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123)
아들아!
오늘은 최근에 다녀온 내 여행에 관한 얘기를 할까해.
흰 눈이 내려 온천지가 하얗게 도배를 하다시피 한 이곳 풍경이 며칠 전 내가 몸담고 있었던 태국의 전경과 어쩌면 이리도 대조적인지 참으로 내 마음의 이원성을 세상에 내놓은 것 같구나.
10일이 넘게 걸린 이번 여행은 또 한 번의 내 거듭남을 남기고 막을 내렸는데 극과 극을 넘나드는 내 인생의 여정과 마찬가지로 이번 태국여행은 나에게 몸소 극과 극을 경험하게 만들었어.
이것은 외형적인 면만이 아니라 내안의 부정성과 긍정성의 대립을 경험하기도 하였던 만큼 내면적인 이원성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지.
스승님께서 전 세계 동수들을 상대로 태국의 파타야 해변에서 묵상 회를 연다는 발표를 하신지가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불구하고 태국 행을 결정 못했던 것은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수없이 많은 굴곡을 지나오면서 겪어온 물질적인 어려움 탓에 나에게는 돈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도저히 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된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코앞에 다다른 공장매입문제가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었고 몇 달 전 입문한 처형을 남겨두고 사저와 나만 갈수도 없고 보면 혼자서 결정을 내려서 될 문제가 아니었거든.
세 사람의 경비만 해도 몇 백은 깨어져야 하는데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결정이었어.
남의 돈을 빌려서 유지를 해야 하는 공장의 형편상 이 같은 결정을 하기에는 걸림돌이 무척이나 많았던 거야
.하지만 정작 내가 태국 행을 결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물질적인 어려움만은 아니었어.
나를 바라보는 많은 동수들의 따가운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의 판단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도저히 가고 싶지가 않았던 거지.
그래서 아예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로 치부하고 말았고 내면에서 울리는 태국을 가고자하는 바램을 애써 무시하는 결정을 하였어.
식구들 모두가 다들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도저히 나로서는 사람들의 비난담긴 눈길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가 않았던 거야.
이러한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가슴앓이들을 하고 있었지.
나와 함께 지내는 사저의 경우는 내 형편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내처분에 맡기는 중이었고 처형은 자신이 돈이 없는지라 입도 뻥끗 못하는 중이었거든.
그러나 이러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주위의 모든 동수들이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오고 있었어.
다들 돈이 없어 못 올 것이라 여기고 빌려주겠다고 하였는데 빛을 내가면서 가고 싶지는 않다 하였더니 이번에는 모 동수 한분이 돈을 모금을 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몇 번이나 거듭되는 그들의 말에 아무리 봐도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는데 급기야 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어.
동수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 스승님께서 그들을 도구로 삼아 나를 부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내가 처해있는 현실이 가볍지 않다고 여긴 탓에 이모든 느낌들을 무시하려 했었는데 지속적으로 전해져오는 그들의 메시지가 굳어진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지.
그러자 이번에는 우리와 함께 지내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이가 나선거야.
지난번에도 잠시의 언급이 있었지만 이 아이는 지혜안이 열려서 이번 묵상회의 발표가 있기 몇 달 전 이와 같은 일을 예견하였거든.
우리들 3사람이 모두 갈 거라는 예언까지 하였는데 처음에는 이아이의 말에 대한 반발심으로라도 가지 않으려 했었어.
이아이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 선에는 많은 동수들이 스승님의 말씀에 대항하여 엄청난 혼란이 생기게 되는데 마침내는 스승께서 신과의 합일을 통한 힘으로 그 모든 부정성을 잠재우게 된다고 하였지.
솔직히 이 같은 말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가지고 내게 다가온 것은 내안의 부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 역시 내안에 스승을 발견한 이상 구태여 육신의 스승께 가서 가르침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러한 장소를 가서 선행사를 하는 것이 이제는 나에게 필요치 않다 여기고 있었고 주변의 환경 역시 내가 그곳을 가기에는 적당치 않다 여긴 거야.
