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93)
아들아!
경기도 양지에 있는 어떤 박스공장에서 골판지 하차작업을 하던 중 극심한 고통으로 치를 떨어야 했어.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는 노동에 이미 한계선을 넘어선지 오래인데 불구하고 버티고 있던 몸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던 거지.
이러한 내 몸 상태를 알 리 없는 그 공장의 관계자들은 자기들 할일만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속이 상하고 억울하던지 미칠 것만 같더구나.
아프지만 않아도 내 순서를 새치기한 사람을 미워하기까지는 않았겠지만 사시나무 떨리듯이 몸의 근육들이 요동을 치는 속에 일어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그야말로 수행과는 별도의 세상을 맛보게 해주었어.
이래서 내가 수행하는 동료들이나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야.
자신이 그 속에 머물러 보지도 않고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고…
나 역시 모든 순간이 신의 뜻이고 신 아닌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하던 사람인데 불구하고 그와 같은 생각은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아픈 것만 생각하게 되더라는 거지.
아주 신분이 높으시고 도가 출중하신 분들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했어.
몇 번이나 찾아가 사정도 하고 부탁도 했건만 도무지 반응들이 없었던 거야.
우리 공장과 그곳의 책임자간에 어떠한 알력이 있었던 모양으로 서로가 신경전을 벌리는 가운데 내가 재수 없이 걸렸던 것 같아.
빨리 짐을 부리고 돌아가 병원을 가야겠는데 두 시간이 넘게 치를 떨다시피 고통과 싸우고 있었으니 그 괴로움이 얼마나 컸겠냐 말이지.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려는 욕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으면서 이제 돌아가면 정말 그만두리라 생각했어.
남에게 더 이상 빚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차마 돈을 빌릴 수 없어 버티어 나왔는데 차라리 돈을 빌려 쓰는 한이 있어도 이 짓은 그만두어야한다 생각한 거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너는 아마도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를 짐작도 하지 못을 거라 생각해.
내가 단순하게 몸이 아팠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으며 돈을 빌려 썼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일이 완벽 속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고 모든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나를 말하고 싶은 거야.
이제 알겠지?
아직도 네게는 그다지 마음으로 와 닿지 않겠지만 좀 더 내 삶의 여정에 빠져 들어가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니 과거로의 여행을 이어가자꾸나.
내가 두 시간을 넘게 고통스러워했던 이유가 그만큼 이 순간을 이겨내겠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어.
분명 신의 뜻은 벌써 그만두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남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그러한 어려움을 벗어나라고 했지만 습관으로 무장 되어진 육신은 그러한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거야.
자존심 문제도 있었고 더 이상 남의 신세 따위는 지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데 사실 이러한 것들 모두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라 여겨져.
많은 도인들이 삶을 물 흐르듯이 하라고 하였던 것은 막히면 돌아갈 줄도 알라는 말이었지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라는 말은 아니었고 아프면 그 일을 그만두면 될 것을 괜히 억지로 버티려고 한 내가 그러한 일을 만든 거지.
사실 그러한 고통스러운 일조차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고 그 일을 통해 나 역시 또 다른 인식변화를 가져왔어.
그러한 고통의 순간이 나에게 오지 않았기에 초연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누구나 극심한 고통에 달하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경험하였던 거야.
그렇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남들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아들아!
천국의 존재들이 이 세상을 오고 싶어 하는 이유가 고통과 괴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천국이나 극락에는 고통이나 괴로움은 없으니 그것을 즐기기 위해 온다는 거야.
그래서 누군가는 고통과 괴로움은 즐기기 위해 존재한다고 노래하는 거지.
고통과 괴로움에 빠져있는 많은 분들은 내 말이 말 같지도 않게 들리겠지만 머리를 반 바퀴만 돌려도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어.
몇 번에 걸쳐 말했듯이 빛과 어둠은 같이 있을 때 빛은 더욱 밝게 빛나고 어두움도 선명해 지거든.
그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고통은 희열을 불러오는 거지.
우리들이 엄청난 고통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이러한 양극성을 경험하기 위해서인지도 몰라.
