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요한복음16.

배가번드 2022. 5. 1. 06:33
728x90

 

나 홀로 목사의 성경강해시간을 기다려 주시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겨울 추위가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는 요즘 나 홀로목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점점 더 확신하고 있습니다.

추위가 강해질수록 따뜻한 방을 그리워하듯 시련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앙망(仰望)하기 마련이지요.

사람 사는 세상에 고통과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 탓입니다.

이세상이 즐거우면 저세상을 그리워할 까닭이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가 된 영혼들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겁니다.

처처에 기근이 들고 땅이 갈라진다는 의미는 한영혼의 거듭남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부의 지각변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이 영적인 가치관으로 바뀌려면 완전히 거듭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종종 두뇌가 갈라지는 것 같은 아픔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나면 기복적인 신앙의 형태를 벗고 진정한 영생의 길을 걷게 되며 과거에는 내안에만 계시던 성령께서 삼라만상을 통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교회에 가면 목사님의 입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당에 가면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가 하면 때때로 내 이웃과의 대화 속에 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거지요.

뿐만 아니라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창조력을 생각하는지라 성령은 어디서나 모습을 드러냅니다.

때로는 형상을 가진 모습으로, 때로는 빛으로, 혹은 소리로서 나타내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늘 확인하다보니 추운겨울이 따뜻하게 여겨집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하루빨리 깨닫게 되길 바라고 성령이 온 누리에 역사함을 알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애로움에 감사하며 8장의 마지막장을 열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8:31)

Then said Jesus to those Jews which believed on him, If ye continue in my word, then are ye my disciples indeed;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예수께서 내말에 거하면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참 제자가 된다는 뜻입니다.(31절)

구태여 어떤 요식행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제자라고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예수님은 성령이 드러난 분이고 성령은 곧 하나님이니 예수님은 참된 하나님과 하나 된 분입니다.

참되다는 말은 한 점의 거짓이나 미혹한 점 없이 완전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진리를 안다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에 대해 안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알게 되면 자유로워진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32절)

이러한 예수님 말씀을 이해 못한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요8:33)

 

아브라함의 뜻은 “백성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인(유대인)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인지라 아브라함역시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지요.

성령이 드러나 하나님과 하나 된 예수님과 같이 아브라함역시 역사속의 스승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이렇게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역사적 인물정도로만 여겼기에 조상을 섬기듯이 지내왔던 거지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점을 깨우쳐 주기위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8:35)

And the servant abideth not in the house for ever: but the Son abideth ever.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34절은 육신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죄의식이 있기 때문으로 죄의 종이라 표현한 거지요.

이런 상태로는(육신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기에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했으며 아들은(성령) 영원히 거한다 했습니다.(35절)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점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고 한부분입니다.

forever가 아니라 for ever 라고 표기한 것은 영원히 집에 머문다가 아니라 영원을 위해 마련한 집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겁니다.

풀어보면 죄의식을 가지고는 영원을 위해 마련한 집에 머물 수 없으며 아들은 머물 수 있다가 됩니다.

그래서 36절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한 거지요.

여기에서 아들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즉 성령을 가리키며 우리들안에 공히 내재하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령이 드러나야(깨달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에 이점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8:37)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요8:38)

I speak that which I have seen with my Father: and ye do that which ye have seen with your father.

 

37절은 유대인들이 아는 아브라함과 예수님이 아는 아브라함은 뜻이 다르다는 말로서 아브라함을 육적인 인식으로 받아들이느냐 영적인 인식으로 볼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성령)이 유대인들 속에 머물 곳이 없다는 의미로 죽이려한다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을 거부하는 것과 같기에 죽이려한다 표현하신거지요.

그래서 자신은 아버지(영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아브라함)에게서 본 것(영안이 열림)을 말하고 유대인들은 아비에게서(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들은 대로 행한다 한 겁니다.(육적인 행위)

이렇게 심오한 뜻이 담긴 예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것이어늘(요8:39)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40)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8:41)

 

예수님의 말뜻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자신들도 아브라함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만약 너희가 아브라함을 하나님으로 인식하면 그러한 행동을 해야 한다 하셨지요.(39절)

지금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거부함으로 성령을 죽이는 짓을 하고 있다 하시며 아브라함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았음을 지적해주었습니다.(40절)

또한 유대인들의 행위는 육신에 각인된 유전자에 의해 일어나는 일로서 영혼(성령)과는 무관한 거라 말씀하셨지요.

