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43.
한 치의 오차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나 홀로목사의 성경연구시간입니다.
거짓말처럼 마태복음완독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나 홀로목사가 정해진 기한 내에 완독을 할 수 있게 허락하셨지
요.
만약 하나님께서 시험에 들게 하셨더라면 절대 이곳에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수없이 많은 유혹과 시험이 나 홀로목사 앞에 놓여있었지만 마태복음의 완독(玩讀)을 목표
로 정해놓은지라 한눈을 팔수가 없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시험도 준비해두고 중도에 포기하는 것까지 허락하지만
목표가 설정된 이상 그 모든 안배(按配)는 악마의 시험과 사탄이 전해주는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어느 시골길을 버스 한 대가 가고 있었는데 마지막뒷좌석에 신부님이 앉아있었습니다.
왼쪽에는 예쁜 아가씨가, 오른쪽에는 늙은 할머니가 타고 있었지요.
커브길이 많은 시골길인지라 버스가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때마다 신부님의 입
에서는 기도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좌측으로 버스가 기울면 “주여! 뜻대로 하소서!” 했고 우측으로 기울면 “주여! 악에서 구하
소서!” 했습니다.
이이야기는 누군가 우스개로 꾸민 이야기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신부님이 만약 결혼을 목적으로 삼았더라면 당연히 이러한 기도가 합당했을 것이고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독신을 고집할 경우라면 기도내용은 뒤바뀌었을 겁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가치관이 이세상의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더라면 기도내용이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설정된 목표가 우리에게 가치관을 부여하고 우리로 하여금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만드는 거지요.
그런 의미로 나 홀로목사와 함께 하는 여러분의 천국은 성경 속에 있으며 지옥 또한 성경에
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바로 이러한 길이었으며 이제 그 길의 마지막이 우리
앞에 놓여있으니 결승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겠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마28:1)
여기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휴면하고 계신
동안의 기간을 말합니다.
안식일이 다 지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어있던 3일이 지났다는 말이며 그 첫날이란 오늘날
의 일요일을 말하는 것이지요.
양력(陽曆)을 사용하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일요일을 주일이라 말하는 것은 주님의 날, 즉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경에 나오는 날짜 중에 조금은 생각해봐야할 날이 있습니다.
일단 본문을 본 후에 이야기를 이어가지요.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요19:31)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
되(마27:62)
요한복음도 마태복음도 준비 일을 언급하고 있는데 도대체 준비일이란 어떤 날일까요?
많은 분들이 준비 일을 안식 날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절대 안식일을 가리키
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안식일일 것 같으면 하루만 지내야겠지만 예수님이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한 사실을
볼 때 준비 일에 대한 뜻이 따로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말한 준비일이란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기 위해 준비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유월절과 안식일 및 부활에 대한 정확한 날짜를 알고 싶어 하
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성경에 기록된 것을 액면그대로 인식해서는 절대 답을 얻지 못합니
다.
왜냐하면 성경을 기록한 기자(記者)들이 사실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뜻을
심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환상의 바다 속을 헤매는 분들을 위해 나 홀로목사가 여기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
을 종합해서 분석해보겠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십자가형에 처해진 후 살아나신데 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3일 밖
에 되지 않습니다.
14일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붙잡힌 후 15일 십자가에서 운명하셨고 17일
부활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지요.
하지만 마태복음 26장 17절을 보면 무교절 첫날제자들과 만찬을 즐겼다했고 28장1절에서
안식일이 다 지났다 했으니 날짜로 치자면 20일까지가 무교절이고 21일이 되어야합니다.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을 기록한 책이 되고 말지요.
이런 사실을 간과(看過)하고 무조건 성경을 믿어야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
습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건대 성경은 담겨진 의미를 헤아리며 읽어야합니다.
이어지는 구절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봐야할 대목입니다.