그때 나 역시 그러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사지가 벌벌 떨릴 정도의 극심한 고통으로 그만두게 되었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겹치고 있었어.
내가 골판지 공장에 일을 하기위해서는 2.5톤의 차가 필요했는데 그 차를 임대해주는 임대업을 따로 하는 분이 있었거든.
골판지 회사에서 직접 지입 차량을 관리해보니 보통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보니 그러한 일을 대리해주는 중간업자를 선정 했던 거야.
돈이 없는 내게 그분이 미리 차를 사주고 내가 일을 하면서 천천히 갚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해서 나에게 넘겨진 차가 문제가 되고 있었던 거지.
워낙 힘든 일을 하는지라 차역시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내가 차를 넘겨받은 지 불과 3개월이 넘지 않아 퍼져버렸어.
보링을 하고 나서도 일을 지속적으로 해나갔던 것은 금전적인 어려움 탓이었고 그 당시 사전에 미리 차가 이상이 있음을 예고해 주지 않았던 그분의 잘못을 내가 지적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손해를 보면 만사가 편할 것을 구태여 따져서 뭐하나 싶었기 때문이었지.
그런데 얼마 후 나와 같은 조건으로 들어온 사람 하나가 나와 같은 경우를 당하게 되자 임대업체에서 수리비를 주었다는 것이 아니겠니.
이 말에 슬그머니 화가 나고 있었어.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을 차별한다는 소리인데 이것 때문에 무척 많이 고민을 해야 했지.
처음에는 내가 손해보고 말지 하였는데 내면에서 자꾸만 보상을 청구하라는 거야.
설마 신께서 남을 손해보이는 짓을 시키겠나 싶어 내 두뇌의 소리라 치부를 하고 지냈는데 갈수록 마음이 편치가 않았더구나.
결국 내면의 지시대로 내용증명을 띄웠더니 그 즉시 해답이 왔어.
당장 돈을 물어주겠다면서 대신 함께 일할 생각은 말라고 하는 거야.
뒤늦게 수리비를 청구한 내 행위가 괘씸했기에 그분으로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았어.
아들아!
내가 왜 이 말을 꺼내는지 너는 알겠니?
남으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발을 하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 아닌가요?
아니냐.
너는 너무나도 심한 착각을 하고 있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무엇이 잘한 일이고 못한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두뇌 판단에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함이야.
처음 내가 이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나는 벌써 내면에서 신호를 받고 있었지만 애써 그 같은 신호를 무시하고 있었거든.
마치 내 몸이 망가질 때까지 일을 하며 버티는 미련을 떨었던 거지.
내가 살아나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다투면서 살았는데 그럴 때마다 명상을 하게 되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할일을 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남을 위한답시고 배려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편하지도 않고 주위까지 산만했던 거지.
마치 내가 고발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 같은 일이 발생되었다 이 말이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하게 내게 다가오는 것은 내면의 메시지였어.
네가 그 사람을 생각해준다는 것이 그를 더욱 악덕업자로 만들 수도 있으며 너만 바보가 되는 거야.
게다가 그는 집도 여러 채 가지고 있으며 셋방살이하는 너의 도움 따위는 필요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말이지.
물론 이것은 내 두뇌의 여러 가지 속삭임들 가운데 내가 채택한 신의 음성이지만 그것이 신의 음성임에 틀림이 없어.
다만 가장 나를 이롭게 해주는 신의 음성…
어떻게 그것이 신의 음성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아들아!
일찍이 네게 말을 했지?
어떠한 선택도 너에게 달렸다고 말이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네가 마음이 편할 수 있으면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것이지 이것이 정답 저것은 오답인 것은 아니라고 했던 일말이야.
누구나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하게 틀림 점이 있어.
나는 항시 빛과 소리, 안에서 그 모든 행위를 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틀려.
앞서 말했듯이 나는 24시간 내내 소리와 빛과 함께한다고 했지?
그것이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다 이거야.
다시 말해 내가 하는 어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들이 모두 빛과 소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거든.
그것이 다른 이들의 그것과 뭐가 다르지요?
