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상고해볼수록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무척 제한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들을 발견하게 되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글자도 틀리게 기록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왜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과 한글 성경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많은 구절에서 모순된 점을 발견하게 되고 얼마나 자의적인 해석을 했는지 알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진리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아닐 수는 없고 다소 모순된 점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 목적한 바를 틀리게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번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류일 뿐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는 모자람이 없음)
다만 성경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믿음아래 놓인 사람들이 자칫 잘못하면 불신(不信)의 강에 스스로를 빠트릴 수도 있겠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이 자신의 삶에 접목이 되게 해야 하며 말씀이 삶을 통해 실현이 되어야합니다.
목사님이 되었건 신부님이 되었건 복음을 전하는 이의 말씀이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겁니다.
하여, 다른 이의 경우에는 내가 알 수 없으나 내가 살아온 길과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디모데 전서 6장의 두 번째 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만족함으로 순종하면(godliness with contentment) 큰 이익이라고(great gain) 합니다.
지금 이 말씀은 지난시간의 연장으로 진리의 결핍함에도 본인이 경건함을 얻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앎에 있어 다소 모자람이 있고 자만하는 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만족하여 하나님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본인에게 큰 이익이 있을 거라는 뜻이지요.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2천 년 전에도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하여 받아들였음을 알게 됩니다.
성경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성경을 오해하고 있었으므로 영어성경을 보거나 히브리어나 헬라어 성경을 본다 해서 진리를 득했다 볼 수 없으며 진리는 문자에 있지 않으며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성경말씀이 실현되어야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6:7)
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is world, and it is certain we can carry nothing out.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입니다.
이 세상을 올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고 우리가 들고 나갈 것이 아무것도 없다(we can carry nothing out)했으니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인생살이에 처음 들어선 젊은이들로서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역동적인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즐길 거리가 너무나 많음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기까지는 무척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오래된 영혼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서 본인 삶에 적용을 합니다.
아무리 욕심을 부려봐야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
And having food and raiment let us be therewith content.
음식과 입을 것을 가졌으니(having food and raiment) 우리가 그것에 만족하게 하라고(let us be therewith content)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다는 말씀으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먹고 입을 것을 주신다는 말이 아니라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먹고 입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요.
이것이 말은 쉬우나 그리 쉬운 것이 아니며 반드시 영적으로 고양된 인식을 갖추어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직 세상을 즐겨야하는 인생은 욕심을 버릴 수 없으며 좀 더 많이 가지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바울의 다음말씀을 들어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But they that will be rich fall into temptation and a snare, and into many foolish and hurtful lusts, which drown men in destruction and perdition.
부자가 되려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가미에 빠지고(fall into temptation and a snare) 많은 어리석음과 상처받는 욕망에 빠지며(into many foolish and hurtful lusts) 이러한 것들은(which) 사람들을 파멸과 타락 속에 잠기게 한다 했습니다.(drown men in destruction and perdition)
세상의 모든 환란과 고통이 욕심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보다 좀 더 많이 가지고 싶기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며 그러한 마음자체가 성령의 입장에서는 유혹이고 올가미로 작용하는 겁니다.
또한 욕심을 부리다보니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며 그로인해 자신의 마음이 상처를 받게 되지요.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화가 나게 되고 그로인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게 되므로 그것이 곧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어 쌓이면 결국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들어가게 만들며 종국(終局)에는 자신의 영혼을 영벌에(perdition) 처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욕심은 살아서는 본인의 육신에게 상처를 주고 죽어서는 영혼에게 지옥을 선사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For the love of money is the root of all evil: which while some coveted after, they have erred from the faith, and pierced themselves through with many sorrows.
돈을 사랑하는 것은(the love of money) 모든 악의 뿌리라고(the root of all evil) 합니다.
이것은(which) 어떤 이가 탐내는 동안에(while some coveted after) 그들을 믿음으로부터 실수를 범하게 하며(they have erred from the faith) 많은 슬픔으로(with many sorrows) 자신스스로를 찔러 관통하게 한다(pierced themselves through)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하신 적이 있지요.
육에 속한 이들은 당연히 돈을 사랑하거니와 영에 속한 이는 도를 더욱 사랑할거라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시간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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