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지혜는 남을 이용하지 않는다.

배가번드 2023. 9. 1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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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여행할 때 유기농 농사하시는 베트남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같은 명상단체에 속한분이기도 하고 영주권을 얻게 해줄 수 있다기에 찾아뵙게 되었는데 퍼스에 살고 있는 이분을 만나기 위해 해안 길을 따라 호주 절반 이상을 여행해야만 했지요.

하루 1천키로의 길을 며칠 동안 주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간 중간 시골마을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고 카라반파크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여행을 다녔는데 호주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전경도 막상 내가 살아보니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로 소똥냄새가 코를 찔렀고 파리가 몸서리쳐질 정도로 많았는데 농사짓는 분들이 얼굴가리개를 할 정도로 사람에게 달려드는 겁니다.

게다가 유기농 농장에서 일을 해보니 여기저기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을 보게 되었는데 쥐가 사방에서 들락거리고 있었고 유기농 비료에서 생기는 구더기를 먹기 위해 새들이 모여들고 있었지요.

농장 주인이 불살생을 계율로 하는 명상단체에 속한 분이라 궁여지책으로 쥐덫을 설치해서 쥐를 퇴치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죽이지는 않고 수키로 떨어진 곳에다 버리고 오는데 워낙 많은 수가 번식을 하는지라 감당이 안 되었던 겁니다.

어른 팔뚝만한 쥐가 농장에 마련된 창고를 점령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식사할 때도 주변을 돌아다닐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부부가 힘들게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30년 넘게 농장 일을 했고 이제는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싶기에 농장을 맡아서 운영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내가 당첨(?)된 거지요.

보트피플로 알려진 베트남인들이 호주에서 농장을 경영할 정도면 그야말로 뼈 빠지게 노력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이분은 등허리가 휘어져 있었습니다.

보통 시골 노인네들이 밭일을 너무 많이 해서 허리가 앞으로 구부러지는데 이분은 옆으로 휘어져 있는 겁니다.

자녀들 모두 학업을 마치고 한사람은 의사로 한사람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성공한 인생으로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농장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그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확인하게 되었지요.

2008년 당시 호주농장의 일반적인 임금이 시간당25불이었고 불법 체류자들의 경우 12불이었는데 이분은 그 절반도 되지 않는 인건비를 지급하겠다고 나서기에 놀라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영주권을 얻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해도 이것은 수행자로서는 해서 안 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럴 것 같으면 처음 나와 통화를 할 때부터 조건을 제시해야만 했었고 전후 사정을 소상하게 말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단지 영주권을 얻게 해줄 수 있다는 말만 했고 상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했지요.

수천 키로의 길을 차를 몰고 와야 하는 사람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농장을 맡겨놓고 자신들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만 생각했던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분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의 경험이 이 사람의 인식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보트피플로 남의 나라에서 살아야하는 설움이 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거지요.

얼마나 많은 부당한 대우와 비합리적인 처사에 고통받아야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으며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마음을 모질게 먹고 일주일 만에 보따리를 싸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처음 명상수행을 시작할 때 이미 물질적인 세상과는 이별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물질적으로 성공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구태여 내가 그 먼 호주에 가서 고생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요.

몰론 영주권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그들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부당함을 감수해가면서까지 호주에 눌러 살고 싶지는 않았던 겁니다.

얄팍한 생각으로는 일단 영주권을 얻고 난 후 다음 일을 생각하면 된다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과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을 지혜롭다 생각지도 않았기에 주저 없이 영주권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선택을 했습니다.

훗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알게 된 일이지만 알고 보니 나 말고도 호주 사람이 3년 동안이나 이용당했다는 겁니다.

애인과 함께 두 사람이 농장을 물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3년간 봉사한 끝에 그만두었다는 거지요.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알 수도 없었고 그저 느낌으로 이분들과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차라리 영주권을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임금문제만을 협상했을 것인데 너무나 계산적인 그분의 머리회전이 나를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진정으로 동료 수행자라면 농장과는 관계없이 영주권을 내어줄 수도 있을 것인데 그것을 무기삼아 사람을 이용하려는 행태는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퍼스를 떠나오기 전 그분들의 말씀을 통해 신의 음성을 들었던 겁니다.

그분이 얼토당토 않는 조건을 말하는 것은 나더러 떠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는 말이며 그분의 머리와 입을 통해 신이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해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부인께서 말씀하시길 자신들은 30년 이상 호주에서 살았지만 퍼스를 벗어나본 적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했으며 나처럼 오랜 기간 동안 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꿈도 꾸어보지 못했다며 부러워하셨지요.

결국 자식농사도 성공했고 수십 만 불이 넘는 유기농 농장을 소유한 이가 부러워하는 삶을 내가 살고 있음을 확인했던 겁니다.

확실치도 않는 미래의 유기농 농장주인보다 자유로운 내 삶이 더욱 값어치 있음을 그분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는데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만 한 달에 백만 원도 쓰지 못해 벌벌 떠는 사람들보다 내 인생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매일같이 오늘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는 부자들보다 매일같이 주어지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가난한 내 인생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어떤 이들은 내가 유기농 농장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억지로 이런 말을 하는 거라 여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호주에 머물렀더라면 더욱 좋은 인생길이 펼쳐졌을 거라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때 이미 성경에 나와 있는 이 말씀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In all thy ways acknowledge him, and he shall direct thy paths.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7)

Be not wise in thine own eyes: fear the LORD, and depart from evil.

 

24시간 명상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범사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내가 걸어가는 그 어떤 길에도 하나님이신 성령이 길잡이가 되어 주셨기에 내 인생에 있어서 후회라는 것은 없지요.

내육신의 지혜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타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입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던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누군가 나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를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멀어지라는 말을 성령께서 하시는 것과 같은 지라 조용히 그와의 인연을 정리할 뿐이며 어떤 면에서는 고맙기까지 합니다.

그때 그분이 얼토당토 않는 조건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으며 내가 느끼는 지금의 행복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언제나 나는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별빛 주셔 감사하니 달빛주시고

달빛 주셔 감사하니 햇빛주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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