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번드 2022. 4. 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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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정말 재미없는 것 같은 일상이 재미있게 전개가 되고 있구나.

무슨 말을 이리도 이상하게 하는지 이상하지?

나도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하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세상일 돌아가는 것이 재미가 없으면서도 그것이 재미있어.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조금 헷갈리기 좋을만한 내말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어떠한 인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재미있게도 볼 수도 있고 재미없게도 볼 수 있기에 내말이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음을 말해보자는 거지.

앞서 너와의 대화곳곳에서 이미 말을 했듯이 우리들의 초점을 어디에 놓느냐 또는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지금의 생활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지 않니?

그렇지?

현실이 전혀 아름답지 못하기에 우리들은 결코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고 그런 까닭에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이 내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도 말을 했어.

그렇지만 우리들이 깨달음을 쉽게 얻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지금의 내가 나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라고도 했고 말이야.

그렇게 내가 말을 많이 해주었다 해도 네가 이 같은 말을 제대로 인식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

왜냐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모두 되고 있으나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조차 해주었어.

그리고 그것이 인식되지 않고 있는 것이 네 영혼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했고…….

이렇게 내가 수없이 많은 말을 해주었지만 전혀 네가 네 인생에서 적용을 못하고 있다면 너는 수행 방식을 심각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

네가 진정으로 내가한 말들 대부분을 제대로 인식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거든.

사람들은 대부분 어떠한 말을 듣게 되고 이해를 하게 되면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을 보자면 그렇지 않아.

지난 시간에도 잠시 언급을 했던 일이지만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하는 말만 들어서는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도록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무엇이 있어.

우리들이 수행을 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하기 때문인 거지.

내가 처음 "즉각 깨닫는 열쇠" 라는 소책자를 집어든 후 입문을 통해 지금껏 수행을 해나오고 있지만 이것이 본성을 깨닫지 못해서가 아니거든.

본성을 깨닫고 나서가 수행의 시작이며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단계들이 남아 있는 것이며 영혼이 더 이상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 끝도 없을 수도 있어.

그래서 우리들의 수행 길은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성립되는 거야.

불교에서 스님들이 견성성불을 말하지만 견성이 성불 일수 있다 해도 그 너머에는 우리들의 수행을 요구하는 수많은 일들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거지.

한번 깨치면 그것으로 그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닦음의 길이 필요해.

이것을 만약 누군가가 한번 깨치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고 큰소리친다면 그는 분명 견성을 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어.

하지만 그것도 어느 한곳의 경지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신의 목표가 그것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 밖에 안 돼.왜냐 하는 것은 이미 내가 말을 해주었을 거야.

단 한 번의 빛을 본다고 해서 일시에 모든 위없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가 없어.

육신에 담겨 있지를 못한다는 말이야.

그렇지 않니?

너도 지금까지 내말을 따라와서 알겠지만 주파수가 너무나 빨라져서 가벼워지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지 않니?

이것은 구태여 불성을 볼 필요가 없이 알 수 있는 문제거든.

그리고 우리들의 몸은 하나의 몸과 영혼이 합쳐진 그런 간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그 같은 말을 할수는 없어.

일곱 개의 몸이 하나의 차크라가 열릴 때마다 깨어난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 때 그러한 말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자신이 견성을 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아직도 길은 멀다는 것을 알아야해.

이것은 앞서 많은 스승들이 말을 해나왔기도 하거니와 내 체험에서 비롯된 말이야.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당시 말씀하셨다는 말에서도 알 수가 있거든.

 

"이 우주를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다?"

 

견성을 하고부터 수행의 시작이라 여긴다면 이제 겨우 첫걸음마를 하는 것에 불과해.

그리고 육신과 영혼의 합일을 위한 일이라면 이때가 수행의 처음이 되는 거야.

이러하기에 내 육신 스승께서는 이러한 말을 하신거지.

