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다.

배가번드 2026. 2. 1.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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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시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함께 숙소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조차 모르게 주무시는 가운데 돌아가셨지요.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며 사셨으니 후회 없는 삶을 사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평상시 언행을 보면 어떻게 살아왔을지 충분히 알 수가 있기에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오래전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 분이 있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내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았습니다.

함께 밤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각자 숙소로 돌아갔었는데 갑자기 돌아갔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을 방문했을 때 갑자기 한기가 들고 무서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30년도 훨씬 지난일이지만 지금도 그러한 생각은 머리에 남아 있으며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편안할 수 있다면 그 영혼은 좋은 곳을 가게 될 것이지만 죽기 싫어 몸부림을 치거나 누군가에게 끌려가야 한다면 그야말로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안 죽어 보고 어떻게 아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꿈속에서 세 번이나 죽어보았으며 지옥도 세 번이나 다녀왔기에 너무나도 잘 압니다.

이러한 경험을 해보았기에 잘되던 사업을 망하게 해 달라 빌었던 것이고 영적인 길을 걷기 위해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던 거지요.

보통의 경우에는 그저 사람이 죽으면 죽는가 보다 하겠지만 막상 내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생각을 달리하게 되어있습니다.

멀리서 부고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죽는다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죽음은 예정된 일이며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누군가는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죽는 것도 정해진 일인가를 말하며 따지겠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영적으로 보게 되면 모든 일은 정해진 일이며 주어진 운명과도 같은 겁니다.

이러한 일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는 일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10:30)

But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all numbered.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31)

Fear ye not therefore, ye are of more value than many sparrows.

 

참새 한 마리를 잡아 팔더라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으므로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 뜻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참새는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 운명이 놓여있다 했으므로 하나님을 알던 모르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30절에서 너희머리의 그 머리카락이(the very hairs of your head) 모두 세어졌다(all numbered) 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31절에서 많은 참새보다 너희가 더욱 가치 있으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인즉,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보다 믿음아래 놓인 한사람이 더욱 귀하다는 겁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은 빛이신 성령으로서 삼라만상을 보살피고 있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욱 특별하고 귀하다는 뜻이지요.

이러하므로 우리가 살아생전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내면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을 목전에 두어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믿고서 말씀대로 살아왔기에 두려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말만 했을 뿐 하나님을 마음 안에 살게 하지 못하고 말씀에 부합하여 살지 못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명확하여 한 치의 오차가 없으며 누구의 인생에도 적용되는 겁니다.

이것은 종교를 달리한다해도 다를 바가 없으며 성령이 빛이라는 사실에 입각하면 세상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에게 내재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불성(佛性)이라 표현하고 기독교에서는 신성(神性)이라 말하고 있으므로 두 가지 모두가 신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또한 불교에서는 궁극의 세계를 아미타불의 세계라 하는데 이는 무량한 광(光)이라는 뜻으로 아미타불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한한 수명을 가진 자, 한량없는 광명을 가진 자’인데 이는 기독교의 인자와 같으므로 아미타 세계는 영생의 하늘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면 영생의 하늘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를 알게 되며 그저 말로만 영생을 얻었다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무턱대고 영생의 하늘로 가야겠다는 욕심을 부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먼저 알아야할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깊숙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깨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단번에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되게 하여 성령과 하나 될 수도 있지만 해보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내말과 행동과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는 거지요.

아무리 교회에서 구원을 준다하고 받았다 할지라도 막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서 내안에 거한다 생각하게 되면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지도 알게 되어 매일같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바울이 매일 죽는 이유를 알게 됨)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이 들어야 정상이며 그때부터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에 진입한거로 봐야 합니다.

이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말을 들을 기회가 흔하지 않으며 어쩌다가 한두 번 듣기는 하여도 올곧게 받아들이지 못하여 중도에 포기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다가 주변의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종교를 가져볼까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요.

그러므로 살아생전 종교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본인을 위해 좋은 것이며 매일같이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후세계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영혼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사후에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여 구천을 떠돌게 됩니다.

그러나 살아생전 영의 세계를 아는 이와 인연을 맺어 놓았다면 그의 인도로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처럼 된다는 말은 아니며 본인의 행위에 따른 영의 세계를 가게 되는 거지요.

참고삼아 말하지만 살아생전 지은 죄가 큰 이는 천국의 빛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도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하다 어두운 곳을 찾아 들게 됨으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3:19)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전3:20)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상세한 내용을 단시간에 말할 수는 없으나 가벼운 영혼은 위로 올라가고 무거운 영혼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망자의 안녕을 두 손 모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