보시죠.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마28:2)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마28:3)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마28:4)
이 대목을 보니 30여 년 전 나 홀로목사가 성경을 배울 때 일이 생각납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80년대 초반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성당의 새 신자 교리 반
에서 신부님으로부터 종교에 대한 강의를 들었었지요.
그때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종교란 믿음이며 믿음이란 엄밀하게 말해 진리라고 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이 불변하는 사실을 진리라고 하며 이러한 일들은 믿을 필요가
없기에 종교가 믿음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신비로움이 필요하다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
해보면 그야말로 제대로 말씀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내용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기위해 마련된 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이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라 말하는 이가 있다면 왜 주의 천사들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고 일반인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가를 물어보게 될 겁니다.
아마도 그런 질문을 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의미를 모르고 예수를 무작정 신봉(信奉)하는
우상숭배자들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 하는 말을 들어야할지도 모릅니다.
이래서는 서로가 이로울 게 없으며 이는 분명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의 인식 속에서 일어
난 일들로 봐야합니다.
이 같은 일은 성경해설가이기 이전에 명상가(瞑想家)인 나 홀로목사가 너무나 잘 알지요.
우리인간들의 인식세계는 창조력을 포함하고 있어서 없는 것이 없으며 못 만드는 것이 없습
니다.
이 같은 일은 결코 없다할 수 없으며 이러한 인식세계는 곧바로 종교와 직결되는 문제입니
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로 볼 수 있으며 물질과 영의 세계가 길을 달리하는 분기점
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물질적으로 보자면 이 같은 일은 꾸며낸 일에 불과하며 대제사장 경비병들의 묵인
하에 일어난 예수님 제자들이 저지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영과 육이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하나 된 예수님의 제자들인 마리아들의 인식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말씀
을 하실는지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
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마28:5)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
라(마28:6)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
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마
28:7)
구약 속에 기록된 많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나 천사들이 나타나셨듯이 예수님을 하나님과
하나 된 분으로 믿는 제자들에게도 천사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마태오는 말하고자했습니다.
여기에서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여러분은 누가 도와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이 당신을 도운 걸까요?
그분을 통해 하나님(신)이 도운 것일까요?
신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 경우라면 분명 후자를 선택할 것이
고 아직 신을 모르고 하나님나라에 대해 믿지 않는다면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범주아래 놓인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죽음에 이른 예수님을 치료하여 살려낸 일을 마리아들이 천사가 한
일로 여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했음을 아는지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죽을 수도 있었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이며 제자들로서는 당연히 그 사실
을 기뻐해야 마땅합니다.
얼마나 그들이 기뻐했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마
28:8)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
니(마28:9)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28:10)
기쁘기도 하지만 두려워했다했는데 이는 분명 마태오가 얼마나 예수님의 부활이 극적인가
하는 것을 말하기위해 이렇게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게 되면 사람들이 무서워할 것을 예상해서 말해놓은 것이지요.
왜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말씀드리는가하면 예수님의 12제자들 정도 되면 이정도의 영적인
현상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을 볼 정도의 인식이라면 귀신 따위를 겁낼 단계가 아니며 예수님이 되살아
났다고 해서 무서워할 이유가 없지요.
이미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걸쳐 자신이 되살아날 것을 공언해왔는데 무서워하기보다 엄청 기
뻐했을 겁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마태오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위해 기
록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들이 그를 신으로 경배했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9절과같이 기록해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되살아났다할지라도 신으로서 경배해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
해 마태오는 예수님의 입을 빌어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형제란 육신적으로 형제와 같은 정을 나눈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같이 들어갈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라 했지요.
갈릴리라는 말의 히브리어 뜻은 원, 순환, 등이 있으니 함께 영생을 얻을 사람들을 가리킵
니다.
좀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이 대목은 두려움을 극복해야한다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성경을 읽어볼수록 마태오는 참 지혜롭게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가르침을 성경에 심어 놓았을까요?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마
28:11)
While the women were on their way, some of the guards went into the city and
reported to the chief priests everything that had happened.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마28:12)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
라(마28:13)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마28:14)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
라(마28:15)
여러분은 이 내용을 보고 나 홀로목사의 말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태오가 일부러 이 내용을 있는 그대로 말해놓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
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훔쳤다는 거지요.