 

"깨달은 스승이라 해도 육신의 습관과 싸워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경험을 해봐야 할 수 있는 말이거든.

다시 말해서 스승님께서도 이러한 경험을 하셨다는 거지.

한번 깨달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행을 해나간다는 말이 아니겠어?

이것은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제야.

처음 우리들이 높은 세계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육신에 갇히는 순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인자의 영향을 받게 되거든.

이러할 때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육신에 입력된 정보를 지우는 작업을 한동안 해야 한다 이 말이야.

그렇지 않겠어?

이러하기에 우리들을 보고 문자에 매이지 말라는 소리를 하는 건데 한마디로 자신이 먹어봐야지 남들이 먹어본 얘기에 배부른 척을 하지 말라는 거지.

우리들은 수많은 세월동안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진정한 창조주와의 합일을 향해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

이것은 이번 한생에 국한 시켜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해.

아들아!

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내말이 유일하다고 믿는 오류를 범하지 말길 바라.

이제는 너도 알겠지?

내가 하는 말은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범위에서의 진실일 뿐 유일하지는 않다는 말의 뜻을 말이야.

다시 말해서 내가 나로서 이 세상을 나답게 살기위해 선택한 나만의 진실일 뿐 그이상의 의미를 생각하지 말라는 거지.

참으로 어렵지?

하지만 아주 쉽기도 해.

앞선 시간 내가 일체 유심조라는 말을 했을 거야.

기억나지?

이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 딸린 거다 이 말이거든.

자신이 생각할 때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하면 그것이 그에게는 진실일수밖에 없어.

자신이 지금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욱 자신답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해야만 하기 때문인 거지.

 

그렇다면 누군가 신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겠네요?

 

그럼.

그에게는 그것이 정답인거야.

다만 신이 있다는 생각을 할 때까지이긴 하지만…….

그전에 내가 말을 했지 않니?

북극곰이 가장 크다는 진실 속에 살고 있던 내가 방송을 통해 시베리아 불곰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는 나는 북극곰이 크다는 진실 속에 살고 있었거든.(훗날 북극곰이 크다고 밝혀졌음)

하지만 방송조차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일한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속단할 수는 없어.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세계의 다른 종류의 곰이 발견될 때 까지는 그것이 진실일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지금껏 발견된 종으로서는 가장 크다 할 수 있을 거야.

이처럼 깨달음을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어?

이러한 것이 깨달음이다 하면 그것은 그에게는 진실이 되거든.

하지만 이 같은 내말을 누군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진리일수 밖에 없어.

누군가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말했다 해서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진리가 될 수 있다는 거야.

렇지만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이 이세상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또 다른 진리 속으로 움직이게 될 거라는 거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누군가는 신은 당신 안에 있다고 끊임없이 말을 해주어야하고…….

유치원생들에서 부터 박사학위의 사람을 위한 법문까지 다양한 법문들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 않겠어?

이런 의미에서 본다고 하면 어떠한 스승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 위치에서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한 거다 이 말이거든.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각자가 어떠한 위치에 머물고자 하는가 혹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어떤 종류의 수행자가 되고자 하는가의 문제만이 내 앞에 놓이게 된다는 거야.

이러할 때 자신의 길에 대한 의미부여와 가치관을 가지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 되는 거지.

아들아!

나는 말이야.

매일같이 밤에 일어나는 습관이 있어.

명상을 하다 새벽녘에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아주 잦거든.

그때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어.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저 멀리서 유성이 떨어지는 거야.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하늘의 별이 어느 날인가 내게 커다란 의문이 생기게 만들었어.

저토록 많은 별들이 있는데 어찌 늘 보는 별들은 떨어지질 않는지 궁금했던 거지.

북두칠성이니 카시오페아니 하는 것들은 전혀 떨어질 꿈도 꾸지 않더라는 거야.

어릴 때부터 단한번의 변함도 없이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어.

