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누가복음25.

배가번드 2022. 2. 2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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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시간에 오신여러분 환영합니다.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바쁜 만큼 인사말은 생략하고 곧바로 성경 속으로 뛰어들겠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눅16:1)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눅16:2)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눅16:3)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눅16:4)

 

16장은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습니다.

그 어떤 인사말도 없이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는걸 보니 뭔가 심오한 가르침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1절을 살펴본 결과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물을 함부로 낭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절에서 주인이 불러 나무라며 직분을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게 만들었지요.

이런 주인의 꾸지람에 청지기는 속으로 궁리를 하게 됩니다.

힘이 없어 땅을 팔수도 없고 구걸하자니 창피한지라 직분을 뺏긴 후에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는데 어떤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3~4절)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눅16:5)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눅16:6)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눅16:7)

 

아하!

청지기가 꼼수를 썼군요.

주인으로부터 쫓겨날 것을 알고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고 그로인한 보답으로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으려 했습니다.

정말 나쁜 청지기인 것 같은데 이와 같은 행동에 주인이 어떤 반응을 할는지 함께 보시죠.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16:8)

And the lord commended the unjust steward, because he had done wisely: for the children of this world are in their generation wiser than the children of light.

 

너무나 뜻밖입니다.

주인이 화를 내기는커녕 불의한 하인을 보고 칭찬을 했습니다.(the lord commended the unjust steward)

청지기의 불의한 행동이 지혜롭다 할뿐만 아니라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했지요.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긴 한데 여기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세상의 아이들이(for the children of this world) 그들 세대에 있어서는(in their generation)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한 것은(wiser than the children of light) 이세상은 물질세상인지라 인과응보의 법칙아래 놓여 있지만 빚진 자를 탕감해주는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을 넘어서는 행위라는 뜻입니다.

세상사람(세상의 아이)들이 그들 세대에 있어서(이세상법도, 규칙) 빛의 아들들보다 나을 수밖에 없는 것은 빛의 세계에는 인과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또한 이것은 빛(영)의 세계와 물질세계의 다른 점과 육과 영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합니다.

빛(영)은 반드시 육을 통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이세상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다했던 겁니다.

육을 통해 얻어야(깨달아야)하는 것이 영(빛)이긴 하지만 물질세상을 살기위해서는 반드시 육을 입어야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그들 세대에 있어서는 하고 단서를 붙여놓았습니다.(in their generation)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에 집중해보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16:9)

And I say unto you, Make to yourselves friends of the mammon of unrighteousness; that, when ye fail, they may receive you into everlasting habitations.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물질세상의 법도를 뛰어넘어라 는 뜻입니다.(인과를 넘어섬, 윤회를 벗어남)

없어질 때는 망할 때(when ye fail), 즉 죽음을 맞이할 때를 비유한 것이며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한다는 것은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they may receive you into everlasting habitations)

어떻습니까?

이제는 이해가 되셨겠지요.

아직도 아리송하신 분들은 아래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He that is faithful in that which is least is faithful also in much: and he that is unjust in the least is unjust also in much.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눅16:11)

If therefore ye have not been faithful in the unrighteous mammon, who will commit to your trust the true riches?

 

아리송한 것을 풀어주려 했으나 더욱 아리송해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10절은 물질세상의 법도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번역에 대한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faithful을 왜 충성된 것으로 해석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믿음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 것을 믿는 자는 큰 것도 믿게 된다는 말이 되며 이어지는 작은 것에 불의한자가 큰 것에도 불의하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은 앞서 불의한 재물을 친구로 삼으라는 가르침의 연장선에 놓인 말씀으로서 인과를 뛰어넘는 가르침이지요.

지극히 작은 불의는 물질세계의 법도를 뛰어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큰 것은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과를 뛰어넘는 법문(작은 것)을 믿을 수 있어야 영에 대한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불의함을 받아들임) 있다는 뜻입니다.

영의 세계는 이세상의 잣대로 판단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불의함으로 비유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11절에서 불의한 재물에 대한 일을 믿지 않으면(ye have not been faithful in the unrighteous mammon) 누가 너희에게 참된 재물에 대한 믿음을 맡기겠느냐 했던 겁니다.(who will commit to your trust the true riches)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commit에 대한 해석으로 맡기다보다는 실행하다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탕감해 주는 행위는 물질적인 시각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해석이 되어야한다는 말이며 이러한 일이 선행되어야 진정한 영의 세계(참된 재물)에 대한 가르침에 믿음이 생긴다는(your trust the true riches) 말입니다.

