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번드 2022. 8. 25.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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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랜만이구나.

무척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어제까지 대화를 나눈 것 같지?

아무리 오랫동안 못 보더라도 내면적으로 통하고 있는 사이는 늘 함께 하고 있기에 만나고보면 떨어져 있었던 것 같지 않기 때문이야.

이것이 바로 인연의 고리인데 육신이 알던 모르던 영혼은 연결이 되어있다는 증거인거지.

특히 육신적으로 혈연관계에 있거나 종교나 영적인 단체에 속해져있을 경우에는 연결고리가 형성되기에 이 같은 일이 더욱 피부에 와 닿기 마련이야.

이러한 일을 불교에서는 공업이라고 하는데 부모 자식 간에 형성되는 공업과 국가의 공업, 인류의 공업 등으로 분류할 수가 있어.

이 같은 일은 개인의 영적인 등급과도 연관이 있는데 자신의 인식정도가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짊어져야할 업장(카르마)이 달라진다고도 볼 수 있는 거야.

언젠가 너와의 대화에서도 말을 했듯이 형제의 범위를 얼마나 넓게 보는가 하는 것이 영적등급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때문이었어.

다들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헌신과 봉사를 쉽게 하지만 남들의 경우는 소 닭쳐다보듯 하기 마련이거든.

게다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원수 같은 사람일 경우는 죽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거지.

그러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욕하는 사람조차 사랑한 예수를 찬양하는 것이고 그를 인류를 구하는 메시아라 부르는 거야.

말을 하다 보니 참으로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너와의 대화는 정말 인간적인 범위 내에서 아들과 아버지와의 대화로 이끌어가려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자꾸만 영적으로 빠져들거든.

이 길을 따라 가면 결국 대화의 주체는 아들과 아버지가 아니라 신과 나누는 대화가 되고 말아.

이것은 내 삶 자체가 영적인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때에 따라서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곤 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스승만이 할 수 있는 말을 내가 한다고 여기거나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신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한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들이 왜 그런다는 것을 알기에 제발 이곳을 오지 말라고 말해주었고 일부러 자극적인 말로 쫒아내다시피 하는데도 자존심도 없는지 자꾸만 들여다보며 부정적인 기운을 보내고 있는 거야.

처음 내가 너와의 대화를 두 군데로 나누어서 올린 것은 각자의 인연에 맞게 들어와 보라는 뜻이기도 했고 이곳과 저곳에 올리는 글을 별도로 하려고 했는데 자기들끼리 공유를 하는 통에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어.

그들은 그 같은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정말 좋지 못한 행동이야.

왜냐하면 너와의 대화가 정말 값어치가 있다고 한다면 소중한 보물 다루듯 했을 터인데 이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했다는 것은 누구나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거든.

이로 인해 어떠한 일이 발생되었는지조차 그들은 알 수가 없겠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 일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보면 정확해.

마음이 순수한 이들은 너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이 있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순수하지 못한 상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거기에 따른 결과물을 보게 될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내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할 것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일의 주체는 절대 육신의 내가 아님을 알아야해.

지금까지 너와의 대화 속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내면에 있는 신과 내안에 자리한 내면에 신의 공명이었는데 그것을 비난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았다고 한다면 그들의 내면의 신이 그들을 벌하는 것이지 나와는 별개라 할 수 있어.

이 같은 일을 내가 직접 확인을 하였는데 지금까지의 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영적인 에너지가 빠져버린 밋밋한 글이 되어 버렸더구나.

게다가 내가 올린 글을 읽고 비난을 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니 그다지 평화롭지를 못하였어.

지금까지 너와의 대화는 인과를 넘어서는 최상의 법문이었는데 인과의 세계를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행태를 보이더라는 거지.

이모두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온 것이니 누구 탓을 하겠냐 싶긴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아들아!

말을 하다 보니 또다시 영적으로 초점이 맞춰지는구나.

분위기를 바꾸어서 육신적인 대화무드로 옮겨볼까?

너와 대화를 시작할 무렵만 하더라도 네가 16살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24살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성인이 되었다 생각해.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의 군인이 된 네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내년이면 제대를 해서 사회의 역군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생각하니 뿌듯하기까지 하구나.

이 모든 것이 너와의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만들어주신 내면의 신께서 내려주신 축복이라 여겨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신의 축복을 무조건 편하고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물질적인 풍요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거든.

그렇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여기지 않아.

너도 알다시피 네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을 간 지방학교 내의 일진회와 싸움을 했지 않니?

