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배가번드 2026. 1. 2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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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거나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주어질 때는 행복감으로 날아갈 것만 같지요.

그러나 그 행운이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이면 얼마가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발바닥이 심하게 아팠는데 누군가의 권유로 침을 맞고 낫게 되면 한동안은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이 아프거나 또다시 아파지면 그 행복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또 어떤 이가 수십억 복권에 당첨되어 날아갈 것 같은 행복감에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할지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를 당해 그 돈이 없어지게 되면 그 실망감은 처음 행복을 느꼈던 이상으로 찾아옵니다.

이처럼 이세상것으로 인해 주어지는 행복은 그 생명이 얼마가지 못하며 살아있는 동안 느끼는 감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깨달음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영원하며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게 되는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Therefore the Lord himself shall give you a sign; Behold, a virgi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사7:15)

Butter and honey shall he eat, that he may know to refuse the evil, and choose the good.

대저 이 아기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사7:16)

For before the child shall know to refuse the evil, and choose the good, the land that thou abhorrest shall be forsaken of both her kings.

 

14절 내용을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라 교회에서는 가르치고 있지요.

그러나 이 내용은 영적인 길을 걷는 구도자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처녀는 순수하고 고귀한 구도자의 마음상태를 가리키며 잉태한다는 것은 성령의 불씨가 심어진다는 뜻이고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 이름을 임마누엘로 할 것이라(shall call his name Immanuel)했는데 그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봐야 하는 겁니다.(성령으로 거듭났다는 점에서는 예수라고 해도 무방함)

그런데 15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악을 거절하고(refuse the evil) 선을 택할 줄(choose the good) 알게 되어(may know) 엉긴 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라고 했으므로 이는 선악을 구분 짓는 것과 엉긴 젖이나 꿀을 먹는 것이 동일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버터라고 적고 있지만 히브리어로는 엉긴다는 뜻의 ‘헤마’로서 엉긴 젖으로 번역한 것이 옳다고 봐야 합니다.

엉긴 젖이란 우유가 굳은 것으로 버터나 치즈를 가리키는데 우유가 변형되었다는 뜻에서 저주라고 봐야 하며 꿀은 말 그대로 축복을 가리키는 거지요.

우유가 순수하지 못하여 변질되었으므로 상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버터나 치즈는 실질적으로는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즉, 선이라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선이 아니요 악이라 하지만 절대적인 악이 아니듯이 축복과 저주 또한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깨달음의 정수로서 누구나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 같은 점을 가슴으로 느껴보려면 전쟁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우리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서로 선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선한 쪽에 서게 되면 상대방이 악하고 상대가 선하면 내가 악해지는 것이 이세상의 이치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며 상대계인 이세상의 법칙입니다.

절대계인 신의 영역과 인간세상을 구분 짓는 바로미터로서 육신을 가진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겁니다.

그렇지만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이러한 운명을 넘어서게 되어 선과 악의 실체를 깨달아 축복과 저주조차 동일하게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가 그저 주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16절에 아이가 악을 거절하고 선을 택하기를 알기 전에 네가 혐오하는 땅은(the land that thou abhorrest) 그녀의 두 왕들을 버릴 것이다(shall be forsaken of both her kings) 했는데 이는 마음 안에서 선악의 경계가 허물어져야한다는 뜻이지요.

육의 왕과 영의 왕이 버려진다는 것은 영육간의 합일을 가리키며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 육신에(혐오하는 땅) 각인된 이원성이 마음 안에서 무너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달달 외워 안다고 말해봐야 쓸데없는 일이며 자신의 삶에서 이러한 점이 묻어나야 하는 겁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육신적인 편안함이 주어질 때만 감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올 때조차 축복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며 진정으로 거듭나야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내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로운데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고 인식한다는 것은 육신을 가지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19:24)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19:25)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But Jesus beheld them, and said unto them, With men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하나님과 함께하면(with God) 모든 것이 가능하다 했으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내재함을 안다고 한다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삶에서 이렇게 사는 이는 극히 드뭅니다.

분명 성령이 내재함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우리 안에서 이원성의 합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며 더욱 겸손해야함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아직도 과거에 내가 당한 상처가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고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인해 내 죄가 용서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떳떳하고 당당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싫어하고 불편하게 생각한다면 내주장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과거 선각자들은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 한 것인데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인내한다는 뜻이지요.

본인이 진정 내재하신 성령을 안다면 상대방의 철없는 행동까지도 이해를 하여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줍니다.

또한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 내가 받았던 그 모든 상처가 하나님께서 나를 성장하기위해서 주신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과거에 누군가 나를 때렸더라도 용서하게 되며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용서받고 구원받았다 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상처 준 모든 이를 먼저 용서할 수 있는지를 보며 구원의 척도로 삼아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거니와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요.

일상으로 돌아가면 먼저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미시길 바라며 긴 휴가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