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사랑은 아름다운 구속(拘束).

배가번드 2022. 7. 23.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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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길거리에 꽃을 대하듯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착을 말라는 뜻이겠지만 실생활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법문입니다.

하늘의 태양이나 길거리의 꽃은 만인의 것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속한 꽃과 등불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소속감과 소유욕이 생기는 겁니다.

나만의 꽃이 아니고 나만의 등불이 아니라면 서로 붙어살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서로 사귄다거나 부부 연을 맺을 경우 하나의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의 일정부분을 할애하여 상대방에게 맡기는 것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은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싫다면 함께 하는 일을 포기해야합니다.

때로 주변을 보면 사귀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배우자가 있음에도 바람이 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이지요.

사실 어찌 보면 이런 일은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은 동물적 본능이 심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점은 인간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개개인에게는 의무과 책임이 주어져 있다는 겁니다.

우리스스로가 정해놓은 룰을 우리가 지키지 않는다면 사회는 극도로 혼란지경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자신의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서라도 이런 룰은 지켜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심어놓은 육적감각에 따른 욕구와 욕망들은 살아있지요.

그러다보니 상대방의 언행에 따라 나의 본능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처음 관계설정이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사랑의 힘에 도취되어 죽고 못 산다던 커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애틋한 사랑이 무디어지고 더 이상 애틋함이 유지되지 않게 됩니다.

한마디로 권태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이며 묶어놓았던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럴 때 자신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위해서 꺼내드는 것이 인간은 자유로워야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러다보니 상대방을 길거리에 피어난 꽃을 바라보듯이 하라던가 하늘의 해를 바라보는 것처럼 하라는 법문이 만들어 지는 겁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버려두라는 말이며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되라는 말이지요.

이것은 분명 가능한일입니다만 이렇게 될 경우 함께 라는 관계설정은 더 이상 필요 없어져 버립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전체의 사랑으로 옮겨감으로 인해 제한된 사랑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것은 그동안에 억제되어 있던 본능을 풀어주기 위한 수단에 의해 만들어진 말장난에 불과한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자유를 본인만 누리고 어떤 이들은 배우자에게도 적용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이성적 판단에 충실한 사람과 육적본능에 기울어진 사람이 갈리는 것이며 자신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내려지는 거지요.

여기에는 이래야만 한다거나 이래서는 안 된다는 규정 따위는 없으며 이런 행동은 이런 결과를 저런 행동은 저런 결과를 가져다줄 뿐입니다.

만남과 이별이 이런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지만 때로 이런 일은 사람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한번 맺어진 인연이 지속되고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겁니다.

이런 일에 대한 해결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으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며 매일 새롭게 시작을 하는 거지요.

그리고 상대방은 나의 거울이라는 점을 늘 마음에 새기는 겁니다.

내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잘못 모두가 내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언행을 조심한다면 상대방역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되며 관계는 매일 새로워집니다.

이렇게 노력해도 상대방이 떠난다면 그것은 헤어져야만 하는 운명이라 받아들여야합니다.

이런 경우 슬퍼할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