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 보았다시피 하나님을 경건하게 여기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경건한 마음에 성령이 깃들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로 봐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말은 쉽게 하지만 성령을 깨닫고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구원받는다는 말은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며 영생은 하나님 우편에 앉는다는 말과도 같으므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일부 목회자들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볼 수 없다 말하지만 이 같은 말은 성경을 오해한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영원하다는 점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본인들이 빛이신 성령을 영접한일이 없으므로 핑계거리를 만드는 것에 불과한거지요.
내 주변을 보면 빛이신 성령을 경험한 이들이 무척이나 많으며 세상 적으로 보더라도 현시대에 하나님을 대면한 이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그러나 알아야할 것은 진정한 성령의 빛을 보았다면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낮은 곳으로 임하게 된다는 겁니다.
전체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자신이라는 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만물 안에 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무소유를 주장하게 됩니다.
이 같은 일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노자의 도가사상(道家思想)입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진정으로 도를 깨우치려면 도에 대한 정의부터 제대로 내려야 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도(道)가 아닌 것이 없으므로 어떤 틀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이 말씀은 하나님이 편재하고 무소부재하다는 말과도 상통하며 빛의 특성과도 같습니다.
빛은 만물 안에 공히 존재하며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본인이 못 느끼고 있고 듣고 보지 못할 뿐입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노자는 어떤 종교나 단체를 만들지도 않았지만 현대인들에게 깨달음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사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이용하여 득세를 하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면 하나님의 진리(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러분 가운데는 이러한 이들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고린도후서 7장의 나머지 부분을 상고해보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고후7:13)
Therefore we were comforted in your comfort: yea, and exceedingly the more joyed we for the joy of Titus, because his spirit was refreshed by you all.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고후7:14)
For if I have boasted any thing to him of you, I am not ashamed; but as we spake all things to you in truth, even so our boasting, which I made before Titus, is found a truth.
13절에서 너희의 위로함속에서(in your comfort) 우리가 위로함을 받았다고(we were comforted) 했으니 성령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재하신 성령은 육신의 위로함을 통해 위로받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디도의 즐거움으로 인하여(for the joy of Titus)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극도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exceedingly the more joyed we) 한 겁니다.
디도의 뜻은 “공경하다”이므로 공경하는 마음은 성령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뒷부분에서 그의 영혼이(his spirit) 너희 모든 이로 말미암아(by you all) 생기를 되찾게 된다(was refreshed) 했는데 이는 공경하는 사람의 영혼은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디도라는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공경하는 사람들의 마음모두가 디도라는 뜻이며 그러한 마음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만든다는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14절에서 너희를 그에게 자랑한 것이 있다면(boasted any thing to him of you) 부끄럽지 않다(I am not ashamed) 했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서(in truth) 너희에게 모든 것을 말했듯이(we spake all things to you) 우리의 자랑조차(even so our boasting) 내가 디도 앞에서 진리를 발견한 것과 같다고(I made before Titus, is found a truth) 합니다.
즉,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사람의 마음은 진리를 발견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이어지는 말씀도 오해 없이 받아들이게 되며 완벽한 성령의 가르침이 됩니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고후7:15)
And his inward affection is more abundant toward you, whilst he remembereth the obedience of you all, how with fear and trembling ye received him.
그의 내면의 애정은(his inward affection) 너희를 향해 더욱 풍부해지고(more abundant toward you) 너희모두의 순종과(the obedience of you all) 얼마나 너희가 두려움에 떨며(how with fear and trembling) 그를 영접하는지(ye received him) 기억할거라고 했습니다.(whilst he remembereth)
디도 내면의 애정이란 성령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만들었으므로 여기에서의 디도는 성령으로 거듭난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게 되면 내면에서 하나님이신 성령이 되살아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정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말과 행동을 함에 있어 떨리게 되지요.
그러나 어떤 이는 자신이 빛을 경험한 것이 육신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 생각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듭니다.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하나님처럼 떠받들어야한다 생각하므로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령은 어느 누구의 개인의 소유일수가 없으며 한곳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구속시키려하고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성령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고후7:16)
I rejoice therefore that I have confidence in you in all things.
모든 것들 안에서(in all things) 너희를 확신한다고(I have confidence in you)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성령의 입장에서 하신 것으로 만물 속에 담겨있는 성령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통해 확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 홀로목사는 타인들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며 오로지 각자가 성령으로 거듭나기만을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며 7장 강해를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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