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세 번째 날에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설명하기 위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로서는 이미 성령의 내재하심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므로 신기할 것이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자주 들어야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믿어지는가 싶었지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주일 만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믿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평생을 성경 들여다보는 일에 몰두하는 목회자들조차 아직 성경에 담긴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데 일반인들이 일주일 만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완전히 믿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집회에 참석하는 목적은 성경말씀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목사님이 인용하신 성경말씀을 상고(相考)해보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창11:2)
And it came to pass, as they journeyed from the east, that they found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and they dwelt there.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4)
And they said, Go to, let us build us a city and a tower, whose top may reach unto heaven; and let us make us a name, lest we be scattered abroad up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목사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인류가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퍼졌다는 주장을 하기위해 이 내용을 인용하셨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액면대로 보아서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온 세상에 퍼져 언어가 달라진 이유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흩어놓았기 때문이라 했지만 4절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움직이고 있지요.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만들어(let us make us a name) 땅에 흩어지는 것을 면하자 했으므로 이미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의 움직임을 사람들이 먼저알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됨으로 이 내용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사람의 육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되었으며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인 동시에 영생의 하늘에 오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절에 동쪽이란 해 뜨는 곳으로 성령을 뜻하며 사람의 몸이 영육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거지요.(시날의 뜻: 두강사이)
그래서 동쪽으로부터 여행을 함으로서(they journeyed from the east) 평지에 거주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and they dwelt there)
즉, 성령으로서의 존재가 땅에 거주하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야 이어지는 내용역시 오해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창11:7)
Go to, let us go down, and there confound their language, that they may not understand one another's speech.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9)
Therefore is the name of it called Babel; because the LORD did there confound the language of all the earth: and from thence did the LORD scatter them abroad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복수로 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let us go down)
빛이신 성령이 사람들 몸 안에 있다는 뜻에서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하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여(confound their language) 그들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했습니다.(may not understand one another's speech)
완전한 빛(성령)의 몸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전락했다는 뜻으로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가 구분 짓고 있는 겁니다.(빛의 세계에는 언어가 필요 없음)
그래서 9절에서 바벨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뜻은 “신의 문, 혼돈”으로 문 안쪽은 영이고 문 바깥쪽은 육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벨탑 사건을 실지로 일어난 일이라 주장하며 증명하려 드는것은 성경을 오해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다음내용도 속뜻을 알게 됩니다.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창11:26)
And Terah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Abram, Nahor, and Haran.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창11:32)
And the days of Terah were two hundred and five years: and Terah died in Haran.
데라의 뜻은 ‘야생염소’이며 아브람의 뜻은 ‘존귀한 아버지’, 나홀은 ‘살해자’ 하란의 뜻은‘통로’입니다.(26절)
이러한 점을 대입하여 보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지 못하고 있던 데라가 칠 십 세가 되어서야 존귀한 아버지로서 육신을 죽이고 관문을 통과했다는 말이 됩니다.
70이란 완전한 창조주 하나님을(창조의 숫자7 완전의 숫자10) 가리킴으로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앞뒤가 맞아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32절에서 이백오세가 되어서 하란에서 죽었다는 것도 담긴 뜻이 따로 있습니다.
2는 증인의 숫자인 동시에 피조물인 인간을 가리키는 숫자이며 5는 하나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0은 완전의 숫자로서 아무리 많이 붙여도 의미가 같은 거지요.
그러므로 32절 말씀은 제멋대로 살던 사람이(데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어떤 통로를(하란) 통하여 육적속성을 죽이게 되었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이 말을 믿지 못하겠지만 오늘 언급된 성경내용의 단한구절만 보더라도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성경교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복수로 표기될 수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성경지식이 얼마 얄팍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읽는 목적이 영생에 있는 것이고 성경을 통해 얻어야할 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나를 벌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껏 살아본 결과 행동이나 말을 잘못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꾸짖어 주셨으며 내 길을 바로잡아 주셨지요.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에는 철저하게 책임이 따르고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벌 받을 각오를 해야만 합니다.
단한순간도 하나님의 보호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앎으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사람 영혼의 미래가 달린 일이므로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거니와 잘못된 길로 인도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 연유로 노동일에 지치고 힘든 가운데 집회에 참석하는 목적은 단한가지입니다.
잘못된 성경해석을 바로잡아주고자 하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부디 이러한 점을 이해하고 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으며 원래 다루려했던 이사야 41장은 보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집회가 모두 끝난 후에 다시 한 번 상고할 것을 약속드리며 세 번째 시간의 보고서를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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