합의금이 9백만 원이 넘을 정도로 심한 싸움이 일어났고 그 일로 네가 형사입건까지 될 위기상황이었지만 기적같이 그와 같은 일은 모면할 수 있었어.

내가 피해자의 부모를 찾아뵙고 사죄를 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야.

그것이 신의 축복이라 여기는 것이 내 생각이고 영적이 아니라 물질적인 범주에서도 축복이 맞거든.

그때당시 너에게 말을 했듯이 살다보면 옳은 일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결과만큼은 받아야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했던 이유는 그 어떠한 일로서도 교훈을 얻기 때문이었어.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네가 고등학교를 들어갔을 때는 얻어맞는 일이 있었는데 중학교시절 누군가를 때리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맞대응을 하지 않고 참았기 때문이었을 거야.

그러나 그 일로 인해 참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며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 분명해.

이러한 인식모두가 네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며 그와 같은 인식이 그저 생기는 것은 아니거든.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을 네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신의 축복 탓이라는 거지.

나는 네가 누군가처럼 곱게 자라서 평탄하게 자라는 것보다 옳다는 일을 해서 손해를 보기도하고 남을 위해 희생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 나가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사실 네가 가장 염려스러웠던 것은 최근의 일이었는데 군 생활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상황이 너를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하기에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만 했어.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의 일이었는데 영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하나기 때문이기도 해.

네가 힘들어 하는 만큼 내가 힘이 들어야 했다는 거지.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아들과 아버지로서 맺어진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공업을 형성했기 때문인 거야.

아들아!

언젠가 네가 말을 했지?

학교주변의 밭에서 일을 하는 농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고 말이야.

그 당시 중국에 있는 내가 한국에 나타날 수는 없는데 불구하고 네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네가 나를 느끼고 있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어.

네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만든 것인데 아빠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지켜주고 보살피고 있다 여겼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 거지.

아마도 너는 군 생활을 하면서 또다시 혼란스러웠을 거야.

아빠가 늘 보살펴준다고 한다면 왜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주지 않을까 했을 것인데 사실을 말하자면 너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네가 가장 힘들 때였어.

네 의사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라 할 수 있는 군 생활이야말로 네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아주 큰 축복이라 할 수 있으니 영적으로는 그와 같은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했고 육신적으로는 노심초사해야 했던 거야.

이러한 점을 알기에 누군가 군 장성에게 부탁하여 네 보직을 바꿔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해야만 했어.

솔직히 네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너무나 생생했기에 미리 네 고모부에게 부탁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네가 원하는 상태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더구나.

컴퓨터업무만 하는 자리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다른 아이에게 넘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은 네가 겪어야만 하는 성장 통이라는 것을 알았지.

지난겨울 면회를 갔을 때 불만을 털어놓는 너에게 이러한 말을 했을 거야.

네가 비록 지금은 만족하지 못하는 일을 하더라도 멋 훗날 그것이 가장 네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아마도 네가 이 말을 이해하기에는 아직까지 무리가 있을 거야.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고뇌하고 번뇌하지 못하는 삶은 죽은 삶이나 다름없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해서는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다고 볼 수 없으며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에도 얻는 것이 많지 않거든.

이것은 마치 편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는데 자신이 삶을 주도하고 싶다면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라고 할 수 있어.

힘든 일이라고는 하지 않고 쉽고 편한 일만 하게 될 경우 힘든 상황이 닥치게 되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아.

또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될 경우 실력이 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도움도 되지 않으며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기까지 하는 거야.

조금 혼란스럽지?

서로 상반된 개념을 한꺼번에 소화시키려니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해.

이것을 올곧게 받아들이려면 한 가지 선전 문구를 떠올리면 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경험을 쌓기 위해 일부러 힘든 일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구태여 그럴 것 없이 좋아하고 편한 일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을 해보고 안 되면 주어진 일을 즐기라는 말이야.

좋아하고 편한 일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특성을 살려서 즐겁게 일을 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필수라 할 수 있고 그 같은 일이 주어지지 않는 것을 원망하기보다 즐길 거리로 여기는 것은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니 자신을 위해 더없이 좋은 선택인거지.

이와 같은 인식은 정말 육신적인 동시에 너무나도 영적인거야.

아마도 너는 또다시 하나의 물음표를 나에게 던질지도 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어려우면 포기를 해 버리는 것을 노력해보고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해버린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요?”

 

 

네 말이 전적으로 맞는 말이야.

