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1.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주변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 홀로 목사와 함께 하시는 분들이 급속하게 줄어들어 이제는 그야말로 가벼운 발걸음이 되고 있지요.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나 홀로목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시려 많은 이들을 떠나게 만들었나봅니다.
남으신 분들이라도 영생의 하늘에 올라 하나님 영광을 얻을 것을 기원하며 13장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첫 구절부터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으로서)오신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영생의 하늘에 올라 자신을 믿는 이들(자기사람들)을 영원의 세계로 이끈다는 말입니다.(끝까지 사랑하심)
일단 육신을 버리고 성령자체가 되고 나면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을 믿는 이들의 마음에서 되살아 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서두에 유월절 전에 세상을 떠난다했으니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려나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가룟 유다의 마음이 마귀에게 장악 당했다고 합니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요13:3)
Jesus knowing that the Father had given all things into his hands, and that he was come from God, and went to God;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예수께 맡기셨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뜻인 동시에 예수님의 운명이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한 것은 성령으로 내려왔다가 성령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지요.(3절)
이렇게 말씀하신걸보니 아무래도 예수님께서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13:4)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요13:5)
After that he poureth water into a bason, and began to wash the disciples' feet, and to wipe them with the towel wherewith he was girded.
만찬 중에 일어나 겉옷을 벗었다는 것은 이 세상(육신)을 벗어난 상태, 즉 성령이 드러남을 뜻합니다.
수건은 깨끗케 한다는 의미이며 허리에 두른다는 것은 결속을 나타냅니다.(4절)
따라서 이 내용은 성령이 드러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하나 됨의 의식을 행하는 중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수건은 원래 씻고 나면 닦는 것인데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씻겼다는 것은 담긴 뜻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5절 대야에 물은 생명수를 가리키며 발을 씻긴다는 것은 살아오는 동안 쌓아놓은 업식(業識)을 벗긴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것은 실제로 발을 씻긴 것일 수도 있지만 담긴 뜻이 이렇다는 겁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제자들조차 이러한 뜻을 몰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요13: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13:7)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Peter saith unto him, Thou shalt never wash my feet. Jesus answered him, If I wash thee not, thou hast no part with me.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요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10)
Jesus saith to him, He that is washed needeth not save to wash his feet, but is clean every whit: and ye are clean, but not all.
보다시피 베드로가 펄쩍뛰고 있습니다.(6절)
하나님과 하나 되신 예수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자 너무나 놀랐던 겁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직은 뜻을 모를 것이지만 후에는 알게 될 거라 말해줍니다.(7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세상적인 관점으로 해석하여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행위의 불가함을 말했지요.
이러한 베드로의 고정관념에 대해 예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을 씻기지 않는다면 하나 되지 못함을 말해 주었습니다.(8절)(thou hast no part with me)
이 같은 행위는 단순하게 발을 씻겨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라 말해준겁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갑자기 욕심을 내어 손과 머리까지 씻어 달라 말합니다.(9절)
하지만 예수께서는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했지요.(10절)
이 말씀은 제자들은 이미 영혼의 구원을 받았으므로(성령과 연결됨) 손과 머리를 씻을 필요가 없으며 사는 동안 지은 죄만 씻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온몸이 깨끗하다 한 겁니다.
그렇지만 다는 아니라 했으니 누군가는 온몸이 깨끗지 않았나봅니다.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13:11)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요13:12)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13:13)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
11절을 보니 누군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모양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일을 미리 알고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셨지요.
그리고 예수께서 발을 씻어준 까닭을 아느냐고 물었는데(12절)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데로 성령을 드러낸 이는 제자들을 깨끗케 해 줄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더러 선생이라 부르기도 하고 주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이 드러났기 때문이지요.(13절)
그와 같이 제자들끼리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성령을 깨닫게 되면 주어지는 의무를 가리킵니다.(14절)
그래서 예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거지요.(15절)
제자들 발을 씻어줌으로 해서 깨끗하게(성령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다른 이들도 씻어주라(성령이 드러나게) 하신 겁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요13:16)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7)
If ye know these things, happy are ye if ye do them.