왜 이렇게 말하는가하면 11절을 보면 경비병중에 몇 명만이(some of the guards) 대제사
장들에게 갔다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몇 명의 입은 막을 수 있어도 나머지사람들의 입은 못 막는다는 말이지요.
결국 예수님의 부활에는 여러 가지 숨겨진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며 그 일련(一連)의 사건들
은 대제사장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꾸민 것이 맞는 겁니다.
물론 이 연극은 단순한 연극이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연극이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종착점에 다가온 것 같은데 마지막지점에는 어떤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마28:16)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마28:17)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이 내용 역시 마태오가 비유로서 말해놓은 것인데 예수님 제자 중에는 믿음을 갖지 못한 이
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6절에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렀다는 말은 예수님이 영생을 얻는 방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말이며 17절에 아직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한 것은 겉으로는 예수님
을 믿는다하나 마음속으로는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18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자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우상숭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19절에서 가르쳐줍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말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성령)을 말하
는데 이는 하나님(성부)과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하나 된 자(성자)와 그리스도(성령)를 나타
냅니다.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는 뜻이지요.
이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이 참되다는 것은 20절이 말해줍니다.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말은 육신이 아니라 성령일 때만 가능한 일이라
는 것을 여러분 모두가 아는 일입니다.
이제 이렇게 해서 마태복음은 마지막을 알리고 있는데 똑같은 내용을 요한복음은 어떻게 기
록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요20:1)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
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요20:2)
내용상으로는 마태복음과 별다를 바 없는데 2절에 눈여겨봐야할 대목이 보입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 했는데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 홀로목사의 생각으로는 유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여러분생각은 어떨지 모르겠
습니다.
아마도 오늘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이 사람이 가롯 유다라는 것이 밝혀지리라 생각되는바
성경에 다시집중해보겠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요20:3)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요20:4)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요20:5)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요20:6)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요20:7)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20:8)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
더라)(요20:9)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요20:10)
여기에는 참으로 재미있는 내용이 담긴 것 같습니다.
구태여 기록하지 않아도 무방한 내용이 삽입되어있는데 그 다른 제자(유다로 예상되는 인
물)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갔지만 무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했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내용을 통해 요한은 우리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도착한 제자는 예수님께서 안에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자 한 것이며 뒤늦게 베드로가 안에 들어가 확인을 한 후에야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다는 것
을 밝혀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9절에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주고자 깊은 뜻을 심어놓았지요.
부활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예수님 제자 중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내용 역시 구약의 한 대목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성경으로 채택이 되지 않았는지 구약에
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여
겨지며 다음구절로 넘어가겠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요20:11)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
라(요20:12)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
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요20:13)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요20: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
리이다(요20:15)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요20: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
라간다 하라 하시니(요20:17)
Jesus said, "Do not hold on to me, for I have not yet returned to the Father. Go
instead to my brothers and tell them, `I am returning to my Father and your
Father, to my God and your God.'"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이르니라(요20:18)
이 장면은 마태복음과 많이 다르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고 기록한 마
태복음과는 달리 예수님의 시체가 놓였던 자리에 두 천사가 아래위로 앉았다했지요.
또 베드로와 사랑하는 제자(유다로 추정되는 인물)는 마태복음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내용은 나 홀로목사가 말했듯이 요한이 성경을 읽은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가르쳐 주고자했을까요?
17절을 보면 여기에 대한 해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I have not yet
returned to the Father).
이 말씀인즉 죽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I am returning to my Father)이라 말하는데
이는 육신을 가진 이상 결국에는 죽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 했는데 이 말씀은 자신과 제자들이 똑같
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가르쳐주고자 하는 겁니다.
죽음이란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며 육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은 마리아더러 잡지 말라 하셨지요.
마리아가 예수님 몸을 잡아 부활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하자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말해주
었던 겁니다.