그래서 내면의 스승에게 물어보았거든.

그랬더니 곧바로 대답이 주어졌는데 참으로 황당하지 않았겠니?

별자리를 만들었던 우리들의 의식으로 인해 그들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들이 그러한 별에 의미부여를 함으로서 그들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거라는 거지.

별이 떨어지는 것들은 바로 우리들로부터 더 이상의 의미부여를 받지 못할 때 떨어진다는 것이었어.

우리의 선조들은 그 같은 사실을 알았기에 그러한 별자리에 이름을 붙여서 하늘에 붙어 있도록 만들었던 거지.

아마도 천문학자들은 분명히 별들의 수명을 얘기 하겠지만 나로서는 그 같은 수명 론을 거부하고 싶구나.

땅에 있는 우리들이 이별과 저별의 수명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재주가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알고 있거든.

그래서 나로서는 내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해.

물론 이 같은 일 역시 다른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겠지만 말이야.

마치 우리들의 영혼이 이 세상살이의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 육신을 버리듯이 우리들의 의식이 그러한 별에 더 이상의 의미를 주지 않을 때 그별은 더 이상별로서의 역할이 끝이 난다는 거지.

그래서 옛날사람들은 별자리를 연구하였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점치는데 이용했어.

그러다가 누군가의 별이 떨어지게 되면 그 사람의 운명이 다된 것을 알아차리기도 했으며 하늘의 별에 움직임을 보고 세상의 변화를 관측하였던 거야.

바로 이러한 일들이 이 세상에 있어왔고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아니겠어?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보게 되면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거든.

그것은 미래의 일들이라는 것이 운명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다다를 수도 있다는 거지.

밤하늘에 별조차 우리들의 마음에 따라 떨어지게도 만드는데 까짓것 무엇을 못하겠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거야.

다시 말해서 온 우주를 마음대로 하는 힘이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다는데 까지 인식이 다다를 수 있어.

바로 이러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우리들은 진정한 영과 혼의 합일상태에 이르렀다 말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 앞서 말한 돈오점수라는 말이거든.

어떠니?

이제 내가 왜 견성성불이 모두가 아니라고 했는지 알겠지?

 

지금의 그 말씀은 이해가 가지만 앞서 당신은 내도록 말하기를 모든 것을 신에 뜻에 따른다는 식으로 말을 하며 운명론을 지지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말과 그때의 말은 분명히 다른 것 같은데요?

 

아들아!

네가 아주 예리한 질문을 한 것 같구나.

하지만 너도 알아야 할 것이 있어.

내가 말한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신의 뜻으로 돌린다는 말이었고 안 되는 것을 무리를 해가면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소리였거든.

누군가 나와 경쟁을 심하게 하려 한다면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게끔 돕는 역할에도 만족을 할 수 있다는 말이야.

반드시 내가 해야 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는 거지.

그리고 우리들이 영과 육이 합일이 되어서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의 마음상태부터 고쳐먹어야 하거든.

내 욕심을 산더미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 같은 능력을 가지겠다는 것은 마왕이 되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해.

그렇지 않겠니?

무엇이든 제욕심대로 할 게 자명한데 하나님이 그러한 능력을 그 사람에게 주겠는가 이 말이야.

자신 안에 있는 내재한 하나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라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리고 내 경우를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영과 혼의 완전한 합일은 하지 못했다는 인식에 머물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것이 바로 내가 아직 육신으로서 인간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과 육의 완전한 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명상을 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지금 너와의 대화역시 그러한 완전한 합일이 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거든.

이러한 내말이 이해가 가지?앞서도 말해주지 않았니?

우리들의 육신스승 역시 제자들을 위해 육신 속에 머물기 위해서는 진동수를 낮추어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가끔 제자들이 너무나도 수준이 낮은 질문을 할 때면 사정없이 나무라는 거지.

