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177)
아들아!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내가 한국에 나갔던지가 벌써 4개월이 지났으니 너와의 대화가 중단된것도 그쯤 된것같아.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를 중국으로 또다시 돌아와 있는 지금 이순간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있어.
내가 한국을 나갔다가 돌아올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내가 떠날때와는 전혀 다른 집분위기가 나를 조금은 어색하게 만드는구나.
지나간 4개월의 세월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일어난 내마음의 변화탓이 아닐까해.
4개월의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수 있지만 그동안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으니 길다면 아주 긴시간일수도 있어.
하지만 내가 지내온 시간동안 내가 가진 즐거움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짧았던것 같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생각에 머물면 무척이나 긴시간이 될거야.
이것은 어디에 내 인식의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고저장단의 높낮이가 경계를 달리한다는 이론을 증명하는 말이기도해.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들이라 비록 고통스러운 순간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길수 있거든.
그러기에 우리들은 항상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울수가 있는거지.
이같은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것이 산모들이라 할수 있는데 산고의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망각하기에 둘째 셋째 아이들을 줄줄이 낳을수 있는거라 여져져.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즐거움이 산고(産苦)를 능가하기에 그럴수 있지 않겠어?
이처럼 우리들 수행자들도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간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고통스러운 순간을 즐겁게 맞이할수 있는거야.
이같은 점을 우리들이 인식을 할수있다면 어떠한 고난의 순간들도 이겨낼수 있을것이며 어떠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을거라 생각해.
모르긴해도 이러한 생각탓으로 내 삶은 심한 굴곡의 연장선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이같은 일은 세세생생 이어져 온건지도 모르겠는데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통의 순간이 파도처럼 밀려온다해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있어.그리고 그같은 고통스러운 순간이 가져다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심과 물질적인 가치관을 벗어난 영적인 세계를 향한 구도심(求道心)의 산물인 깨달음의 열매를 쟁취하였을때 가지는 희열의 순간들이 수없는 생을 윤회토록 해주는것 같아.
물론 이같은 윤회의 과정조차 덧없다 여겨지게 되면 더 이상 윤회의 법륜을 굴리지 않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지기 위해 항해(航海)하게 되리라 생각해.
마치 내가 지금껏 이어오던 중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는것 처럼 말이야.혹 너는 내가 여지껏 정착하지 못하고 세상의 이곳저곳을 떠도는것에 대하여 불만인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생활이 가져다주는 나만의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겠니?
앞에서도 잠시 언급이 있었지만 내가 중국을 들어온 목적이 어디에 있었던지에 관계없이 뭔가를 내가 얻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중국행은 성공적이지 않겠어?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며 보다 보편적이지는 못한 개념이긴 하지만 수행자의 삶의 기준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기가막히게 좋은 일일수 있거든.
물질적인 가치기준으로 보자면 한낱 보잘것없이 떠도는 한사람의 방랑자에 불과할수 있는 내삶이 너와의 대화를 통해 이끌어 내어온 깨달음의 장들을 볼라치면 그야말로 금전적으로 환산할수조차 없는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거지.
물론 이것은 그같은 값어치를 볼수있는 눈을 가졌을때 적용될 말이긴 해.
이번 한국행때 만난 동수들조차도 모든 판단을 물질적인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것을 보면 어쩌면 이같은 말은 나혼자만의 독백이 될지도 몰라.영적인 목표점을 가지고 있는 수행자들조차도 물질적인 가치기준을 벗어나기가 어려운데 일반인들이 오죽하겠어?
자신들이 얼마나 물질에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이 되지 않고 있는데 말해야 무엇하겠냐는거지.
잠깐!
말씀 도중에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일을 어떻게 겪었기에 사람들이 물질에 노예가 되어 있다는 건지요.
