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라.

배가번드 2026. 10. 21.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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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心身)이 편안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지켜나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가난에 처해지고 육신이 병고에 시달리는 가운데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선지자들의 삶을 배우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고난(苦難) 중에도 믿음을 굳건히 지켜내었으며 심지어 순교도 불사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육적이고 물질적인 고통과 어려움들을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등상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무조건 고난이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 아니며 구분 지어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으로 베드로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벧전4:15)

But let none of you suffer as a murderer, or as a thief, or as an evildoer, or as a busybody in other men's matters.

 

그러나 살인이나 도둑질, 악행이나 다른 사람의 일에(in other men's matters) 끼어들기 좋아하는 자로서(as a busybody) 너희 중에 고통 받는 이가 없게 하라(let none of you suffer)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본인이 저질러놓은 일로 인해 받아야하는 고통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는 이가 고통 받게 된다는 부분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불가(佛家)에서는 인과의 개입으로 인해 업장을 가져온다는 표현을 합니다.

남에게 함부로 충고를 하거나 남의 일에 왈가왈부(曰可曰否) 하게 되면 그러한 일로인해 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받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쉽게 하는 뒷담화가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업장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무척 충격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고통을 받고 있다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달아야 됩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주어질 수가 없으며 반드시 심었기에 싹이 난거지요.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영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서 주어지는 고난은 다르다고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Yet if any man suffer as a Christian, let him not be ashamed; but let him glorify God on this behalf.

 

하지만 만약 크리스천으로서 누군가 고통 받는다면 그로 부끄러워 말게 하고(let him not be ashamed) 오히려(but) 이것을 대신하여(on this behalf) 그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라(let him glorify God) 했습니다.

똑같이 고통을 받는다 할지라도 육에 속한 이는 자신이 벌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므로 뭔가 모순되는 것 같지요.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공평한 것으로 결과를 달리할 뿐입니다.

영적인 길을 걷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 또한 무엇인가를 심은데 따른 결과물이긴 하지만 내가 저질러놓은 일을 갚는 기회가 왔다는 마음을 먹게 됨으로서 죄 사함을 받는구나 생각하여 고통이 감소됩니다.

더군다나 영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서 주어지는 고통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리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베드로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4:17)

For the time is come that judgment must begin at the house of God: and if it first begin at us, what shall the end be of them that obey not the gospel of God?

 

하나님의 집에서(at the house of God) 시작되어야만 하는(must begin) 심판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라고(For the time is come that judgment)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원인도 모른 채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영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서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알게 되었으므로 심판받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and if) 이것이 우리에게 처음 시작이 되면(it first begin at us) 하나님의 복음을 따르지 않는 그들의 마지막은 어떨까 했는데 이 말씀은 영적인 길을 걷게 되는 이는 당면하는 육신의 고통과 어려움들을 죄 사함을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여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지만 육에 속한 이들은 당면하는 고통과 어려움과는 별개로 자신영혼의 향방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벧전4:18)

And if the righteous scarcely be saved, where shall the ungodly and the sinner appear?

 

그리고 만약(And if) 의인이 구원받는 것이 드물다면(scarcely be saved)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와 죄인이(the ungodly and the sinner) 나타날 곳은 어디인가 했습니다.

이 말씀인즉, 하나님을 믿고 영적인 길을 걸었음에도 영생을 얻기가 어렵거늘 하물며 육에 속한이의 마지막이 어떻겠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걱정해야할 것은 육신의 고통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이므로 베드로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벧전4:19)

Wherefore let them that suffer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commit the keeping of their souls to him in well doing, as unto a faithful Creator.

 

선행으로(in well doing) 그에게(to him) 그들의(of their souls) 영혼을 보장받는(commit the keeping) 믿음직한 창조주로서(as unto a faithful Creator) 하나님의 뜻에 따라(according to the will of God) 그들이 그렇게 고통 받게 하라고(let them that suffer) 합니다.

여기에 언급되는 그는 성령과 하나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가 곧 충실한 창조주이자 하나님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내재하신 성령이 우리마음 안에 주춧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만 있지 않고 이웃사람들에게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안 된다면 성령과 하나 되지 못했다고 봐야하며 자신이 받았다는 구원도 의심해봐야 합니다.

빛이신 성령이 만물 안에 편재한다고 했으므로 이렇게 생각해야 당연한거지요.

따라서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순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내재하신 성령이 주시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같은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성령을 담지 않은 그릇은 이 세상에 없으므로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성령으로 거듭났다 말할 수 있으며 구원받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이웃사람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내가 짊어지고 갈 짐(십자가)이거나 풀어야할 숙제인겁니다.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내 알바 아니지만 진정 영생을 얻으려면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베드로전서 4장 강해를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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