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도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아무래도 무리가 될 것 같아 평일에는 피하려 했지만 내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몇 분의 강력한 바람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된 거지요.
과연 토요일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시험이 다가왔다 생각하며 이겨내려고 합니다.
사실 나 혼자 집회를 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나와 함께하는 다수의 많은 이들이 내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겁니다.
성령으로 연결이 되었다면 당연히 영적인 흐름 속에서 동일한 느낌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집회에 참석하게 된 이유도 강력한 성령의 연결로 인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제대로 느낄 수 없겠지만 갈수록 이러한 점은 선명하게 인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육신으로는 분명히 가지 않으려 했고 이미 참석하지 않는다 말까지 했지만 퇴근 후에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참석을 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성경 말씀을 머리에 이고 살기 때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Trust in the LORD with all thine heart; and lean not unto thine own understanding.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In all thy ways acknowledge him, and he shall direct thy paths.
정확한 햇수는 알 수 없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교회를 나가고 있는 것 같으며 구원을 받아들인(?)지도 십 수 년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그때 구역식구들이 선물을 한 액자에 새겨진 것이며 지금도 거실에 걸려있지요.
비록 적극적으로 교회를 다니지는 못하고 있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한 참석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생활상에서 성경말씀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육신의 생각보다는 내적인 느낌을 따라 참석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막상 참석을 하고보니 목사님의 말씀이 나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관점(觀點)이 다르다는 것을 또다시 확인하게 되었지요.
다만 동일한 것은 목표점은 하나라는 것이며 그것이 영생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목사님이 인용하신 성경내용과 나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여, 인용하신 요한복음부터 보겠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Search the scriptures; for in them ye think ye have eternal life: and they are they which testify of me.
성경을 연구하라고 했으며(Search the scriptures) 그들(성경말씀)안에서(in them) 너희가 영생을 얻게 됨을 생각하고(ye think ye have eternal life) 그 말씀들이 나를 증언한다고 합니다.(they which testify of me)
이 말씀인즉 구약속의 모든 가르침이 그리스도예수를 증언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됩니다.
어째서 구약속의 그 많은 선지자들의 말씀이 예수를 증언하는 것과 같은 건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렇게 되려면 예수가 육신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당연히 빛이신 성령으로 인식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시공간을 넘어서 예수가 성령으로서 아브라함의 안에도 모세의 안에도 거할 수 있으며 다윗안에도 거하게 됩니다.
목사님은 이 말씀을 예수를 믿는 것이 곧 영생과 이어진다는 뜻에서 이 말씀을 인용했겠지만 정작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보다 성령으로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거지요.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자신을 믿어야 거듭난다고 하지 않았으며 물과 성령으로 나야(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하나님왕국에 들어간다(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했습니다.(5절)
물은 생명을 뜻하며 성령과 동일한 겁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생명을 생동케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빛이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6절에서 육신과 영은 별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전도자의 다음말씀을 올곧게 이해하게 됩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3:19)
For that which befalleth the sons of men befalleth beasts; even one thing befalleth them: as the one dieth, so dieth the other; yea, they have all one breath; so that a man hath no preeminence above a beast: for all is vanity.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전3:20)
All go unto one place; all are of the dust, and all turn to dust again.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the spirit of the beast that goeth downward to the earth?
목사님은 이 말씀을 짐승에게는 혼은 있지만 영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나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곤란 합니다.
하나님께서 숨결을 불어넣어 만물을 생동케 하셨으므로 성령을 담지 않는 그릇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숨결을 불어넣었으므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사람의 중요함을 설명하기 위해서일뿐 짐승 안에도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신 생명력이 있는 겁니다.
이러한 점을 깨닫게 하기위해 예수님은 물(생명)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왕국에 들어간다 한거지요.
전도서를 보다시피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는 동일한 호흡이 있다 했으니 동일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짐승과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 같은 성령이 들어있는데 어째서 짐승과 동물이 그렇게나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할까 생각하게 되지요.
여기에 대한 해답역시 전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내재하신 성령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짐승 같은 짓을 하다가 그 영혼이 땅으로 내려간다는 겁니다.
이래서 사람이라 해서 다 같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 해서 다 같은 짐승이 아니라 말합니다.
이렇게 목사님과 내가 보는 성경은 관점을 달리하지만 목표점은 영생인지라 동행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토요일까지 완주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나 간절한 마음은 이 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 거라 말씀드리며 집회 첫째 날의 보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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