어떻게 요한은 이렇듯 지혜롭게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영에 대한 일을 말할 수 있었는지 놀
랍기만 합니다.
다음내용은 어떤 가르침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군요.
함께 보실까요?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
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보시다시피 안식 후 첫날 저녁때 제자들과 만났다했으니 마태복음에서 갈릴리로 가서 만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절에는 재미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의 문이 잠겨있었는데 불구하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마도 여기에는 뭔가 특별한 가르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20:20)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제자들에게 자신이 영이 아니라 육신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손과 옆구리를 보였다했지요.
그리고 20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처럼 제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해줍
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영적스승이 된 것처럼 제자들 역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 후 하나님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
And with that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이 내용은 창세기에 나온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확인한 후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22절과같이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창세기를 보면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했는데 이는 우리인간들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숨결(breath of life)이 담긴 존재(a living soul)가 사람이라는 말인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결을 불어주셨다는 것은 이 같은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위해 노력했다는 거지요.
얼마나 강하게 믿음을 심어주었나 하는 것을 다음구절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여기에는 큰 가르침이 담겨있는데 우리들이 성령을 깨닫게 되면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언젠가 성경을 통해 보았듯이 하늘에 올라 심판의 자리에 오른다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자신이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로서 죄를 용서할 수도 있고 단죄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요.
이 말씀은 심판받지 않으려면 심판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되는 말씀이기도 합니
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주 큰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이모든 일조
차 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
한지라 (요20:24)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20:25)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
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요20:26)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
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9)
Then Jesus told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
예문을 보면 12제자 중에 한사람인 도마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할 대목이보입니다.
26절에 문들이 닫혀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다했지요.
19절과 마찬가지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만약 이 내용이 액면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면 예수님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이며 우리와
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럴 경우 예수님처럼 될 수 있는 사람이 이지구상에는 없게 되지요.
따라서 이 대목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믿도록 만들기 위해 만든 내용이라 할 수 있
습니다.
그런 까닭에 29절과 같이 말씀하신거지요.
그만큼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요한은 자신이 기록한 내용들이 사람들의 믿음을 위해서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요20:30)
Jesus did many other miraculous signs in the presence of his disciples, which are
not recorded in this book.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하려고 이렇게 기록했노
라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요나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거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같은 말에 수긍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내용을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요21:20)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요21: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21:22)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
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
이냐 하신 것이러라(요21:23)
Then went this saying abroad among the brethren, that that disciple should not die:
yet Jesus said not unto him, He shall not die; but, If I will that he tarry till I come,
what is that to thee?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요21:24)
This is the discipl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and who wrote them down. We
know that his testimony is true.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
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
이 내용은 우리들이 지금껏 알고 있었던 가롯유다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놓은 것입니
다.
아직까지 예수님이 정말 죽었다가 되살아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유다역시 죽었다가 부활
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23절을 보면 명확하게 그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알고 보면 이 내용은 예수님을 판 유다가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
을 가지는 이들에게 해답을 주고 있는 겁니다.
유다가 배반한 일이 일부러 꾸민 일이라는 것을 밝힐 수 없는지라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것입
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4절을 보면 기가 막힌 내용이 나옵니다.
십자가 사건의 전말을 증언하고 기록한 사람이 바로 가롯유다이며 그가 말한 것이 참되다
했지요.
결국 지금까지 나 홀로목사가 주장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으며 여러분이 믿던지
말든지 성경에 기록된 십자가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나 홀로목사는 이러한 내용을 미리 알고서 글을 썼던 것이 아
니라 여러분과 한 구절씩 파헤쳐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요한복음의 이 내용을 모르고 있었으며 그저 느낌으로만 십자가사건에
감추어진 비밀이 있을 거라 여기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 홀로목사가 지금까지 밝혀놓은 일들이 사실일지라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분을 믿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예수님이 성령과 하나 되
어 우리 안에 살고 있다는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마태복음의 강해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