그것은 말이야.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행한 모든 것들이 돌아오는 것을 고통스러워 견디기 어려워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신의 축복이라 여기는 것이 달라.
딴사람들도 그렇게 여기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딴 분들도 나처럼 자신이 뿌려놓은 것이 돌아오는 것을 신의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고 살면 돼.
그런데 아쉽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거든.
자신의 잘못을 뻔히 알면서 남을 해치는 일을 해놓고서 교회나 절에 가서 울면서 후회를 하는 것을 내가 얼마나 자주 봐 왔는지 너 역시 짐작을 할 거야.
그러한 사람들이 결국 죽을 때는 자신이 지어놓은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니?
이 같은 내 말에 어떤 이들은 말을 해.
“웃기는 소리 말아”
“하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게 되는데 무슨 소리하고 있어”
“나는 정말이지 천국을 갈 자신이 있거든”
하며 콧방귀를 뀌는 것을 나 역시 보았어.
그 말도 전혀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거든.
무슨 말씀이신가요?
뜬금없이 동쪽 문을 닫으니 서쪽 문이 답답한 말씀을 하고 있는지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주제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들리는데요.
너도 생각을 해보렴.
어찌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남을 해치는 짓을 할 것이며 남의 이익을 가로채는 짓을 할 것이냐 말이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인간들에게 신이주신 계율이 아닌가 말이지.
불살생을 하라는 것이 부처님께서 불자들에게 계명으로 주신 것인데 어떻게 그 입으로 남의 고기를 밀어 넣으면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거야.
결국 이 말은 내가 한 잘못을 하나님이 대신 떠안아 주겠지 라는 막연한 바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 말이거든.
하나님이 정해준 계율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하나님 자녀라고 할 것인가 말이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준 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 있게 천국을 가고 극락을 갈수 있다고 할 것인가 말이야.
이러니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면 그토록 괴로워하고 양심의 심판을 받는 거지.
솔직히 나 역시 그러한 계율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벌을 받아야 한다거나 지옥을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실상이 이렇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분들의 신앙심들이나 수행자들이 흔히들 말하는 해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 지혜를 여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고 신과의 합일과 부처와의 합일을 말하는 것이거든.
흔히들 우주와의 합일을 유체이탈을 해서 우주에 녹아드는 것을 말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동수가 높은 존재에 붙이는 이름을 말하는 거야.
진동수가 높아지면 영체가 너무나 아름다운 색체를 갖게 되고 그것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도 보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오오 라 라고 하지.
영안이나 천안, 혹은 불안이 열린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이 같은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들 자체가 대단한 존재들은 아니거든.
자신들이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또한 어느 한 등급을 말하는 것일 뿐 아직은 완전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뭐가 완전한지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수행을 해서 대 지혜를 열어야 해.
얼마나 많이 알고 싶은가에 따라 얼마나 많은 노력이 따라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고…
이것이 바로 일반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관음법문 수행자가 다른 점이고 그것을 내가 말해주고자 하는 거지.
내가 그분을 악덕업자로 묘사해서 미안하지만 사실 악덕업자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야.
단지 내가 그렇게 묘사를 했을 뿐 그분 역시 그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해야만 했던 일을 한 것이고 나는 반대편에서 내 목소리를 냈던 것에 불과해.
이세상의 어떠한 일도 마찬가지이고…
내가 평상시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주장을 하는 것에 따른 번거로움을 귀찮게 여기는 습관을 없애기 위해, 또는 어떤 행위도 신의 행위가 아니거나 부처의 행위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내 영혼은 그와 같은 선택을 내려야 했던 거지.
다시 말해 이것은 좋은 일 저것은 나쁜 일 따위는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거야.
다만 거기에는 내가 한일에 따른 결과물만이 기다리고 있었거든.
아들아!
여기에서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갖도록 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분별을 하고 살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폭력적인 행동은 무조건 나쁘다고 여기고 남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에만 의미부여를 하거든.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사실은 폭력 속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해.
내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폭력 속에 사랑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렇게 해야 우리의 분별 심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야.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
교도소에 있을 때 워낙 사람 좋은 교도관이 사람들을 너무나 좋게 대해주자 재소자들이 농담을 슬슬 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놀림감으로 여기는 것을 본적이 있거든.
