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233)
아들아!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
하나님은 왜 인간들에게 온갖 감정들을 심어놓고 율법으로 그 모든 감정들을 통제하도록 만들었나 하는 것이었지요.
여기에 대한 설명을 벌써 해주었다.
언제 말입니까?
이세상이 생겨난 이유는 절대계의 존재가 상대를 만들어 냄으로서 자신을 느끼기 위해서였다는 것과 단계별로 내려온 각 차원의 세상이 있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창조주는 인간들을 통해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도 말했고…….
물론 그 말씀은 들은 걸로 기억이 납니다만 지금은 인간들의 원초적인 감정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까?
전체적인 이유보다 좀 더 세밀한 설명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섹스라는 것은 종족보존본능인 동시에 육신을 가진 물질세상의 남녀가 하나 됨을 경험하기위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행위는 영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으로서 신과의 합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변형된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초점의 문제로서 육적인데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저 동물본능적인 행위가 될 것이고 조금 더 감각적인데 초점을 맞추게 되면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행위가 될 것이며 조금 더 지성적이고 감성적인데 초점을 맞추게 될 때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영적인데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신과의 합일을 원하는 위대한 영혼들의 영적인 교감이 된다.
이 모든 것들이 펼쳐져 있는 것이 이세상이며 너희들은 매순간 선택의 귀로에 놓여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성행위는 대부분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라 봐야겠군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성행위가 사랑을 나누는데 초점이 맞춰진다고 해도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감정과 쾌락이 따를 것이 아닙니까?
이러할 경우 어떤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봐야합니까?
너희의 초점이 높은 곳에 맞춰지게 될 경우 낮은 차원들은 자동적으로 포함이 된다.
그렇다면 영적인데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동물적인 본능은 물론이고 사랑까지도 포함이 되겠군요.
당연히 그러하다.
그러하기에 너희들은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향기를 아직도 기억 하지 않느냐?
그가 영적인 사랑을 보여주었기에 그를 사랑하는 것은 영적인 사랑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세상의 많은 종교들에 공히 적용될 말로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발하는 사랑의 에너지란 모두가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적이 있습니다.
영적인 사랑의 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이돌핀은 엔도르핀의 4천배에 달하는 기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그렇게나 파워풀한 기적의 힘을 깨달은 예수를 비롯한 많은 영적스승들은 왜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역할이 그렇게 주어졌기 때문인 동시에 위대한 영혼의 선택이기도 하다.
너무나 막연한 것 같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너희들이 기적의 힘을 알 수 없다고 한다면 너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인줄 모르고 그저 미천한 육신이 너희들이라 여기며 살 것이 아니냐?
그러기에 누군가는 너희에게 자신들이 누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를 비롯한 많은 스승들이 지구촌을 다녀간 유일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데 있으며 그들이 신으로서 숭배받길 바랐던 것은 아니다.
진정 너희들이 생각하듯이 예수를 비롯한 많은 영적스승들이 하나님이라고 칭함을 받길 원했다고 한다면 그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고 영원한 세상에 계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너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예수가 세상에 왔을 때는 육신을 입었기에 맡은바 역할에 따라 제한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지만 육신을 벗고서 영혼으로 돌아갔을 때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지 않느냐?
너희들도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의 몸 안에 있는 위대한 영혼은 자신을 담고 있던 몸을 버려야만 했다.
지금 하신 말씀은 참으로 좋은 말씀이고 귀한 말씀이지만 오늘의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주제로 돌아가서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성경속의 하나님은 왜 율법으로 인간의 감정을 억제시켜놓았는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욕망을 억제시켜 놓은 것이 아니라 이세상의 질서를 말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모든 인식의 단계들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지만 그 같은 일을 통해 너희들이 성장할 것인지 한곳에 머물 것인지 선택권은 너희에게 있다.
똑같은 성행위를 누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은 그 같은 일을 통해 궁극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너희 안에 내재하는 성령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 포괄적으로 말씀하시면 저희들이 알아듣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누군가 성행위에 대한 인식을 그저 동물적인 행위와 본능적인데 초점을 맞춘다고 할 때 그러한 행위에 대해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면 그는 늘 그곳에 머물 것이 아니냐?
