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너희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다.

배가번드 2026. 1. 28.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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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휴식의 시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므로 성경을 탐구(探究)하는 우리의 여정을 재개(再開)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딤후1:1)

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will of God, according to the promise of life which is in Christ Jesus,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Jesus) 생명의 약속에 따라(according to the promise of life),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by the will of God)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이라(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말하고 있으므로 자신 안에 내재하신 성령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했듯이 바울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본인이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밝히고 있지요.

이와 같이 돌려서 말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의 육신에 초점을 맞추어 우상숭배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덮어쓴 이유와 같은 겁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지금부터 하는 말이 성령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음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봐야 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렇게 봐야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후1:2)

To Timothy, my dearly beloved son: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

 

친애하는 아들 디모데에게(To Timothy, my dearly beloved son) 우리주예수와 아버지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과 평화가 있으라고(Grace, mercy, and peace) 했으니 바울이 성령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디모데의 뜻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이므로 지금부터의 말씀 모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공경하는 이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액면대로 보자면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학자 누구도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이라 말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인 아들, 즉 제자로 여겼거나 영적인 길을 걷는 구도자 모두에게 전하는 가르침이라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 이러한 바울의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습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딤후1:3)

I thank God, whom I serve from my forefathers with pure conscience, that without ceasing I have remembrance of thee in my prayers night and day;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딤후1:4)

Greatly desiring to see thee, being mindful of thy tears, that I may be filled with joy;

 

순결한 양심은(pure conscience) 성령을 가리키며 조상으로부터(from my forefathers) 자신에 이르기까지 섬긴다 했으니 이 또한 성령을 가리키는 겁니다.(3절)

그리고 밤낮으로 나의기도 속에서(in my prayers night and day) 중단 없이(without ceasing) 내가 너를 기억한다고(I have remembrance of thee) 했으므로 이 역시 성령의 입장에서 말씀한다는 점을 알게 합니다.(성령은 영원함)

마찬가지로 4절에서 네 눈물을 염두(念頭)에 두어(being mindful of thy tears) 너 보기를 몹시 원한 것은 내가 즐거움으로 채워줄지 모른다고(I may be filled with joy) 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구도자가 눈물로서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이 함께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며 믿음의 크기에 따라 성령의 은총이 주어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情況)을 볼 때 이 내용은 어느 한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공경하는 구도자 모두에게 주는 가르침이 분명합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이와 같은 나 홀로 목사의 주장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When I call to remembrance the unfeigned faith that is in thee, which dwelt first in thy grandmother Lois, and thy mother Eunice; and I am persuaded that in thee also.

 

네 안에 있는(in thee) 꾸밈없는 믿음을 기억하여(to remembrance the unfeigned faith) 내가 부를 때(When I call) 이것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거주 하고 있었다고(which dwelt first)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네 속에도 마찬가지로 있음을 납득시킨다 했지요.(I am persuaded that in thee also)

로이스의 뜻은 ‘유쾌함’이고 유니게의 뜻이 ‘유명한 정복자’ 임을 볼 때 이 내용은 바울이 성령의 입장에서 하신 것이 맞습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여 자신의 육신을 완전히 정복하게 되었을 때 한없는 즐거움이 주어짐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등장시킨 것은 성령을 잉태하여 거듭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성령이 대를 이어 지속된다는 점을 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령(바울)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디모데) 안에 내재함을 납득 시킨다는 표현을 한거지요.

즉, 우리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지혜를 허락하시어 우리의 진정한 자아인 성령을 깨닫게 하신다는 겁니다.

아마도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해석에 토를 달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해석이 아니라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이 되고 유니게는 아내가 되며 로이스가 장모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학자 누구도 나처럼 여기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학자는 디모데의 엄마와 할머니로 여기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가 확인했다시피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아들이라 한 점은 비유로서 받아들이고 지금 나온 내용은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입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성령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 가르침은 진리의 교리라고 볼 수 없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의 하늘에 오를 수 없게 만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 했으므로 진리가 아니면 자유로울 수 없는 거지요.

내가 아무리 말을 해주어도 본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만 진리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사통팔달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경에는 에덴동산에 네 가지 강이 흘렀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비손은 “자유롭게 흐르다. 쏟아진 물”이라는 뜻이고 기혼의 뜻은 “뿜어내다, 솟아나다”이며 힛데겔의 뜻은 ‘큰 강’이고 유브라데는 “흐르다, 넓은 강”이라는 뜻으로 모두가 생명이 흐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와 같이 사방으로 흩어진 강이 근원에서는 일치가 되고 있으므로 진리의 근본은 하나라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