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누가복음31.

배가번드 2022. 3. 14. 06:22
728x90

 

순간순간 성령의 임하심을 느끼는 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시간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하신 적이 있는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순간순간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일에 몰두해있다가도 뭔가 마음에 허전함을 느낄 때마다 성령을 떠 올리면 거짓말처럼 성령이 함께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도 이제는 이 정도는 되어야하며 아직도 안 되고 있다면 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믿음이 약한 겁니다.

이미 수차례 말해 왔듯이 인간의 몸은 피부의 색깔이나 국가와 언어가 달라도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영육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품성인 성령과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이 합하여져 몸을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땅위에 사는 누구라도 근본적인 재료가 다를 수는 없지요.

다만 본인들이 듣지 못하여 알지 못하거나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다행히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수차례 들었던 만큼 이제는 믿음을 넘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작에 앞서 지난시간에 보았던 중요한 구절하나를 가져와 성령을 깨닫는데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눅21:8)

And he said, Take heed that ye be not deceived: for many shall come in my name, saying, I am Christ; and the time draweth near: go ye not therefore after them.

 

많은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며(many shall come in my name, saying, I am Christ)때가 왔다(the time draweth near) 하겠지만 그를 따르지 말라 했습니다.

이 말인즉 육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따라서 누군가의 육신을 그리스도나 성령으로 알고 있다면 잘못알고 있는 것이며 아직 영적으로 초보자의 수준을 못 넘어선 겁니다.

마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선생님을 만물박사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 인식에 머물고 있는 거지요.

스스로를 살펴보건대 아직도 이런 정도의 인식에 머물고 있다면 좀 더 인식의 폭을 확장시킬 것을 권해드리며 성경 속에서 성령의 임하심을 배워보겠습니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눅22: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눅22:2)

And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sought how they might kill him; for they feared the people.

 

유월절과 무교절은 같은 시기에 일어나는 다른 형태의 의식입니다.

사실 이두가지 의식은 다른 것 같지만 같은 것이고 같은 것 같지만 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알기위해서는 구약의 내용을 세밀하게 살펴봐야 순서겠지만 시간관계상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구약의 내용이 너무나 심한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간략하게 해석해 드리도록 하지요.

먼저 유월절에 대해 말하자면 모세가 바로 왕으로부터 이스라엘백성들을 탈출시킬 때 장자가 죽는 재앙을 내린 일에서 유래합니다.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을 잡아 피를 발라 장자가 죽는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을 기념해서 해마다 어린양을 죽여 제사지내던 것이 유월절이었고 그 기간 동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는다하여 무교절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뜻이 있습니다.

좌우 문설주와 인방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며 양의 피는 성령을 뜻합니다.

또한 양은 순종하는(어린, 순수한) 하나님백성의 몸이며 피는 하나님의 생령이자 생명이니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 곧 성령이 깨어남이니 구원이지요.

그리고 무교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로서 그 어떤 가식(위선)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몸을 비유한 것이니 성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서 인간의 몸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면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의식이 유월절의식이며 인간의 몸을 영적인 몸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이 무교절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두가지행사의 절기가 겹치는 것이고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이라고 부르는 무교절이라고 하시면서 두 가지의 뜻이 같다는 것을 가르치신 거지요.

이런 까닭으로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백성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더 이상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기로 했던 겁니다.(sought how they might kill him)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눅22:3)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눅22:4)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눅22:5)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눅22:6)

 

열둘(12) 중에 하나인 유다라 했으니 하나님과 연합한(3×4)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런 유다(하나님찬양)에게도 사탄이 들어간다고 했으니 놀라운 일입니다.(3절)

사탄의 뜻이 “대항하는 자” 라는 사실을 볼 때 유다가 하나님께 대적할 만큼의 인물이었다는 말인데 뭔가 담겨진 뜻이 있는 것 같군요.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예수를 넘기고 돈을 받기로 약속하고 무리가 없을 때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고 했으니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4~6절)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눅22:7)

Then came the day of unleavened bread, when the passover must be killed.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눅22:8)

And he sent Peter and John, saying, Go and prepare us the passover, that we may eat.

 

7절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죽어져야만 하는 유월절(the passover must be killed)이라 했으니 무엇이 죽는 걸까요?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날은 순수한 몸으로 거듭남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죽는 것은 육신이고 무교병(unleavened bread)은 영의 몸, 즉 성령입니다.

