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34.
안녕하십니까?
이 세상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홀로(holo)되신 그리스도예수님만 의지하며 성경연구를 하는 나 홀로목사입니다.
지난시간 나 홀로목사의 성경강해가 조금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많은 분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이 감지되고 있는데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하고 나 홀로목사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일이기도 합니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지요.
솔직히 말해서 가끔씩은 나 홀로목사도 시류에 편승하여 많은 이들이 택하고 있는 길을 따라가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안에 거하고 계시고 나 홀로목사 안에도 계시는 성령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영적인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일들을 나 자신의 안일(安逸)하고 평탄한 삶을 위해 모른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많은 이들의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더라도 마태복음을 완독(玩讀)하고야 말거라는 다짐을 하며 오늘의 시간을 열겠습니다.
지난시간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다니엘서에 담긴 뜻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성경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24:15)
이미 이 구절에 대한 설명을 다니엘서를 통해 충분히 하였지만 또다시 올린이유가 있는데 15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구절들을 이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전혀 엉뚱한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육신을 말하는 것이며 거룩한 곳이란 성전을 가리킵니다.
만약 이 구절을 액면그대로 보고 사탄이나 마귀정도로 인식하게 되면 아주 웃기는 일이 되고 맙니다.
마귀나 사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거룩한 곳)을 점령한 꼴이 되지요.
따라서 이 내용은 깊은 기도나 묵상 중에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 일을 말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예수님 말씀에 귀기울여보겠습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24:16)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마24:17)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마24:18)
Neither let him which is in the field return back to take his clothes.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마24:19)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
But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neither on the sabbath day:
유대에 있는 자들이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가리키며 산이란 높은 인식의 세계를 뜻하니 성전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15절처럼 체험이 주어지고나면 영적인 삶을 살라는 말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지붕이란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인식의 최고봉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며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는 말은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18절은 조금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지적할 것은 field를 밭이라고 번역했지만 벌판으로 봐야하며 다음으로 겉옷에 해당하는 clothes는 격식을 갖추는 의미로 해석되어야합니다.
이 내용역시 17절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체험이 주어지고나면 벌판에 선 것처럼 물질적인 것들이 주어지지 않겠지만 외형적인(겉옷)일에 집착하여 육적인 삶으로 돌이켜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19절의 아이가진 이들이 걱정하게 되는 이유가 20절에 이어지는데 20절 역시 수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도망하는 날에 해당되는 단어가 flight 인데 어째서 날아오른다는 말이 달아나는 말로 바뀌어야했을까요?
이 역시 영적인 체험이 없이 액면그대로를 적용시킨지라 이렇게 번역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 말씀이 제대로 해석되려면 다니엘서와 연계가 되어야합니다.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And on a wing of the temple (단9:27)
다니엘이 성전에 올랐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이와 마찬가지의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따라서 20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합니다.
너희가 날아오르는(성전에 오르는) 날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
But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neither on the sabbath day:
이렇게 보면 깊은 기도나 묵상 중에 성전에 오르게 되는데 그 일로 인해 아이가진 이들은 걱정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겨울이나 안식일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기도하라했을까요?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불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로 들어보면 보다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의 라마교에서는 많은 스님들이 좌선 중에 입정(入定)에 들어가곤 합니다.
입정이란 깊은 명상에 빠져드는 것을 이름인데 삼매(三昧)라고도 하지요.
라마불교에서는 많은 승려들이 입정상태에 들어있는데 특정한 장소에 이들을 모아놓고 보살피고 있습니다.
길게는 몇 년 동안 깨어나지 않고 있는가 하면 짧게는 며칠 혹은 몇 달 만에 깨어나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선정에 들어 깨어나지 않는 이들을 동료스님들이 미음이나 죽을 떠 넣어 주며 깨어날 동안 육신이 지탱할 수 있게 보호해줍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선정에 든 스님이 깨어나게 되면 동료스님들이 한동안 육신을 주물러주며 굳어있던 근육을 풀어주지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겨울이나 안식일에 성전에 오르지 않게 기도하라 했던 겁니다.
