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번드 2022. 6. 17.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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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늘은 지난시간 약속한 일을 말해 보기로 하자꾸나.
내가 지금껏 동일체의 개념과 천백억 화신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쏟아놓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쉽게들 여기고 있겠지만 사실을 바라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
내가 앞서 내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말해주며 그같은 일을 말해 왔는데 내말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자신들은 그들과 아주 무관하다고 여기거나 자신들의 등급은 그들보다 높다는 식의 생각들을 하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그들의 생각처럼 정말 그러할지는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을 심도있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거든.
아직까지 시시비비를 벗어나지 못했거나 타인들의 행동을 심판하고 있다고 한다면 자신의 등급은 남을 심판하는 것 만큼의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거지.
예를 들어보자면 말이야.
누군가의 행동을 심판하거나 판단을 내리려고 할때 자신이 상대방의 입장에 처해 보고난 후에 자신이 어떠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가를 봐야 해.
언젠가 말했던 사형처럼 다른사람에게 자신의 부인과 전 재산을 함께 넘겨주었다는 말을 듣고 함부로 평가했다가 자신이 그 비슷한 일을 당하게 되자 형편없는 행동을 보여준것과 마찬가지라는거지.
인도의 아힘사의 영웅인 간디조차도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을 어린 아이에게조차 말할수 없었음을 우리들은 알아.
그런데 겪어보지도 못한 남의 일을 함부로 말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아직 봉우리를 맺지도 못한 연꽃과 같다고 볼수 있어.
그래서 우리들 관음법문에서는 늘 보고 듣는 빛과 소리로서 등급을 매기고 있거든.
스승님께서 제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등급을 알수 있게 하기위해 이같은 등급 확인방법을 말씀해 놓으신거야.
우리들은 지금까지 빛과 소리가 하나이며 어둠과 빛조차도 하나라는 말을 해왔는데 과연 자신들이 그만한 인식에 다다랐는지는 각자의 역량에 딸린 문제라 생각해.


저기요.
한가지 질문을 할께요.
당신은 지금까지 그러한 말씀을 하실때마다 한결같이 그같은 사실을 인정만 하면 그같은 인식에 도달할수 있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마치 그와같은 일을 인식만 해서는 안된다는듯이 말씀하시고 있어요.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여기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그래.
이제야 네가 제대로 된 질문들을 해주는구나.
지금껏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야.
내가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네가 꺼리를 제공해야 하는데 지금껏 그러한 꺼리가 부족했거든.
우리들이 지금껏 이원성이 하나라고 말해왔듯이 질문이 좋아야 대답도 좋을수 있는 것이며 스승이 훌룡해야 제자가 훌륭한것과 마찬가지인거지.
따라서 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와 버렸어.


무슨 말씀이신지 감이 오지 않네요.
뜬금없이 이원성을 말하고선 대답을 했다니요.
뭔가 착각을 하시는것이 아닙니까?
지금 대답을 하시지도 않았는데요.