그의 인식이 성장을 하기위해서는 지금껏 가지고 있던 섹스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하는데 그러한 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율법의 목적이다.
또한 쾌락을 추구하는 성행위에 탐닉되어 있을 때 그러한 인식에서 탈피해서 사랑의 단계로 접어들도록 만드는 것이 종교와 율법의 역할이며 그러한 율법에 대한 해석을 좀 더 소상하고 세밀하게 적용시키도록 만들어서 영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영적 스승들이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성행위를 어떠한 목적으로 어떠한 인식하에서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영국의 윈저공처럼 자신의 왕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유부녀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사랑인 것 같습니다.
너희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 또한 제한적인 사랑일 뿐이다.
그가 자신의 왕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쟁취한 사랑이 영적일 때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신과의 합일에 부합되겠지만 그 사랑의 목적이 자신에게 유일한 육체적인 쾌락을 선물해줄 사람을 선택한 것이라면 시간여행을 더 필요로 하며 세상경험을 오랫동안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왕위를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까요?
비록 그가 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던 심슨 부인을 사랑한 것 때문에 영국왕실로부터 왕위계승 부적격자로 낙인찍히고 육신적인 쾌락을 추구했다고 하더라도 단죄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이 단죄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삶이 육신적인 사랑일 경우 그들이 좀 더 세상에 머물러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영생을 얻는 것이 될 때는 육신적인 사랑을 선택한 것이 장애로 작용하게 될 것이고 위대한 영혼이 세상을 경험하기위해 육신적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육신적인 사랑은 세상을 사는 동안의 경험 쌓기에 불과하게 된다.
그 두 가지는 한 가지가 아닌가요?
인생을 사는 목적이 자신의 위대한 영혼을 깨닫는데 두는 것이나 위대한 영혼이 육신을 입고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나 결과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당연히 두 가지 모두 하나의 결과를 맞이하게 될 터이지만 과정을 겪는데 있어서는 판이하게 다를 수가 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요?
자신의 영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육체적인 사랑에 몰입하게 될 경우 행위자인 육신이 자신으로 인식되기에 영으로 회귀하려는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여 영을 깨닫게 될 때까지 지속적인 인과의 사슬에 매여지게 될 것이며 자신의 영이 이미 깨어났다고 한다면 그의 모든 행위는 그가 육신을 입고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만 인과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영혼의 세계란 시공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경우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비록 스스로의 내면에 존재하는 성령이신 위대한 영혼을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육신을 벗고 나면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하지 않겠냐는 거지요.
그 말도 맞긴 하지만 여기에는 알아야할 사실이 있다.
너희들이 종교를 선택하거나 수행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미 내면의 성령이 깨어나기 위하여 몸부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의미인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가운데도 많은 영적 단계들을 경험할 수도 있고 단번에 뛰어넘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단번에 뛰어넘을 수가 있는지요?
이미 수차례 말했듯이 빛과 소리를 경험함으로서 그러할 수 있으며 인식의 폭을 최대한 넓히는 것으로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러한 인식을 갖춘 사람을 따라감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이 모두는 하나이다.
이상하군요.
분명히 세 가지의 유형을 말씀하셨는데 모두가 한가지라니요?
너희가 빛과 소리를 경험하게 되면 당연히 인식의 폭이 넓어질 것이고 인식을 최대한 확장시킨 사람을 알아보게 될 것이니 그 세 가지가 마찬가지가 아니냐?
다시 말해서 너희가 인식을 최대한 확장시킨 스승을 알아본다는 것은 이미 너희의 인식이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니 당연하게 그 둘은 하나가 아니겠느냐?
그러면 빛과 소리를 경험하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인식의 확장을 아무리 많이 하고 폭을 넓힌다고 해도 빛과 소리를 보고 듣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너희가 인식의 폭이 넓다고 한다면 더 이상 빛과 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너희자체가 빛과 소리로 이루어져 있는지라 보고 들을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하지만 한 가지 너희가 알아야할 사실이 있다.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믿는 것은 실로 중요하다 할 수 있으나 너희의 믿음이 남들을 심판하게 만들거나 너희스스로를 높인다고 한다면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거니와 너희가 진정 인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한다면 너희 행동도 거기에 걸맞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이 지당하다 생각 듭니다만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있습니다.
