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머물고 있을 때 이민자이신 외삼촌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생신날이라 외가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 때 좋은 말씀을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지요.
어른의 입장에서 자식과 조카들에게 덕담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생일선물이 아닐까 생각해서 말씀드렸던 겁니다.
교회 장로님이시기도 하고 그 당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중이어서 생신과 함께 개척교회의 완성을 축하드리는 마음으로 한 말씀 청했는데 아무 말씀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시더니 한참 후에 성경책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외삼촌이 그날 하신 말씀은 창세기의 내용으로 외삼촌에게 이용당한 야곱의 이야기였는데 세상살이를 함에 있어 야곱처럼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말씀의 핵심이었지요.
그 당시는 호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농사일과 여행을 겸할 때라 성경을 볼 수가 없었기에 외삼촌의 말씀을 그저 도를 닦는다며 허송세월하는 조카가 안타까워 해주신 말씀이라 여기고 지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안정된 생활을 하며 다시금 성경을 보고 많이 놀라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에 놀랐던 겁니다.
구약의 내용이 비유와 은유로서 이루어져 있음을 알기는 했지만 엄청난 내용들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 거지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썼던 것이 “야곱의 아내들”과 “소돔과 고모라” 이었습니다.(야곱의 아내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나홀로목사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야곱은 외삼촌과 품삯을 두고 머리싸움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우선적으로 야곱의 외삼촌으로 알려져 있는 라반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라반의 히브리어 뜻은 “흰빛”입니다.
이미 몇 번에 걸쳐 말해주었다시피 성령과 하나 된 이는 빛의 몸을 가집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드러나지 않지만 육신을 벗어 던지고 나면 빛의 몸이 되어 영생의 하늘로 올라갑니다.
마태복음 17장 3절을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빛의 몸으로 나타나신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제자들이 깊은 묵상 속에서 영안(지혜안)을 열어 본 성령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나오는 라반은 하나님과 하나 된 야곱의 영적 스승이거나 내재한 성령으로 봐야 합니다.
이 같은 말이 지어서 하거나 사사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본문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창30:33)
So shall my righteousness answer for me in time to come, when it shall come for my hire before thy face: every one that is not speckled and spotted among the goats, and brown among the sheep, that shall be counted stolen with me.
라반이 가로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창30:34)
그 날에 그가 수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를 가리고 양 중의 검은 자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창30:35)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창30:36)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창30:37)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창30:38)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창30:39)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으로 라반의 양과 서로 대하게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창30:40)
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창30:41)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창30:42)
33절을 직역해보면 나의 정의로움이 내게 답하는 날이 오는데(my righteousness answer for me in time to come) 당신의 면전에서 나의 고용 때문이라고 합니다.(for my hire before thy face)
이 내용을 외삼촌과 조카사이의 대화로 보게 되면 한글성경의 번역이 어느 정도 맞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라반을 성령이신 하나님으로 보게 되면 해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을(라반) 위해 노력한 만큼의 성과물을 취함에 있어 아롱지고 점 있고 검은 것들만 취하겠다는 말이 되지요.
결국 나의 정의로움은 내재한 성령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며 여기에 등장하는 염소와 양은 영적 스승이 된 야곱이 이끌고 가야할 제자들을 비유한 겁니다.
그래서 짐승 앞에다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를 써놓았습니다.(he goats, she goats)
흠이 없이 완전한 자들은 하나님의 것이며 흠 있는 자들을 위해 영적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지요.
35절 뒷부분에 라반이 흠 있는 자들을 야곱에게만 준다하지 않고 아들들의 손에 붙인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36절에 사흘길이라 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으로 라반은 하나님과 하나 된 성령이고 야곱은 성령이 임하신 인자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이 성자인 야곱의 몸에 성령으로 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라반의 남은 양떼라 한 것은 완전치 못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로서 야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할 제자들을 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야곱이 나뭇가지들을 벗겨 무늬를 내고 물을 마시러 오는 양떼 옆에 세워 양들로 하여금 아롱진 것과 얼룩무늬 있는 새끼들을 생산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도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37~39절)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잘 자라고 성경상의 물은 생명을 뜻하지요.
버드나무로 번역된 바카의 뜻은 “눈물”입니다.
또한 신풍나무는 매년 껍질을 벗는다고 하며 히브리어 아르몬으로 표기되며 뜻은 “발가벗다, 벗기다, 드러내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양은 가르침이 필요한 제자들로서 생명수를 먹기 위해 야곱을 찾아오는 것이며 그들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스승은 제자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하고 하고 싶은 일은 마음껏 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진정 훌륭한 스승은 그렇지 않으며 그 반대입니다.
정말 성령이 드러난 스승이라면 제자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얼음 알같이 드러나게 만들어 눈물을 쏟게 만듭니다.
참회를 하도록 만들어야 업장이 녹아내릴 수 있으며 성령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해아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은 이런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야곱이 라반의 양과 자신의 양을 구분 짓고 특별하게 자신의 양만 보살피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40절)
야곱은 믿음이 강한 양들에게만 성령이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고 가르쳤던 겁니다.(41절)
믿음이 약한 양들은 보여주고 가르쳐 주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42절)
그래서 믿음이 없거나 약한 양들은 그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기에 라반의 것이라 기록한거지요.
이렇게 해서 간단하게나마 창세기 30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과연 이러한 해석과 외삼촌이 내게 해주신 말씀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는 이가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성령에 대해 아는 이는 이해할것이고 모르는 이는 여전히 오해할겁니다.
'짧은생각 긴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하게 하소서. (0) | 2023.09.16 |
|---|---|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0) | 2023.09.15 |
| 해오(解悟)와 확철대오(廓撤大悟). (0) | 2023.09.13 |
|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0) | 2023.09.12 |
| 예수님은 인류의 본보기. (0) | 2023.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