아들아!
너는 지금 이미 대답을 해준것도 찾지를 못하고 있다는것을 알아야 해.
금방 내가 대답을 해주었는데 아직도 네가 찾지를 못하고 있다는것은 네가 아직도 그만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말하는거야.
다시 말해서 너는 지금까지 내가 해준 말을 네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거지.
만약 네가 진정으로 내말을 소화하고 있다면 내가 말한대로 받아들인 인식과 같이 행동을 할수 있어야 한다 이말이거든.
내말을 두뇌로서 이해만 하고 있었을뿐 네것으로 소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는거야.
또한 네가 머리로서 이해를 하는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알아야 해.
왜냐하면 내가 앞서 이미 대답이 나와버렸다고 햇을때 그같은 사실을 간파할수 있어야 제대로 이해를 했다 할수 있는데 그같은 일을 내가 설명을 해 주고서야 알아들을수 있었다는것은 그만큼 네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거지.
따라서 지금까지 내가 말해준것을 이해할수 있었던것은 네가 제대로 이해를 할수 있는 인식이 갖추어서가 아니라 내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인거야.
결코 네 인식이 아니라는 말이거든.
어떠니?
이제 제대로 이해가 되었니?
내말을 듣고 무척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사실을 말해야 하는 나를 이해 하렴!
내가 오늘 해야 하는 말을 위해서 할수 없이 이같은 말을 해야만 하는데 어쩔수가 없는 노릇인거야.
사실 이같은 말조차 이미 수없이 반복해 왔는데 그러한 말이 그다지 소용이 없었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오늘과 같은 말이 필요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말이야.
앞서 내가 말한대로 사람들이 자꾸만 남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오르기 때문이거든.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한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인데 자신의 등급을 제대로 노출시키고 있는거지.
이것을 설명하자면 이렇게 말해볼수 있을것 같아.
만약 누군가가 모든 이원성을 하나로 인식할수 있다고 한다면 분명 그는 내말을 제대로 이해할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심판하거나 함부로 충고를 하려고 하지는 않을텐데 아직까지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 한다는 것은 자신이 아직도 그러한 이원성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겠어?
그리고 우리들이 또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거든.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빛과 소리가 정말 우리들의 등급을 말해 주는것은 맞겠지만 그것도 진정한 빛과 소리인지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확인을 해야 하는거야.
정말 5세계의 빛과 소리를 경험했다고 한다면 이원성의 개념을 넘어설수 있어야만 하고 만물 동일체의 인식을 가질수 있어야만 해.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타인들의 아픔을 생각하기는 커녕 자신의 등급이 떨어지고 명상이 방해될까 전전 긍긍하기만 해서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다 할수 있겠는가 말이야.
동수들이 생활고에 시달려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데 불구하고 명상이 끝난후 센터 입구에서 장사를 하는것 조차 허용치 않으려고 하는 개인주의 이기심으로 어떻게 보살이되고 부처가 될려고 하는거지?
우리들은 흔히들 깨달음을 얻게되면 만물 동일체의 개념을 가지게 된다 말을 하고 있는데 빛과 소리를 보고 듣게 됨으로서 그렇게 된다고 우리 단체에서는 말하고 있어.
그것은 정말 옳다고 볼수 있는데 빛과 소리를 통해 경계의 벽이 허물어 질수 있거든.
그렇지만 그러한 빛과 소리를 보고 듣지 않고서도 경계의 벽이 허물어 질수 있기도 하는데  타인들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까지 내것으로 느낄수 있는가를 통해서 그같은 일을 확인할수 있는거야.
사실 이 두가지는 한가지라고 볼수 있어.
정말 5세계의 빛과 소리를 보고 들었다 한다면 당연히 그들은 타인들의 아픔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느낄수 있을 것이며 타인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빛과 소리가 함께 할것이 틀림없지 않겠어?
그러기에 스승님은 빛과 소리보다 더욱 중요한것은 사랑이라는 말씀까지도 하신거야.
아들아!
언젠가 나는 동수들과 일을 하면서 우리들이 얼마나 등급을 높이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해야만 했어.
전세계 동수들과 모일때 마다 느끼는 점인데 각나라 동수들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음을 볼수있었거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수준을 제대로 보여준다 할수 있는거지.
그뿐만이 아니야.
내가 요즘 가끔씩 한국을 갈때마다 듣는 소리인데 내가 중국사람이 다 되었다는둥 짱깨라는등의 말을 듣게 되는데 참으로 한심하게 들리고 있어.
물론 그들은 농담이라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아.
평상시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우리들은 분명하게 분별심들을 가지고 있거든.
나라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분별심을 말하게 되는것인가 하겠지만 신이나 부처의 세계에 어떻게 국가의 경계가 있을수 있으며 인종의 차별이 존재하겠는가 말이야.
그렇지 않니?
또한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볼수도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사람과 사랑을 나눈다고 했을때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는것만 해도 다행일거야.
이것만이 아니거든.
국가간에 운동경기를 할때도 마찬가지인데 내 나라 선수가 이기게 바라는것이 분별심에서 비롯된것이 분명하지 않겠어?
어떠니?
이제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분별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것을 알겠지?


하지만 절대 그렇게만 여겨서는 곤란할것 같아요.
이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같은 일은 불가피 한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누가 자신의 애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것을 이해 할 것이며 자신의 국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겠어요.
만약 그같은 일을 해야만 분별심을 넘는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미친짓이나 다름 없을것 같아요.


그래.
네말이 전적으로 맞아.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말도 바로 그러한 일이기도 한데 많은 사람들이 앞서 내가 열거한 말과 같이 분별심들을 내려놓고자 공부들을 하고 있어.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거든.
영적인 일에 집착을 가지게 되면 육적인 일을 아주 하찮게 여기게 되고 육적인 일에 집착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영적인 일이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는거야.
그래서 수행자들은 대부분 육적인면을 넘어서서 영적이고자 그토록 심한 고행과 번뇌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거지.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을 고집하거나 단식을 하는 등의 행위들이 바로 이러한 면들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그러나 이러한 행위조차도 완전하지는 않거든.
이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동안 육적인 일을 아주 형편없이 여기게 되거나 육적인 일들 모두를 중생들이나 하는 짓으로 전락시키게 되는데 이래서는 결코 이원성의 벽을 허물수가 없어.
이같은 일은 육적이고 물질적인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한데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야지 그따위 영적인 일을 알아서 뭐하는가 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게 되는거야.
신이 없다고 큰소리를 치며 수행자들을 사회의 낙오자라 비판을 하게 되는것인데 이 또한 한쪽에 치우친 인식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반응인거지.
그러나 육적인 일에서조차 수없이 많은 단계들이 존재하는데 물질적인 일을 통해서 영적인 일을 깨달아 가는 사람들도 많아.
물질적인 일이 영적으로 승화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라 할수 있어.
육과 영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것이 사랑이거든.
이것은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여서 영적으로 아주 깊어져서 진정 높아진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오게 되는거야.
이러하게 되면 분별심을 여의게 되어서 육적인 일조차도 영적으로 보게 되는거지.
이 또한 영과 육이 하나로 통합이 되었을때 생기는 인식인데 언젠가 말했듯이 육신조차 영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볼수 있어.


