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갈망할 것은 영적인 기적.

배가번드 2022. 11. 18.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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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신기해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물리적인 기적만을 보고 신기해할 뿐 정말 중요한 영적인 기적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얻어야할 것은 영생인 것이고 영혼의 부활인 것인데 다들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기적만을 바란다는 거지요.

육신은 유한한 것이라 언젠가는 죽어야하며 자신의 진아(眞我)인 영혼은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영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 안에 내재하고 있으며 그것을 깨우는 것을 부활이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육신은 성전이라 말하며 성전 안에 성령이신 하나님이 거하고 있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 안에 거하고 계신 하나님을 깨우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인 것인데 다들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기적에 목말라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백성들도 로마 식민지생활에서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원했을 뿐 정작 자신들의 영혼에게 자유를 얻게 해줄 메시아는 몰라보았지요.

지금도 사람들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물질을 가져다주거나 육신적으로 병을 낫게 해주는 이들에게는 돈을 싸 짊어지고 가서 경배를 드리며 신으로 모시고 영적 부활을 가능케 하는 이에게는 돈은커녕 비난을 일삼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이들을 일러 소경이라 말하며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9:39)

And Jesus said, For judgment I am come into this world, that they which see not might see; and that they which see might be made blind.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요9:40)

And some of the Pharisees which were with him heard these words, and said unto him, Are we blind also?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

Jesus said unto them, If ye were blind, ye should have no sin: but now ye say, We see; therefore your sin remaineth.

요한복음 9장의 내용은 소경에게 기적을 행사하신 예수님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장님인 사람을 눈뜨게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기적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육안(肉眼)을 뜨게 한 것이 아니라 영안(靈眼)을 뜨게 만들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39절에 예수께서 심판하러 오셨다고 한 것은 자신이 판단의 기준점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드러난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말이지요.

그때껏 알고 있던 성경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쳐주어 영적인 눈을 뜨게 만들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자신들도 소경인가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육과 영이 분리되어있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어느 정도 영의세계에 대해 알고 있던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조차 소경이라 하신 것은 영의 세계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41절에서 소경이었다면 죄가 없었을 것인데 본다고 하는 바람에 죄가 된다 하신 겁니다.

자신들이 볼 수 없다 말해야할 것을 보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에 죄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직자 및 목회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할 것이며 보는 이들을 비웃은 죄가 크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기존의 목회자들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뜻을 헤아릴 줄 몰랐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분석해봐야 함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 내용을 보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9:5)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요9:6)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요9:7)

진흙을 이겨 눈에 발랐다는 것은 창세기 내용에 담긴 뜻을 가르쳤음을 말해줍니다.

창세기에 흙으로 사람을 만든 것이 비유의 가르침이듯이 정말 흙을 이겨 눈을 낫게 한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5절에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밝히 볼 수 있게 만드는 가르침을 준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결정적으로 7절의 실로암의 뜻은 “파견된 자”입니다.

예수님같이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자”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아야 눈을 뜨게 된다는 뜻이지요.

9장 내용을 차례대로 읽어보면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본인이 영의 세계에 대해 보지도 못했으면서 본 것처럼 말하는 죄가 얼마나큰지 알게 될 것이며 본 사람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도 알 것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알아듣고 겸손하여 소경됨을 자복하고 가르침을 청할 것이며 어리석은 이는 교만하여 제 자랑만 늘어놓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