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경건은 금생과 내생의 약속을 부른다.

배가번드 2025. 12. 29.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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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연구하다보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은 동일하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들은 영적인 성과를 획득하기 위해 넘어서야하는 시험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지요.

지난시간 보았다시피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교회내부에서 의견이 달라져 있었으며 그로인해 많은 갈등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볼 때 세상적인 일들은 언제나 영생을 얻기 위한 디딤돌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전서 8장에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하셨던 겁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씀을 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라 빛이신 성령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일들과는 전혀 별개의 존재라는 점을 알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대단한 논리로 무장하고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영생을 얻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본인 생각에는 자신이 아주 정의로워서 세상을 구하고 있다 여기겠지만 그래봐야 이쪽 아니면 저쪽에서 목소리를 낼뿐이지요.

하여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할 것은 세상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성령과 하나 되신 바울의 말씀을 경청해보겠습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4:6)

If thou put the brethren in remembrance of these things, thou shalt be a good minister of Jesus Christ, nourished up in the words of faith and of good doctrine, whereunto thou hast attained.

 

육신적인 일로 시비(是非)를 가리기보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깨어나게 되면(이러한 것들을 기억하면) 육신과는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선한 교리와(and of good doctrine) 믿음의 말씀에(in the words of faith) 양육되어(nourished up) 예수그리스도의 선한목자가 될 것이라(be a good minister of Jesus Christ) 했지요.

요약하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성령이신 예수의 일을 하게 될 거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하루아침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4:7)

But refuse profane and old wives' fables, and exercise thyself rather unto godliness.

 

어리석은 미신과(old wives' fables) 불경함을 거절하고(refuse profane) 네 자신을 경건함에 이르도록 더욱 연습하라 했습니다.(exercise thyself rather unto godliness)

아직까지 예수의 기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어리석은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세상적인 일을 통해 경건에 다가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의 노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For bodily exercise profiteth little: but godliness is profitable unto all things, having promise of the life that now is, and of that which is to come.

 

육적인 연습은 약간의 이익이 있지만(bodily exercise profiteth little) 경건함은 모든 것에 유익하다고 하며(godliness is profitable unto all things) 그것은 지금생과 다음생의(the life that now is, and of that which is to come) 약속을 가져온다고(having promise) 했습니다.

이 말씀인즉, 인간적인 노력이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육적인 노력은 제한적이어서 사정과 환경에 따라 변질이 되기도 하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은 지금 생에도 다음 생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어 종교가 다르다면 거기에 따른 교리와 신을 섬기는 자세가 다름으로 인해 진리가 왜곡되기도 함으로 육신적인 노력은 그렇게 큰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물론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하나님이신 성령을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영생을 보장받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영생을 상속받는다고 하신 가르침과 동일한 것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다시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며 종교와 상관없이 빛이신 성령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딤전4:9)

This is a faithful saying and worthy of all acceptation.

 

이것은 믿음직한 말이며(This is a faithful saying) 모두가 수락할 가치가 있다고(worthy of all acceptation) 했습니다.

교회도 아니고 성당도 아닌 모든 이가 수락할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 했으므로 당연힌 빛이신 성령을 뜻합니다.

종교를 넘어서고 시공간을 넘어서 있는 이는 성령이신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과 같은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4:10)

For therefore we both labour and suffer reproach, because we trust in the living God, who is the Saviour of all men, specially of those that believe.

 

그러므로 우리는 수고와 비난을 모두 받는다고 합니다.(therefore we both labour and suffer reproach)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신 살아있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며 이는 특별히 믿는 이들에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specially of those that believe)

즉, 내재하신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우린 안에 하나님을 살게 하는 것과 같고 인자가 된다는 의미임으로 세상 죄를 짊어지는 어린양과 같은 겁니다.

이러함으로 수고와 비난의 고통이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거지요.

물론 이러한 일은 어디까지나 성령에 대한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령의 불씨를 심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에게 가장 선행되어야할 일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육신을 거부하고 빛이신 성령이 우리의 몸과 마음까지 관장하신다는 점을 확신하는 것만이 거듭나는 지름길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4장의 두 번째 시간을 마무리 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