사실은 그 두 가지 개념 모두가 한 가지 안에 들어있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데 있어서도 방해요소들이 있으며 그와 같은 걸림돌들이 심하게 되면 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거든.

이와 마찬가지로 하기 싫고 어려운 일 조차도 즐기게 되면 쉽고 편한 일이 되는 거야.

결국 하기 쉬운 일이나 하기 어려운 일은 애당초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즐기게 되면 어려움이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해.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편하고 쉬운 길이란 있을 수 없으며 각자의 삶을 제대로 즐기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할 수 있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최고의 길이라 여기고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

과거 내가 사업을 할 때만 하더라도 돈을 쉽게 만질 수 있었고 한 달에 서너 번 정도는 룸살롱이나 주점을 드나들었어.

그러한 내 삶을 친구 녀석들은 부러워하고 내가버리는 지갑까지도 서로 가지려고 다툼을 벌렸었는데 정작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함께 매달 돌아오는 마감날짜에 가슴을 졸이는 삶을 살아야만했어.

하청공장이 열군데도 넘는 곳의 인건비는 물론 원자재 공급까지 해주어야하는지라 피 말리는 매일이 되고 있었지.

술이 취해야만 잠이 들 정도였고 꿈속에서조차 이불을 팔러 다녔거든.

술이 취하지 않는 때는 디자인개발에 몰두를 해야 했고 한시도 조용한순간이 없었던 거야.

그러나 아들아!

이순간조차도 나는 즐기고 있었어.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많은 이들은 나의 이 같은 말에 경악을 하겠지만 정말 나는 지옥과 같은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거든.

이것을 말하기위해 기억의 저편 속에 한 대목을 끄집어 내야하겠구나.

언젠가 네 삼촌과 함께 광주로 장사를 갈 때였어.

지리산을 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불평을 했던 거야.

 

맨날 천날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장사를 가이까네 죽을 맛이다 그쟈?”

 

매일같이 새벽에 데리고 나와야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나 자신이 생각해도 서글픈 생각도 들어서 위로 차 했던 말인데 네 삼촌의 대답은 그야말로 의외였어.

 

그래 생각하마 안 되지 어느 누가 우리 맨크로 돈 안들이고 전국을 구경한다카더노?

그 뿌이가 맨날 비싸고 마신는거마 먹는다 아이가

 

순간적으로 퍼뜩 정신이 차려졌어.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내가 살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네 삼촌이 정신 들게 만들었는데 그날이후로 정말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었고 하루하루 발전되는 공장의 규모가 즐기는 만큼의 보답을 주고 있었던 거야 .

이러한 내 삶을 한순간에 바꾸어 주었던 것이 한권의 책이었는데 공장규모를 크게 부풀려서 주식회사로 만들어볼 꿈을 가질 무렵 만나게 되었던 그 순간은 그야말로 운명이었어.

많은 사람들은 내가 경험한 사건을 각자의 인식대로 받아들일 것이 분명해.

네 고모의 경우는 내가 사이비에 빠져서 집을 날리고 패가망신시켰다고 생각할 것이고 지금 내가 속해져있는 명상단체 사람들은 사바세계에 빠져있던 사람이 영적인 길로 들어섰다고 할 거라는 거지.

그들의 말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35세가 되면 인생에 아주 큰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

이것이 최면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 무렵에 이러한 일이 발생이 되었던 거야.

처음 회사가 부도가 나고 나서도 얼마든지 재기의 기회가 있었지만 쉽게 포기를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는데 조금의 후회도 없거든.

그리고 비록 사바세계의 삶이라 할지라도 잘 못살았다는 생각도 없어.

그때는 그 삶이 나에게 주어졌으니 최선을 다하고 즐기며 살았고 지금은 지금의 삶이 주어져 있으니 즐기며 살아갈 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영적인 길로 접어들어서 겪어야만 했던 일이 결코 사바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며 살 때보다 편하지 않았어.

그저 그때는 그러한 일이 지금은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지.

장사를 다닐 때는 시간이 정해져있어서 새벽4시에서 5시가 기상시간이었지만 명상을 할 때는 아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어.

처음 3년까지는 거의 3시간 이상을 잔적이 없다시피 했고 심지어 한두 시간만 잘 때도 일 년 넘게 있었으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는데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을 즐기고 있었던 거야.

평범한 삶을 살아갈 때는 술에 취하고 즐길 때는 장사생각을 잠시 잊기도 했지만 명상을 시작하고부터는 꿈속에서조차 신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같은 일을 힘들게 여긴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 할 수 있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으면 육신과 정신이 분리되는 경험까지 했겠어?