그리고 8절에 예수께서 배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유월절을 예비하여 먹게 하라 했으니 무엇을 먹는다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22:9)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눅22:10)

And he said unto them, Behold, when ye are entered into the city, there shall a man meet you, bearing a pitcher of water; follow him into the house where he entereth in.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

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눅22:11)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눅22:12)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눅22:13)

 

무엇을 먹는다는 말은 않고 어디서 준비하라는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9절)

10절에 성내(성전)로 들어가라는 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말로서 깊은 묵상(명상, 기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물 한 동이(a pitcher of water)를 지고 가는 사람은 하나님(성령)을 비유한 겁니다.

물은 생명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항아리는 사람의 몸을 비유한 것이므로 생명을 담고 있는 몸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성령)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1절의 집(내면, 성전)주인은 하나님(성령)이며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인가를 물었다는 것은 성령을 나누어받는 방법을 물었다는 뜻이며 큰 다락방에서 예비한다는 말은 인식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라야 성령을 깨닫는다는 말이지요.(12절)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였을 때 만났다고 했으니 성령을 깨달았다는 말이며 유월절을 예비했다는 말은 언제든지 희생양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겁니다.(13절)

9절에서 13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면(성전)으로 들어가 성령을 만나는 깊은 기도(묵상, 명상)법을 가르쳐주셨고 그 말씀대로 제자들이 성령을 깨달아 예수님과 같이 희생양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희생양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예수님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눅22:14)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And he said unto them, With desire I have desired to eat this passover with you before I suffer: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눅22:16)

For I say unto you, I will not any more eat thereof, until it be fulfilled in the kingdom of God.

 

14절은 성령을 깨달을 때가 되었기(이르매) 때문에 12사도(3×4,연합)들과 함께 앉으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기전이란 희생양이 되기 전을 뜻하며 유월절을 먹기를 원했다는 말은 성령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정말 유월절을 먹는다는 말은 아닙니다.(15절)

유월절을 먹는다는(to eat this passover)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며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이 말씀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6절에서 유월절이 하나님나라에서 완전해질 때까지 다시는 먹지 않는다 하신거지요.(until it be fulfilled in the kingdom of God)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이 가지는 진정한 뜻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눅22:1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눅22:18)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눅22:19)

And he took bread, and gave thanks, and brake it, and gave unto them, saying,

This is my body which is given for you: this do in remembrance of me.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17절에 잔을 받으시고 사례한 후 너희끼리 나누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드시지 않겠다는 말씀인 것 같지만 속뜻은 따로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노라 하셨지요.

여기에 바로 해답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왕국이 임하신분이니 성령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이렇게 역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이어지는 내용을 보고나면 확실하게 알게 될 겁니다.

19절에 떡을 사례하고 떼어줄 때 제자들을 위해 주는 몸이라고 하면서 이 떡을 먹는 것으로 자신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this do in remembrance of me)

떡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 몸(성령)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지요.

또한 20절에 저녁을 드신 후 잔도 몸과 마찬가지로 여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포도주가 담긴 잔은 예수님의 피를 비유한 것이며 제자들을 위해 새로운 언약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결국 위의 말씀은 유월절의 진정한 뜻을 비유로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며 무교병은 예수님의 몸이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와 같다는 말씀인지라 몸은 영체를 뜻하고 피는 성령을 뜻하니 몸과 피 모두가 하나님이신 성령을 나타내는 겁니다.(마태복음36편, 마가복음 18편 참조)

그러면 희생양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내용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눅22:21)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눅22:22)

And truly the Son of man goeth, as it was determined: but woe unto that man by whom he is betrayed!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눅22:23)

And they began to enquire among themselves, which of them it was that should do this thing.

 

21~23절까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희생양이 되기 위한 일이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으며 예수님을 넘겨주는 사람을 예수님은 알고 있고 제자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예수님과 제자들이 각본을 미리 짜놓은 겁니다.

왜냐하면 무언가 정해진 일이 있을 경우 우주는 지금처럼 존재할 수 없으며 고정된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멸망(죽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정된 대로는(as it was determined) 뭔가를 계획하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23절에 제자들이 이일을 해야 할(it was that should do this thing) 사람이 누굴까 서로 물었다고 했던 거지요.