내 마음대로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으면 그만이라 생각하였는데 주변의 환경들이 자꾸 나를 흔들고 있었던 거지.
사실 내 에고의 결정에 따르면 가지 않아야 하겠지만 지금껏 수없이 경험해본 결과 내면의 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은 내주변의 환경이 말해준다는 것을 익히 경험하였던지라 결국은 태국 행을 결정하게 된 거야.
만약 내가 그 같은 느낌을 따르지 않을 경우는 엄청난 결과가 오게 된다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거든.
결국 1주일여를 앞두고 급하게 결정을 내리고 태국 행을 서두르게 되었는데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였어.
휴일이 겹치는 바람에 사저의 여권발급이 늦어지고 있었고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있었던 처형은 여권조차 만들지 않았기에 하나의 모험을 하는 마음으로 일을 추진하였지.
벌써 서둘러도 될까 말까한 일을 코앞에 다다라서야 하게 되었으니 반은 되지 않는 것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일을 한거라 봐야 할 거야.
그러나 뒤늦게 일을 시작한 우리들이 가장 우려했던 일은 이러한 시간문제가 아니라 과연 중국 정부가 일반 여행객들을 보증금이 없이 여행을 자유롭게 허용할 것인가가 더욱 걱정스러운 일이 되고 있었어.
중국정부에서는 자국 국민들의 제3국 불법체류들을 줄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여행을 규제하는 법규가 있었거든.
그러나 어쩐 일인지 우리들이 신청을 해본결과 시간이 너무나 촉박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이 순조롭더구나.
다만 태국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기관에서 허가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북경에 있는 기관에 서류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이틀의 시간이 우리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었던 거야.
결국 우리들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 가지 모험을 해야 했어.
서류가 북경에 가는 것과 동시에 우리들도 북경을 가기로 한거지.
서류를 미리 보내놓고 곧바로 우리들이 북경을 가서 서류를 찾아 비행장으로 직행하기로 했던 것인데 시간을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긴 했지만 만에 하나 서류가 통과되지 못할 경우는 당사자는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 것이었어.
사저와 나는 한국국적이라 외국여행이 자유롭지만 처형의 경우는 중국인인 만큼 서류가 누락될 여지가 다분히 있었거든.
모든 것을 스승님의 안배에 맡긴다 생각하고 북경으로 향했어.
아들아!
앞서 너와의 대화에서도 몇 번이나 보았지만 내가 겪어 나온 일들은 모두가 이러하였어.
전혀 보장 받지 못하는 일들이었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서 모든 일들을 해야 했는데 항시 결과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걸맞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
그날 역시 그러했던 거야.북경을 도착하기 무섭게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더니 서류가 통과되었다고 하더구나.
어쩌면 싱겁기까지 하였는데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하게 되니 극적인 감이 훨씬 감소하고 있었어.
아침 9시에 도착하여 태국 행 비행기 시간까지는 무려12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는지라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였지.
시간이 많지 않은지라 멀리는 갈수 없었고 천안문정도면 괜찮을 거라 여기고 길을 나서게 되었어.
북경역 앞에 자리한 마켓에 짐을 맡기고 여행길을 나섰는데 기차를 내리기도 전에 짐을 들어주겠다고 올라온 이름 모를 청년하나를 안내인 삼아 데리고 가기로 했던 거야.
말로만 듣던 천안문을 직접 보게 되니 그 규모와 크기에 놀라워해야 했는데 여의도 광장의 두 배쯤은 되 보이더구나.
아직도 모주석의 주검을 보관하는 기념관이 있었고 천안문의 현판에는 모주석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중국인들의 마오쩌둥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만들었어.
중국의 13억 인구가 아직도 모 주석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는 것은 그분의 업적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다들 자신의 입장에서 이분의 과거를 바라보고 있지만 실상은 그 시대가 가장 바라고 원했던 역사의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아.