왜 우리들은 수행을 그토록 오래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지요?
그야 너희들이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
물론 그렇긴 하겠지만 십 수 년을 도를 닦았으면 인간적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너희는 아직도 너희의 몸이 너희의 본모습이라고 여기느냐?
지금껏 말해주지 않았느냐?
너희의 진정한 모습이며 너희 몸의 주인은 성령이신 하나님이라고…….
그 말씀이야 수없이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먹어야하고 배설을 해야 하는 모든 욕구를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지라 성령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는 힘이 듭니다.
도대체 왜 우리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지요.
음~
생각보다 너희의 상태가 심각하구나.
그렇게도 너희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하나님을 인식하기가 힘이 든단 말이지?
이것은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보면 아주 간단하며 영이 삼라만상 안에 심어져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객체인 너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임에 틀림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습관 때문이기도 하고 정보교환의 법칙 때문인데 만물이 동일체이기 때문이다.
습관이라면 하나의 버릇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이 왜 우리들의 영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지요?
너희가 세세생생 윤회를 하였다는 인식이 가져다준 선물로서 너희를 움직이는 몸이 너희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다.
또한 정보교환의 법칙에 따라 너희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정보들을 공유하기에 자연스럽게 타인들의 감정이 너희에게 전달되는 것이며 영적으로 삼라만상은 연결이 되어있음으로 만물 동일체라 하는 것이다.
만물은 하나 안에서 움직이고 있기에 당연히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감정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맞아요.
언젠가 제가 본 책에는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놓았었지요.
처음 식민지 정책에 따른 열강들의 개척시대에 코끼리사냥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부터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 코끼리들은 총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태어났다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을 미루어 보건데 유전인자의 영향으로 정보가 각인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정보교환은 그렇다 하더라도 만물동일체의 개념은 아직 생소합니다.
정보교환의 법칙이나 만물동일체의 개념은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요?
정보교환이란 같은 종들만이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요?
동물과 사람이 어떻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습니까?
너희 행성의 과학자들도 이미 그러한 사실을 밝혔지 않느냐?
또 동물의 유전인자와 사람의 유전인자의 차이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밝혀내고 있으며 일부사람들은 동물들과 대화를 하지 않느냐?
말씀을 듣고 보니 참으로 공감이 갑니다.
제가 꽃집에서 일을 할 때 여사장님은 꽃과 대화를 나눈다고 하셨거든요.
저 역시 개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도 하구요.
그리고 동물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상물을 보면 내가 마치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아요.
이 모든 것이 정보공유현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유마거사께서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는군요.
결국 모든 사람들이 아프기 때문에 유마거사도 아플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육신의 한계점을 나타내 보인 것인데 영은 이미 깨어나서 영원의 세상에 있으나 육신은 정보교환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의 생로병사법칙아래 놓여있을 수밖에 없음을 말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남습니다.
정보 공유의 법칙이나 만물동일체의 영향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다 해도 인간의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씀은 만물로부터 전달되는 모든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겠냐는 거지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매순간 선택을 하고 있지 않느냐?
너희가 사랑을 나눌 때 육적인 곳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 영적인데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하는 것은 너희자신들에게 달렸다.
결국 영적인 생활이 목적이라면 육적인면을 포기해야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게 들었느냐?
네가 그렇게 들었다면 너에게는 그것이 진실일 것이지만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네게 다가와 있는 인연이 무엇이 되었건 그것을 영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며 비록 쾌락에 몸을 맡기고 있더라도 초점은 영적인데 맞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쾌락을 즐겨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너는 아직도 이원성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쾌락을 즐겨도 되고 안 되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게 다가온 인연이 어떠한 것을 너에게 요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행동을 결정하라는 말이다.