저기요.
한가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지금껏 당신은 수행자들이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이거나 물질적인데 치우친것을 성토해 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마치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이 통합을 해야만 하는것으로 말씀하시고 있거든요.
이것은 명백하게 말해서 지금껏 하신 말씀과는 전혀 다른것 같아요.


아들아!
네말이 맞아.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까지 영과 육의 합일은 물론 빛과 어둠조차 하나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해나왔어.
그렇지만 내가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이라 비판을 하였던것은 두가지 모두를 동시에 볼수가 없기에 말하게 되었던거야.
또한 영적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육적인 가치관을 떠나지 못한것을 말했던 것이기도 해.


만약 당신말대로 영과 육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 육적인 가치관을 가지라는 말도 되는것이 아닌가요?


그래?
너는 내말이 그렇게 들리나 보구나.
이래서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니?
우리들이 영과 육의 합일과 모든 이원성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이 간단치가 않다고 말이야.
내가 육과 영이 하나라는 말을 하는것은 육적인 일에서조차 영적인 일을 발견하고 추구하는것을 말한것이지 육적인 집착을 가지라는 말은 아니었거든.
물론 그러한 가치관을 무시하라거나 없애야 한다는것이 아니라 육적인 일을 통해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게 되라는 말인거지.
다시 말해서 육적인 가치관을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었어.
언젠가 나는 이같은 일을 말한적도 있었는데 영혼이 우리의 육신을 감싸고 있다는 말을 했을거야.
그처럼 우리들 몸은 영적인데 불구하고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있거든.
영이 육신을 감싸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만물 공동체의 인식은 물론이고 대우주와 소우주가 하나라는데까지 인식의 폭을 넓힐수가 있으며 모든 이원성의 벽을 허물수가 있어.
이렇게 되면 육적인 일을 하는것 조차 영적인 일이 되는데 그 둘이 하나가 되는거지.
영과 육의 경계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 지게 되고 이러할때 우리들은 사랑자체가 되는데 지금 내가 모든 수행의 궁극의 목표점은 사랑이라는 말을 하긴 햇지만 이같은 사랑만 하더라도 얼마든지 많은 인식이 있거든.
폭력조차도 사랑이 될수 있음을 말해 왔는데 기억이 나지?
많은 수행자들은 모두가 선하고 착한 행위를 하는것만을 수행이 제대로 되었다 말하고 있어.
하지만 말이야.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악의 경계에 머물고 있음을 알아야 해.
아직도 시시비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에서 나온 말인데 자신의 인식수준이 남에게 충고를 할만큼 되지 못한다는것을 알고 더욱 많이 명상을 할 필요가 있어.
어찌보면 아주 간단한 일인것 같은데 실제적인 생활에서 이처럼 적용시키는것이 그렇게 간단치를 않는거야.
내주변에서 나와 함께 생활을 해나가는 모든 수행자들이 십수년을 죽어라고 계율지키기와 함께 명상을 했는데 불구하고도 그 정도라면 일반인들이야 더 말해 무엇을 하겠어.
지금까지 나는 수천생을 단 한번에 뛰어넘을수 있음을 말했는데 그같은 일을 가능케 만드는것은 네 안에 내재한 하나님(신,부처,스승)의 축복이며 그같은 내면의 깨어남을 위해서는 사력을 다해서 수행을 해야해.
아들아!
이제는 우리들의 대화가 얼마나 높이 올라와 있는 것인지 알겠지?
우리들은 지금까지 몇번이나 되풀이 하여 이같은 일을 말해 왔는데 이 모두가 선택의 문제이거든.
우리들은 한생에서 팔만사천 법문을 한꺼번에 할수는 없다 하지만 그조차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우리들은 가지고 있어.
아주 간단하게 하나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원성의 벽을 허물어 버리는 일이며 그같은 경계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내가 심판의 자리로 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가능하게 되는거야.
그리고 남을 향한 시선을 나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며 타인의 잘못들조차 내것이라는 인식을 가지는거지.
오늘도 시간이 많이 늦었구나.
언제나 너와의 대화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데 그 조차도 다음의 만남을 기쁘고 새롭게 맞이 할수 있게 하기 위한 신의 배려라 생각해.
다음에 다가오는 우리들의 대화에서는 더욱 좋은 내용을 신께서 허락하실것을 확신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