지금도 중국인들은 모주석의 문화대혁명을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보고 있는데 역사가 40년은 퇴보했다고 말하고 있거든.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본인이 시인이고 문학가이기도한 모주석이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정책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할 거야.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덩샤오핑이 집권을 하고나서 지방 관리들이 서둘러 각관공서의 사진들을 교체하기 시작하자 덩샤오핑이 만류를 하였다는데 지금의 중국을 일으켜 세운 이를 기념하기위해 한사코 자신의 사진을 걸지 못하게 하고 모주석의 사진을 걸게 했다는 거였어.
우리나라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역시 대륙사람답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남들이 조금만 자신보다 낫다싶으면 여지없이 까 내리고 보는 우리네 풍토와는 사뭇 달라 보였던 거지.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도 득실을 따지고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이 엿보이고 있었던 거야.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우리나라의 특정정치인들의 마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는데 천안문 광장을 지나 좀 더 지나가보니 드디어 자금성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어.
기와지붕에 빛바랜 금색 칠이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그 옛날 제대로 칠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그야말로 대단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더구나.
담벼락의 높이 또한 엄청나게 높았는데 우리나라의 경복궁의 담벼락과 비교하면 높이가 두 배는 넘을 것 같았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금성의 입구를 바라보니 성벽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어대는 이가 있었는데 황제의 복장을 한 사람이 관광객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었지.
모르긴 해도 연극을 맡은 배우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을 것 같았어.어차피 인생은 연극인데 그러한 배역을 맡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아니겠어?
성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선 순간 넓게 펼쳐진 성안의 마당이 보였는데 조금 과장을 하자면 마당이라기보다 넓은 평야가 펼쳐진 것 같더구나.
앞쪽으로 진입하는 곳에는 조금 넓게 물이 지나가도록 파놓았고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누군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군대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였는데 그다지 일리 있게 들리지는 않았어.
그런데 아들아!
너는 이러한 넓은 곳에서 왕에게 바깥의 소식을 전하려면 어떻게 할까 궁금하지 않니?
나도 그것이 무척 궁금했었는데 중국에서 본 영화에서 그 궁금한 점을 풀 수가 있었어.
성문 앞까지 전령이 말을 타고 열심히 달려와서 보고서를 내려놓으면 그것을 받아든 연락병들이 릴레이식으로 황제에게까지 전달을 하는 거야.
약 50 미터씩 전달되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자금성의 입구에서 황제가 있는 안쪽까지 한사람만 달리도록 한다면 마라톤을 해야 하거든.조금이라도 빨리 전달하기위해 단거리를 달리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거지.
33개의 궁으로 이루어진 자금성의 내부를 모두 구경하려면 이틀은 잡아야 한다는 말대로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궁들이 참으로 많더구나.
문 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좌우로 늘어서있는 궁들의 내부를 모두 볼 수는 없었고 정면에 놓여 있는 법당에 향을 사르는 것으로 구경을 대신하고 있었어.
사람들마다 각자의 소원을 비는 모습들이 엄청 엄숙하게 보이고 있었는데 그 같은 모습을 보며 잠시간 한 생각이 일어나더구나.
그들의 행위가 과연 미신이라고만 여겨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 거지.
왜 한낱 불상 따위에다가 절을 하며 자신의 소원을 빌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별게 아닐 수 있겠으나 그 불상이 진정한 부처라 여기며 절을 한다면 그 같은 행위는 지극정성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적용될 거라 여겨진 거야.
미신이라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미혹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다시 말해서 어떠한 종교나 믿음의 대상이 미신이라기보다 진실 되지 못한 믿음이 미신이다 이 말이거든.
어떠한 종교를 가지거나 믿음을 가진다고 했을 때 그 대상을 진정으로 믿지 못한다면 아무리 크나큰 종교나 믿음의 대상이라 해도 그 사람에게는 미신일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어?
단체에 속해있는 나 같은 경우 스승님을 불신하거나 단체를 불신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미신이 되고 마는 거야.
만약 이러하다면 우리들이 그 불상을 보고 절을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어지거든.
그 불상뿐 아니라 어떠한 신에게도 절을 하며 배불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예를 갖추어도 무방하다는 거지.
