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222)
아들아!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인가 보구나.
교회 형제자매님들이 신방을 오셨어.
내가 어쩔 수 없는 보모형제와의 인연으로 인해 교회를 다닌다 하더라도 그 또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여기기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내 생각으로는 오지 말아주었으면 했지만 기어코 오시겠다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던 거야.
솔직히 누군가 나에게 온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인데 내가 사람을 기피해서가 아니라 나 혼자 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거든.
그분들로서야 교제라는 명분이 있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명분이나 실리가 있지를 않아.
그저 나에게 그분들이 오셨다는 사실하나만으로 하나님이 안배를 하셨다 여기기에 감사를 하는 것뿐이야.
그런데 이렇게 부담스러워 하는 마음과는 달리 그분들과 차를 마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
처음에는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하는 도중 놀라웠던 것은 보이차가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많이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었지.
형제자매님들께서 모두 즐겨하시기에 나 역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서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매 한분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셨는데 하나님을 너무나 열심히 믿었던 어머니께서 기도원에 가셔서 철야기도를 밥 먹듯 하시다가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는 거야.
사람들을 치유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거였어.
기도도중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체험한 뒤부터 그러한 능력이 생겼는데 각종 환자들을 치유하면서 기적을 보였다더구나.
처음에는 그 같은 기적을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교회를 다니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거지.
그렇다면 정말 성령이 임하신 것이 아닌가요?
글쎄다.
그러한 말이 정답일수도 있고 오답일수도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정답이면 정답, 오답이면 오답,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어떻게 모든 것이 정답이고 오답일수가 있는지요?
너는 아직도 모르는구나.
그녀의 엄마가 생각할 때는 분명 자신의 능력이 성령의 임하심으로 생겼다고 할 것이 분명하니 그녀에게는 정답일 테고 그녀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은 그녀에게 임하신 성령은 성령이 아니라 귀신의 장난이라 생각하지 않겠느냐?
이러하기에 진리라는 것은 믿는 이들에게만 적용될 말로서 불변하는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진리는 언제나 옮겨 다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지요.
자신이 구원을 받고나자 어머니의 눈빛이 달라지시더라고요.
그러한 이야기를 보자면 아마도 그분 안에 있는 성령이라는 것은 분명 귀신일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너에게 물어보자꾸나.
성령은 도대체 어떤 것이 성령이지?
너희가 생각하는 성령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냐?
그야 당연히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의 성령이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말씀이 영이라는 말이지요.
그래?
그러면 성경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령이 임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너희들은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자신들이 말하는 성경말씀만이 성령이 임하신 것이며 다른 이들이 말하는 성경말씀은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심지어 그러한 말을 증명하기위해 너희들은 저마다 주여 하며 찾겠지만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할 말로서 자신스스로가 유일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만의 전용어가 아님을 알아야한다.
그러면 그녀의 어머니 몸을 빌려 기적의 치유능력을 보이는 이는 정녕 성령이겠군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 그녀는 어머니의 몸 안에서 기적을 행하는 존재가 귀신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그것은 지금의 그녀가 믿고 있는 성경말씀에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도 성경말씀을 믿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말해주지 않았느냐?
믿음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치유능력이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성령이 자신과 늘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의 어머니 말씀에 순종을 하며 따랐지만 지금의 교회말씀을 믿게 되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된 거다.
그녀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지금 교회에서 말하는 성경해석에 따른 일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성장배경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의 작용 때문이다.
그녀는 커 나오는 과정에서 심각할 정도의 가족을 위한 봉사와 어머니에 대한 순종을 강요받고 있었고 성장하여 결혼을 한 후에도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아야했다.
그러한 억눌린 감정들이 지금의 교회의 성경말씀을 통해 마음에 위안을 받게 된 거다.
한마디로 탈출구를 찾은 샘이지.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네 말은 틀렸다.
그리고 맞다.