그러자 유대인들은 음란한데서 나지 않았고 아버지가 한분이며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말합니다.(41절)

이 말인즉 자신들 역시 육신의 행위(음란함, 부부관계)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영혼이 따로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아브라함을 조상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유대인들의 항변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질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8:42)

Jesus said unto them, If God were your Father, ye would love me: for I proceeded forth and came from God; neither came I of myself, but he sent me.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요8:43)

 

진정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으로 인식할 정도라면 자신(예수)이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알아보고 사랑했을 거라고 했습니다.(42절)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하셨지요.(I proceeded forth and came from God)

이것은 영혼의 본질을 설하신 것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성령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또한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 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음을 말씀하신 겁니다.

즉, 자신이 지금 성령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거지요.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하여도 유대인들이 알아듣지 못하자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다하셨는데(43절)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Ye are of your father the devil, and the lusts of your father ye will do. He was a murderer from the beginning, and abode not in the truth, because there is no truth in him. When he speaketh a lie, he speaketh of his own: for he is a liar, and the father of it.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8:45)

And because I tell you the truth, ye believe me not.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마귀에게서 났다하신 것은 육신을 마귀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육과 영을 선과 악으로 나누었을 때 육을 마귀로 본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육신의 욕망을 너희도 행한다 했습니다.(the lusts of your father ye will do)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라 하였는데 이 말씀은 창세기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일을 비유한 겁니다.

창세기4장의 내용은 영육간의 전쟁을 묘사한 것으로 형인 가인(육신)이 동생인 아벨(영혼)을 죽인사건입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이 내용이 워낙 중요한지라 구약의 관련내용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shalt thou not be accep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and thou shalt rule over him.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언뜻 보면 가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일꾼 땅의 소산물을 재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을 잡아 바쳤으니 하나님은 평화롭고 부지런한 가인의 재물을 좋아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라 땅의 소산물은 물질세상을 뜻하며 아벨이 바친 새끼양은 목자를 따르는 순수한 영을 비유한 겁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가인의 뜻은“소유, 획득, 대장장이”이며 아벨의 뜻은“숨, 증기, 목장”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가인은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보여주며 아벨은 하나님의 숨결인 성령과 온 우주에 가득 찬 에테르를 대표한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영적인 길을 걷고자하는 구도자를 양육함을 알 수 있지요.

따라서 위의 내용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비유한 겁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 봐야할 점은 7절 내용으로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면밀하게 분석해봐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한 부분은 어찌 받아들이지 않느냐로(shalt thou not be accepted?)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속상해한다는 것은 결론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행위에 따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바로 이점을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해보면 정확하게 부합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되지 않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불만족하게 되는데 이모든 행위가 마음에 성령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성경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7절 뒷부분에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And 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and thou shalt rule over him) 한 부분은 앞 구절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의 연장으로 인간이 행위를 할 때마다(문을 열 때마다) 행위자에게 욕망에 따른 죄가 주어질 것을(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모든 것은 인간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있음을 마지막부분에서 밝히고 있지요.(thou shalt rule over him)

이렇게 인간에게 선택권을 부여했지만 결국 가인은 아벨을 죽임으로서 육을 선택했습니다.(8절)

가인이 아벨에게 말했다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켰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유로운 선택아래서(들에 있음) 육을 선택했음(아벨을 죽임)을 짐작케 합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을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적용해서 살인자라 말했던 것이며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고 제 것(육신)으로 말하며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던 겁니다.

성령을 깨달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신거지요

예수님의 추상같은 가르침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요8:46)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46절 말씀은 마음 안에 성령이 죽어버린 너희들이 감히 내 죄를 말할 수 있느냐는 거지요.

성령에 대해 말해주는데 왜 믿지 않느냐는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진정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자신의 말을 믿지 않거나 오해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47절)

그러자 유대인들은 또다시 반박을 합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요8:4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요8:49)

 

유대인들이 예수더러 사마리아 사람이나 귀신들린 사람으로 취급한 것은 예수께서 성령이 드러났음을 스스로 밝혔기 때문입니다.(48절)

육신 안에 영이 들어있다는 것은 귀신들림 현상이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유대인들은 육신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으며 영의 세계를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 알고 보면 사마리아의 뜻은 “지키는 산, 살피다”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품고 있는 단어이지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러한 속뜻보다는 예수님을 이방인으로서의 사마리아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귀신들렸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서라 하셨지요.(49절)

이 말씀은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깊은 뜻이 담긴 말로서 성령을 깨달은 사람의 실체를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육신 안에 내재한 성령을 깨달았다는 것은 자칫 사람들로 하여금 귀신들린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신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해버리면(간혹 이렇기도 하였지만) 많은 이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부득이하게 하나님을 육신의 자신과 구분 짓기 위해 아버지라 표현했던 거지요.

