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30.
하나가 전체라는 개념을 알고 있고 실천하는 나 홀로(only)목사의 성경강해 시간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 홀로목사의 이 같은 인사말이 이해되는 분이 있는지요.
나 홀로목사가 왜 이렇게 말씀드리는가하면 하나님이 유일하지만 1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표현하기위해 1이라는 숫자를 이용하는 것이지 1이 하나님을 대변하는 유일한 숫자는 아니라는 거지요.
1이라고 하는 고정된 숫자는 틈이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포함할 수 없으며 이래서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은 하나님을 표현하기위한 수단으로서의 숫자일 뿐 하나님이 1이라는 숫자에 매여 있지 않다는 겁니다.
아직은 이러한 개념을 완전히 소화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성령이 역사하시는 순간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리라 생각하며 그러한 순간이 도둑처럼 온다했으니 기대하지도 말고 실망하지도 말며 묵묵히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다보면 거짓말처럼 임하신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 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눅21:1)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눅21:2)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눅21:3)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21:4)
연보궤는 교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금고(헌금함)라고 할 수 있습니다.(1절)
2절에 과부가 내었다는 렙돈은 하루품삯에 해당하는 데나리온의 1/128 이니 하루일당을 10만원으로 계산하면 두 렙돈은 2천원에도 못 미치는 돈입니다.
이런 작은 액수의 돈을 예수께서는 누구보다도 많이 낸 것이라고 하셨지요.(3절)
다른 이들은 풍족한 가운데 일부분을 낸 것이지만 과부는 자기가 생활해야할 돈까지 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4절)
이 말씀은 우리가 헌금할 때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돈을 많고 적고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가짐(정성)을 본다는 뜻이지요.
다음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눅21:5)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눅21:6)
As for these things which ye behold, the days will come, in the which there shall not be left one stone upon another, that shall not be thrown down.
5절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을 미석과 헌물로 꾸민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전이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6절에서 밝히셨지요.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서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은 물질적인 일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날이 이른다는 것은 성령이 임하실 때를 가리키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다는 말은 성전은 사람이 짓는 건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넘어뜨려지지 않는다고 했던 겁니다.(shall not be thrown down)
성경학자들조차 성전을 건물로 알았기 때문에 무너뜨린다고 해석한 것인데 큰 오해를 한 거지요.
이 내용을 일부목회자들은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침략당할 때로 인식하여 얼마나 철저히 파괴를 당했으면 이렇게 무참할 수가 있었겠냐고 말하고 있으니 나 홀로목사로서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전에 대해 오해하기는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이며 성령에 대한 것도 동일합니다.
이런 일을 2천 년 전 예수께서 말씀하신바 있으니 계속해서 경청해보겠습니다.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눅21:7)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느냐는 말은 성령이 언제 임하시느냐는 뜻이지요.
그리고 성령이 임하실 때는 무슨 징조가 있겠냐는 말인데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눅21:8)
8절 내용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속임을 당하지 않게 주의하라 했고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때가 왔다 말하겠지만 좇지 말라고 했지요.
이 말씀인즉 많은 이들이 성령을 깨달아 그리스도가 되었다 해도 그(육신)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말로서 성령을 따라야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 어느 누구에게도 적용될 말로서 예수님이라 해도 예외일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시고 때가 가까웠다 말하고 있지만 육신예수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면의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씀이지요.
그래야 성령을 깨달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며 성령이 임하실 때 일어날 일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눅21:9)
But when ye shall hear of wars and commotions, be not terrified: for these things must first come to pass; but the end is not by and by.
전쟁과 소란의 소문을 듣는다는 것은 성령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육과영이 전투를 벌이게 된다는 뜻입니다.(ye shall hear of wars and commotions)
이러한 일은 처음에는 일어나야만 한다고 했지요.(these things must first come to pass)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할 뿐 끝은 아니라는 말이니(but the end is not by and by) 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는지 다음내용을 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눅21:10)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21:11)
And great earthquakes shall be in divers places, and famines, and pestilences; and fearful sights and great signs shall there be from heaven.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대적한다는 말은 개념과 이념의 전쟁을 뜻하며 고정관념의 무너짐을 뜻하지요.(10절)
11절에 처처에 큰 지진이 난다는 대목에 해당하는 영어를 보면 단순하게 지진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ivers places는 여러 장소(처처)보다는 다양한 입장을 뜻한다고 봐야합니다.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 각자가 처해있는 입장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지진에 비유한 거지요.
그리고 수행이 깊어갈수록(영생에 가까워질수록) 물질적인 일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어 가난(기근)이 찾아오고 업장을 씻느라 병(온역, 전염병)이 들기도 하며 영적체험(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마태복음33편 참조)
이러한 모든 일들을 나 홀로목사가 구도의 과정에서 겪었으므로 잘 알고 있지요.
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성경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눅21:12)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눅21:13)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눅21:14)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21:15)
12절에 이 모든 일 전은 성령이 임하기전이라는 말이며 내 이름을 인하여는 영적인(영생을 향한) 길을 걷는 이유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물질세상)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긴다했고 임금들과 관리들 앞에 끌고 간다 했던 겁니다.