지금껏 말씀하신것으로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긴 합니다만 좀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을 어떻게 가게 되었고 또 다시 중국을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래!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그동안 내가 겪어야만 했던 많은 일들이 내 머리 속에 담겨져 있기에 집약된 몇 마디 말로 요약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네가 전체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 같으니 먼저 내가 중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일을 설명하도록 하마.
우리 공장에서 채식 개 사료를 한참 생산하던 무렵 대대의 서기가 나에게 한 장의 서류를 보내왔어.
작년 이맘때쯤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공장을 임대하지 않고 매매를 하겠다는 거야.
아마도 집체의 재정이 어려웠던 모양으로 나에게 가격을 높이 하여 팔았으면 했던 거지.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황당했던 것은 시세보다 월등하게 높은 가격으로 나에게 팔려고 온갖 수단을 부린 거였는데 난데없이 우리 공장을 경매에 넘기겠으니 모월모일에 대대로 나오라지 않겠니.
너무나도 황당한 처사에 마음대로 하라며 경매에 동참하지 않았더니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오더구나.
내가 없어서 경매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무조건 참석하라는 거야.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해 주었어.
당신들이 경매를 하든지 말든지 내알바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가격에 공장을 살 수 있으면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리고 경매에 참석하고 않고는 내 마음인데 왜 당신들이 나를 무조건 참석 시키려고 하느냐?당신들이 누군가에게 팔았다면 공장을 산 사람과 재계약을 논하면 그만이지 않는가?
이러한 나의 대답에 그들이 내놓은 반론은 이러했어.
내가 공장을 비우지 않고 있는 이상 누구도 사지 않는다는 거였지.
그러니 아무런 조건 없이 공장을 비워주던가 아니면 공장 경매에 나서라는 거야.
공장에 시설투자를 많이 해놓은 이상 절대 그저 비우지는 않을 것이며 자신들의 계획대로 내가 공장을 고가에 매입할거라는 얄팍한 계산 하에서 나온 발상이었어.
이들의 터무니없는 처사에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나에게 비싸게 팔아야 어려운 재정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라 막무가내로 나를 핍박하고 있었는데 상대방의 불행보다는 내 이익이 더 소중하다는 물질세상의 법칙을 여지없이 보여주더구나.
그들의 처사를 살펴보면 그 당장 짐을 싸고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때의 주변상황은 그럴 수도 없게 만들고 있었는데 한국의 동물보호협회에서 요청해온 개 사료 생산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거지.
게다가 한국에서의 주문과 때를 맞춰서 캐나다의 중국이민자가 우리공장을 방문했었거든.
미국과 캐나다에 채식 개 사료를 수출할 예정이며 채식 개 사료 생산자를 물색하던 중 부시장이 우리 공장을 소개시켜 주더라는 거야.잘만하면 대박이 터질 조짐이 보이고 있었어.
이러한 일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 네 고모네가 우리 공장을 방문하게 되었고 네 고모는 고모대로 우리 공장의 상황과 중국의 발전상들을 보며 우리 공장을 샀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 거지.
물론 네 고모가 그 같은 생각을 하게끔 내가 유도한 점도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좋다고만 선전 할 수도 없었던 것이 다 된 일이 무산되는 순간을 너무나 많이 맞이해본 뒤여서 만에 하나 네 고모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거든.
공장을 사더라도 신중을 기하자는 말을 해놓고서 공장매매를 위한 협상에 나서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법정에 서기도 했던 거야.
대대의 서기로서는 어떻게든 시세보다 덤터기를 씌워야했고 나는 나대로 절대 그럴 수 없었기에 결국에는 법정에 설수밖에 없었던 거지.그런데 재판을 앞두고 몇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타국에서의 재판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한국 상공인 협회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정부관계자를 접촉하였는데 이들을 통해 중국정부의 정보원을 만나본 결과 대대의 수작을 면밀하게 알게 되더구나.