그것이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그분이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어.
그분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었던 거지.
경찰관 아저씨들이 도둑님들이나 강도 분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너도 알거야.
그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분들의 역할이 그러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
사람들로부터 때때로 욕을 많이 얻어먹기도 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분들 이야말로 대단하신 분들이라 여겨져.
아들아!
여기서 예전에 내 육신 스승님께서 어떤 제자를 혼낸 일을 예로 들어 비교해 보도록 해.
언젠가 국제선 행사장에서 마장(빙의)에 들린 사람이 스승님 강연시간에 괴성을 지르며 발작을 한일이 있었다는 거야.
그럴 때 스승님께서는 마장 들린 사람보다 더욱더 높은 소리로 그를 제압하더라는 거였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적용을 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한 거지.
마를 제압하기위해서 마의 힘을 이용하는 것을 우리가 부처라고 하는 것이지 무조건 잘 대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거든.
사람들은 대부분 부처라면 사람들을 따뜻하게 여겨 주는 것만 생각하지 절대 이와 같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신을 보지 못하고 부처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분별심이라는 것을 자신들도 몰라.
스승님께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서 그와 같이 무서운 목소리로 마장을 제압하신 것이 아니야.
그야말로 사랑이 너무나 많으신 자비로운 분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던 거지.
이 같은 일은 예수님은 물론 이 세상을 다녀가신 수많은 성자들의 행동이 보여주고 있어.
바로 이와 같은 일을 나 역시 그러한 행동을 함으로서 나의 고정관념 하나를 깨었던 것이고 단순하게 나의 이익을 바라고 한일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아들아!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인식변화를 가져왔던 만큼 그 일을 마칠 때까지 나와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이 모두가 나의 스승들이었음은 물론이었어.
내 의식세계에 들어와서 내 인생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주신 부처님들이었던 거지.
이렇게 몸이 다치고 차가 다치는 바람에 약 두 달간을 치료를 받아야 했고 팔을 번갈아 가며 머리에 이고 다녀야 했으니 그야말로 지독한 아픔을 경험한 셈이야.
이렇게 내가 아픔을 겪어 나오는 동안 사저는 또 한 번의 대만 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또 한 번의 완벽을 준비하고 있었어.
첫 번째의 대만 행을 도망을 쳐 돌아오다시피 했던지라 지난번 일도 사과도 할 겸 이번은 선행사 참가를 겸해서 가게 된 것인데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고 돌아오게 되었던 거야.
그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국제선 행사기간 동안 한국의 김치를 맛본 대만 동수들이 김치를 좋아하니 사저보고 김치를 만들어 주길 부탁하였고 그러한 장주들의 부탁에 따라 김치를 담아주었더니 폭발적으로 팔리는 것을 본 홍콩동수가 사저보고 동업제의를 하더라는 것이었어.
그뿐 아니라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던 식품담당 책임자는 김치공장을 할 경우 대만 동수들을 상대로 김치를 팔아주겠다는 말까지 하더라고 전해주더구나.
솔직히 몸도 정상이 아닌데다 그와 같은 공장을 해보고 싶은 생각 또한 없지 않았기에 홍콩의 동수와 여러 번 접촉도 시도하였는데 이상하게 연결이 되지 않았고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던 중 몸을 다치게 되고 일을 그만두는 사태까지 오게 된 거지.
이것이 바로 내 인생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마련된 신의 축복이었으며 기적과 같은 일들이었어.
아들아!
너는 내 말이 너무나 웃기지 않니?
다시는 공장을 않겠다던 내가 몸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와 같이 내 말을 번복을 했었겠냐 말이야.
그래서 나는 말을 하곤 하지.
절대라는 말이나 다시는 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어 나가는 동안 또 다른 곳에서는 나를 위한 신의 안배가 준비되고 있었는데 평상시 차도 함께 마시곤 하던 S동수님께서 돌아가신 일이 생겼던 거야.
지난번 판문점에서 막노동 일을 마치고 중앙센터에 들렀을 때 센터 입구에 살고 계시며 정보국에 오랫동안 몸담아 오신분이라고 지난번 말했지?