틀렸다는 것은 그녀가 진정한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는 이상은 구원이 확실하기 때문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구원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네 말은 맞을 수도 있다.
그래요.
당신말씀은 분명 옳은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준다는 구원을 받기위해서 침례를 받을 때였지요.
이미 구원을 받으신 자매한분이 다시 한 번 더 침례 식을 하려는 거였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받은 것이 구원이 아닌 것 같다는 거예요.
마음에 확신이 없었던 거지요.
이 같은 생각은 교회를 다니면서 점차 더 커져 갔는데 구원을 받았다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면 구원이란 누군가 준다고 해서 받아지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 같았어요.
자신의 믿음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거지요.
이 같은 일은 명상단체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 이었는데 스승을 그토록 따르고 믿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떠나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럴 때마다 구원이나 진리라는 것은 누군가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왜 다들 자신들이 속한 종교나 믿음의 생활에서 떠나게 되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너희가 속해져있는 종교나 단체가 너희에게 뭔가를 강요한다 생각하게 되는 순간부터 불신의 싹이 움트게 되고 그리로 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들이나 영적인 스승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종교관으로 인해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거나 자신만의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려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개인의 생활이 피폐해진다면 그들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그 때문에 그들은 단체나 종교를 등지게 된다.
자꾸만 떨어져나가는 신자들이나 제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믿음이 약해졌다 생각하겠지만 실상을 보면 그들에게 너무나도 강하게 밀어붙인 자신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도 없지 않습니까?
성경말씀에는 분명하게 명시되어있거든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했으며 그러한 진리의 복음을 세상의 끝까지 전하라고 말 이예요.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믿는 자들이 이 같은 말을 거역하겠냐는 겁니다.
게다가 세상의 멸망이 코앞에 다다른 이 마당에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고 세상을 구해야 마땅한 것이지요.
우리 개인의 재산이나 이익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거지요.
나는 너희들에게 그러한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맞이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진정 너희들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하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것인데 너희가 세상을 걱정하고 타인들의 영혼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순간 그러한 일을 강요받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세상살이가 주어지고 있으며 자신의 구원을 의심받는 생각이 일어나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어디까지나 우리들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남의 눈에 티끌은 보지만 자신 눈 안에 대들보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구원을 말할 때 자신의 행위에 따라 천국에서의 상급이 다르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 됨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힘든 세상살이를 영위함에 있어서 성경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강요를 하게 될 경우 현실과 성경교리와의 괴리감으로 인해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되며 교회와 단체로부터 등을 돌리는 거다.
정말 그래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생각해 온 것이 그것이었지요.
교회의 막대그래프를 보면서 교회를 등졌던 때가 고등학교시절이었는데 지금도 변함없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제는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저 역시 교회에서 말하는 십일조를 내는데 이제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거든요.
내가 낼 수 있는 만큼 내고 그보다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는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먼저 살펴봅니다.
그러고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는 거지요.
그들이 아무리 심하게 강요를 해도 내가 힘들어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거든요.
내가 죽으면 나에게 있어서는 온 우주가 소멸되는 것과 같은데 세상을 구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고 자신의 생활고조차 해결치 못해 쩔쩔매는 사람이 남의 영혼을 걱정한다면 누가 들어도 우스운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여라.
내가 내는 십일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나라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우물을 파줄 수가 있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생각하면 좀 더 내고 싶은 마음이지요.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지 않느냐?
다소 어렵더라도 자신의 영혼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무지한 마음에 영혼의 구원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내고 싶습니다.
조금 더.
내 한 몸이 희생해서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기꺼이 내 한 몸 바치겠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는 말할 수는 없느냐?
에이 씨, 안 해!
죽어도 못해!
몸을 바쳐도 더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신이고 개나발이고 다 집어치워.
하하하하.
이제는 알겠느냐?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바로 너희의 모습들이다.