이러한 일에 대한 것을 육신의 스승께서는 일찍이 설하셨는데 초기 대만에서 법을 펼치실 때의 법문에 보면 이러한 구절이 있었어.
"지방신 들이나 토지신들은 경배나 숭배를 받을 자격들이 있습니다.그러한 신들도 일종의 직위로서 그들은 그만한 노력을 하였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거지요"
그렇지만 스승님께서는 이러한 말씀도 하셨어.
"아무에게나 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함부로 절을 하게 되면 자신의 등급이 떨어질 겁니다."
아들아!
너는 이 같은 점을 어떻게 생각하니?
스승님의 이와 같이 상반된 법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지 않는가 모르겠구나.
지난번에 말한 것과 같이 각자의 수준에 따른 법문을 하신 거라고?
그래.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있어.
스승님의 말씀을 그저 표면상으로 바라보면 당연히 그러한 해석이 되겠지만 좀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보면 아주 깊은 의미가 있는 거야.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신들이 경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들이 분별심을 여의었을 때의 의식 상태를 말씀하신 것이고 수행을 해나가는 과정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서는 절대 어떠한 대상에도 절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이거든.
다시 말해서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경지에 올라있는 이의 눈에는 어느 것 하나 부처가 아닌 것이 없게 되지만 아직까지 분별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아무에게나 절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뜻인 거지.
이것은 어쩌면 수행자들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겠는데 다들 이와 같은 일을 마주치게 되면 상당히 혼란스러워들 하더구나.
아마도 이원성을 극복하지 못한 의식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이 같은 일을 자신들의 입장에 대비해 봄으로서 스스로 겸손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경우 스승님이 말씀하신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방향이 잘못된 거라 말할 수밖에 없어.
어째서 그렇지요?
스승님 말씀의 진위를 파악해야 우리들이 행동을 결정할 것이 아닙니까?
글쎄?
과연 그럴까?
진정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있구나.
네가 과연 스승의 진위를 파악할 능력이 있기나 한가 말이야.
네 스스로 스승의 말씀은 이런 뜻이다 하고 말하기 위해서는 네가 스승의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네가 그러한 수준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어?
어떠니?
아직도 너는 스승의 말씀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니?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요?
스승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냔 말입니다.
그저 스승님의 말씀을 흘려들어야 한다고 하면 스승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는 스승의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거지요?
그래.
듣고 보니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하지만 너는 너무나도 성급하게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지금의 너는 아직까지도 이원성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거든.
다시 말해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원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이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좀 더 차분해지는 것이 필요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깊은 심호흡을 한 후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꾸나.
우리들이 스승의 말씀을 우리생활에 실행을 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시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거든.
앞서 여러 번 강조를 했듯이 스승님의 말씀대로 행하여보면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가 알게 된다는 거지.
가령 배불의 행위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행위를 해보는 것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거야.
만약 그럴 경우 스승의 다음 말씀처럼 우리의 등급이 떨어지게 되면 어쩌지요?
분명하게 스승께서는 아무에게나 절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우리들은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 어떨까?
다시 말을 하자면 구태여 위험부담이 큰 배불 행위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 말이야.
스승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법문 중에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내가 선택하고 걸어가야 할 인생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건데 이것은 우리단체에 속해져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말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말이기도 해.
지금 이 세상에는 모든 우주의 비밀들이 내려와 있다고 지난번 내가 말을 했을 거야.
이와 같은 일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모든 이들이 그와 같은 비밀을 알고자 하겠지만 한 가지 알아야할 사실들이 있어.
그것은 그와 같은 사실이 나에게 적합한가 하는 거지.
과연 내가 그와 같은 사실을 내 것으로 소화 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
내가 모든 사람들을 신이나 부처로 볼 수 있을 때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아직까지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는 한 아무리 좋은 법문이라 할지라도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거야.
내주위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사실은 자신이 부처라 여기고 있어.
다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부처들이고 다들 3세계니 5세계니 하며 자신들의 등급을 스스로 매기고 있으며 스승으로부터 그러한 인가를 받기를 원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겸손을 말을 하지.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감추고 스승께 읍소하는 것이 겸손이라는 착각을 한다 이 말이거든.