영은 성전에 올라갔지만 아직 육신은 이 땅에 남아있음으로 보호가 필요한데 겨울이나 안식일에는 보호받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과거 가톨릭에서도 일어났음을 알 수가 있으며 오늘날 기독교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수도원에서 기도와 묵상 중에 하나님을 체험한 이들이 수없이 많이 있으며 기도원에서 단식과 금식기도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하고 들어 올림을 받은 이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물론 체험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올바른 길을 간다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생전 성전에 오르는 일(휴거)이 오늘날에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이해가 되셨으리라 생각하며 다음구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2)
그때라는 것은 깊은 기도 속에서 성전에 오르는 때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이런 환난이 없으리라는 말은 육적인 에고가 완전히 죽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개인에게 있어서의 죽음이란 온 우주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이보다 더 큰 환난은 없다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환난을 겪어야만 한다는 거지요.
지금까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았듯이 육적인 면(인식)들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고서는 영의세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22절에서 예외의 경우가 있다했습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들이 죽기 전에 성전에 오르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감해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지요.
성전에 오른다는 말은 구원받는다는 말과 같으며 영생을 얻는다는 말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말은 높은 세계에서 내려온 영혼을 말합니다.
달리표현하자면 때가 되어 근원의 세계로 돌아갈 영혼이라는 말이지요.
구원이 정해져있는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살아있는 동안 성전에 오를 수 있게 허락해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체험이 주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기위한 내용입니다.
다음에는 어떤 내용이 주어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함께 보실까요?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24:25)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6)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마24:28)
23절은 이미 영적인 체험을 하였다면 더 이상 외면에서 구세주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내면에서 하나님의 왕국(성전)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이고 세상 적인데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24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기적과 이적에 관심 기울이는 수행자들은 깊이 새겨야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이러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주셨기에 25절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자)가 임하게 되는 것이 어떤 식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는 그리스도를 말하니 곧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며 성령이 나타나는 것은 광야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요 비밀스러운 곳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번개처럼 번쩍인다는 말은 빛을 보게 되는 것을 뜻하지요.
28절은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했는데 이 말씀인즉 육적인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그러한 일을 통해 먹고사는 독수리 같은 이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이지 못하고 물질적인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물질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거지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자신의 내면에서 성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면에서 성령을 발견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예수님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24:29)
Immediately after the tribulation of those days shall the sun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그날이란 육신을 벗고 성전에 오르는 날입니다.
환난이후 즉각적으로(Immediately after the tribulation) 해와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이 흔들린다했는데 이는 명백히 죽음을 뜻합니다.
죽음도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생을 얻은 자의 죽음을 말하지요.
그런 까닭에 하늘의 권능이 흔들린다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영생을 얻었으니 더 이상 하늘의 권능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을 입증(立證)해줄 내용이 다음구절에 나옵니다.
보시죠.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And then shall appear the sign of the Son of man in heaven: and then shall all the tribes of the earth mourn, and they shall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reat glory.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And he shall send his angels with a great sound of a trumpet, and they shall gather together his elect from the four winds, from one end of heaven to the other.
보시다시피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인다했습니다.
영과 육이 하나 되는 과정을 뜻하며 육신이 들림 받는다는 말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한다는 말은(all the tribes of the earth mourn) 육신을 포함한 물질적인 것들 모두가 부러워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데 물질적인 것들의 속성상 육신이 들림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이 땅에 붙들어 두고자합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로 들림 받게 되자 애석해 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31절에서의 그는 하나님과 하나 된 인자(그리스도)를 뜻하며 그의 택하신 자들이란 인자와 인연이 있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인연을 맺어놓은 사람들을 사방에서 불러들인다는 말입니다.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낸다고 한 것은 비유의 말씀으로 내면에서 큰 소리(진동)를 듣게 되는데 이 또한 빛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징조라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말하는 나팔소리는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 내면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빛과 소리가 하나라는 것을 인식한 후에라야 받아들여질 말씀이니 귀열린자들만 듣길 바랍니다.