영적인 길을 걷게 되면 물질세계의 왕(물질적인 가치관, 인식)들이 영생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고 끌어당긴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한 것인데 박해당하는 것이 오히려 영생을 얻기 위한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다.(13절)
영적인 길을 걷는데 시험도 없고 장애도 없다면 현실과 타협을 잘하고 있다는 말이니 그다지 좋아할 일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잡혀가더라도 변명거리를 만들 계획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겁니다.(14절)
육신은 성전이요 성전 안에 성령이신 하나님이 거하심을 알았으니 미리 앞서서 걱정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을 정도의 언변과 지혜를 주신다는 말입니다.(15절)
그런 만큼 자신내면에 성령이 거하고 있음을 믿으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성령을 깨닫기(드러내기) 전까지 시험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어지는 내용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눅21:16)
And ye shall be betrayed both by parents, and brethren, and kinsfolks, and friends; and some of you shall they cause to be put to death.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눅21:17)
And ye shall be hated of all men for my name's sake.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눅21:18)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부모형제 및 일가친척과 벗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길을 반대한다는 것을 넘겨준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 몇 명이(some of you) 그들로 인해 죽음에 놓이게 될 거라고 한 것은(they cause to be put to death) 육적인 멸망을 가리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인간관계의 단절은 육적인 죽음을 뜻하지요.(16절)
예수님제자들 중 몇 명은 육적인면보다 성령을 더욱 사모하기에 사람들로부터 단절(미움)되지만 영으로 부활하기에 머리털하나도 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17~18절)
그렇기 때문에 19절에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거라 했던 겁니다.
이러한 나 홀로목사의 해석이 옳을 수밖에 없는 것이 16절에 죽이게 하겠고 와 18절의 머리털하나 상치 않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합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가족들이 고발을 해서 죽임을 당한다면 머리털하나 상하게 않겠다는 말은 거짓이 되기에 이것은 비유의 가르침이 맞는 거지요.
그러면 또 어떤 어려움이 구도자의 길에 놓여있을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21:20)
And when ye shall see Jerusalem compassed with armies, then know that the desolation thereof is nigh.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눅21:21)
예수살렘은 성전을 가리키며 군대들에게 에워싸인다는 것은 성전에 거하시는 성령이 드러나지 못하게 고정관념과 습관 등의, 세세생생 쌓아놓은 업장들이 가로막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에 대한 황량함(the desolation thereof)이란 영적인 길을 걷는데 대해 일어나는 육적인 멸망(영적인 부활)을 가리킵니다.
하는 일마다(물질적이고 육적인일) 가로막히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면(둘러싸임) 성령의 드러남이 임박했음을 알라는 겁니다.(20절)
그래서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했던 거지요.
아시다시피 유대의 뜻은 “하나님 찬양”이니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런 이들은 물질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인식을 가지라는 뜻에서 산으로(높은 인식) 도망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내(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은 나가라 한 것은 육신(성전)을 벗어나 성령을 드러내라는 말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들어가지 말라 한 것은 이미 육신으로부터 벗어났으면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지요.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눅21:22)
For these be the days of vengeance, that all things which are written may be fulfilled.
여기에서 기록된 모든 것은(all things which are written) 우리가 살아오며 지어놓았던 업장들을 가리키며 형벌의 날은 업장을 갚는 날을 뜻합니다.
vengeance가 “앙갚음, 복수” 등의 뜻인데 여기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자신이 세세생생 저질러놓았던 일을 완전히 되갚는다는 뜻으로 쓰인 겁니다.
성령이 드러날 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야만 할 것이며(육신으로 지은 죄는 모두 갚아야함) 다음과 같은 일들도 일어납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눅21:23)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21:24)
And they shall fall by the edge of the sword, and shall be led away captive into all nations: and Jerusalem shall be trodden down of the Gentiles, until the times of the Gentiles be fulfilled.
그날은 성령이 드러나는 날을 가리키며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은 육신적인 책임감을 나타냅니다.
아직 세상적인 의무를 미처 마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날(성령이 드러나는 날)이 재앙의 날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땅은 육신을 비유)(23절)
그리고 24절에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칼날에 의해 넘어지는(fall by the edge of the sword) 것으로 해석해야합니다.
여기에서의 칼날은 심판의 칼로서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다는 의미이며 모든 나라에 사로잡혀간다는 말은 각자의 업장에 따라 지은 죗값을 받아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육신은 성전)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밟힌다 한 거지요.
때가 차기까지 밟힌다는 것은 믿음이 완전해질 때까지(성령이 드러날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핍박과 고난을 당할 거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고난과 환란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눅21:25)
And there shall be signs in the sun, and in the moon, and in the stars; and upon the earth distress of nations, with perplexity; the sea and the waves roaring;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21:26)
Men's hearts failing them for fear, and for looking after those things which are coming on the earth: for the powers of heaven shall be shaken.
일월성신의 징조는 빛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며 성령(빛)이 나타나는 징조를 뜻합니다.