아들아!
말을 하다 보니 자꾸만 끝도 없는 비판의 소리만 나오는구나.
이쯤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돌려 긍정적인 해결방안으로 초점을 맞춰보도록 해.
사정이 이러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
스승의 보다 높은 법문이 내 것으로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냐는 거야.
언제까지나 바닥에서만 헤맬 수도 없고 최고의 스승의 최고의 법문을 최고이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 이거지.
너는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최고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모든 것은 무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다른 모든 하위의 법문들은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최고 높은 법문만을 따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하하하.
크~
참으로 너는 단순하기도 하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산술적인 계산을 그렇게도 즉흥적으로 내뱉을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 말도 어찌 보면 타당성이 있긴 하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엄청난 에고에서 나온 소리라는 것을 알아야해.
너도 생각을 해보렴.
이미 최고의 높은 법문이라는 말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최고이지 못한 법문이 있다는 말인데 그러할 경우 다른 이들을 부처로 볼 수가 있겠어?
다시 말해서 나는 높은 법문을 하는지라 수준이 높지만 너는 수준 낮은 법문을 하는 중생이라 여기게 되지 않겠냐는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느냐고?
그것은 말이야.
내가 용서받기 위해서 남을 용서하듯이 내가 하는 법문이 최고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남의 것도 최고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 해.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내 눈에 마왕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그들의 역할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것일 뿐 그가 부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거지.
결코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보고 비교해서 나 자신의 수행등급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내행동을 그 수준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거야.
다시 말해서 부처라면 함직한 일을 하는 것으로 네가 부처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고 신이라면 함직한 일을 함으로서 네가 신이 되도록 하면 되거든.
어떻게 하면 네가 신이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벌써 말해주었지?
다시 한 번 더 반복해달라고?
그래.
네가 원한다면 한 번 더 강조를 하자꾸나.
네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신이고 부처로 보일 때 너는 이미 부처와 신이 되어있어.
아직 네 눈에 무엇인가 모자란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네가 아직도 그러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것인 만큼 좀 더 겸손 되게 스승께 가르침을 바라야하고 명상을 더욱 많이 해야 해.
명상 속에서도 남의 잘못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깊이 있게 들여다 봐야하고 내게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든 잘못들조차 내 잘못이라는 것을 깊이 성찰하여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본성을 발견해야만 하는 거야.
명상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각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함이거든.
이 세상 모든 종교의 목적이기도하고…….
아들아!
그날 그곳에서 절을 하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수준에 맞춰서 다들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더구나.
자신들만의 몸짓으로 신을 향해 예불의 의식을 행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물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절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기복적인 형태의 믿음을 가지는 것 또한 그들에게는 아주 좋은 일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기에 그 같은 일을 좋지 않은 행위라 규정을 지었을 뿐 그들은 그들대로 나름의 행복을 찾기 위한 몸짓을 하는 것이지.
하지만 이들을 보면서 다른 반대편에 자리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더구나.
자신의 행복을 신이나 부처에게 바랄 수조차 없는 삶을 살아가야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거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분류를 나눌 수 있어.
천국 같은 삶과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두 가지로 나누어진 삶의 형태로 볼 수 있을 거야.
대개의 경우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아가는 것을 흔히들 천국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하거든.
이러한 사람들은 이지구의 멸망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세상이 영원하였으면 하고 바라게 되지만 반대편의 경우는 전혀 사정이 달라져.
지옥과 같은 고통 속을 헤매는 사람들은 어서 빨리 이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하고 바란다는 말이지.또한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야.
그렇지 않겠니?
사정이 이러하다면 우리들의 세상은 어떤 미래를 맞이해야할까?
망해야할까?
계속 이와 같은 세상이 유지되어야할까?
두 가지의 의식을 모두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미래가 어떠해야할까 이 말이야.
한쪽으로는 망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그래.
네 말이 정답이야.
바로 우리들은 이러한 순간을 살아가며 이러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어.