아무리 너희가 노력하고 애를 쓴다하여도 무엇인가를 너희 의지로서는 할 수 없음에도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말로는 성경말씀을 따른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이 같은 말을 그냥 말을 하면 믿지 않을 것이니 너희가 알고 있는 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성경구절하나를 소개시켜주마.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며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어떤 사람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는 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먹지 않는 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먹지 않느니라.”(로14:4~6)
이 말은 너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무관함을 알라는 말이며 비록 너희가 말하는 진리의 말씀을 그들이 받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되 자신을 해치고 남들을 비판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너희가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러해도 되지만 그러한 너희의 행위를 남들이 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가하거나 그들의 수준을 낮추어서 보지는 말라는 말이다.
이 같은 말은 절대 그들을 위한 말이 아니라 너희 자신들을 위한 말이다.
맞습니다.
참으로 그 말씀은 옳으신 것 같아요.
성경말씀에도 높아지려하면 낮아지고 낮아지면 높아질 것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집을 방문하신 형제자매님들께서 들고 오신 액자의 말씀은 참으로 새겨봐야 할 것 같아요.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그런데요.
이 말씀을 삶속에서 적용하기는 무척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선 당장은 성경의 말씀이 어떤 것은 상당히 비유적이라 누군가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다보니 목회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가끔씩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예를 들면 하나님을 위해서는 자신의 가족들조차 희생을 시켜야한다는 말까지 하게 되는데 정말 그러하다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거지요.
그러기에 내가 말해주지 않았느냐?
지금 당장 너에게 다가와 있는 현실이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네 명철에 의지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에는 너희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의 말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자신의 입장은 자신이 제일 많이 알기 때문에 이미 답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단지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너희 생각을 인정받고자 하기에 목회자들이나 영적스승들을 필요로 하는 것뿐이다.
당신의 말씀대로라고 한다면 모순점이 있습니다.
분명 너희 명철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말 이예요.
너는 왜 한 구절만 보고 그 뒤 구절은 보지 않느냐?
다시 그 구절로 돌아가서 보아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러면 네 길을 지도 하시리라”하지 않았느냐?
바로 이 말이 네가 어떠한 길을 선택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라는 말이다.
너희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행위자가 자신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서 너희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으므로 너희가 그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너희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 인줄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위자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며 그 일에 대한 책임 또한 하나님이 지신다는 말이다.
그것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당신 말대로라면 누군가 살인을 해도 하나님이 시킨 것이 되지 않는가요?
그것을 말하기 전에 너희가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 같은 너희의 말은 너희가 보잘것없는 육신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함을 안다고 한다면 그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 같은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해보라.
너희가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이신 성령이 함께 함을 안다고 한다면 함부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겠느냐?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은 남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말씀하시길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는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믿지 않는 자가 살인을 해도 그 책임은 하나님이 져야하지 않겠는지요?
그러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있으니 그가 받는 고통도 하나님이 받는 것이며 그가 괴로워함도 또한 하나님 것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알아야할 일이 있는데 절대계의 하나님에게는 고통이 없지만 육신의 인간은 상당한 고통과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통해 고통을 경험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영의 것은 영에게 육의 것은 육에게 묻겠다는 성경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합니까?
분명 영혼도 심판을 받는다고 했지 않나요?
그것을 말해주기 위해 지난시간 인간들의 몸에 대하여 많이 말해주었다.
사람들의 몸에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 중심들이 있고 그러한 에너지가 각가지의 인식 체를 열어가는 열쇠라고…….
따라서 너희가 받아들이고 있는 그와 같은 성경의 말씀은 최고의 하나님이 최고이지 못한 인간들을 상대로 한 말씀으로서 너희 인식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지 절대 전체의 하나님이자 성령이신 영혼을 이름이 아니다.
한마디로 너희가 영혼을 심판받는 존재로 여기는 한은 그것이 진실이 될 것이겠지만 전체적인 하나님의 참모습은 아닌 것이다.
