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생으로 인도하는 생명길로 가자.

배가번드 2026. 1. 1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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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구역장님께서 전도 집회에 참석할거냐고 물었을 때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참석하게 된 것은 성령의 부르심으로 인해서입니다.

내육신은 분명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참석한다는 것이 불가하다 생각했고 새벽3시에 일어나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여겼으므로 못갈 것이라 말하였는데 성령께서는 참석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아마도 이 말을 듣는 이들은 내안에서 성령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는 주변사람들과 만물을 통해 내게 말씀을 해준다는 뜻입니다.

처음 구역장님 권유의 말씀에 거절을 했는데 불구하고 교회 아래층에 내려와 또다시 어떤 자매님이 권유의 말씀을 하셨고 아내가 승낙을 하게 된 것인데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서로 떨어져 있는 탓에 따로 권유를 받고 다른 대답을 했던 겁니다.

보통 이러한 경우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가지 못하는 쪽으로 고집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말씀을 머리에 이고 사는 나로서는 당연히 육신의 생각보다 아내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내 집 거실에는 이런 성경말씀이 걸려있지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말로는 내가 성경말씀을 머리에 이고 산다 해놓고 이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성경을 연구하는 자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생각해서 내육신의 명철보다 성령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겁니다.

내안에서 성령이 말씀을 해 주실 때도 있지만 육신은 언제나 쉽고 편안함을 선호하기 마련인지라 대부분의 경우 성령은 주변사람들과 사물들을 통해 나에게 말해 줍니다.

그래서 내 귀는 언제나 주변을 향해 열려 있으며 내입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움직이는 힘은 내안에만 거하시는 성령이 아니라 만물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점은 육과 영을 구분지어 놓고 영적이냐 육적이냐를 따져보는 겁니다.

육신의 편안함보다 항시 우선되는 것은 영적인 것으로 나를 움직이는 힘은 내두뇌가 아니라 만물을 움직이는 성령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내재하신 성령을 체험하였고 직접 대화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안에 머무는 성령일 뿐 입니다.

진정 하나님이신 성령과 함께 한다면 성령이 내안에만 거하게 해서는 안 되지요.

성경에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사람은 누구라도 하나님이신 성령을 담고 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담 안에만 성령이 들어있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다음말씀은 부정이 되지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요14:19)

Yet a little while, and the world seeth me no more; but ye see me: because I live, ye shall live also.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At that day ye shall know that I am in my Father, and ye in me, and I in you.

 

예수가 죽음으로 인해서 더 이상 육신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항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19절)

그러므로 예수가 2천 년 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것으로 성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육신은 비록 죽어서 더 이상 볼 수 없으나 진정한 우리의 영혼인 성령은 영원히 사는 존재임으로 나와 너희 모두의 안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20절과 같이 말해놓은 겁니다.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음과 같이 우리 모두는 예수 안에 있고 예수 또한 우리 안에 있다했으니 성령과 하나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그날이란 성령으로 거듭나는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령을 완전히 깨달았을 때를 뜻합니다.(세상멸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믿음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과 하나 된 예수는 이미 영생의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음과 동시에 이 세상에 만물을 통해 역사하고 있음으로 우리가 예수를 항상 영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려면 예수를 육신으로 인식해서는 안 되며 내안에만 거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은 만물을 통해 역사 하신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으므로 만물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내안에만 거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으며 내육신이 아니라 영혼을 이롭게 하는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전도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으며 우리 모두의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하는 겁니다.

이 또한 성경에 기록된 다음말씀을 실천하는 길이지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For he that soweth to his flesh shall of the flesh reap corruption; but he that soweth to the Spirit shall of the Spirit reap life everlasting.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며 이제 영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에 불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미 30년 전에 내재하신 성령을 만났으며 그동안 숱하게 많은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발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말씀을 듣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만물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며 성령을 위하여 심기 위함입니다.

이미 완전하신 성령의 내재하심을 안다할지라도 우리육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 작동합니다.

그러므로 얄팍한 지식으로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내생각과 의지와 반대되는 하나님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하는 겁니다.

다른 이의 경우는 내가 알 수 없으나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항상 초심자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매일같이 죽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이번 전도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금쪽같은 하나님 말씀을 찬송을 통해 듣게 되었음을 공유하며 첫 번째 시간의 보고서를 마칩니다.

 

 

1.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다

우리 몸에 매여있는 그 더러운 죄짐을

하나없이 벗어놓고 힘써서 들어갑시다

 

2. 이 세상의 많은 사람 큰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갈지라도 멸망 길로 끝나니

세상 헛된 부귀영화 모두 내어 버리고

주의 말씀 순종하여 그 생명길로 갑시다

3. 구원의 문 열렸으니 주의 공로 힘입어

주저말고 들어가서 생명길로 갑시다

구원의 문 닫힌 후엔 들어가고 싶으나

한번 닫힌 구원의 문 또 열려지지 않으리

<후렴>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 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길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