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166)
아들아!
요즘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경험하고 있어.
그동안 말도 되지 않는다고 여기던 부분들이 사실은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진리가 그곳에 담겨있더구나.
시공을 넘어선 모든 개념들이 그곳에 함축되어 있었는데 세상의 많은 종교들의 생성과정까지도 모두 들어 있었던 거야.
우선적으로 내게 감동을 주었던 부분들은 창세기였었는데 하나님은 우리들이 알고 있듯이 추상적인 인물인 동시에 보다 실제적인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
왜 지금의 교황께서 창조주가 먼 외계의 존재일수 있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는 거지.
이 같은 일을 우리들은 이제 현실에서조차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의 과학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어.
지난시간에도 잠시 언급이 있었듯이 외계존재들의 과학이라면 충분히 인간들을 과거의 시간에 만들고도 남았을 거라는 것을 우리들은 이제 알아.
지금 이 시간 그들은 저 먼 미래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우주 한편에서 우리들 모두를 모니터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의 현재 과학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네비게이터의 작동방법을 보게 되면 그 같은 일이 현실일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
인공위성을 통해 땅위의 어떠한 건물도 찾아 낼 수 있으며 심지어 칩이 사람 몸에 심어질 경우 사람까지도 발견해 낼 수 있어.
세상에 비밀이란 없게 된 거지.
조금 더 먼 미래로 의식을 확장 해보게 되면 우리가 하는 어떠한 짓도 저 멀리 외계의 존재들은 알고 있다는데 까지 인식이 도달하게 되고 더욱 먼 미래세상의 내 영혼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며 또한 그 모든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데 까지 인식의 확장을 할 수 있는 거야.
이것이 바로 영적인 각성이 이루어지면 얻게 되는 인식들인데 우리들은 알거나 모르거나 이러한 존재들로서 살아가고 있어.
하지만 이러한 점들조차 전혀 인식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거든.
누군가 자신들의 행동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의 죄의식 때문인데 지금껏 받아들인 잘못된 인식 탓이라 할 수 있어.
자신의 행위를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행위가 죄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인데 세세생생 쌓아둔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의 영향 때문인 거지.
지금껏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던 환상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이 그러한데 마치 꿈속에서 깨어나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들 같은 거야.
바야흐로 지구과학은 첨단을 넘어서 신의 영역으로 치닫고 있는데 불구하고 이와 같은 생각은 영적으로 아직 걸음마 수준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있다 할 수 있어.
이것이 바로 지독한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고정관념 때문인데 세세생생 쌓아온 정보의 영향이기도 하고 주변의 잘못된 인식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해.
저 멀리 하늘나라에는 우리들이 가야할 유토피아가 있고 샹그릴라가 있다는 생각이며 부처의 불국토와 서방정토, 아미타 세계가 있으며 또한 천국과 지옥도 있으며 옥황상제와 염라대왕도 있어서 우리들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믿고 있기 때문이거든.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분명히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세계로 가게 될 거야.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인 너에게 해주는 말로서 너만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계로 가게 될 것을 권유하고 싶은 거지.
그들의 일은 그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내가 생각하고 말해주는 세상을 가게 되길 바라.
그것이 어떠한 세계라는 것은 이미 말해주었지?
그 어떤 경계도 정해지지 않은 자유로운 해탈의 세계라고 말이야.
그 어떠한 걸림도 없는 세상을 가고자 한다면 우리들은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떳떳할 수 있어야 해.
누군가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거든.
떳떳함이 왜 그토록 중요하냐고?
아들아!
너는 지금껏 무엇을 듣고 있었니?
내가 이미 수차례 말해 주지 않았는가 말이야.
우리들의 죄 의식이 우리들을 스스로 옭아매고 있고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떳떳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는 자유가 보장된다고…….
이것은 물론 자신이 행한 악행을 변명하라는 말은 아니거든.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억지로 자신 행위의 당위성을 주장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는 행위들을 하지 않는 것으로 떳떳해지라는 거야.
스톱!
잠깐 쉬면서 제 질문을 받아주세요.지금 심각한 오류를 발견 했어요.
당신은 분명 죄의식을 가져서는 해탈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함과 동시에 잘못된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주 심각한 모순이라 여겨지거든요.
내가 한 행위에 당위성을 주장해야 그 같은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닌가요?만약 당신의 말씀대로라고 한다면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용서받을 길이란 없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말입니다.
응?
듣고 보니 그러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내가 잘못 말한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한 가지 알아야 할 일이 있어.
우리들이 어떠한 잘못된 행동들을 한다 해도 우리들을 심판할 권한은 타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내면의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지 않니?
그러한 인식하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목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본인이 안다는 거야.
이러할 때 본인의 행동에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본다고 해서 무엇이 걸림이 있을 것이며 죄의식 따위는 있지도 않을 거라는 거지.
따라서 내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말에 걸림이 없을 거라는 말이거든.
내말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이 떳떳치 못하게 여겨진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스스로 보고 있어.
이러한 경우 남들이 자신이 행한 행동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겠어?