아마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뒤에 다시 언급하게 될 것 같은 만큼 결말을 뒤로 미루어 두고 다음가르침에 집중하겠습니다.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22:24)

 

24절을 보건데 예수님제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키 재기를 했나봅니다.(24절)

서로 자신의 수행력을 높인다거나 제자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눅22:25)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22:26)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For whether is greater, he that sitteth at meat, or he that serveth? is not he that sitteth at meat? but I am among you as he that serveth.

 

예수께서 말하기를 물질세상(이방인의 세상)에서는 임금이 그들에게 통치권과 권위를 행사하는 것으로 은인이라 칭함을 받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25절)

큰 자는 젊은 자와 같다는 뜻은 영적인 세계에서 높음은(큰 자) 순수하다는(젊음) 의미이며 두목이 섬기는 자와 같다는 뜻은 최고로 깨닫는다는 의미로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서 삼라만상 어디에나 편재하신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뜻으로 섬기는 자와 같다고 한 거지요.(26절)

마찬가지로 섬기는 자보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다는 말은 물질세상의 법도를 나타내며 예수님이 섬기는 자의 위치에서 제자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성령으로서 믿음을 가진 이들(제자)과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서로 높낮이를 따지는 것은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한 예수님은 물질세상과 영적인 세상의 법도는 서로 상반된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눅22:28)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22:29)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30)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함께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험 중에서도 예수님(성령)을 믿고 따랐다는 뜻입니다.(28절)

29절에 하나님께서 예수께 나라를 맡겼다고 한 것은 성령을 깨달아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예수님역시 제자들에게 맡긴다고 한 것은 똑같이 해준다는 말이지요.

한마디로 표현해서 성령을 깨달아 하나님과 하나 되게 만들어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30절에 예수님 왕국에서 먹고 마시고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다스리게 해준다고 말씀하신 것인데 이 말씀인즉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스라엘)중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된 이들(12지파) 안에서 성령으로서 함께 한다는(다스림) 뜻입니다.

이 말씀은 천국에서 먹고 마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완전한 이들은 성령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 모두가 성령이 먹고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영적인 세계에서는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했는데 뭔가를 먹고 마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영의 세계에 대해 모르고 있는 분들을 위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남겼으니 함께 보겠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눅22:31)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눅22:33)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눅22:34)

 

아!

너무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힙니다.

31절을 보면 예수께서 시몬에게 사단이 제자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 했는데 이 말씀은 영적인 길에 놓인 시험이 끝도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시몬의 뜻이 “응답하셨다, 들음” 인지라 시몬이 성령을 만난 제자인데도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한다했으니 너무 놀라운 일이지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껏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온 것이 예수께서 시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기도해주었기 때문이며 덧붙이기를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32절)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고(시몬) 해서 완전해 진 것이 아닌데 하나님과 하나 된 듯이 마음먹거나 행동해서는 안 되며 그 마음을 돌이켜야 형제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의 뜻이 “대적하는 자” 인만큼 성령을 한번 만난 것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듯이 행동하게되면 사탄의 하수인 노릇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지요.

이러한 예수님말씀에 시몬은 자신이 절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으며 성령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 자신을 세 번 부인한다고 예언처럼 말씀하셨습니다.(33~34절)

모두들 알다시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잡혀가신 후 베드로가 예수님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 부인한 사실을 예언한 걸로 알려져 있지만 나 홀로목사의 생각은 다릅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은 예언서라는 말이며 정해진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정해진 미래가 있다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무엇인가 이루어져야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요.

따라서 이 내용은 시몬이(제자들) 육신의 자아를 너무 내세우는 것을 지적한 내용이며 성령은 육신의 의지와는 전혀 별개로 작용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발견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예수께서 31절에 시몬아라고 불렀다가 34절에서는 베드로야 하고 불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함과 동시에 믿음이 강하다 자부하는 베드로라 할지라도 위기의 순간에는 성령을 부인하기 마련이라는 뜻이지요.(베드로의 뜻 반석, 바위)(시몬의 뜻 응답, 들음)(사탄의 뜻 대적하는 자)

그만큼 성령을 깨달아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간단치가 않다는 말이며 육신적 에고가 철저히 부서져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때까지 낮아져야 영적으로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점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길 기원하며 22장을 여기에서 쉬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