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가 심하게 눌릴 때가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이런 일을 자주 겪었는데 술을 심하게 마시고난 후면 어김없이 가위에 눌리곤 했지요.
이러한 느낌이 너무 싫어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 끝에 예수님께 기도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성당을 간간히 다닐 때인지라 성경공부를 제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신부님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과 하나 되신 분인지라 기도하면 들어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난 후 술을 진탕마신 다음날 또다시 가위에 눌렸고 예수님께 기도를 했더니 쉽게 해결이 되었지요.
그다음부터는 예수님만 외쳐도 해결이 되고 나중에는 “예”자만 나와도 해결이 되었으며 후에는 예수님생각만 해도 가위가 풀리는 겁니다.
95년에 술과 고기를 끊어버리고 나니 기도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이름만 외워도 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 몇 해가 지난 후 명상 중에 신기한 체험을 한 적이 있었지요.
97년의 어느 날인가 명상센터에서 철야기도를 하는 중에 갑자기 몸이 앞으로 눌려져 숨을 쉴 쉬가 없게 된 겁니다.
예수님을 불러도 소용이 없고 부처님을 불러도 소용이 없었으며 스승님을 찾아도 소용이 없기에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하고 생을 포기하려 마음먹었을 때 부드러운 기운이 내 몸을 받쳐 올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 이유를 살피지도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구도자로서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영적인 길에 접어들게 되면 우선당장은 외부에서 신을 찾기 마련입니다.
본인 안에 영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에서는 신령한 외부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종교인들이 교회나 절에 가서 기도를 하며 자신들의 믿음에 대상을 향해 기도를 하게 되는 거지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기도가 통하지 않게 되며 갈수록 힘든 나날이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마치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스스로 걸어야하듯이 어른이 되려면 겪어야하는 성장통과 같은 겁니다.
주변을 보면 성장을 해서도 부모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이들을 통해 우리자신의 신앙심을 살펴야만 합니다.
예수님도 여기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이 말씀만 보면 세상에 힘들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예수님께 맡기면 될 것 같습니다.
숱한 교회에서 이 말씀을 문 앞에 붙여놓고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지요.
그런데 이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of me; for I am meek and lowly in heart: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예수님의 멍에를 지라고 합니다.(Take my yoke upon you)
그리고 예수님을 배우라고 했으니(learn of me) 닮으라는 말이며 같아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세상 죄를 짊어지는 것이니 성령을 깨달아 하나님과 하나 되라는 말이지요.
이렇게 되었을 때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다 말하고 있습니다.(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결국 28절과 29절을 종합해보면 처음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짊을 짊어져주는 듯이 보이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처럼 세상 죄를 짊어지는 역할을 맡아서 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즉, 구도의 길을 처음 걷기 시작할 때는 예수님이(성령이신 하나님) 짐을 대신 짊어져주지만 성장하면 본인 스스로가 자기 짐을 져야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같아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Then said Jesus unto his disciples,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는 말은(let him deny himself) 육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성령에 초점을 맞추라는 뜻입니다.
육신이 자신의 본모습이 아님을 알아야 성령이 깨어날 수 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성령이 드러나 하나님과 하나 된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당연히 이래야만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본인이(육신으로서의 자신) 죄인 됨을 알아야한다는 뜻이지요.
십자가형은 그 시대에 최고의 형벌임으로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스스로가 죄인 됨을 깨닫는 동시에 자신의 죄업을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되새겨 봐야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신 거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어야 성령이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겁니다.
본인이 저질러놓은 업장도 처리를 못해 남에게 신세를 져야한다면 언제 성령과 하나 되겠다는 건지 깊이 반성해야합니다.
영적인 길에 접어든지 십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누군가의 힘에 의존하려 든다면 내재한 신으로부터 혼이 나야 마땅하지요.
서두에서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영적 스승의 힘에 의존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을 하게 되고 자신의 내재한 신이 깨어납니다.
이러한 일도 내가 사사로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께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Even the Spirit of truth;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because it seeth him not, neither knoweth him: but ye know him; for he dwelleth with you, and shall be in you.
또 다른 보혜사라고 했으니 이는 예수처럼 동일한 빛으로 된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한다고 말씀하셨지요.(16절)
성령은 곧 진리의 영이어서 세상에 속한 이는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the world cannot receive)
왜냐하면 물질 세상에 속한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두뇌로 인식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because it seeth him not, neither knoweth him)
하지만 예수님제자들처럼 영적인 길을 걷는 이는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성령이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역사하시고 성령의 불꽃을 전해 받은 제자들의 내면에서 피어났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인생길이 험난한 이는 신이 축복을 내리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고통이 세상의 고통과 둘이 아님을 아는 이는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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