만약 이것이 안 된다면 누가 진정한 재물(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실행할 수(commit) 있느냐는 거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이 같은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눅16:12)

And if ye have not been faithful in that which is another man's, who shall give you that which is your own?

 

여기에서 남의 것은 (which is another man's) 물질을 가리키며 참된 재물의 반대의 것을 나타내기위해 남의 것이라는 표현을 한 겁니다.

참된 재물은 영을 비유한 것으로 자신이 원래 가지고 태어난 것이기에 너희의 것(your own)이라는 표현을 했지요.

앞서 말한 대로 인과를 뛰어넘는 가르침에 대해 믿지 않는다면(have not been faithful) 영혼에 대한가르침을 누가 줄 수 있겠냐는 뜻입니다.

여기까지의 모든 것이 비유의 가르침이었으며 나 홀로목사의 강해(講解)가 진실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No servant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hol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e cannot serve God and mammon.

 

집하인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주인은 하나님을 뜻합니다.

한분밖에 없기에 하나님이니 당연히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재물을 신처럼 여기기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또한 이 내용은 물질세상과 영의 세계에 대한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물질과 영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에너지체계로 이루어져있기에 한꺼번에 취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가볍게 여긴다 했던 거지요.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물질의 진동수는 느리고 거칠며 영의 진동수는 빠르며 가늘고 얇은데 우리육신의 진동수를 높일수록 빛에 가까워지고 진동수를 낮추면 바위처럼 단단해진다고 보면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했던 거지요.

이 말씀을 보건데 반드시 둘 중에 한 가지는 포기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이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나 봅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16:14)

And the Pharisees also, who were covetous, heard all these things: and they derided him.

 

바리새인은 그 당시 영적이라 자부하는 이들인데 이들 역시 일반인들과 다름없이 탐욕스러웠기에(were covetous)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비웃었던 거지요.(they derided him)

이러한 반응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꾸짖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16:15)

And he said unto them, Ye are they which justify yourselves before men; but God knoweth your hearts: for that which is highly esteemed among men is abomination in the sight of God.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

The law and the prophets were until John: since that time the kingdom of God is preached, and every man presseth into it.

 

바리새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정의로운척하지만(they which justify yourselves before men)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안다고 하셨으며(God knoweth your hearts) 사람 중에서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시각에서는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highly esteemed among men is abomination in the sight of God)

그들이 입으로는 영에 대한 일을 말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물질을 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며 그러한 행위를 하나님이 아시기에 미워할 거라는 말입니다.(15절)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성경의 교리가 잘못 전승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기 때문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 선언했습니다.

그때껏 율법과 선지자의 능력에 의지하는 믿음을 가졌으나 이후부터는 예수님께서 직접 천국복음을 전해 준다는(the kingdom of God is preached) 말씀이며 그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을 천국에 한결 가깝게 밀착시킬 거라는 말씀입니다.(every man presseth into it)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눅16:17)

And it is easier for heaven and earth to pass, than one tittle of the law to fail.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눅16:18)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한 획이 떨어짐에 비유했습니다.(17절)

천지가 지나간다는(heaven and earth to pass)표현은 시공이 없어지는 것을 비유한말로서 영의세계를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전해주는 천국복음을 듣게 되면 시공 없음을 알게 되어 성령을 깨달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18절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만연하던 이혼과 재혼을 말하는 것으로 율법을 엄격히 적용시킬 경우 이러한 모든 행위가 간음이라는 말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의 신앙의 형태가 율법을 지킴으로서 엄격한 자기통제와 경건함을 보이는 것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순된 점을 지적하신거지요.

율법을 통해 마지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육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인데 이렇게 되기까지 무척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받아들이면 쉽게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한 겁니다.

그러면 또 어떤 비유의 가르침이 우리를 기다릴지 다음내용을 보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눅16:19)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눅16:20)

And there was a certain beggar named Lazarus, which was laid at his gate, full of sores,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눅16:21)

 

자색 옷은 신분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고운베옷을 입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했으니 부자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사로는 거지로서 상처투성이의(full of sores) 몸을 가지고 부잣집 대문에 누워 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연명하고 있었지요.

게다가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 난 곳을 핥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비참한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20~21절)

그러나 이 내용은 비유의 말씀으로서 물질세상을 비유한 겁니다.

