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복음 고통의 분담 자가 되라.

배가번드 2026. 1. 2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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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라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은 것인데 막상 얻으려하면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지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眞理)의 뜻을 사전은 참된 이치와 참된 도리라 풀어놓고 있는데 이를 문자로만 인식하고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있기에 득하기가 어려운겁니다.

참된 이치란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야하고 세상 어느 누구에게라도 적용이 되어야하며 간단하고 쉬워야하는 것은 물론 주변에서 항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주간단하게 진리는 인과응보라는 말에 함축 시킬 수가 있으며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앉은 성령으로 표현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리를 왜곡되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육신에 국한(局限)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진리는 영원하며 육신의 옷을 벗어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에 사람이 자신의 양심을 속이며 살아가게 되고 결국에는 빛이신 성령은 더욱 깊이 잠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잠들어 있는 성령을 깨워주는 역할을 하며 그를 일러 선지자라 부르기도 하고 메시아라 부르기도 하며 인자로 칭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며 아주 간단한 법칙과도 같습니다.

존재자체로 완벽한 하나님이 빛이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고 있음을 인식하기만 하면 우리는 지금당장 성령과 하나 되어 바울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1:6)

Wherefore I put thee in remembrance that thou stir up the gift of God, which is in thee by the putting on of my hands.

 

그러므로 나는 너로 기억 속에서(in remembrance) 하나님의 선물을(the gift of God) 각성시킨다고 합니다.(stir up)

그리고 나의 손을 얹어놓음으로 인해서(by the putting on of my hands) 이것은 네 안에 있다(which is in thee) 했지요.

지난시간에도 말했듯이 바울은 성령의 입장에서 이러한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손을 얹는다 했지만 이는 단순하게 터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이 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가르침을 주고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성령으로 교감이 이루어져 불씨가 심어지게 된다는 것을 안수로 표현하고 있는 거지요.

일단 성령의 가르침을 믿게 되면 성령의 불씨가 우리의 마음 안에 심어져 활활 타오르게 됨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기억 한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1:7)

For God hath not given us the spirit of fear; but of power, and of love, and of a sound mind.

 

하나님께서 두려움의 영을(the spirit of fear)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기(God hath not given us) 때문이라 했고 그러나 권력과 사랑(but of power, and of love) 그리고 건전한 정신이라(of a sound mind)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일단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면 성령의 불씨가 우리 안에 심어져 타오르게 되지만 죄로 인해 극심한 두려움에 떨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게 된다면 죄 많은 사람들은 그 당장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타락한 성직자가 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을 하셨을 경우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난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but of power, and of love), 그리고 건전한 정신에(and of a sound mind) 깃든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진정으로 사랑 할 줄 알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성령이 자신 안에서 깨어나면 마치 하나님이 된 것처럼 군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렇지가 않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Be not thou therefore ashamed of the testimony of our Lord, nor of me his prisoner: but be thou partaker of the afflictions of the gospel according to the power of God;

 

그러므로 너는 우리 주를 증언함과(of the testimony of our Lord) 그의 포로 된 나를(of me his prisoner) 부끄러워하지 말라 했으며(Be not thou therefore ashamed)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according to the power of God) 복음 고통의 분담 자가(partaker of the afflictions of the gospel) 되라고 합니다.

바울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포로 되어 증언한다 했으니 성령과 하나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영으로 부활했음을 깨달아 자신이 성령과 하나 되었으므로 자신의 가르침 또한 성령에 의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성령이 깨어난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따른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을 분담할 각오를 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재하신 성령을 체험하거나 깨달아 안다고 해서 높은 자리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짊어지는 어린양이 되어야함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정확히 일치되는 겁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막10:29)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But he shall receive an hundredfold now in this time, houses, and brethren, and sisters, and mothers, and children, and lands, with persecutions; and in the world to come eternal life.

 

29절의 나는 예수의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가리키며 복음은 진리를 뜻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성령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임으로 둘은 하나입니다.

즉, 영원 속에 거하는 빛이신 성령을 깨닫는 것은 육적이고 물질적인 일들과는 무관함을 알아야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30절에서 다시 이생에서 백배나 돌려받는다 했으니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이는 성령이 믿음을 가진 모든 이들 안에서 깨어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깨닫게 되면 가르침 안에서 서로 성령으로 연결되어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겁니다.

이를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예수를 위해 자신의 부모형제와 재산을 버리고 나면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이 더 많이 오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기에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 말해놓은 거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 또한 같은 가르침을 주셨으니 성령의 불씨가 심어진 이들은 조금의 의심이나 오해 없이 받아들일 것이며 다음 생에서는 영생을 무조건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시간을 기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