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의 전경(全景).
학의천에는 길이 두 군데로 나있습니다.
하천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이 나있으며 한쪽은 수목과 풀들이 많이 나있고 반대쪽은 상대적으로 적게 나있지요.
그러다보니 내려갈 때는 하천이 잘 보이지 않고 돌아올 때는 반대쪽으로 걷다보니 하천의 상황을 보다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내려갈 때의 풍경과 올라올 때의 풍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가끔씩 가마우지의 사냥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올라올 때이지요.
이렇듯 우리네 인생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초년에 느끼는 점과 중년에 느끼는 점이 다르며 말년에 느끼는 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인생이 오르막길에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점을 내리막길에서 볼 수 있으며 세월의 깊이만큼 인식의 폭도 넓어집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인식의 확장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평생을 자신의 길에만 집중하며 걷다보니 주변의 상황을 살피기는커녕 욕심만 부리다 생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그래서 바쁜 삶 가운데도 여유를 가지고 산책하는 마음을 갖추라는 겁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30대중반에 세상과 완전히 등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길에서 두 갈래 길의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영적인 길을 선택했고 거기에 대한 경험을 수없이 해야만 했지요.
벌써 만 26년의 세월을 세상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한 셈입니다.
인생을 100년으로 잡았을 때 50까지를 오르막으로 본다면 이제 턴을 해서 내리막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는 가슴 뛰는 삶이 주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마도 이것은 내 생활습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출근길부터 내 가슴은 설레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질까 생각하면 약간은 흥분된 감정까지 생기며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지요.
별다르지 않는 일이 늘 주어지고 평범한 일상이기는 하지만 항상 일이 주어진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평범한 일상도 내게 즐거움일 수밖에 없는 것은 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약간 어려운 일이 주어지면 더욱 즐겁습니다.
일에 몰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내고 나면 보람이 배가 되기 때문이지요.
전기일이 어려워봐야 회로를 제대로 구성하여 전기가 통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난해합니다.
아래위층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배관이 이중으로 되어있을 경우 합선이 생길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경로를 찾아 두 군데 중 한군데를 끊어주면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복잡할 수가 있지요.
등이 달린 상황에서 경로를 찾으려면 도면을 살펴보고 하나하나 체크해나가면 되는데 문제는 도면대로 되어있지 않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공자의 의도에 따라 임의로 변경을 하게 되면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설계자가 만들어놓은 도면대로 시공을 하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지만 사정에 따라 변경을 하면 어려워지는 거지요.
이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다는 겁니다.
인생의 설계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될 것을 각자 임의대로 변경하다보니 인생이 꼬인 탓에 본인들이 힘들어합니다.
전기일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변경이 일어난 것이지만 인생이 꼬인 것은 욕심 탓입니다.
이럴 때의 해결책은 아주 간단하지요.
두 가지 경로로 연결되어있는 전기선처럼 어느 한쪽을 끊어버리면 자연스럽게 전기가 흐르게 되어 불을 밝힐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두 가지 모두를 움켜쥐려다보니 신과 연결이 되지 않아 영혼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공사초기에는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변경이 불가피했다 할지라도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과감하게 어느 한쪽 경로를 포기해야하는 것과 같이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서도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영혼의 불을 밝힌다는 것은 영생을 얻는다는 뜻이며 세상기준으로 보자면 건물에 전기가 들어오게 만드는 일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영혼의 등불은 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은 분명해집니다.
인생길의 오르막에서는 이런 점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해도 내리막에서는 깨달아야 영혼을 살릴 수 있다는 자각의 순간이 학의천 산책길에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