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 솔로몬을 상고하였는데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내가 이 내용을 본 것은 수년전이었는데 담긴 뜻이 워낙 심오하여 해석할 엄두를 못 내고 본문만 복사하여 컴퓨터문서함에 저장해 놓고 있었지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위해서는 여러 가지 증거 자료들이 필요하고 찾아 봐야 하는지라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그러던 중, 때 아닌 폭설과 몸살감기로 인해 억지휴가를 얻게 되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읽는 이들이야 십분도 채 걸리지 않을 내용을 무려 여섯 시간 이상을 연구해야만 했지요.
아마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이들이라면 공히 생각하게 되겠지만 솔로몬은 지혜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다윗의 아들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게다가 잠언과 전도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미 영생을 얻은 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난 시간 보았던 내용처럼 타락된 일상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은 우리역시 본체는 완전한 성령이지만 육신을 입음으로서 얼마든지 타락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말해놓은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타락된 영혼이라 할지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으면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 같은 말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솔로몬을 등장시켜 기록된 이 내용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했다는 내용과 맥락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멜기세덱의 등급에 오른 인물로 남의 아내나 탐내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마치 부하의 아내를 범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속 깊은 내용을 숨겨놓았지요.
이렇게 해놓은 이유는 성령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 속뜻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내용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슨 뜻으로 이렇게 기록해 놓았는지를 모릅니다.
적어도 성경을 몇 번 통독했다면 당연히 의문을 가져야 하며 나아가서는 그 속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을 제대로 읽게 되면 반드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거나 아니면 겸손 되게 자신이 성령과 하나 되지 못함을 인정하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부정을 통하지 않은 긍정은 완전한 긍정이라 볼 수 없듯이 의심하여보고 해답을 얻지 못한 믿음은 완전한 믿음이라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지난시간에 이어 열왕기 몇 구절을 더 보며 부정을 통한 긍정을 도출(導出)해 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왕상11:6)
And Solomon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went not fully after the LORD, as did David his father.
만약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한 것이 맞는다면 이 내용은 진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고 했으므로 당연히 다윗이 남의 아내를 탐한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범하였다 할지라도 완전히 돌이키고 용서받아야 함)
그러므로 사무엘서에 기록된 다윗관련 내용에 담긴 뜻이 따로 있거나 아니면 성경이 진리의 책이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못하면 마치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전도를 하는 사람은 남의 아내를 범하여도 무조건 용서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믿으면 무조건 천국 간다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받았다 말합니다.
본인이 그렇게 믿고 싶다면 할 말이 없으나 지금까지 성경을 연구해본결과 결코 그렇지 않았으며 본인이 저질러놓은 죄는 본인이 감당해야함을 확인한바 있습니다.
다만 육신과는 별개의 성령이 내재함을 확신하고 육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게 되면 죽음이후에 성령의 영접을 받을수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요.
이렇게 되어야 다음 내용역시 오해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왕상11:7)
Then did Solomon build an high place for Chemosh, the abomination of Moab, in the hill that is before Jerusalem, and for Molech, the abomination of the children of Ammon.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왕상11:8)
And likewise did he for all his strange wives, which burnt incense and sacrificed unto their gods.
그모스의 뜻은 ‘정복자, 불’등으로 모압(아버지의 소생)과 암몬(친족, 근친)족속의 민족 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몰렉, 몰록, 밀감, 밀곰, 등과 같이 우상숭배자의 대명사로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높은 언덕에(in the hill that is before Jerusalem) 모압의 혐오감을(the abomination of Moab) 높은 장소로 지었다(build an high place) 했는데 이는 한마디로 표현해서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뜻입니다.(7절)
즉, 육신을 성전으로 만들지 못하고 물질적인 것들을 신으로 여기는 인식에 빠졌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8절에서 솔로몬이 이방아내들을 위하여(he for all his strange wives) 분향하고(burnt incense) 그들의 신을 위해 바쳤다 한 겁니다.(sacrificed unto their gods)
이는 성령으로서의 솔로몬이 육신을 입음으로 인해 육신의 선택에 따르게 된다는 말로서 우리역시 마찬가지 지경에 처해있음을 알라는 뜻에서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라도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생을 얻게 됩니다.
빛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지라도 자유의지로서 영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깨울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점을 열왕기는 말하고자 한거지요.
만약 우리가 이러한 해석을 낳지 못한다면 솔로몬이 지은 잠언이나 전도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는 잠언과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자가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그 누구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 빛이신 성령의 불씨가 심어졌다고 한다면 반드시 성경의 속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저 목회자들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읽어보고 의문을 가져보아야 이 같은 말도 이해하게 되는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Search the scriptures; for in them ye think ye have eternal life: and they are they which testify of me.
이 말씀을 육신적으로 받아들이면 꼼짝없이 예수의 육신 재림을 기다려야하지만 성령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게 됩니다.
성령이신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경은 오로지 예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말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 있으려면 당연히 성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성령으로 거듭남이 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여러분 모두의 내면에 성령이 들어있으며 여러분의 믿음에 따라 살아 날수도 잠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이 같은 점을 아시길 바라며 긍정(肯定)을 도출(導出)하는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