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이 길을 인도하신다.

배가번드 2023. 10. 16.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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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도 어김없이 교회를 나갔습니다.

성령께서 동생을 통해 교회를 나오라 권하시기에 주저 않고 나갔지요.

특별한 약속이 있거나 따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동생이 권하는 것은 언제나 내게 성령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와 같은 일은 나와 인연이 있는 분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명상단체의 동료수행자들이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이들이 나에게 연락을 해오면 그 또한 성령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지요.

물론 이때도 선약이 없다면 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리긴 하지만 종교에 관계없이 성령은 언제 어디서나 임하게 되며 어떤 경우에도 성령은 내가 걸어갈 길을 제시해줍니다.

이와 같은 일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Trust in the LORD with all thine heart; and lean not unto thine own understanding.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In all thy ways acknowledge him, and he shall direct thy paths.

 

in the LORD를 “하나님 안에” 라고 해석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안에”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어도 되고 하나님이 내안에 있음을 믿어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이 내용이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을 뜻한다면 그저 하나님을 믿어라하면(Trust the LORD) 됩니다.

그런데 구태여 in the LORD라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겁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은 내안에만 머물지 않으며 우리 모두에게 머물게 되는 거지요.

내가 하나님의 품안에 있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허용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중요합니다.

나의 모든 행사를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했으며 모든 방향을 제시할거라고 한 겁니다.(he shall direct thy paths)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하게 여겨야할 점은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한 부분입니다.(lean not unto thine own understanding)

이 말씀인즉 두뇌의 작용을 뜻하는 것으로 육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한 겁니다.(Trust in the LORD with all thine heart)

여기에서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영혼이 머무는 심장을 뜻하는 것입니다.

heart를 사랑이라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신의 속성이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성령이라 해석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보면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성령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우리가 어떤 일을 놓고 판단을 할 때 그것이 두뇌의 작용인지 성령이 길을 제시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는 질문을 할 겁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7)

Be not wise in thine own eyes: fear the LORD, and depart from evil.

 

직역해보면 네 자신의 눈을 현명하다 여기지 말라고 했으며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악으로부터 떠나라 입니다.

스스로의 시각으로(육안)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육신을 벗어나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이 자신 안에 있음을 믿으라는 말이며 본인의 진정한 주인은 육신이 아니라 영이라는 사실을 알라는 말이지요.

이렇게 되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기준점은 성령이 됩니다.

지금 당면한 문제를 받아들임에 있어 영적이냐 아니냐가 내행동을 결정짓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일이 영을 이롭게 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기준으로 삼게 된다는 겁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역시 모든 판단을 두뇌에 맡깁니다.

하지만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항상 결과에 순종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고 가정했을 때 다른 누군가에게서 교회가자고 연락이 오면 당연히 먼저 연락을 해온 사람과의 약속을 지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거나 변경이 되어 교회를 나가게 됩니다.

일반인들은 약속이 최소 되면 기분이 나빠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나가게 만들기 위해 약속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여깁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어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음식을 먹게 해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 같은 일은 내가 의도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내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상황이 변화를 일으키며 내가 교회를 나가게 만드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은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주에는 동생과 함께 교회를 나가야지 했는데 갑자기 지방에서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소식이 전해오면 교회 나가는 것을 잠시 멈추고 손님맞이를 합니다.

그분역시 신의 음성을 듣기위해 오는 것이니 만큼 하나님 뜻에 부합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나는 언제나 세상을 향해 귀를 열어둡니다.

언제 어디서 성령의 말씀이 내게 전달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나더러 내재한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면서 왜 타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를 말할 겁니다.

내가 타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내안에서 성령이 말씀해주시는 것과 내 두뇌의 작용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이냐 아니냐를 두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는 두뇌의 자유의지와 성령의 뜻이 구분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확인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며 상대방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방식이며 성령과 함께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두는 성령을 담고 있는 성전이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만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범사(凡事)에 감사할 줄 아는 이는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