이미 말해주었듯이 인자란 깨달음을 얻은 이를 뜻하는데 이런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인자에 대해 또 다른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성경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24:32)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3)
앞서 말씀하신대로 영적인 체험이 주어지고나면 각종 재난과 환난이 일어나게 되고 지금까지의 평탄한 삶에 혼란이 일어나니 때가 무르익었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때가 되면 잎이 나오듯이 이러한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지요.
인자가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은 영육이 하나 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기를 이러한 일들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거나 특정한 시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구도자라면 누구나가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24:34)
예수님말씀을 듣는 그 시대 사람들 모두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지금까지 나 홀로목사가 말한 내용을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역사속의 재난을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니 보겠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35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육신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영의차원에서 말씀하신 겁니다.
성령의 위치에서 말씀하신 거라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이렇게 기록한 거지요.
육신을 비롯하여 물질세계의 모든 것이 멸하더라도 영원히 살아있는 성령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36절에서 아들도 모른다한 것은 육신의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며 아버지는 하나님(성령)을 가리킵니다.
만약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이스라엘이 겪어야하는 재앙이라고 한다면 36절의 말씀은 부정되어야합니다.
이모든 일들이 인자가 임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어지는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십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37)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마24:38)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9)
미리 말했던 것처럼 인자의 임함이란 영육이 하나 되는 상태, 즉 성령과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의세계에 관심기울이기보다 물질적이고 육적인데 관심을 기울였다는 말이지요.
홍수가 나서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도 영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이니 오늘날의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하겠습니다.
노아가 영생을 얻기 위해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일반인들은 물질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였으니 그 결과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음구절역시 성령이 임하게 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으니 함께 보시죠.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마24:40)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1)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들어 올림(휴거) 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늘 영의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그리스도예수)께 집중된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왜 이래야만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24:43)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도둑이 들것을 예방하듯이 영의세계에 대해서도 준비를 하라는 말이니 도덕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영의 일보다 세상 적이고 육적인일을 중요시여기지요.
하지만 적어도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수행자들이나 크리스천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영적인 들림(진정한 휴거, 깨달음을 얻는 일)이 주어지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영의세계를 준비하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말씀에 귀기울여보겠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마24:45)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마24:47)
45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천국복음을 전해줄 사람이 누군가를 물었습니다.
주인이란 하나님을 뜻하며 양식을 나눠줄자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복음을 전해줄 제자들을 말합니다.
인자이신(그리스도) 예수님을 도와 천국복음 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죽음에 이르러서(주인이 올 때)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을 46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긴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생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깨달아 아는 이를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셨는데 이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한다는 말씀이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유희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노아가 방주를 준비했듯이 영생을 위한 준비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마24:48)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마24:49)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마24:50)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4:51)
And shall cut him asunder, and appoint him his portion with the hypocrites: there sha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보시다시피 세상유희에 빠져 살게 되면 말로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지요.
48절에 악한 종이라 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영적인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악하던 선하던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나타내보이기위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을 나누어서 비유해 주신 겁니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이란 죽음이 다가올 때를 말하며 주인이 오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51절은 아주 세밀하게 살펴봐야합니다.
전반부에 엄히 때린다했지만 사실은 산산조각 낸다고(shall cut him asunder)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위선적인부분을 정한다고 (appoint him his portion with the hypocrites)했지요.
나머지부분은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 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죽음에 임하게 될 때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묘사해놓은 것입니다.
전체 내용을 종합해보면 영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유희에 빠져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심판을 받게 되면 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진정한 진아(성령)의 모습이 아닌 위선적인(육신)부분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거라는 말이 됩니다.
이러한 말을 우리나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죽음 관련된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아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사람이 죽을 경우 영은 온 곳으로 돌아가고 혼백은 흩어지며 육신은 땅으로 돌아간다 합니다.
이 같은 경우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한 죽음후의 세계이고 실질적으로 살펴보면 아주 복잡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이 있는지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데 육신을 자신의 진짜모습으로 알고 있는 경우에는 죽음 후에도 육신을 놓지 못하지요.
이런 경우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육신 안에는 몇 개의 인식 체들이 있는데 사는 동안 영의세계에 가까워질수록 물질적인 인식과는 전혀 다른 인식들이 요구됩니다.
