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정상(頂上)에 가까우면 길이 험하다.

배가번드 2022. 5. 2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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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의70%가 산입니다.

그러다보니 산행을 경험할 경우가 많습니다.

산에 가보면 다양한 차림의 등산객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산을 오릅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길이 있으며 옆으로도 길이 나있지요.

가는 길마다 푯말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약수터 몇 키로 암자까지 몇 키로 등등…….

처음부터 산행의 목적지를 정해놓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상을 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에 가까워지면 푯말이 일치가 됩니다.

정상까지 몇 키로 푯말이 보이고 얼마 후 다들 정상에서 만나지요.

모두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올라왔던 그곳은 한곳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법은 하나로 귀결이 되며 그곳은 바로 빛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부처를 불광(佛光)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무량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아미타불이라는 말도 무량한 빛을 뜻하지요.

나무는 귀의(歸依)한다는 말로서 몸을 맡긴다는 뜻이며 아미타불은 빛이니 나무아미타불은 자신의 몸을 빛의 세계로 돌이키겠다는 발원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성령을 빛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산에 올라 묵상에 잠겨보았던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도 빛의 형상들이었지요.

개개인의 특성은 간직하고 있지만 빛의 세계에서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 겁니다.

빛의 세계는 시공이 없는 세계이자 경계의 벽이 허물어진 세계입니다.

언제든지 합체가 이루어지고 분리가 가능합니다.

영의 세계에 대해 모르는 이는 이런 말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불교도나 기독교도라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지요.

그런 까닭으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함과 박학다식(博學多識)의 면모를 자랑하더라도 빛을 보지 못했다면 견성은 하지 못한 것이며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겁니다.

정상이 어디인지 말해준다고 해서 정상을 아는 것이 아니고 올랐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듣고 배워서 알고 있을 뿐이지요.

진정한 도는 말이 필요 없는 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말해주어야기에 법문은 필요하며 법을 설하는 이 또한 필요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정상에 가까워지면 길이 좁아진다는 겁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가팔라지며 험하고 좁고 장애물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안내인이 필요 없으며 오롯이 혼자서 걸어가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앞날이 험난하다면 정상에 가까워졌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주저앉아 울고 있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며 힘을 내어 정진할 때입니다.

주저앉고 싶은 사람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