실지로 하나님과 하나 되었지만 하나님과는 별개라는 점을 이해하기란 본인이 직접경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인식입니다.

육신의 범주아래 놓인 사람은 시공간의 영역아래 놓여있는지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이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같은 인식은 시공간이 무너진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하나인 동시에 여럿이라는 개념이 이해되어야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요8:50)

 

보다시피 자신의 내면에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육신이 영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한 하나님이 영광을 바라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이 스스로를 높인다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재한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뜻도 됩니다.

어디까지나 이 내용은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말씀하신 겁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만 함으로 영생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If a man keep my saying, he shall never see death.

 

앞서 말한 대로 예수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따른다는 말이며 자신의 내면에 성령이 있음을 자각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성령이 있음을 자각, 깨달음)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었지만 예수님말씀을 오해한 유대인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요8:52)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요8:53)

 

위내용을 보다시피 유대인들은 예수님말씀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육신예수가 영생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여겼기에 아브라함과 선지자도 죽었는데 네가 감히 영생을 말하는가 한 거지요.

말씀의 주체가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기에 이런 반응을 한 겁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또다시 예수님은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요8:54)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요8:55)

 

예수(육신)께서 스스로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면 의미가 없으나 아버지(하나님)가 예수(성령)께 영광을 돌린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의 몸 안에 역사하심으로(드러남) 인해 예수님의 육신조차 영광스럽게 된다는 뜻이지요.(54절)

이러한 이치를 유대인들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안다는 말이며 일단 알게 된 이상 이런 이치를 말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그 말씀에 따른다고 하셨습니다.(55절)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말씀을 지키겠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에 이어 아주 심오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Your father Abraham rejoiced to see my day: and he saw it, and was glad.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불 것을 즐거워한다 했으니 (Abraham rejoiced to see my day) 기대를 했다는 말이지요.

아브라함이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것은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영생의 하늘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 아브라함이 예수님께서 성령을 드러내어 자신이 하던 일을 대신 수행하게 됨을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내용은 영의 세계에 대해 묘사한 것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성령을 깨닫길 바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미 나 홀로목사가 여러 번 말해주었으니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영의 세계에 대해 몰랐으므로 또다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8:57)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8:58)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요8:59)

Then took they up stones to cast at him: but Jesus hid himself, and went out of the temple, going through the midst of them, and so passed by.

 

예수님말씀을 육신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이 오십도 안 된 이가 아브라함을 어찌 보았느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57절)

그러자 예수께서 자신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노라 했는데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하나님과 하나 된 성령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이치를 깨닫지 못했던 거지요.

이러한 일은 오늘날의 기독교도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깨닫는 것은 오로지 예수만이 가능하다 여기기 때문에 누구도 성령과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보았듯이 아브라함은 성령을 드러내어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에 유대인들로부터 “백성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것인데 정작 유대인들은 눈앞에 예수가 나타나 성령과 하나 됨을 말하자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심지어 돌을 들어 치려했으니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신 것은 당연합니다.

사실 59절 내용은 육신을 성전으로 보고 예수를 성령으로 비유한 것으로 유대인들처럼 성령(예수)을 거부(돌팔매질)하면 육신(성전)안에서 성령이 숨어버리거나(Jesus hid himself) 통과해 버린다는 뜻입니다.(going through the midst of them, and so passed by)

그만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과연 오늘날의 기독교도들 중에 이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의문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곳은 방문하시는 여러분들만큼이라도 예수님의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여 성령과 하나 되는 영광을 누리시길 바라며 8장을 여기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매

천백 억 혼이 담겼다

 

같은 하늘에서 왔건만

어찌 모양이 같지 않은고

 

모양새는 달라도 쓰임새는 같은 법

제 몸을 녹여 대지에 스며들고 하천을 흐른다

 

한날한시 왔으되 돌아갈 날 다르나니

운명(運命)은 재천(在天)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