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배가번드 2026. 10. 22.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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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의 길을 걷는 동안 간절하게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이것만은 피하게 해 달라 했는데 하나님은 잔인하게도 피하고 싶었던 일을 모두 겪게 만드셨지요.

훗날 알게 되었지만 죄 사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러한 일을 겪어야만 했던 겁니다.

내가 원했던 모든 것들은 육신의 편안함과 세상에 부합하는 것으로 정확히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육신의 기도와 영혼의 기도는 다름)

이미 내재하신 성령이 깨어나기 시작했으므로 더 이상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들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었으며 그때까지 사는 동안 지었던 죄 값을 치러야 함으로 마땅히 그러한 일들을 겪어야만 했던 거지요.

이러한 일은 96년 캄보디아 묵상 회에 참석했을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 포트가 건재했었고 그가 숨어있던 정글에서 내가 속한 명상단체가 묵상 회를 열게 되었는데 그때 캄보디아의 절기가 날개달린 개미가 땅으로 내려갈 시기인지라 명상을 하는 내도록 개미가 내 얼굴로 날아와 부딪히고 있었으며 날개를 떨쳐버린 후 땅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 몸 안으로 쉼 없이 들어오고 있었지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묵상하는데 일어설 수도 없었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어서는 안 됨으로 온몸으로 개미떼의 공격 아닌 공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개미들이 아래쪽으로 내려가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고 제발 팬티 안에만 들어가지 말라 속으로 기도를 했는데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마냥 속옷 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기에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했지요.

앞 동네 뒷동네 할 것 없이 기어 다니는데 정신 줄을 놓을 지경이었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하다 보니 견딜 만하기에 이번에는 콧구멍에만 들어가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에 기도를 하였고 거기에 따라 이번에는 다시 얼굴로 기어 올라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다행히 콧구멍안쪽이 뜨거웠던지 더 이상의 진입은 없었지만 이제 더 이상 기도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내 온몸을 버리는 심정으로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명상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명상 홀에 불이 켜짐과 동시에 그 많던 개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요.

명상보로 감쌌던 내 무릎위에 개미들의 날개가 낙엽처럼 쌓인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명상을 끝냈으며 한 가지 시험을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험의 끝이 아니었으며 예견과 예시라는 사실을 지난 세월동안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고통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괴로움이 주어졌고 심지어 고난과 고통 속에서조차 괴로움이 가중되는 일을 경험했던 겁니다.

이러한 가운데도 명상을 통해 빛과 소리로서 마음에 위로를 받을수 있었던 것은 내재하신 성령이 이미 깨어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하루 일상을 끝내고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할 때만 이러한 지복을 느낄 수 있었지만 워낙 자주 시련을 겪는지라 항상 빛과 소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숱한 시련과 고난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매순간 정신 줄을 놓을 수 있는 방법을 몰랐을 겁니다.

마치 내가 개미떼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육신과 정신을 분리시켰듯이 성령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세상의 어려움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지요.

이러한 까닭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I protest by your rejoicing which I have in Christ Jesus our Lord, I die daily.

 

내가 너희의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항변(抗辯)하겠다고 하며 이것은 (which)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Jesus our Lord) 내가 가진 것이며(I have) 나는 매일같이 죽는다(I die daily) 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마음에 위안을 얻고 즐거워하지만 진정한 거듭남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이런 말씀을 한 겁니다.

성령과 하나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졌다 했으니 바울역시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육신이 죽는다고 했던 거지요.

만약 바울이 한 번의 빛을 본 것으로 육신의 고통과 괴로움이 없어졌을 것 같으면 이러한 말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성령에 초점을 맞추고 육적인 면으로부터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언제나 말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은 모두가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육신이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우리의 위대한 영혼인 성령과는 무관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재하신 성령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고통과 괴로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은 이들이 있겠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만약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나를 괴롭힌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요.

그러나 내가 묵상 회에 참석했고 고요하고 경건함 속에서 명상을 마쳐야만 했듯이 우리인생의 목표를 영생으로 삼았을 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쓰레기차를 피하면 똥차가 와서 들이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반드시 내가 무엇인가를 심어놓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점을 모른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볼 수 없으며 신의 섭리조차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행동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이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일 겁니다.

이것이 안 되고 있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그저 본능에 가까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구도자의 앞날에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의 시험이 주어졌음으로 이겨내면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 티켓을 획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덧붙여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일반인들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 같을 수 없음에도 자꾸만 일반인들과 비교하여 평가를 하려들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지요.

육에 속한 사람은 물질적인 일을 목표로 삼고 있으므로 당연히 자신의 욕심대로 일을 처리하려 듭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길을 걷는 사람은 그들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무엇으로 거듭났다는 증거로 삼을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됩니다.

물론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무엇인가를 가지려 할 것이고 노력 또한 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쟁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줄만큼의 무엇인가를 쟁취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바 있지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5:39)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5:41)

 

이 내용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실천하기 힘들어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으려면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고 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보고 불가능하다 말하며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런 일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심은 것이 다르고 받아야할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해당하는 부분만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조차 받아들이지 못하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감당하기 어려워하지요

하여 예수께서는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셨으며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드리며 회상(回想)의 시간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