종은 아무리 잘나도 주인보다 클 수는 없으며 보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클 수 없다는 것은 겸손 하라는 뜻입니다.
육신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하나님(성령)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이점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13:18)
I speak not of you all: I know whom I have chosen: but that the scripture may be fulfilled, He that eateth bread with me hath lifted up his heel against me.
이 내용은 시편을 인용한 것이니 잠시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41:9)
Yea, mine own familiar friend, in whom I trusted, which did eat of my bread, hath lifted up his heel against me.
자세히 보시면 mine과 own 대명사를 두 개 연이어 썼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시편기자가 영혼의 입장에서(mine) 육신(own)을 바라보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의 떡은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가르침을 뜻하며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던 제자가(친구) 배반한다는(발꿈치를 들다) 것을 암시한 겁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예수님 제자에게 일어난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13: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요13:20)
자신이 배반당하는 것을 미리 말해주는 이유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 된 이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거라 했습니다.(19절)
그리고 말씀하시길 예수께서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과 같고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했지요.(20절)
이 말씀인즉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라는 뜻인 동시에 예수로부터 성령을 나누어받은 제자들 역시 하나님과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제자들 가운데 자신을 팔아넘기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요13:21)
When Jesus had thus said, he was troubled in spirit, and testified, and said,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at one of you shall betray me.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요13:22)
심령에 민망하였다는 말은 영적으로 근심했다는 거지요.(troubled in spirit)
그리고 증명하여 말씀하셨다는(testified, and said) 말은 배반하는 일이 확실히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서로를 보며 누구를 가리키는지 의심했습니다.(22절)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13:23)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 대(요13:24)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요13: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요13:26)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13:27)
위의 내용을 보면 누구라도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빵 한 조각을 찍어서 주는 이라 해놓고 유다에게 빵조각을 주면 당연히 유다가 배신자입니다.
이렇게 뻔한 말을 왜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주어집니다.
여기에는 속뜻이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들은 모르지만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뭔가의 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에게 맡은 바를 속히 하라 지시한 거지요.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요13:28)
어떤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요13:29)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30)
위 내용을 보자면 유다가 배반하는 것과 예수께서 유다에게 네 할 일을 하라 하신 뜻을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앞서 보신대로 정해진 수순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요13:31)
Therefore, when he was gone out, Jesus said, Now is the Son of man glorified, and God is glorified in him.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요13:32)
If God be glorified in him, God shall also glorify him in himself, and shall straightway glorify him.
31절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역사하시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God is glorified in him)
성령을 깨달은이(인자)를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드러낸 이를 통하여 역사하시게 되면 하나님에 속한 그(성령을 드러낸 이)에게 영광을 곧 주신다고 합니다.(32절)
하나님이 곧 영광을 주신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하늘에 올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즉, 예수께서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요13:33)
역시 짐작대로 예수께서는 육신을 버릴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유대인들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따라서 위 내용은 육신의 몸을 자신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예수께서 가는 곳을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가 가는 곳을 갈 수 있을까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이고 하나님과 하나 된 예수님역시 사랑이지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길이며(34절)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누가 봐도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거라는 뜻입니다.(35절)
예수의 이런 말씀은 마치 마지막 유언과 같이 들렸나 봅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요13:36)
베드로가 예수께서 가시는 곳을 따라가려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훗날 따라오리라 하신 것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영생의 하늘에 올라갈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즉각 반응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13:37)
지금당장 예수님을 따라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러한 맹세를 인정하지 않았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요13:38)
이 내용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렇지만 이 내용에는 담긴 뜻이 있습니다.
맹세를 한 것은 베드로의 육신이지만 정작 베드로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막상 일을 함에 있어 의지력을 발휘하려 해도 잘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내 의지력까지 관장하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사람만이 이 내용을 올곧게 이해하리란 걸 말씀드리며 13장을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장 5~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