만약 네가 신부나 스님이 되는 선택을 했다면 그 역할에 맞게 독신수행을 해야 할 것 이고 목사가 되는 선택을 했다면 그 역할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할 것이며 수행자로서 청정한 행동을 요구받는다고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선택을 했다면 그 사랑에 충실해야 하는 것인데 네가 양심에 부끄럼 없는 어떠한 행동도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씀에도 모순점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여러 사람들로부터 동시에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도 있거든요.
이럴 경우 다가온 인연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겠습니까?
만약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시에 사랑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에너지차원에서 해석되어져야할 문제로서 어디까지나 지성적이고 감성적이며 영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대표적인 예로 예술가들을 말할 수 있는데 그들 모두는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렇군요.
그래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고 쇼펜하우어가 말을 했나 봅니다.
하지만 예술가도 아닌데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이들도 있지 않습니까?
바로 영적인 스승들로서 그들에게서 방사되는 에너지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게 만든다.
하지만 영적이지 않아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비록 그 사랑이 육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못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물론 그 또한 사랑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너희에게 선택의 순간을 제공할 것이다.
그 사랑을 육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영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여 육신인 너에게 묻겠다.
너는 어떤 사랑이고 싶은가?
저야 당연하게 영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올린 시 같지도 않은 시 코너에 올린 시들은 그래서 올린 것들이지요.
비록 우리들이 육신적으로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기도 하며 혹은 짝사랑에 가슴아파하기도 하지만 그 모두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노래하고자 했던 겁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당신이구요.
그 말은 사실이긴 한데 네가 알아야할 사실이 있다.
네가 만약 누군가를 육신적으로 사랑함에 있어서 영적인면보다 육적이었다고 한다면 나또한 너에게 그러한 인연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는 언제나 영적인 선택을 했으며 이별까지도 영적으로 받아들였다.
참으로 그러했습니다.
그러기에 가슴 아픈 나의 외사랑은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지요.
내 인생의 모든 사랑들이 완전함과 영원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기도 하구요.
큐피드의 화살은 내 심장에 깊숙이 박혀 사랑의 샘들이 한없이 흘러나오게 만들고 있기도 하지요.
너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이 육적인데 초점이 맞춰지면 아픔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는 질투를 유발하는 아픔이 되기에 물질세상에서의 사랑이란 언제나 제한적이고 고통을 동반하게 되는데 그러한 사랑이 영적인 것이 되었을 때는 모든 이들을 충족시키는 사랑이 된다.
하지만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는지라 육신적인 사랑을 영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같은 괴리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는지요?
너희가 하는 그 어떤 사랑도 영적이지 않을 수 없지만 너희가 세상을 살아나오는 동안 쌓아둔 오래된 습관으로 인하여 육적으로 인식되는 것이기에 인식을 바꿈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인식을 어떻게 바꾼다는 말씀인지요?
너희가 사랑을 할 때 그저 주기만 하는 사랑을 함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그 어떠한 사랑도 영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용서와 사랑의 깊은 의미를 너희가 올곧게 받아들일 때 너희의 모든 행위들은 영적인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목적은 사람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인식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기도 한데 모든 생명체가 하나로부터 왔음을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함으로서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며 동물을 기른다는 것은 즐거움을 위해서이며 동물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인간들과 동일하게 여긴다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며 동물들도 다 같은 신의 자식인 동시에 신성이 깃든 존재라고 인식한다는 것은 영적이기 때문이니 여러 가지의 인식들이 너희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말은 세상 모든 만물에 공히 적용될 말이니라.
참으로 동감이 가는 말씀이십니다.
우리들이 먹고사는 것이 바빠서 둘러보지 못하던 모든 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물질의 풍요로움이 가져다주는 선물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들이 지키고 가꾸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한다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이나 수행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점은 세상이 멸망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실화 시키는데 있다는 것이지요.
진정 우리의 위대한 영혼을 깨닫게 된다면 더 이상 멸망을 말하지 않게 될 것이며 자신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서 천국처럼 만들려고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벌써 시간이 다되었군요.
아쉽지만 다음기회에 만나 뵙게 되길 희망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작별을 고할까합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