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끌어안아야 극복된다.
누구나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뭔가 충격적인 일을 당하게 되면 생기는 현상을 트라우마라고 하는데 인생을 사는 누구라도 이런 현상을 한번쯤은 겪기 마련입니다.
정신적인 충격은 물론 신체적인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생기는 거지요.
어떤 사람이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어처구니없는 짓을 당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남녀가 사랑함에 있어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러한 충격은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사람의 정신작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여성이 바람둥이 남성과 사귀게 되었고 어느 날 통화를 하는데 이 남자가 자꾸 엉뚱한 말을 하는 겁니다.
알고 보니 이 남자가 다른 여성과 동시에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여성과는 카톡을 주고받고 이여성과는 통화를 한 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이 꼬일 때가 있었던 것이었고 이런 사실을 예민한 여성이 발견하고 절교를 했지요.
이일로 인해 이 여성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겨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으며 사람과의 교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겁니다.
항상 사람을 의심하다보니 사람을 사귈 때마다 이런 일은 문제가 되었고 관계흐름이 좋게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싶으면 과거에 자신이 당한일이 떠올랐고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렇게 인간관계를 가지다보니 누구를 만나도 정상적일수가 없었으며 악순환이 거듭된 거지요.
더욱 심각한 것은 한 가지 트라우마도 벅찬데 사람을 사귈 때마다 트라우마가 한 가지씩 더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문제 저 사람은 저런 문제를 안겨준 셈이며 결국 이 사람은 인생자체가 심각하게 꼬여버렸고 더 이상 사람을 정상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한 겁니다.
본인이 이러한 문제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거지요.
알고 보면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한데 트라우마의 극복은 원인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알고 가까이 다가 가야합니다.
가령 누군가 거미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했을 때 가장 쉽게 극복하는 방법은 거미와 친해지는 거라는 말입니다.
실지로 외국에서는 트라우마를 이런 식으로 치료하고 있습니다.
독이 없는 거미를 손바닥에 올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강도를 높여가며 거미에 대한 공포를 없애가는 겁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트라우마도 결국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바람둥이 같은 사람도 있지만 진실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바람둥이 기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내재한 품성에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으며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라도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바람둥이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야하는 겁니다.
유유상종이라 했으니 자신역시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봐야합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자신의 족적에는 분명히 이런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본인이 명석한 두뇌로 분석하고 지적하는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거지요.
본인이 쓰레기 같은 인간을 만나 사귀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인데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면 결과가 어떻게 돌아오겠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며 상대방의 잘못이 보일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봐야하는 겁니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할지라도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잘못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만물동일체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개념에서 만물이 전체에 속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는 거지요.
한사람의 몸이 우주를 품고 있다는 점을 생각만으로 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보게 되면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참해 질 때도 있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지요.
그럴 때는 자신의 못나고 잘못된 부분도 전체의 일부분에 속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잘못을 변명하거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만물이 동일함을 깨닫기 위해 경험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겁니다.
이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많은 연습을 통해 가능한 일이며 가장 빠른 길은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는 겁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만 가할 것이 아니라 비판을 하되 한편으로는 관용을 베풀며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보는 일을 되풀이 하다보면 이모든 일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판할 때는 비판만 하고 용서할 때는 용서만 하며 자신의 잘못을 보는 것을 따로 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훈련을 해본 사람은 이런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만물이 동일하다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가끔 부모가 자식을 향해 사랑의 매를 칠 때도 있지만 뒤로 약을 발라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을 담은 매라 할지라도 맞는 자식은 아프기 마련이며 상처를 치료해주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한 거지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균형을 잃어버리면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경우에도 앙금을 남겨서는 안 되며 치유를 해야 합니다.
하여 성경은 이런 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5:25)
Agree with thine adversary quickly, whiles thou art in the way with him
직역해보면 너와 대적하는 자와(thine adversary)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 합의(Agree) 하라 이지요.
이것을 화해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너와 내가 동등하다는 점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분쟁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필요하지만 하늘나라에는 그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겁니다.
다른 이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