너희는 한 가지 잘못된 성경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약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신약의 내용들은 대부분이 예수의 제자들 각자가 자신의 인식만큼 생전 예수의 가르침을 말해놓은 것인데 그것이 유일한 진리의 말씀인양 받아들이고 있다.
사대복음서들을 한 구절씩 분석해보면 각자가 다르게 말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는데 그 같은 이유가 바로 각자의 깨달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하다면 무엇이 진리입니까?
너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리다.
그렇다고 한다면 성경과 상반되는 진리도 진리라고 할 수 있나요?
절대 진리라는 깃발은 정해져있지 않으며 너희가 진리의 깃발아래 서있는 그곳이 진리이며 너희가 진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그들의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 하는 것만이 참된 진리인 것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하는 진리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도 모순이고요.
따라서 그것은 진리라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너는 네가 하는 말로서 내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네가 말했듯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진리 아닌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네가 진리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진리로 아는 사람이 있는 한은 그것은 그들에게의 진리이며 너희가 아무리 유일한 진리라고 말해도 건너편의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나는 너희에게 한 가지 전해줄 성경구절이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5:16~18)
어떠한 종교와 믿음생활을 하더라도 매사에 이 같은 마음으로 한다면 그야말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목사님이 해주신 이 말씀에 대해 이런 말을 하더군요.
“흥!
당신 아내가 강간을 당해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식이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죽어도 감사할 수 있나요?”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말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못하더군요.
여기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누군가 그러한 말을 했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고 봐야한다.
먼저 그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엇인가를 심어놓았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세상의 법칙에 따라 분명 무엇인가가 심어져있었고 거기에 따른 결과물이 자신에게 다가온 것인데 이 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자신의 인식정도가 아직까지 그러한 성경말씀의 감사기도를 할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당신 말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같은 일을 당해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물론이다.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
먼저 감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좋은 것을 받았을 때 할 수 있는 일로서 스스로가 만족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기에 자신이 당하는 슬픈 현실이 하나님께서 과거에 저지른 일을 갚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할 수 없다고 하는 인식은 그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할 것이며 이를 갈며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심하게 비판하고 불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할 때 거기에 따른 또 다른 결과는 자신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러하기에 너희들은 어떠한 순간이라도 감사를 할 수밖에 없고 자신을 위해 감사하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생각을 해보아라.
일은 이미 발생이 되었고 결과는 나타나있는데 불구하고 슬퍼하고 원망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겠느냐?
비록 현실을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나님께 자신에게 주어진 슬픈 현실을 고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한다.
그래서 성경속의 다윗은 그렇게나 많은 시를 지어 바쳤고 너희들이 하나님이라 알고 있는 예수조차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는 기도를 했던 것이다.
만족은 곧 행복과 연결이 되며 그러한 행복감은 또다시 감사할일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기에 성경은 이러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별빛 주셔 감사하니 달빛주시고 달빛 주셔 감사하니 햇빛주시더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한 내용인데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위한 내용인 동시에 바울자신의 깨달음 정도를 나타내 보인 것이기도 하다.
원래 바울은 기독교도들을 심하게 박해하던 자였음을 너희들이 알아야만 한다.
육의 것은 육에게 영의 것은 영에게 물을 것이라는 성경말씀대로 바올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육신을 가지고 갚았던 거라 봐야 하는 거다.
아들아!
신과의 대화는 잠시 접어두고 마무리를 해야겠구나.
오늘 대화를 나누었던 여러 가지 일들은 성경의 곳곳에서 보이는데 많은 성경속의 인물들이 내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어.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야할 사실이 있는데 바울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빛을 보았다는 사실이야.
분명 그는 하나님의 참모습이신 빛과 영이신 하나님을 본거였지.
그러하기에 그는 자신이 죽게 되면 어디로 갈는지 확신을 하게 되었고 죽음조차 감사히 받아들인 거였어.
조만간 이와 같이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쉬어가도록 하자꾸나.
밖에는 축복의 많은 비가 내리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 누리에 가득하구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