한쪽에서는 엄청난 재난을 맞이하고 있으며 또 다른 곳은 흥청망청 물질적인 안락함에 묻혀 지내고 있는 거지.
하지만 아들아!
결코 이러한 것들은 영원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해.
이것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의 제한된 시공에 속한 일일뿐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
바로 이러한 제한된 삶을 벗어나 영원한 삶인 영생을 얻기 위해 우리들은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 거지.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조차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명상이야말로 이 땅에 높은 천국을 가져오는 방법이기도 한거야.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적인 풍요 속에 머물 때는 그 순간이 영원하도록 기원하며 자신이 잘나서 그 모든 풍요가 주어진 것으로 착각하며 살다가 어느덧 물질적인 어려움이 닥치거나 재난을 만나게 되면 그제야 신을 생각하며 겸손을 생각하게 되더구나.
그래서 신은 우리들을 위해 재난과 고통을 주시는 거라 지난시간 말을 했지?
아들아!
항시 내가 주장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지만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불쌍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구나.
앞서도 우리들이 말했지만 멸망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에 따라 이 땅에는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인데 그러한 일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해.
천국 같은 삶이 지속되어 지도록 원한다면 남들에게 적어도 지옥을 주지 않아야 그와 같은 자신들의 바람이 이루어 질 거라는 거지.
자금성 안에서 향을 사르며 자신에게 복이 오기를 바라는 많은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나 역시 빌어주었지만 그 자리에 참석조차 할 수 없이 굶주리는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도 축복이 돌아가길 바라며 돌아서야만 했어.
구경을 마친 후 일행들과 함께 자금성의 뒷문으로 빠져나오고 있던 중 느닷없이 내가 한 가지 질문을 했거든.
"자금성이 실로 대단한데 왜 담벼락을 저토록 높게 만들었을까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이드와 사저의 언니가 얼른 대답을 하더구나.
"그야 궁궐 안에 있는 내시나 궁녀들이 도망을 못 가게 만들어 놓은 거지요"
마치 한입으로 말을 하듯이 그의 동시에 나오는 그들의 대답에 실소를 금할 길 없었어.
약간의 웃음을 날리며 내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해주었지.
"두 분 모두 전생에 이곳에서 궁녀나 내시를 하신 적이 있군요."
내말이 떨어지자 다들 왜 그러냐며 항의하듯이 물었는데 내말에 기분이 나쁜가 보았지.
내가 그들의 전생을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무심코 그들의 대답에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추측을 한 것이었는데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였어.
자신들의 평상시 입력된 대로 말을 하게 되기 때문에 똑같은 담벼락을 보고서도 해석을 달리했던 것이거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했냐고?
나는 말이야.
외부의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서 높게 지었다고 생각하였어.
이래서 나는 전생에 신분이 높은 직위에 있었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나 스스로 황제였을 거라 생각하였지.
착각은 자유고 비용이 들지 않으니까 마음대로 해석을 하라고?
그래.
그것을 누가 말리겠니?
하지만 아들아!
사람들은 모두다 자신들의 전생이 좋다고 말해주면 좋아 하고 전생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 기분 나빠 하는데 실상을 바라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아.
황제의 지위라는 것이 만인들의 위에 군림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거기에 따른 좋지 않은 점 또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하거든.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남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황제의 삶이 그다지 좋다고만 여길 수는 없다는 거지.
아들아!
이 말은 말이야.
황제의 삶이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거든.
언제나 말을 하지만 그 어떤 삶이라 하더라도 더 고귀하거나 덜 고귀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거야.
우리들이 어떠한 한부분이 좋다고 표현할 때 나머지 반대편은 좋지 않다는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와 같은 이원성의 벽은 허물어져야만해.
황제의 삶도 좋은 면도 좋지 않은 면도 있으며 무지 랭이 백성의 삶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동일시 할 수 있을 때 모든 것은 있는 자리에서 완벽할 수 있는 거야.
그날 태국을 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의 짧은 북경여행은 여기에서 막을 내리고 있었으니 오늘은 여기에서 쉬었다가 다음시간에는 태국에서 마련되어진 대화의 장을 열어보자꾸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