이것이 그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거야.그래서 참회의 과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네 눈이 죄를 짓거든 눈을 빼 버려라.
네 손이 너로 죄를 짓게 하거든 네 손을 잘라버려라"
이 말은 정말 그렇게 눈을 빼고 손을 자르라는 말이 아니거든.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따른 죄의식을 발생 근원으로부터 제거하라는 말인 거지.
물론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의 인식방식이며 타인들의 경우는 나와 다를 수 있어.
그들이 더욱 좋은 죄의식 제거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유효할 수 있다는 거야.
얼마든지 그 같은 행위는 가능한 일이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한 그것은 언제나 정답이 아니겠어?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길이 정답이라 말해 올 때면 한결같이 말해 주고 있어.
"그것은 당신의 길이며 그것은 정답입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정답은 아닙니다."
이러한 내말에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거든.
내가 과거에 그러했듯이 그들 또한 절대 그들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거지.
이러한 인식 또한 우리들의 자유로운 해탈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야.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이 정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같은 주장이 나쁘다기보다 이러한 고정된 시각이 자신들을 묶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어.
이것은 우리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 할 수 있기도 하고 그리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
이것이 바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환상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야.
이것은 또한 그들이 그들의 지금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 위해 그들 영혼의 선택이기도 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지난번 내가 말한 뇌성마비를 앓는다는 아이는 아주 높은 의식에 도달한 것이 맞는 거지.
역할 중에서도 아주 높은 의식을 가진 역할을 맡았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아이에게는 죄의식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야.
그저 자신의 몸을 통해 신이 일을 하고 있다 여기기 때문으로 누구에게도 죄를 짓거나 자신의 행동이 떳떳치 못하다고 생각지는 않아.
인식의 범위에 따라 얼마든지 이러한 생각은 가능한 일인데 그가 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단지 내가 그 아이의 그러한 경험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뿐이거든.
그 아이가 결코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의 진실을 나에게까지 심으려고 하는 행위를 내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거야.
이 같은 일을 말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아주 쉽게 그 아이의 일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라 할 수 있어.너도 생각을 해보렴.
지난번에도 말을 했듯이 암환자가 치유가 되고 단 한 번도 일어나서 걸어보지도 못한 아이의 입에서 경전내용들이 줄줄 이어져 나오고 우리들이 살아온 과거사가 줄줄 나온다고 했을 때 그 같은 일을 가볍게 여길 수 잇겠는가 말이야.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을 그가 하고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말을 그가 한다고 한다면 정말 그를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라 여겨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그것은 이미 말해주었는데 너는 아직도 기억을 잘 못하는가 보구나.
그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하여도 그의 문제이며 그 일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고는 내가 결정해.
그리고 나에게는 내면의 스승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살아 숨 쉬고 있거든.
그런데 왜 내가 그의 말을 따라야 하지?그
가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상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을 텐데 불구하고 그는 자꾸만 자신 내면스승의 말을 내게 전달하고 싶어 하고 있어.
나에게 오는 것은 언제든지 누구라도 환영을 해 주겠지만 자신의 일을 나에게 주입시키고자 한다면 지난번과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며 쫓겨 갈 것이 분명해.
이 말이 너에게 얼마나 잔혹하게 들릴지 잘 알고 있지만 이일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스님의 일을 말해 주어야겠구나.
평소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싶다 늘 바라고 있던 스님이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어느 날인가 부엌에서 죽을 끓이다가 관세음보살이 죽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죽을 끓이던 주걱으로 관세음보살의 뺨을 철석 때리고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더라는 거야.
옆에서 이 모양을 지켜보던 제자스님이 스님께 물었어.
"아니! 스님! 어찌 그리도 매몰차게 대하시는지요. 그동안 그렇게나 오매불망 원하던 관세음보살님이 아닌가요?"
그러자 스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관세음보살 아니라 부처가 나타나도 한방 갈겨 줄테다.
이미 내안에 부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누구를 섬길 손가?"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인거야.
내가 지금껏 너와의 대화를 지속시켜 나가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러한데 있었어.
우리들의 고정된 관념들을 내 삶의 순간들을 통해 바꾸어 보려고 했던 거지.
하늘 저 높은 곳에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늘로부터 우리가 왔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고 오고 감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거야.
우리들이 시공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만물 동일체라는 개념을 가지게 되는데 그 같은 일을 성경에도 말해 놓았어.
출애굽기에 보면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라 하였는데 바로 이와 같은 동일체의 개념을 말해준다 할 수 있거든.
나와 상대하는 상대방의 내면까지 마음대로 하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말로서 이 내용이야말로 우리들에게 동일체라는 개념을 알게 해줄 수 있는 거지.
비록 우리들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다 하지만 사실은 동일한 하나님이 정해 주신바대로 연극무대를 장식하고 있음을 말하는 거야.
그러한 순간들을 통해 하나님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우리들은 서로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세세생생 살아나온 것이며 지금도 그러한 연극 속에 있어.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니까 자꾸만 내말을 오해를 하고 자신 두뇌의 판단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거지.