부자가 세상 것을 움켜쥐고 즐기는 삶을 살고 있는 만큼 가난한 이들은 전쟁과 같은 세상살이에 온갖 상처를 안고서 그들이 먹다(취하고) 남은 것으로 연명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개들은 부자에게 들러붙어 아첨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비유한 것으로 가난한 나사로 에게까지 뜯어먹으려 드는 욕심 많은 인간들을 비유한 겁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사로가 이런 삶을 원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desiring to be fed with the crumbs)

남들과 투쟁하여 쟁취하려 한 것이 아니라 승리한 이들(부자)이 취하고 흘리는 것들로 만족해하는 삶을 살았다는 거지요.

부자와 나사로는 참으로 비교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결과가 어떠했을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16:22)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16:23)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 품에 들고 부자는 죽어서 매장되었다 했으니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두들 알다시피 믿음의 조상이라 당연히 천국에 있을 것이고 매장되었다는 것은 땅에 묻혔으니 지옥에 떨어진 거지요.(22절)

그러니 23절에서 부자가 음부(땅)의 고통 중에서 눈을 들어(하늘)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본겁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부자와 거지가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여기에 대한 답이 주어질 것 같으니 다음내용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4)

And he cried and said, Father Abraham, have mercy on me, and send Lazarus, that he may dip the tip of his finger in water, and cool my tongue; for I am tormented in this flame.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16:25)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불꽃가운데서 고민한다한 것은 고통 받는 것으로 고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지옥의 화염 속에서 고통 받고 있었기에(tormented in this flame) 손가락 끝에 묻은 물로도 서늘해질 것 같았던 거지요.(24절)

이렇게 지옥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부자에게 아브라함(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부자는 살아생전 좋은 것들을 충분히 누리며 살았고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미리 받았으므로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 받고 나사로는 천국에서 위로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25절)

이 내용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돈을 벌지 말라는 거냐며 항의 할 겁니다.

이 내용은 그런 뜻이 아니라 물질을 목적으로 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질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영(靈)이 주(主)고 육(肉)이 부(副)가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야 영의 세계를 알 수 있다는 말이며 이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

 

너희는 부자들, 즉 물질 지향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고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된 이들(아브라함, 나사로)을 가리키며 사이에 큰 구렁이 있다는 말은 영육이 완전히 갈라져(별개)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로 왕래할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하나님말씀에 부자는 다음과 같이 간청합니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눅16:27)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8)

 

나사로가 부자의 집에 빌붙어 살던 사람이란 걸 형제가 알고 있으니 그를 보내어 증명하게 하여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과 하나가된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눅16:29)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눅16:30)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하나님과 하나 된)이 말하길 모세와 선지자들이 부자의 다섯 형제 주변에 있다고 했으며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라고 했지요.

지금 이 가르침이 예수님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 모세는 예수님보다 1500년이나 앞선 인물입니다.

시대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 내용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이미 여러 차례 말했듯이 이 말씀은 영적으로 해석이 되어야함으로 성령이 역사하신 영적스승이 그 시대의 모세와 선지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드러난 이들이 모세와 선지자들과 다름없으니 그들로부터 천국복음을 전수받으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하나님말씀에 부자는 그 즉시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성령을 깨달은 사람이 말하는 것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말하면 회개할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물질 지향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영적인면들을 알아볼 수 없다는 말이며 기적을 보여주어야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서 부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꾸짖고 있습니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6:31)

 

성령이 임하신 이들(모세와 선지자)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다면 죽음으로부터 살아난 이가 있다하더라도 믿지 않는다는 거지요.

이 말씀은 그야말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기적이란 순간적으로는 신기하게 여겨 혹할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금방 시들해지며 더 큰 기적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기적에 메이게 되어서 정작 자신의 진정한 영혼인 성령을 깨닫지 못하게 되지요.

이미 우리는 마태복음 4장에서 사막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마귀의 이끌림에 따라 시험받는 일을 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기적의 힘을 단호하게 물리쳤지요.

바로 이러한 점을 우리가 인식해야 하며 오늘의 가르침역시 그런 내용과 동일하다 할 수 있습니다.

16장 전체를 종합해보면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는 성령을 깨닫지 못하며 오로지 성령을 드러낸 예수(그 시대의 모세와 선지자)와 같은 영적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믿어야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나사로는 그저 거지가 아니라 하나님말씀을 믿고 따르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사로의 뜻이 “하나님이 도우심” 이라는 점을 볼 때 믿음생활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돕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힘든 삶을 꾸려나가더라도 영생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거지요.

오늘 함께 하신 여러분이 이점을 정확히 인식하시길 바라며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