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나만의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하나님.

배가번드 2022. 12. 19.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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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달아보면 전선색이 다르게 입선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분명히 도면상에는 흑색과 황색, 접지선을 사용하라 했지만 황색, 백색, 접지선, 이렇게 입선이 되어있을 경우가 있다는 거지요.

입선을 하는 과정에서 선이 모자랐을 경우 도면과는 다르게 시공이 될 경우가 있기에 이런 일은 왕왕 발생합니다.

이럴 때는 색에 관계없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만 구분하여 연결해주면 됩니다.

흑색을 플러스로 황색을 마이너스로 삼거나 황색을 플러스, 백색을 마이너스로 삼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 외에도 설계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분명히 도면상에는 기둥에 설치하라는 등이 벽에 붙어있을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건축공정과 간섭현상이 일어날 경우 불가피하게 설치지점이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공사가 끝이 나고 마감을 하는 과정에서 후속공정을 시공하다보면 선행공정에 피해가 발생되기도 합니다.

만약 설비파이프에 누수현상이 발생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땅을 파거나 벽을 허물어야하는 일이 발생하지요.

시공과정에서 전기 파이프를 파손할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게 됩니다.

이미 벽 시공까지 마감처리가 되었으므로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할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설계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도면과 상관없는 방법이 동원되어야하는 겁니다.

어떻게든 전기를연결하여 전류가 흐르게 만들어야 하기에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일을 인체에 대비하여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창조주가 사람을 만들 때는 분명히 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설계했을 것이지만 살다보면 온갖 일을 겪게 됩니다.

생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받게 된다는 거지요.

이럴 때는 서로 조율이 필요합니다.

일단 사고가 나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무조건 합의와 조율과정을 거쳐야한다는 말입니다.

서로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잘잘못을 따지다보면 공사가 지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완성을 위해서는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워서는 곤란한 겁니다.

하나님의 율법만 주장한다면 설계자가 도면대로 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지요.

하나님은 원칙을 정해주는 설계자와 같지만 인간세상에서는 때에 따라 얼마든지 편법과 방편이 가능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편법과 방편이 가능해야만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게 만들어야 하며 전기를 쓰기에 무리가 따르지 않아야하는 것이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전기선 색을 문제 삼기보다 전류가 제대로 흐르게 만들고 전기를 쓰는데 지장이 없게만 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설계자가 도면을 그릴 때 시방서에 명기(明記)를 했더라도 현장에서 시공할 때 방편을 부리듯이 하나님이 정해놓은 율법을 따라 살아가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일탈을 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다만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않거나 영혼 줄이 끊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아무리 건물을 잘 지어 놓고 보기에 좋아도 전기가 끊어지면 모든 것은 멈추어섭니다.

설비파이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에어컨도 최신형으로 설치하고 환기시설에다 주차시설까지 완벽하며 석조와 조경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전기는 인간 안에 담긴 하나님의 숨결과도 같습니다.

창세기는 이런 점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And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forme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air; and brought them unto Adam to see what he would call them: and whatsoever Adam called every living creature, that was the name thereof.

 

건물을 짓는 것은 인체를 창조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전기는 인체에 혈관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라 볼 수 있지요.

성경에 따르면 피는 생명이고 생명은 곧 빛이라 했으며 빛은 곧 성령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신 성령으로 인간의 몸 안에 심어지는 과정을 생기를 코에 불어 넣었다고 한 겁니다.(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빛은 곧 전기이자 하나님의 힘을 나타내는 파워이며 인체 안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현현(顯現)이라 할 수 있으며 창조력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19절에 아담이 생물을 이름 짓는다 한거지요.(Adam called every living creature, that was the name thereof)

아담의 히브리어 뜻이 “사람” 임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전권을 주신 겁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독단적인 판단과 결정은 못하게 만드셨음을 알아야합니다.

건축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같이 모두의 협력과 조율을 통해 완성을 이루어 가는 거지요.

이런 이유로 불가에서는 한사람의 부처가 내려올 때는 300만 명의 부처가 함께 내려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체가 사지와 오장육부를 필요로 하듯이 많은 조력자가 있어야 한사람의 완전한 존재가 탄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래서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은 단한사람도 없다 말하는 겁니다.

근래 와서 삼라만상을 그가 짓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