그런데 말이야.

이러한 나에게 사람들은 기대를 하거든.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물어보기도 하고 뭔가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해.

그럴 때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삶을 즐긴다는 말만 하는 거야.

이것은 정말 그러한데 나는 영적으로 아는 것이 없으며 누구처럼 기적을 행사하거나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없어.

그러나 누군가 찾아와서 물어보면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아는 만큼 하는데 그조차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너와의 대화 속에서 신이 대답해준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하는 것에 불과해.

육신적으로 내가 아는 것은 전혀 없다는 말이며 누군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바라거나 원한다고 한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범위만큼의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말도 되는 거야.

그들이 인식만큼의 것을 그들이 얻어간다는 말이며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인 것이 그들에게 반사된다는 말이지.

아들아!

네가 이 같은 말을 알아듣기나 할는지 모르겠구나.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신이 그들을 축복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삶을 즐길 줄 몰라서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구태여 신을 알기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으며 그저 주어진 오늘을 만족하고 감사하며 지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터인데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들이 불쌍해 보일 때가 간혹 있어.

언젠가 사저한분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

 

명상을 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데 돈이 없어서 힘이 들어요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해.

 

 그렇다면 돈을 벌기위해 노력하면 되지요

 

그러면 또 말을 하지.

 

돈을 벌기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시간이 없어서 명상을 못 하잖아요

 

이러한 말에는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해야만 해.

 

사저님! 명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명상입니다

 

그야 사형처럼 뭔가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지 우리처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잖아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대답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저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 더 이상 대화를 지속시키지는 않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지금까지 너와의 대화에서 말을 한 것이 다른 누군가보다 내가 잘나거나 뭔가의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비춰졌다고 한다면 정말 사과를 해야 마땅한 일이고 참회를 해야 할 일이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살아온 길이 남들보다 조금도 낮지 않은 조건에서 더욱 힘든 일을 겪었지 않니?

내가 남들보다 나았다고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만족하는 일 뿐이었어.

기적 같은 힘을 가지고 힘든 일을 이겨내지도 않았고 재난이나 병마를 치유하지도 않았거든.

병이 들면 남들처럼 병원에 갔고 민방요법으로 치유를 했으며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을 열심히 하기도해.

말을 하다 보니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구나.

 

사형은 내면의 신과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들과 같을 수 있나요?”

 

그런데 말이야.

이러한 대화는 누구나가 하고 있거든.

신이 그러한 말을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듣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며 나를 통해서 그들의 신이 말해주는 것이기도 해.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면의 신과 내가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내 삶이 남들보다 편하지만은 않았다는 거야.

내가 호주에 가서 사는 1년 동안의 시간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보자면 그다지 쉬운 생활은 아니었어.

동생네 집에서 눈치를 봐가며 살아야했던 시간부터 시작해서 일곱 집이 함께 세 들어 살아야했던 쉐어(share)집까지 어느 곳 하나도 고급스럽지는 않았는데 생각에 따라서는 비참할 수도 있는 문제였거든.

실지로 명상단체의 회원들은 우리가 사는 집을 방문하고는 곧바로 옮겨야한다며 자신들 집으로 데려가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그들의 집이야말로 지옥 같았어.

너무나 깨끗해서 티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집이 마치 바늘방석처럼 여겨졌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농사일을 하는 내가 발이라도 닦고 집에 들어오게 되면 타일바닥에 자국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까지도 그저 보아 넘기지 못하는 깔끔함이란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

동수를 생각한답시고 저희들 집에 데려가 놓고서 결국 쫒아 내다시피 한 것이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천국이 나에게는 지옥이었기 때문이야.

비록 다른 이들이 고기요리를 한 부엌이라 고해도 우리들이 채식요리를 할라치면 다들 맛있게 보인다며 맛을 보고 맛있다고 평을 해주는 사람들이 동수들보다 더욱더 정답게 여겨진 때가 그때였어.

딸기밭주위에 있는 카라반파크에서 생활할 때는 우리 둘만이 생활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나중에 차에 살림도구를 싣고 여행을 다닐 때는 자유로움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다시피 했지.

남들이 보았을 때는 집도 없이 떠도는 방랑자같이 보였겠지만 이곳에 가서는 포도농사일을 하면서 한 달을 보내고 저곳에 가서는 사과농사일을 한 달하며 지내는 우리들의 삶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의 축복이었던 거야.

이것이 바로 시각의 차이 아니겠어?

