아가씨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좀 더 일찍 냉정해 졌어야 했어.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 아가씨가 받아야 하는 마음의 상처가 더욱 깊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방치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상처를 주는 행위인 거야.
나는 지금도 내가 뒤늦게나마 그 아가씨로부터 멀어진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내가 그 아가씨를 사랑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함에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사랑…
아들아!
우리 사랑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해볼까?
너는 아마도 사랑의 반대말을 미움이라고 생각할거야.
맞지?
그렇지만 말이야.
나는 달리 보고 있어.
사랑과 미움은 한 줄에 놓인 연장선 위의 점들의 나열 위에 자리한 하나로 보고 있거든.
언젠가 모든 이원성을 가진 것들은 모두가 이러하다고 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미움과 사랑이 사실은 똑 같은 지점일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논할 때 상대방을 사랑해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면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여진 나의 냉정함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냐 이거야.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기에 너를 떠나야만 해라는 선언이 그를 아프게 하겠지만 그렇게 냉정해야 더욱 큰 아픔을 막을 수 있다면 그 같은 선언은 어디까지나 사랑이라 표현되어지는 것이 정당하지 않느냐는 거지.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폭력 역시 사랑일수도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지 않겠니?
이 말을 듣고 네가 말도 안 되는 괴변을 늘어놓는다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이 그러하거든.
문제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고 어떠한 곳에 우리의 인식을 가져다 놓는가 하는 거야.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함정이 있어.
그것은 우리의 두뇌가 이러한 점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아야해.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상처를 주고서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준거라는 자기 비호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서 나는 항시 말을 해.
사랑이라는 말을 가진 어떠한 행위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폭력일 뿐이고 설사 그 행위가 폭력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위해 행하여 졌다면 분명한 사랑이라고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폭력도 사랑이라 표현하기를 즐겨하고 있어.
가끔 나는 상대방의 분명한 폭력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사랑이 숨어있다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 같은 말을 하는 이유가 폭력을 옹호하는 소리는 아니야.
사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대부분 사랑 받지 못하는데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내가 알기에 그러한 폭력적인 마음속에 자리한 본질 차원에서 폭력을 사랑이라고 보는 것이지.
게다가 우리가 상대방의 폭력을 그냥 폭력으로 되돌려주기보다 그 폭력적인 행위를 사랑으로서 승화시킬 수 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폭력이 아니라 사랑일수 있어.
이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긴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원수를 사랑한 이는 그것을 해냈음을 우리는 알지 않니?
그렇지?
아들아!
사실 이러한 모든 이원성을 가진 것들은 출발점이 모두 같다는 것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거든.
우리가 모든 이원성을 가진 것들을 하나로 인식이 되어져야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지 이원성을 인정하는 이상 하나님과 내가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영원히 오지 않는 곳으로 떠나간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야.
선과 악이 존재하고 옳고 그름이 존재하며 심판하는 하나님과 심판 받아야 하는 내가 존재하는 이상 결코 하나님과 나는 하나가 될 수 없어.
언젠가 기회가 닿을 때 또다시 그러한 하나 되는 감정을 거론하기로 하고 다시 한 번 내 삶의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꾸나.
내가 꽃집을 그만두는 것과 시기를 비슷하게 하여 사저역시 식당 주방장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너무나도 힘든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해야만 했어.
식당주방장을 할 때만 해도 월급이 적지 않았고 나 역시 몇 가지 일을 했으니 두 사람이 합쳐지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거라 기대를 했는데 사람의 일이란 그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구나.
이상하게 둘 모두가 갑자기 백수가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물질적인 어려움이 닥치게 되었는데 매달 들어가야 하는 돈이 배로 늘어나 버린 것이었지.
매일같이 다가오는 삶속에서의 금전이 없음으로 인해 당해야 하는 고통이 또다시 엄습하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어.
그 동안 독신으로 지냈을 때는 나에게 부족함이 없었는데 막상 또 하나의 가정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물질적인 어려움이 닥쳐왔던 거야.
마치 재가출가가 둘이 아니라고 평상시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어려움이 쳐들어오고 있었던 거지.
아들아!
앞서 너와의 대화에서도 말을 했지만 우리가 어떠한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앞에 펼쳐지는 환경이나 풍경이 달라진다 했던 적이 있지?
바로 내가 그러한 지경을 경험하고 있었어.
이것이 정답이고 저것이 오답은 없지만 이 길을 택하면 이러한 풍경, 저러한 길을 택했을 때는 저러한 풍경이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데 내가 택한 길은 그야말로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던 셈이야.
사실 이러한 것들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너무나도 완벽한 필연이었지만 그와 같은 일을 인식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어.
하루하루 닥쳐오는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잠시도 쉴 수 없었고 일자리를 찾아야 했는데 세 가지나 되는 일을 거의 동시에 그만둬 버리고 나니 그만한 수입거리를 찾기가 결코 쉽지가 않더구나.
안산에서 서울로 몇 달에 걸쳐 출퇴근을 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던 만큼 이번의 취직자리는 안산에서 구해야만 했는데 우리가 쓸 만큼의 수입원이 될 만한 직업자리를 구하다 보니 힘에 겨운 일을 선택하게 되었어.
아들아!
이와 같은 일이 왜 일어났는지 너는 모르겠지?
나 역시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 또한 내 영혼이 나를 고생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여기고 있어.