애당초 그들이 우리를 내쫒을 생각도 없을 뿐더러 우리공장을 사겠다는 사람들조차 없는데 불구하고 우리를 경매에 나서라고 한 것은 한마디로 나에게 비싸게 팔기위한 수작이라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과의 친분관계를 좋게 할 것을 부탁하였는데 어차피 외국 사람들로서 중국에서 살아가려면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지 않고서는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말이었어.
그러한 중국 정보원 말대로 나 역시 시세보다는 좀 더 높은 가격으로 매입을 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대대의 서기는 이러한 내 마음을 헤아려 주기는커녕 더욱더 핍박을 가해오고 있었던 거야.
결국 법정에 서기전에 합의를 보려던 내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난데없는 재판을 받게 된 거지.
지방 소도시의 법원이고 규모가 크지 않은 곳에서 열린 재판이라 엄숙함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생소한 느낌이 가져다주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고 재판이 늘 그렇듯이 그날은 결과를 볼 수 없었으며 원고와 피고의 진술만을 듣고서 돌아서 나와야만 했는데 참으로 황당한 일은 재판과정에서 일어났어.
원고(대대의 서기)측 변론인으로 나선이가 우리 측 변론인의 친척이었던 거야.
삼촌과 조카사이라고 하였는데 재판이 끝나고 돌아서 나오는 길에 서로 이야기를 한끝에 원고 측의 변론인이 우리를 위해 일을 해주겠다는 말을 하며 돈을 요구하지 않겠니?
그뿐만이 아니었어.우리공장의 재판소식을 전해 듣게 된 이웃사람들 중에는 우리 재판을 주관하는 판사와 친구도 있었는데 그를 통해 만나게 된 판사조차도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었던 거지.
자신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면 자신이 나서서 대대가 우리를 어쩌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건데 마치 한국의 법정 브로커들을 보는 것 같더구나.
그들의 수작이 뻔히 보였지만 그 당시의 주변 환경은 나로 하여금 그들과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었어.
공장의 식구들과 몇 번의 회의를 거듭해본 결과 두 사람 모두에게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주었고 그 이후로 한동안은 조용할 수 있었던 거야.
나로서는 어차피 일 년간의 세를 대대에게 주어야 하는 처지라 그들이 대대 서기의 횡포를 막아준다고 한다면 그다지 아깝게 여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거든.
그 당시 한참 개 사료를 만들 때 이었으므로 개 사료가 수출되기만 하면 지금의 어려움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위를 하며 온 신경을 개 사료 만드는데 쏟고 있었어.
우여곡절 끝에 개 사료가 수출 완료되고 추가 주문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내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 무렵 태국의 파타야 해변에서 국제선이 열렸었고 어찌 보면 공장의 상황과 맞물려 축제와도 같은 선행사에 참석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었던 거지.
솔직히 네 고모가 빌려준 돈으로 근근이 생활해 나가는 내 처지와 재판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의 심리적 압박감을 생각하면 국제선은 나에게 먼 나라 이웃이야기일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들의 목표점이 물질적인데 있지 않고 영적인데 있는지라 모든 것을 뒤로하고 태국 행을 결심했던 거야.
아들아!
지금 내가 너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나 역시 물질적인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음을 말해야겠구나.
내가 태국선을 참석한데는 개 사료를 대만의 장주자에게 소개하려는 목적도 있었거든.
태국의 선에서 내가 만나려던 장주자는 우리들의 중국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인데다가 식품관련 책임자이기도 한지라 우리들이 개사료를 만들었다면 상당히 반겨줄 거라 생각했거든.그가 만약 우리들의 사료를 대만의 동수들에게 연결시켜준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날개를 다는 거야.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에게는 절망감이 다가오고 있었지.
우리가 개사료를 만들었으니 팔아주었으면 하는 말도 꺼내기 전 장주자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어.
너희들이 개사료를 만들었다고?시설은 물론 실력도 갖추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너희들이 개 사료를 만든다는 말이냐.
