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함께 할때만 완전하다.
박수를 칠 때 한손바닥으로는 소리가 안 납니다.
반드시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요.
이래서 매사는 상대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액션을 취할 때 상대방이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대방의 반응을 문제 삼기보다 내가 원인제공을 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합니다.
적어도 수행자라면 이것은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자신은 행동을 엉망으로 하면서 상대방의 반응만 문제 삼는다면 근본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누군가 비난을 하면 즉각적인 변명은 하지만 돌아서면 곧바로 나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거짓말같이 상대방이 지적한 잘못이 내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세하게나마 그런 점이 있다는 사실과 내 의식 저편에 잠재된 인식이 있음을 알고 비판받을만하다 인정하지요.
비록 표현되지만 않았을 뿐 그보다 더욱 심한 인식이 내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기에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지로 상대방이 내 기준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면 이해를 하는 것 보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알고 보면 상대방이 이상행동을 하는 것도 나와 연관이 있습니다.
내가 그로부터 거리를 두라는 신의 메시지를 무시해서이기도하고 두 사람이 함께 어떤 목표점을 향해 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시험일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나 같은 경우 나의 목적을 먼저 살핍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생각과 말을 뱉어낸다하더라도 내 목적에 반한다면 그것을 쓰레기라 생각해 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목적에 부합할 경우 목적을 위해 겪어야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참고 견디는 거지요.
예를 들어 지금 하는 일은 건물의 완성이기에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찰과 불협화음은 시험이라 여기며 인내한다는 말입니다.
불법은 세간법을 떠나지 않는다했으니 이런 점에 있어 영육이 둘이 아닙니다.
하여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나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지요.
그러면 아무리 안 좋은 말과 행동을 상대방이 했더라도 내안에는 그보다 더욱 심한 것들이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비록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별의별 것들이 내안에는 잠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땐 내마음속을 들여다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상대방도 싫어할 것이고 내가 듣기 좋아하는 말은 상대방도 듣기 좋을 거라 여기는거지요.
물론 기호가 다른 경우도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동일하게 반응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은 너무나 보편적인 일일뿐이고 심각한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빙의가 되었을 경우에는 이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중인격 장애인 경우에는 예측도 불가능하고 상식선에서 이해될 일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경우 상대방도 어쩔 수가 없는 거지요.
다만 당사자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해가 절대적입니다.
이런 사람은 혼자 있으면 더욱 심해지며 나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수록 누군가 옆에서 보살펴주어야 하며 커다란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으며 오히려 상처받기 십상이지요.
이 또한 인연의 문제인지라 외부에서 뭐라 할 성질이 아니며 문제의 해결점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말은 쉬우나 결코 쉽지 않으며 엄청난 인내를 요구받게 될 겁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사랑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사랑을 가장 중요하다 기록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