모르긴 해도 누군가는 우리들 같은 조건이라면 자신들도 그렇게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말이야.

우리가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조건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거든.

남들은 지옥같이 느낄 수 있는 삶을 천국처럼 여겼을 뿐 이라는 것을 알아야해.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건축현장에서 전기 잡부 일을 했고 사저는 건설현장의 청소 일을 했는데 그조차도 우리들은 충분히 즐기면서 살았어.

모든 이들이 멸망을 말하며 걱정 근심 속에 살아갈 때 이세상은 절대 멸망하지 않으며 새로운 창조를 한다 말했고 남들이 이세상이 지옥이고 천국에 가야한다 말을 할 때 천국은 이 세상에 이미 와있다고 말을 했지.

이것은 절대 억지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내 삶속에서 느껴지는 대로 말했을 뿐이었어.

아들아!

너는 이 같은 말이 중요한 이유를 알겠니?

아마 너는 그저 육신적인 일일뿐 이 같은 일이 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길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네가 모르는 것이 있어.

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육신을 벗어났을 때는 그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거든.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도 육신을 통해서라야 일할 수 있다는 말도 되는 거야.

이 말은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말인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필요한말이라 할 수 있어.

너도 생각을 해보렴.

만약 하나님이 육신을 벗어나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벌써 이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지 않았겠니?

신통방통한 힘으로 모든 세상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들의 바람을 모를 수가 있으며 사람들 모두가 바라는 천국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야.

이것은 종교를 바꾸고 신의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으며 어떠한 영적인 스승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어.

지금껏 너와의 대화 속에서 이와 같은 말을 숱하게 했는데 모르긴 해도 내가 했던 불경스러운 말에 벌을 받을라치면 벌써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고 명상단체에서도 쫓겨났을 것이 분명해.

하지만 나는 아직도 멀쩡하며 천국 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거든.

사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신의 덕분이기도한데 내가 말하는 신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신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 속에 들어앉은 신이야.

가까이는 내동생의 내면에 자리한 신이기도하고 내 친구들 안에 들어앉은 신이기도하며 내안에 들어앉은 신이기도 해.

우리 모두 안에 들어앉은 신이 삼라만상을 생동케 하고 우주를 운행하고 있는데 그러한 신을 인간들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아직도 자신들 종교 안에만 최고의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제는 알겠지?

모른 긴해도 아직까지도 영적인일을 육신과는 별개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거야.

만약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그 말이 진리일 것이고 그러한 주장에 따라 어떠한 영적인 일이 주어질 것이 분명해.

창조력을 담고 있는 인간의 특성상 그 모든 것을 자신이 만들어 낼 터인데 문제는 그 일조차 자신이 즐길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어.

자신 앞에 당면한 삶조차 즐기지 못한다면 어떤 일을 만든 다해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맞이할 거야.

아들아!

오늘 내가 한말이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구나.

이 모든 말이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결정하는 것도 너에게 달려있으며 삶을 창조하는 것도 네 자신이며 창조된 삶으로부터 도망을 가거나 삶과 부딪혀 이겨내는 것도 너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바래.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육신을 덮어쓰고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명백한 증거이기도한데 네가 얼마나 삶을 즐길 수 있는가 하는 것만이 정답일 뿐 그 어떤 표본도 없고 정답도 없어.

혹 너에게 아직도 궁금한 점이 남았고 무엇인가 알고 싶다면 깊이 있게 기도해보렴!

아마 거짓말처럼 누군가의 입을 통해 대답을 해줄 거야.

그것이 내가 될 수도 있고 교회목사님이 될 수도 있으며 절간의 스님이 될 수도 있어.

아니면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들렀던 블로그나 카페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으며 무심코 던진 친구 녀석의 농담 속에도 답이 담겨 있을 수 있거든.

네가 신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제든지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날 것인데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있어.

만약 네가 충분히 겸손하지 못하다면 겸손치 못한 만큼의 혼란스러움이 다가올 거야.

여기저기 잡다한 것을 잔뜩 받아들여서 주체할 수도 없게 될 것이며 네 인생자체가 걱정근심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물론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해.

절대로 만족하는 삶을 살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말이며 누군가 만족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면 이미 육신을 초월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어.

이러한 사람에게는 누구의 협박도 통하지 않으며 지옥같이 어두운 곳에서조차 빛을 뿌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며 오늘의 시간을 마무리하자구나.

이별이 아쉽긴 하지만 기회가 닿고 너와나의 대화를 우리들이 바란다고 한다면 조만간 이루어지리라 여기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