바로 그분이 돌아가셨던 거지.
참으로 이분은 우리 센터에 많은 일을 하셨어.
동수들은 모르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모기관이나 모처에서 우리단체를 몇 번이나 곤란에 빠트리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위기에서 이분이 막아주고 있었어.
아마 몇몇 분은 알거야.
이러한 사실 때문이라기보다 연세로 봐서도 그렇고 나와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문상을 갔고 그곳에서 동수들을 만나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가 고인의 아드님 되시는 사형과 근황을 주고받게 된 거지.
이 한 가지 사건으로 내가 중국을 오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이 만남이 어떤 의미인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뒤 몸을 다친 내가 그 사형에게 취직이라도 하려고 지방으로 내려갔었는데 사형과 함께 일을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니는 동안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형이 나를 보고 말을 하더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와 일을 할 것 같진 않고 내가 가진 경험을 봐도 장사를 하면 잘할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사업을 시작하라는 거였어.
본인에게 큰돈은 아니지만 약간의 여력은 있다면서 말을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약간의 물건도 오래들고 있으면 어깨와 팔에 통증이 도지는지라 심각하게 그 말을 고려해보고 있었지.
이렇게 이분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동안 중국에서는 사형과 평상시 가까이 지내던 L사저부부가 결혼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중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남편 되는 사형이 중국 교포인지라 한국여성과의 결혼을 인정받으려면 중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거든.
이들이 중국에 머무는 동안 북경에 있는 서류심사를 위해 한국영사관을 가야 했고 북경에서 한국김치가 엄청 잘 팔린다는 소리를 해왔다고 내게 전달해 주더구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 역시 사저가 대만에 가서 있었던 얘기를 하게 되었고 앞뒤를 맞춰보니 이보다 확실한 신의 안배가 어디 있으랴 했던 거지.
게다가 대만에서 팔아주겠다고 하는데 이보다 확실한 보장을 받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싶었고…
이모든 것들이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안배로 여겨졌기에 중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던 거야.
아!
아들아!
정말이지 신의 안배는 얼마나 교묘하던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고통의 축복 속으로 빠트리기 위해 신은 그토록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던지 기가 막힐 정도였어.
듣고 있니?
너는 내 말을 듣고 있는가 말이야.
신의 안배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내가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평상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오거든.
내가 지금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안배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순간조차도 신의 안배임은 틀림이 없어.
결코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야.
우리는 모두들 환상들을 가지고 살고 있어.
내가 마음먹은 대로 잘 되어 가면 그것이 바로 신의 안배 속에 일어난 일이라고 떠들며 신을 찬양하다가 자신에게 좋지 못한 일이 발생되면 금방 신을 원망하고 스승을 원망하게 돼.
내가 수행을 같이 해나가는 도반들을 보며 항시 말을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어.
조금만 잘되면 스승님 감사해요를 연발하다가도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면 금방 토라져서 등을 돌리기 일쑤라는 것을 수없이 봐 왔거든.
비 오는 날 장독대 뚜껑을 누가 덮었냐고 물어보면 모두 자신이 덮었다고 하다가 장독뚜껑을 덮지 않은 것을 나무라게 되면 모두들 발뺌들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지.
절대 누구 탓으로 일어나는 일 따위는 없어.
모두가 자신이 심어놓은 것들이 모두 돌아오고 있고 그것이 전생이 되었던 이생이 되었던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기에 모든 불만을 자신에게로 돌려야 해.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이 기도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결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돌아온 현실을 본인이 저질러놓은 그 어떤 일로인해 돌아온 부메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든.
그러면서 항상 남의 탓만 하는 거지.
이것이 바로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고 자신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들아!
나에게 오는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모두 내가 심어놓은 결과물이 나에게 온 것이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 것부터가 수행의 시작이고 그 모든 것들을 스승의 축복으로 보는 것 또한 수행의 시작이며 나 자신이 대우주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 또한 수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며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제는 대륙의 광활하고도 넓은 만주 벌판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또 다른 시작을 만나도록 하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