각자의 수행정도에 따라 별빛을 보는 이도 있고 달빛을 보는 이도 있을 것이며 심지어 어떤 이는 햇빛을 보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남과 동시에 육신은(the earth) 각자의 업장에(of nations) 따라 세파에 시달리며(the sea and the waves roaring) 고통 받게(distress) 됩니다.(25절)
그런데 26절은 번역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그들을 실패하게 한다고(Men's hearts failing them for fear) 했고 땅위에 일어나는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 했으며(and for looking after those things which are coming on the earth) 하늘의 권능이 흔들어 놓기 때문이라(for the powers of heaven shall be shaken) 했습니다.
종합해보면 앞서 열거해놓은 일들처럼 성령이 드러나는 징조(하늘의 권능)가 육신(땅위)에 임하는 것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듦으로 성령을 깨닫는데 실패한다는 거지요.
해석에 따라 의미가 이렇게나 달라지는데 다음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7)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눅21:28)
And when these things begin to come to pass, then look up, and lift up your heads; for your redemption draweth nigh.
그런 다음 인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구름 속에 오는 것을 볼 것이라 했는데 모든 시련을 겪은 다음 성령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지요.(27절)
28절은 앞에 열거한 수많은 일들이 인생에서 일어나거든 너의 구원이 가까이 당겨져 온 것을(your redemption draweth nigh) 알고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라 했습니다.
시련이 다가옴에 두려워말고 구원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인식하고 영생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비유의 가르침을 더해 주셨습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눅21:29)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눅21:30)
When they now shoot forth, ye see and know of your own selves that summer is now nigh at hand.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눅21:3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눅21:32)
Verily I say unto you, This generation shall not pass away, till all be fulfilled(KJV)
나무에 대한 비유의 말씀으로(29절) 나무에 싹이 나올 때( (When they now shoot forth)여름이 온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너희 자신 스스로(진아, 성령)에 대해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know of your own selves that summer is now nigh at hand)(30절)
많은 고난과 시련들이 일어나는 시점이 성령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때이기에 하나님나라가 가까운 줄 알라했던 겁니다.(31절)
그리고 32절은 번역에 수정이 필요합니다.
직역하면 이 세대가(This generation),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shall not pass away), 모두가 완성되기까지(till all be fulfilled)입니다.
합쳐보면 이세대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떠나갈 수(돌아갈 수) 없다가 됩니다.
pass away가 사망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나라로 돌아가는, 즉 성령을 깨달아 하나님왕국으로 돌아가는 의미로 해석해야하지요.
이어지는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함은 물론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21:33)
천지는 물질세상을 비유한 것이며 내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데 하나님이 지은 세상은 유한하지만 말씀은 영원하다는 겁니다.
여기에서의 말씀은 창세기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하신 것과 같은 뜻으로 진동력을 비유한 거지요.
만물이 진동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간단하게 이해가 됩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나타내 보인거지요.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님의 다음가르침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And take heed to yourselves, lest at any time your hearts be overcharged with surfeiting, and drunkenness, and cares of this life, and so that day come upon you unawares.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21:35)
For as a snare shall it come on all them that dwell 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Watch ye therefore, and pray always, that ye may be accounted worthy to escape all these things that shall come to pass, and 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34절에 아무 때나(at any time)네 마음이 과다하게 청구되어지는 것들을 조심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취함(drunkenness)과 생활에 대한 근심들이(cares of this life) 네 마음을 과하게 압박하는 것을(your hearts be overcharged with surfeiting) 주의하라는(take heed)말이지요.
여기서 취함이란 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에 취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조심해야하는 이유가 그날이 자신도 모르게 임하기 때문이라 했으니(that day come upon you unawares) 성령이 임하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날이 올무처럼 다가온다고(as a snare shall it come on)한 것은 모든 이에게 성령을 깨닫는 기회(시험)가 주어진다는 말입니다.(35절)
또한 깨어있어라(Watch ye) 했으며 항상 기도하라(pray always)했습니다.
장차 일어날 일들을(shall come to pass) 피하는 것을(to escape) 가치 있게 여길 수 있기를(may be accounted worthy) 기도하라는 말은 육신이 당해야하는 일들로부터 탈출을 의미하는지라 성령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인자 앞에 선다고 했던 겁니다.(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36절)
이어지는 내용 또한 성령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집중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눅21:37)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눅21:38)
And all the people came early in the morning to him in the temple, for to hear him.
낮에 성전에서 가르치신다는 것은 성령이 몸(성전)안에 거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밤이면 감람산에서 쉬신다는 말은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과 하나라는 뜻입니다.
감람산은 심판의주가 머무는 곳이므로 예수님의 영이 하나님과 하나 되신 분(육신)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다는 거지요.(37절)
그래서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간다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은 태양이 떠오르는 때이며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지요.
그리고 성전으로 간 것(goes)이 아니라 왔다고(came) 했습니다.
뜨는 태양(빛)을 보기위해(듣기위해) 그(예수님, 성령)가 있는 성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니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 겁니다.
지혜로운 이는 알아들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21장을 이곳에서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