 

"나를 끌어내리지 말아요. 당신의 지금 질문은 너무나도 수준이 낮은 겁니다."

 

지금 현재의 상태만 하더라도 충분히 낮추어서 말해 주는데도 못 알아들으니까 하는 말씀이거든.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하나의 환상들을 가지고 있어.

육신과 영이 합일이 되면 뭔가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거라 기대를 한다는 거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완전하게 깨닫게 될수록 이세상의 일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지난번 말해 주었지?

하나님은 모든 이들의 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다만 이지구의 크나큰 변화를 막거나 우주에 관계된 일에만 관여할거라는 것이고 개인적인 기적 따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거라는 거지.

우리수행자들이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부처를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환상들 때문이거든.

깨달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들을 기대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  크나큰 기적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 큰 기적을 행하는 이에게 비하면 보잘것없는 재주를 부리는 것에 불과해.

다시 말해서 크다는 범위가 정해지지 않은 이상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누군가가 끝도 없을 수 있다는 거지.

이래서는 절대 해탈을 할 수 없게 되지 않겠어?그래서 위없는 깨달음이란 어느 곳에도 머무는바가 없어야 한다는 거지.

누군가 부처의 경지에 다다랐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처의 경지에 다다른 것에 불과한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해탈이라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이것을 경지나 등급으로 설명을 하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될 듯도 하니 등급으로 말해볼까?

사실 등급이라는 것은 스승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말해 놓은 것일 뿐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거든.

 

아니 무슨 말이 그렇습니까?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은 뭐란 말입니까?

도무지 헷갈리는 말씀만 하시는군요.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어떻게 하겠니?

사실이 그런걸.등급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 맞아.

그러니 내 대답도 그기에 걸맞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지.

자!

내말을 들어보렴.

등급이란 내가 대상에 머무느냐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

내가 대상의 인식정도를 가늠하게 되면 그때는 등급이 존재하게 되고 누군가로부터 인식정도를 가늠 당하게 될 때 등급은 없게 되는 거야.

다시 말해서 누군가 나를 향해 몇 등급이라는 말을 할 때면 그에게는 등급이 있게 되는 것이며 나에게는 등급이 없는 것이 된다 이 말이거든.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이 자신의 인식정도로 나를 바라보며 평가를 하게 되니까 그에게는 등급이 있게 되는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가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그 사람의 등급만큼 나는 제한된다 이거야.

이렇게 될 때 내 등급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는 거지.

이러할 때 내게는 등급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겠어?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인식정도를 평가하거나 바라볼 때는 또다시 등급이 생기게 되는 거야.

이래서 등급이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거든.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의 등급을 나누기도 하고 비교를 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자신이 성장을 하고자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해.

하지만 이 같은 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실이라고 여길 때는 확실한 진실이 되는 거지.

이래서 우리들은 신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으며 삼라만상을 신으로 만들었다가 허상으로도 만드는 아주 특별하고 괴상한 그 무엇이기도 해.

왜 내가 이런 이상한 말을 하는가 하면 말이야.

이러한 인식의 세계에서는 우리 인간들이 더 이상 인간일수만은 없거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우리들은 아마도 외계의 다양한 존재들과 교류를 하게 될지도 몰라.

아들아!

그래서 말인데 지금부터라도 우리들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구나.

좀 더 문명화된 인식과 우주의 다양한 생물체조차도 다 같은 형제라는 인식이 필요하지 않겠어?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말이 쉽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야.

말로는 다 같은 형제 운운하지만 당장 내 옆에 어려운 친구도 돕지 못하고 그들과의 화합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데 그 먼 외계존재들과의 교류는 꿈도 꿀 수 없지 않겠니?

누구나가 다들 천국을 바라고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그것도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올 경우에 한해서라고 한다면 아직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기에는 우리 인식의 부족함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

부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인식을 하게 되어서 지구가 파라다이스가 되길 희망하며 오늘을 마무리 하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