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어머니가 멀쩡하실 때 찾아 뵌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은 족히 지난 것으로 아는데 그날 저녁 뜻밖의 방문객에 놀랐던 적이 있지요.
5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남성한분이 술이 취한 채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문을 두드렸는데 알고 보니 전직수녀님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가톨릭 신자였던 분이었습니다.
이모님의 영향으로 가톨릭신자 생활을 오래하시던 어머니가 여동생의 권유로 개신교로 개종을 하였는데 주변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목사님말씀을 실천하려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겁니다.
어쩌다 수녀님이었던 사람이 교우와 부부 연을 맺게 되었는지 속사정도 모른 채 무작정 잘못된 신앙생활을 잘 청산했다며 자신의 교회로 와서 말씀을 들으라 했으니 이난리가 난 것이며 욕을 얻어먹게 된 거지요.
나로서는 무조건 죄송하다는 말만 해야 했는데 정작 어머니는 자신은 그다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억지로 문을 닫으며 그분을 쫒아내 버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잘한 것 같지가 않아서 내심 속이 상했는데 다음날 함께 동생 집을 방문해서는 기어코 어머니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도저히 함께 있을 수가 없어서 집밖으로 나와야만 했지요.
자식으로서 어떻게 어머니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냐는 말에 동생까지 동의를 하고 나서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어머니와 동생 생각에는 내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 그 남성분을 나무라야했다 여겼나 봅니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에 속이 상해 동생 집을 나왔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고 해도 상대편의 입장을 고려해가면서 해야 할 것이고 상대방이 싫다면 자제를 해야 하는 것인데 무조건 교회 목사님이 하라고 했고 하나님의사명이라 여겼기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이해를 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언쟁을 통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기에 이러한 속마음을 추스르고 사과를 하고 말았지만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지요.
영적인 길을 걷기 위해 잘나가던 사업을 망하게 해 달라 빈 탓에 어머니 집까지 날려먹은 불효자로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닌 것을 맞다하고 편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인용한 목사님 말씀이라 할지라도 실생활에서 이웃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이웃이 싫어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난 10년 넘게 성경연구를 해본결과 성경 어떤 곳에서도 이웃이 싫어하더라도 말씀을 전하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고 있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0:30)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and with all thy strength: this is the first commandment.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0:31)
And the second is like, namely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There is none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막10:32)
And the scribe said unto him, Well, Master, thou hast said the truth: for there is one God; and there is none other but he: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기관이 예수더러 마스터가 진리의 말씀을 하셨다 한 겁니다.(Well, Master, thou hast said the truth)
이러함으로 우리가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라 해도 함부로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목사님 앞으로 끌고 가 상담을 시키는 것은 고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만 말씀을 들어보자 해놓고 듣고 난 후 상담을 받아보라는 것은 무슨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나로서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궁금하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궁금하게 여기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도 이상하며 평소에 내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왜 목사님에게 고백하고 점검을 받아야하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도대체 그런 권한을 누가 부여했는지가 궁금하며 무슨 배짱으로 자신들이 그런 권한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합니다.
본인들은 본적도 없는 성령을 내가 보았음에도 나는 언제나 그들 앞에 죄인이었고 그들은 항상 고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서겠지만 정작 나는 그들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고 내주장을 해본적도 없습니다.
내 자식에게도 하지 않았던 일을 내가 당함에도 묵묵히 그들을 대했던 것은 예수님의 다음말씀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Then came Peter to him, and said, Lord, how oft sha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till seven times?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2)
Jesus saith unto him, I say not unto thee, Until seven times: but, Until seventy times seven.
사복음서중에 마태복음만 이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액면대로 볼 것이 아닙니다.
그저 칠십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신 일을 온전히 깨달을 때까지 용서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7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가리키며 오늘날 우리가 쓰는 달력의 일주일이 그래서 생긴 겁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해야하며 우리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용서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한다는 뜻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거지요.
지면 관계상 올리지는 않았지만 예문뒤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 같은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지난 10년 넘는 세월을 인내하는 심정으로 견뎌온 것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이라 여깁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생각하기를 내가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라 떠들어도 나에게만 적용해야한다 여기고 있으며 혹여 누군가 동감을 한다면 혼자만 간직하고 여러 사람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 부탁하고 있지요.
괜히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을 뿐 아니라 누구 앞에도 나서기 싫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내가 유명해지고 싶어 성경을 연구한다 말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으며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며 내게 주어진 역할에 따라 맡은바 직분이라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
하여 인연 있는 이들만이 공유하였으면 하오니 오해 없이 받아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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