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죄를 짓기도 하며 더러 인식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기도 합니다.
상황에 몰리다보면 죄가 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서울에 처음으로 올라와 취직을 했을 때 이런 일을 겪었던 적이 있지요.
모처럼의 휴일이었는데 부사장님께서 춘천으로 수금을 가자는 겁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지방에서 갓 올라와 아는 이도 없던 터라 놀기 삼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몇 군데 수금을 마치고 춘천막국수를 맛있게 얻어먹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터미널에 사람들이 엄청 모여 있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늘 그렇듯이 휴일이라 터미널에는 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길게 늘어선 줄 맨 끝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례대로 차를 타려면 두어 시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있었는데 다음날 새벽에 출근을 해야 하는지라 부사장님이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갔다 반복을 하더니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잠시 후 어딘가를 다녀온 부사장님이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기에 갔더니 갑자기 내손을 끌고 차에 올라타 버렸지요.
얼떨결에 올라타긴 했는데 정말 못 마땅했으며 어떻게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치기를 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표를 검사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새치기를 허락받은 모양으로 다음날 출근을 걱정했던 겁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으며 그저 새치기한 사실에 화가 나서 창밖만 바라보며 앉아 있었지요.
많은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비춰졌을까를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으며 버스에 탄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리를 욕하는 것 같았기에 무척 화가 나는 겁니다.
이런 내 마음 탓인지 소양강댐을 지나올 무렵 차가 요동을 치더니 서버렸지요.
펑크가 나는 바람에 차가 강으로 추락할 뻔 했으며 그야말로 기적처럼 버스가 길 가장자리에 겨우 멈춰 섰습니다.
결국 두 시간 넘게 추위에 떨어가며 기다려야했으며 새치기한 사실을 후회하는 부사장님의 참회(慙悔)소리를 들어야 했지요.
인과응보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받은 겁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단순한 새치기 사건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심지 않은 것이 나타나지는 않으며 원인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본인이 모르고 있을 뿐 이러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며 일어나야만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 만약 이러한 인과의 법칙이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큰일이 난겁니다.
성경은 이런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 하지 말라(잠3:11)
My son, despise not the chastening of the LORD; neither be weary of his correction: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2)
For whom the LORD loveth he correcteth; even as a father the son in whom he delighteth.
11절을 직역해보면 여호와의 징계를 경멸하거나(despise not the chastening of the LORD) 그의 바로잡아줌을 싫증내지 말라입니다.(neither be weary of his correction)
이 말인즉 우리가 당면하는 고통과 괴로움은 우리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뜻이지요.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주는 것이며 그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여호와가 그를 사랑하기에 바로잡아주는 것이라 했습니다.(For whom the LORD loveth he correcteth)
하나님 품안에 들어있는 이들을 아들과 같이 사랑하기에 징계를 한다는 말입니다.(as a father the son in whom he delighteth)
이러한 사실을 40년 전의 나는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도 이미 하나님의 징계는 주어지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항상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거지요.
우리들은 언제나 남 탓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오해하고 잘못 평가 한다 여기고 오로지 남 탓을 하며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쁩니다.
나아가서는 신을 원망하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내가 잘못 살아온 탓이며 억울한 일을 당할 짓을 한 겁니다.
비록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도 모르게 죄를 짓는 일이 허다한 것이 세상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는 착한의도로 행위를 했지만 결과가 나쁘게 돌아올 경우도 있기에 성경은 결과가 좋지 못하면 악하다 말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나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주어지는 것은 내가 지은 죄를 갚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시 한 번 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요.
특히 똑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그 일을 통해 내가 얻어야할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하나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안에 주를 모시기에 당치 아니하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내 병이 곧 나으리이다.
또한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못하는 내 죄에 대해서도 벌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신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있다는 증거인지라 감사하며 남에게 잘못한일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지은 죄를 내가 갚는 길은 이길밖에 없다는 사실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일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까닭에 언제나 내게는 축복과 저주가 하나인 겁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기뻐할 자들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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