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지옥은 천국을 위해 존재한다.

배가번드 2023. 9. 4. 04:02
728x90

어떤 회사 사장님이 총각시절 시골마을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부대찌개가 생각이 나서 찾아 헤맸다고 합니다.

워낙 가난하게 살았던 사장님이 어느 날인가 지친 몸을 이끌고 식당을 찾아 들었는데 인심 좋은 식당사장님이 추가로 밥도 찌개도 무료로 주셨던 거지요.

강도 높은 막노동을 한 뒤라 유달리 밥맛이 좋았고 찌개도 너무나 맛있었기에 정신없이 퍼먹었는데 이를 안쓰럽게 본 식당주인이 더 주셨던 겁니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사장님이 젊은 시절에는 일에 빠져 사느라 찾아보지 못하고 있다가 성공을 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찾아보기로 작정했습니다.

막상 찾아가보니 이미 이사를 가버렸고 그날 이후부터 부대찌개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하면 찾아가곤 했지요.

그런데 아무리 소문이 요란하다 해도 막상 먹어보면 그 당시 먹었던 맛이 나지 않더라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여기저기 찾아 헤매느라 때를 놓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허름한 식당을 찾게 되었고 그 집에서 부대찌개를 시켰는데 맛이 기가 막혔던 겁니다.

젊은 시절 먹었던 부대찌개와 같지는 않았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의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게 된 거지요.

이날 비로소 사장님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부대찌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이 맛있는 부대찌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인터넷 서핑 중에 발견한 것인데 이글에 담긴 댓글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이는 군대시절 철모에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그 맛을 못 잊어 철모를 구해다가 몇 번이나 끓여먹어도 그 맛이 나지 않았다며 라면이 맛있었던 것은 힘든 병영생활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힘들게 훈련을 받고 난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으로 여러 전우들과 함께 야외에서 철모에다 끓어먹었던 라면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다 해도 비교불가하다는 결론을 얻었던 거지요.

이와 비슷한 경험을 나 역시 해마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지만 여름에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오면 가끔씩 무알콜 맥주를 마시곤 하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입니다.

일반 맥주는 술이어서 마실 때만 시원할 뿐 마시고 나면 열기가 더해져 좋은 기분이 오래가지 않으며 대부분 과음으로 이어져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무알콜은 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뒤탈이 없으니 그야말로 천국의 기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무알콜 맥주도 평상시에는 별맛이 없으며 반드시 힘들게 땀 흘리고 난후라야 제 맛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에어컨바람도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무더울 때면 천국을 느낄 정도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지요.

특히 냉증이 있는 나로서는 에어컨바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웬만하면 틀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고 난후 집에 들어와 에어컨바람 앞에서 무알콜 맥주를 마시면 천국이 따로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천국인겁니다.

지옥을 세 번이나 다녀온 나로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내말에 반대할 것이며 천국의 상황은 이세상과는 다르다 말하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옥을 가보면 이세상자체가 천국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으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천국임을 말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성경에 이런 일에 대해 기록해놓았겠습니까.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

Wherefore if thy hand or thy foot offend thee, cut them off, and cast them from thee: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life halt or maimed, rather than having two hands or two feet to be cast into everlasting fire.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9)

And if thine eye offend thee, pluck it out, and cast it from thee: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life with one eye, rather than having two eyes to be cast into hell fire.

 

지옥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지옥을 세 번이나 다녀온 사람으로서 이 말은 너무나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 내용을 두고 천국이 있나 없나를 따지기보다 자신의 평상시 언행이 지옥에 떨어질 만큼 나쁜 것이 아닌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세상보다 더 좋은 천국이 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인데 그것을 문제 삼아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시간낭비인거지요.

나같이 지옥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이 세상 자체가 천국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일 뿐 누군가의 환상 속 천국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흔히들 천국의 상황을 걱정근심이 없고 늘 즐거움이 가득한곳이라 말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걱정 근심이 없다는 말은 평화롭다는 말과 이어지며 평화로움은 단조로움과 지루함으로 이어집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간간히 맛보는 평화로움은 그자체로 천국이 되지만 고(苦)가 없는 평화는 그 즐거움이 결코 길지가 않습니다.

서두에서도 보았다시피 생활이 넉넉해지고 여유로우며 평화로워지자 지루함이 찾아와 산해진미가 그 맛을 잃어버렸지요.

이러한 일을 빛과 어둠에 대비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확실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둠을 싫어하고 밝은 빛을 좋아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빛은 어둠이 없으면 존재가치를 상실한다는 겁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대낮에 전깃불을 아무리 밝혀봐야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작은 촛불하나가 온방을 밝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빛과 어둠은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옥과 천국도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자동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는 거지요.

상대성을 지닌 모든 것들이 이러하며 한쪽이 없어지면 나머지홀로 존재할 수가 없기에 이 세상을 음양의 조화로 만들어졌다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어둠을 위해 빛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을 위해 지옥이 존재하는 것이고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 마귀의 시험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걱정 근심이 없고 늘 즐거운 곳이 저 높은 곳에 가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이 세상에서조차 이렇게 살면 됩니다.

번뇌는 보리라 했으니 세상의 고통과 괴로움은 지혜를 여는 열쇠와도 같은 거지요.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감당해야할 모든 일들은 밝은 빛인 성령을 드러내게 만들어주는 재료와도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힘들게 일 한 후 마시는 무알콜맥주를 감로수와 같이 만들어주는 역할을 힘든 노동이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 땀 흘리며 일하는 순간조차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님은 천국을 이렇게 묘사한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눅17:20)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노동의 강도가 셀수록 퇴근 후 느끼는 즐거움의 크기가 커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천국을 매일 경험하는 셈입니다.

사는 동안 천국을 경험하는 방법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 안에 있음을 믿는 이들은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