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잘 먹고 잘사는 법.

배가번드 2023. 7. 3.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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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삶의 질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내 어머니를 떠올려보면 과연 삶의 질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잘 먹고 잘사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이 아닐까합니다.

그런데 잘 먹고 잘산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애매하기 그지없지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지라 무엇을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인지 딱히 정하기가 어려우며 잘사는 것도 환경을 중시여기는 사람도 있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기에 이것이 잘사는 것이라 고정되게 말하기 어려운겁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의 방식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 것도 문제는 있으며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입맛에 당기는 음식을 먹다보면 비만이 오게 되고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 되지요.

잘산다는 의미가 먹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주거문제를 포함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자유스러움과 자연환경을 중시 여기게 되면 외로움과 고독함이 찾아올 것이고 편리한 도시생활을 잘사는 것으로 여기게 되면 통제되고 제한되며 절제된 생활방식을 요구받게 됩니다.

이래저래 생각해본 결과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서 만족하는 마음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언제나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처음에는 만족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환경과 현실에 익숙해지다 보면 또 다른 불편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신을 가진 이상 이 같은 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상태로 인해 세상의 발전이 일어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이 사람의 육신은 물론 정신적인 면까지 발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지나친 욕구와 욕망의 실현은 또 다른 문제점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내가 상처받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세상살이를 함에 있어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내가 상처받고 힘들어 지는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육신이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을 미리 살다간 현자들은 하나같이 욕심을 버리라 말합니다.

성경은 아예 육적인 일을 악으로 규정지으며 욕구와 욕망을 짐승의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육신보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지요.

아마도 물질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나라도 더 얻게 되는 법인데 욕심을 버리라는 것은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목적이 사람의 영혼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만드는데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육신의 생명은 불과 칠팔십년에 불과하지만 영혼이 영원히 살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욕구와 욕망을 버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의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런 일에 대해 정확하게 길을 제시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And take heed to yourselves, lest at any time your hearts be overcharged with surfeiting, and drunkenness, and cares of this life, and so that day come upon you unawares.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21:35)

For as a snare shall it come on all them that dwell 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Watch ye therefore, and pray always, that ye may be accounted worthy to escape all these things that shall come to pass, and 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방탕함으로 번역된 overcharged 과충전의 뜻을 가진 단어이며 surfeiting또한 초과한, 지나침, 과잉 등의 뜻입니다.

지나친 욕심은 영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술취함은(drunkenness) 세상에 도취되어 실체적 진실을 볼 수 없는 인생을 비유한거지요.

세상살이를 함에 있어 욕심을 과하게 부리면 영혼에 업장으로 작용하여 지혜롭지 못하게 됨으로 마음이 둔하여 진다 표현했으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덫과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날에 해당하는 snare은 덫과 유혹을 뜻하는 단어로서 시험을 의미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자신이 욕심을 과하게 부리게 되면 영적인 시험에 빠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스스로가 조심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take heed to yourselves)

결정적으로 36절을 보면 값어치 있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로부터 탈출하려면(ye may be accounted worthy to escape all these things) 인자 앞에 서야한다 말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욕심이 생기는 이유는 물질적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함으로 인자 앞에 서도록 기도하라 한거지요.

인자는 예수님처럼 성령이 드러난 분을 뜻하지만 문맥의 흐름상 본인스스로가 인자가 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합니다.

즉, 성령이 내재함을 알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함에 있어 내안에 성령이 있음을 안다는 것은 내육신이 성령 앞에 서는 것과 같은 것이며 성령이 주관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재한 성령을 깨달은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육신이 허수아비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몸이지만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며 육신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함을 알았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이러한 점을 깨닫게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것일지는 본인에게 달렸으므로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내 삶의 행태가 이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