왜냐고?
내가 그 사저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 동기 중에는 그 사저의 수입이 나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 것은 물론 둘이 힘을 합치면 머지않은 장래에 집도 살 수 있겠다 싶었고 더 이상 내가 물질적인 어려움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어.
이러한 내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얄팍한 장삿속을 내 영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러한 나의 속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마다 안 되게 만들었던 거야.
사저가 나 혼자 힘들여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나머지 채식식당이 아닌 일반식당에 취직을 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이 되는 것이었지.
먼저 모시고 가다시피 했던 채식식당이 운영의 어려움으로 잠시 휴업상태로 들어간 것이 주된 이유가 되었고 우리들이 채식인 이라 일반식당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거든.
너도 생각을 해보렴.
채식만 하는 사람이 일반인들처럼 고기가 들어간 음식의 간을 어떻게 보겠는가 말이야.
그러다 보니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을 해야 했는데 식당의 특성상 이일 저 일을 구별을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 것이며 그런 사람을 쓰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거지.
이 바람에 내가 죽을 맛이었어.
결국 네 학비도 보내야 했고 나의 새로운 결혼생활도 해야 했으니 두 집 살림을 하는 꼴이 되었던 거야.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나의 명상은 처절하다시피 지속되고 있었는데 이때당시 내가 어떻게 명상을 해 나올 수 있었나를 잠시 보도록 하자꾸나.
먼저 내가 꽃집에 근무를 할 때부터 살펴보자면 그야말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는 말을 생활 속에 실천을 해야 했는데 절대적인 시간부족이 가져다주는 명상부족을 메우기 위해 잠을 극도로 자지 않아야 했고 평상시 배달을 다닐시 에 고도의 집중상태를 유지해야만 했어.
한마디로 눈을 감아야 빛과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항시 빛과 소리 가운데 있었던 거지.
운전을 하면서도 항시 소리를 듣고 있었고 지혜안에 집중을 놓치지 않고 있었으며 거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정자세의 명상도 게을리 하지 않았어.
아침에 꽃을 구입하기위해 내가 나가는 시간이 보통 6시~6시30분인데 두 군데의 가게에 꽂을 주고 나면 8시 전에는 가게에 도착을 하였고 그때부터 아가씨들이 출근을 하는 9시~9시30분까지 명상을 하였으며 배달 중간 중간 짬이 나는 대로 명상을 했거든.
하루 종일 배달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가게 앞에 세워둔 차에서 몇 시간 정도는 항시 명상의 시간이 주어졌던 만큼 하루하루 지복 속에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새벽녘의 녹즙배달 시간동안은 백회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우주의 에너지에 온몸을 떨어가며 다녀야 했으니 어딜 가도 천국의 축복이 있었던 것 같았지.
새벽2시에 배달 일이 끝나면 명상을 하다 쓰러지듯 잠을 자곤 했는데 어떨 때는 차를 마시다 밤을 새우고 바로 출근을 하기도 했어.
그럴 때는 어김없이 배달 일이 많지 않아 차에서 실컷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더구나.
미리 알고 밤을 세운건지 밤을 새워서 배달 일이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와 같은 일은 꽃집을 그만두기 전까지 계속되고 있었던 거야.
이러한 일은 안산으로 가서도 이어졌는데 어느 날인가 육신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어.
사저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밤에 출근을 하기위해 잠을 자고 있었는데 내가 워낙 집중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잠을 자고 있는 가운데 육신의 반이 깨어났던 거야.
아들아!
듣고 있니?
내 머리가 반으로 나뉘어져 한쪽은 꿈을 꾸고 있는 상태에서 나머지 반이 깨어났다 이거지.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그야 그날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사저가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있었으니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고 꿈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고 있었으니 알 수 있었던 거지.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우리 육신이 몇 개로 나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한 가지 특징은 이와 같은 상태를 유지를 하는 동안은 잠을 잔 것 같지가 않더라는 거야.
이일을 겪고 난후부터 잠을 잘 때는 푹 자버리기로 했는데 두세 시간 동안도 숙면을 못 취하는 잠버릇은 입안을 헐게 하고 혓바늘이 끓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더구나.
이렇게 힘들게 명상을 이어나갔고 그것이 그다지 힘들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뒤늦게 식당의 사저와 함께 살게 되면서 물질적인 어려움을 마주치게 된 거지.
하지만 아들아!
그물질이 가져다주는 고통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더구나.
사람들이 개도 물어가지 않는 돈 때문에 자살까지 한다는 것을 철저히 맛보았어.
물론 그때가 모두가 아니었고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였지만 참으로 이세상은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이란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거지.
그러한 물질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내가 택한 직업은 골판지 운반업이었어.
보통의 일보다 다소 힘은 들었지만 다른 직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입이 많았기 때문에 선택을 하였는데 이일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거든.
처음 하는 일이라 생소하기도 했고 수당제가 되다 보니 얼마나 많이 뛰는가에 따라 수입이 많고 적고 가 결정 되는 만큼 땀을 많이 요구하고 있었어.
이일이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신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이러한 일을 하도록 하였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정말 내 안에 있는 것이 신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으며 내가 진정 제대로 수행을 해나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내가 힘이 들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아들아!
다음시간에는 내가 이일을 통해 어떠한 갈등을 겪었고 그러한 갈등이 내 수행에 어떠한 작용을 미치게 되었나를 말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