아들아!
언젠가 나에게 이 같은 일이 왜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확실하게 경험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어.
인터넷을 통해 늘 접하고 있던 뉴스 토론장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내가 올린 본문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 당시 본문 내용이 신용불량자 구제대책에 관한 것이었는데 직접 나와 관계되는 일이어서 글을 올리게 되었던 거야.
무려 4백만 명이 넘는 신용불량자가 생긴 근본원인이 IMF에 있는 것이 맞는다고 한다면 그것의 원인 제공자는 국가이며 그 후속 대책으로 신용회복을 시켜주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 명백하다는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위축된 국내 소비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용회복을 시켜주는 것이 급선무라는 내용이었는데 거기에 따른 댓글은 참으로 다양하였어.
전체 게시 글에 선정되는 바람에 조회 수가 수만 명을 넘기고 있었고 얼마나 많은 댓글이 달렸는지 다 읽지도 못할 지경이었는데 댓글의 내용도 아주 다양했었지.
누구는 내가 겪어 나온 일들이 참으로 안되었다 하기도 하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죽어버리라는 댓글을 달기도 하더구나.
모르긴 해도 그분은 자신이 그러한 피해를 직접 당하신분 같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심하다 싶었지.
하지만 나는 그 일로 그다지 힘들어 하지는 않았는데 나 역시 과거 남들에게 심하게 욕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어.내가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만이 내 눈을 가렸기에 나 또한 그렇게 심하게 그들을 나무랄 수 있었는데 반대편에 서는 순간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거야.
이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 나 자신의 현 위치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내 삶의 가치관 전체를 돌아보게 되었던 거지.
내가 목숨처럼 여기고 있는 지금의 내 길이 타인들에게는 전혀 감동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주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듯이 보이는 타인들의 생각들이 사실은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 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성경 속에 묘사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주하는 대적들은 우리들의 목적지를 향한 방해물들을 총칭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러한 연유로 성경을 크리스천들이 자신들만의 하나님 말씀이라 말하게 된다면 하나님을 자신들 영역 속에 가두는 꼴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아들아!
이러한 우려와는 전혀 별개의 일들이 이 시간에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거든.
너와 나누고 있는 지금의 우리 대화를 바라보는 이들도 각자가 자신의 인식하에서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각양각색의 판단들을 낳고 있어.
자신의 인식수준만큼의 크기로 살펴보게 되는 거지.
이것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거든.
나는 지금 너에게 어떠한 곳에도 머물지 않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말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곳으로 나를 이끌어 내고자 하고 있는 거야.
그들의 판단으로는 내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에 가까이 와 있는데 핵심을 잡지 못해 헤매고 있다 여기고 있어.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데 불교신자는 불교신자대로 기독교를 믿는 분들은 그분들대로 또한 우리들 단체 사람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의 잣대로 나를 저울질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결코 그들에게 청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대면도 하지 않고 논쟁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판단들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모두 자신의 종교와 믿음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
또한 그 같은 생각을 내려놓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도 알고…….
그러하기에 내 육신 스승은 제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말씀 하셔야 했어.
"너희들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그만큼 자신의 두뇌의 판단을 넘어서기가 어렵다는 거지.아들아!오늘 내가 한 가지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내가 너에게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앞서 말한 대로 고정관념(습관) 하나를 바꾸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반복되는 학습을 네게 하는 내 심정을 알게 될 거야.
너에게 어쩌면 세뇌작업을 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내 삶을 통해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며 그 누구도 우리들 영혼을 통제 할 수는 없다는 거지.
우리들의 고정된 개념만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거야.
이 같은 일을 내게 가르친 것은 내 육신 스승이었지만 그것을 몸소 보여준 것은 내 주변의 수행자들이었어.그들은 어느 누구도 타인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거든.
심지어 스승을 따르면서도 스승과 자신을 비교하려 들었으며 자신만의 독창성을 주장하려고만 들었던 거야.
누군가 관세음보살의 체험을 말하게 되면 그는 그저 천상의 존재로서 그 같은 일을 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애써 상대방의 체험을 비하시키고 있었어.
또 누군가 수천 년 미래의 일을 말할 경우 그가 본 것은 환상이라 치부하기도 하였는데 그가 잘못된 마장에 들었다고 하는 거지.
심지어 상대방의 오로라를 보며 그의 수행력을 낮게 보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그러한 판단 이면에는 자신들의 가치관이 숨겨져 있거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범위에다 상대방을 집어넣으려는 에고가 작용하고 있는 거야.
바로 이 같은 생각이 그들 모두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처가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으며 신이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
물론 이것은 또한 그들의 역할 때문이기도 하고…….
어떻게 잘 아느냐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기도 해.
인식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결국 나 역시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거지.
그들의 인식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하나의 고정된 시각일수 있는 거야.
그래서 언제나 이것은 선택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는데 조만간 우리들은 이러한 점을 다시 말하게 될 것 같으니 그때를 기대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