우리공장을 두 번이나 와본지라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러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기분이 잡치는 말이 아닐 수 없더구나.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중국까지 오게 되었고 지금껏 버티어 오고 있는 사람에게 그 같은 말은 비수와도 같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사저로 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한순간에 사라졌고 개 사료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끄집어내지 않은 체 국제선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왔던 거야.
아니나 다를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추가 주문을 할 것 같던 한국의 동수들도 추가 주문을 하지 않게 되었고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잡음과 함께 개 사료는 저 멀리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었지.
게다가 때마침 불어 닥친 중국산 사료의 문제점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었으니 캐나다에서 주문하겠다던 중국인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어.
또 한 번 물질적인 희망의 풍선이 내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던 거야.
이러한 총체적인 난관과 함께 나에게는 또 다른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지난번에도 이야기 했었던 북한 돕기 사업이었거든.
처형식구들을 통해 북한에 무료급식소를 설치하려던 계획은 소리 없이 진행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 같은 일에도 어려움들은 산재하고 있었어.우선적으로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북한의 처형식구들의 마음가짐인데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우리들의 계획대로 움직여 줄 것인가 이었고 내가 보지 않는 가운데 어떠한 행동을 할지 일수가 없는 노릇이었지.
그저 막연하게 잘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는데 처음 계획에는 사람을 딸려 보내 확인을 시키려고 하였으나 그조차도 북한 측에서 통제를 하는 통에 두 번이나 압록강 다리건너 북측의 검문소에서 돌아와야만 했던 거야.
결국 그들의 처분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이렇게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개 사료 건이 저 멀리 신기루처럼 물 건너갈 무렵 북한으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겠니.
얼마 전 작은 화물차 가득하게 물품과 얼마간의 현금을 주어 보냈던 처형이었어.
그동안 몇 번에 걸쳐 신세를 졌으니 나와 거래를 해보자는 건데 북한에서 나는 광물을 중국으로 보내 줄 테니 장사를 해보라는 거였지.
몇 번이나 거절을 하였으나 동서되는 사람의 간곡한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철저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어.
아들아!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내 물질적인 삶은 모순투성이가 아닐 수 없구나.
그토록 실패를 거듭했으면 그만 할 때도 되었건만 끝도 없이 계속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어.
그러나 말이야.
나도 할 말은 있어.
그때 내가 처해 있던 상황은 북한과의 교역을 통해 어쩌면 활로가 생길수도 있겠다는 강한 물질적 욕망에 대한 희망의 풍선이 한껏 부풀고 있었거든.
북한의 동서 말처럼 죽을 날도 멀지 않은 사람이 손아래 사람에게 신세진 것을 이렇게라도 갚고 가겠다는 데야 그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것도 몇 번에 걸쳐 진심으로 그들을 도와주었으니 당연하게 나에게 보답을 할 거라는 기대심리도 작용했고 내 신심을 하늘이 알거라 자위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내면의 스승이 내 진심을 아는지라 이제는 물질적인 축복을 내려줄 때가 되었다 여기기도 했던 것 같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껏 실패했던 많은 순간들이 이 마지막 순간을 위해 마련한 신의 축복이라 여기고 싶었던 거야.
신은 나에게 찬란한 지금을 주기위해 지나간 과거의 고통의 순간들을 마련해 주신 거였으며 이제 그러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다가온 거라 생각하고 싶었어.
이것이 얼마나 크나큰 물질적인 유혹이었으며 그 같은 일이 나에게 가져다준 신의 축복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희망의 풍선이 공중분해 되고 난후에야 나에게 다가 왔는데 그 같은 일을 지금 말하기에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다음시간에 이 같은 일을 통해 물질적인 유혹의 손길이 어떻게나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알아보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자꾸나.
아직 우리의 여정은 시작에 불과하거든.
언젠가 말했지?
어떠한 마지막도 또 다른 시작과 맞물려 있다고 말이야.
오늘은 마지막이 내일의 시작임을 말하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