시간관계상 길게 설명 하지는 못하겠으나 간단하게 몇 가지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인식 체를 나눌 때 보통 7개로 말하지만 4단계로 축약해서 설명하기도하지요.
맨 밑바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하며 물질계라 부릅니다.
다음단계는 형성계로 아스트랄계라 하며 이곳에서 활동하는 몸체를 아스트랄체라 합니다.
그 위 단계가 창조계인데 멘탈계이며 이곳에서의 몸은 멘탈체입니다.
여기까지가 인식의 세계라 할 수 있으며 몸이 필요한 세계인데 여기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 원형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흔히 영계라고 하는 이곳너머는 더 이상의 몸이 필요 없는 상태이니 영으로만 존재하는 곳이지요.
바로 이러한 상태를 예수님께서는 모두 알고 있기에 51절에서 하나님이 산산조각 낸다는 표현을 하신 겁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여러 갈래의 인식들로 나누어지는데 살아생전 높은 인식을 갖춘 경우에는 원형계(영계) 너머의 세계로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무저갱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모르는지라 저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어찌되었건 중요한 것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으니 더 이상 번역의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이렇게 해서 24장을 완독(玩讀) 했는데 약간의 시간이 남는 것 같습니다.
하여 참고삼아 마태복음 24장과 똑같은 구절을 다른 복음서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잠시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합니다.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하고자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끔씩 교회에 가보면 목사님들이 24장의 내용 중에 특정한 부분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사람들이 겪었던 환난을 예수님이 예언하신 거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서입니다.
똑같은 내용이 마가복음에는 13장 전체에 걸쳐서 기록되고 있으며 누가복음에는 21장 5절부터 끝 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간관계상 모두 올릴 수는 없으니 개인적으로 읽어보시기 바라며 여기에서는 특정한 부분만 보도록 하지요.
마가복음은 9절에서 12절까지만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내용이 삽입되었을 뿐 마태복음과 별로 다를 바가 없으니 더 이상 살펴볼 필요가 없지만 누가복음은 전혀 엉뚱한 내용이 들어있기에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누21:20)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누21:21)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누21:22)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누21:23)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21:24)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누21:25)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누21:26)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누21:27)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누21:28)
20절을 보시면 마태복음24장 15절과는 달리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고 기록한 내용이 보일 겁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내용을 보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일어날 끔찍한 학살을 예언하신 거라 가르치시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다시피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12사도중 하나인 세리 마태오가 기록한 내용이므로 예수님말씀을 아주 정확하게 듣고 기록한 것이지요.
그리고 베드로의 제자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마가복음도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다니엘서를 인용한 내용을 똑같은 위치에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는 분명 누가복음의 저자가 예수님당시의 제자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서기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침략을 당해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는 수난을 겪은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전쟁을 겪었던 사람이 기록을 하였기 때문에 내용이 마태복음과는 많이 달라진 겁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티투스장군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철저히 유린당하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하지만 서기 73년에 유대인들은 또다시 마사다에서 최후의 항전을 합니다.
그 이후에도 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수없이 많은 외세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수난을 겪어왔지요.
그 많은 외세의 침략과 수난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겨집니다.
단지 오늘날의 일부크리스천들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모마리아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유대인들이 세상마지막 날 지옥에 빠질 거라는 터무니없는 저주를 그들에게 퍼붓고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혀 근거 없는 소리입니다.
부디 여기오시는 분들만큼은 그런 헛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기를 바라며 오늘의 시간을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시비에 휘말리지 말라 말은 들어도
늘 세상사 옳고 그름을 따지고
선악의 경계가 무너져야
영생과를 얻는다고 읽었지만
타인들을 향한 심판의 칼날을 내려놓지 못하도다.
세상을 떠날 사람은
세상일에 관심이 없을 것이고
세상을 살아가야할 사람은
세상이 고쳐지기를 바랄 것이니
인과의 세상에 매이거나 벗어나는 것은
선택에 달렸더라.
물질은 무거워서
아래로 내려가고
영은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니
무거운 물건을 들고
높은 계단을 오르기가 어려운 것처럼
세상일에 관심을 끊지 않고서는
영의 세계로 올라갈 수가 없음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