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엄지발가락에 피고름이 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의사가 아니어서 정확한 증상을 말할 수는 없지만 피로물질이 쌓여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은 그렇게 많이 걷지 않지만 예전에 조공생활을 할 때는 하루 2만보는 기본적으로 걸어야합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대부분의 기술자들이 걷기를 싫어하기에 자연스럽게 걷는 일을 해야 했지요.
이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재를 가지러 가지 않으면 내가 일을 해야 하기에 이래도 저래도 일이긴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자재를 가지러 가는 동안은 쉴 수 있으며 잠시나마 조용히 사색을 즐길 수도 있지요.
이 같은 일이 지속되다보니 지금도 자재를 가지러 사람을 보내기보다 내가 직접 갑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이상 누군가 심부름 보내지 않으며 가더라도 함께 가려 노력합니다.
우리 모두는 일을 하러 나왔지 누군가에게 봉사하러 온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심부름을 하러 온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은 내가 심부름을 자처할 때가 있는데 그런 때는 함께 일하는 사람의 수고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손발을 맞춰 일을 할 때 본의 아니게 상대방이 좀 더 힘든 포지션에 놓일 때가 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럴 때는 조금 쉬라 말하고 내가 갔다 옵니다.
내가 그동안 숱하게 많은 일을 경험해왔으므로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기술자는 조공을 부려먹어도 된다는 따위의 전근대식의 사고방식은 있을 수 없다 생각합니다.
기술자가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조공이 필요한 것인데 저는 손 놓고 놀고 있으면서 조공을 심부름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언젠가 한번은 소장님으로부터 반장임무를 부여받은 젊은 친구와 일을 한 적이 있었지요.
반장이랍시고 자꾸만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기에 따끔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나는 당신심부름하려고 이곳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필요한 자재는 직접 가져와서 하세요.”
각자 열심히 일을 하는 가운데 내가 필요한 자재는 내가 직접 가져다 일하는 중인데 제가 반장이니 나더러 심부름을 하라기에 쏘아붙인 겁니다.
이런 내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음 장소에서는 나에게 작업지시를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지요.
제 딴에는 내가 도면을 볼 줄 몰라 반장을 하지 않는다 생각한 것인지 도면 볼 생각을 않기에 도면을 달라 요청하고 직접 마킹을 해가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른 도면을 뺏다시피 가져가서 일을 하기에 속으로 웃었는데 반장완장이 나에게 넘겨질까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내가 될 수 있으면 도면을 잡지 않으려는 하는 것은 성경을 연구하는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지 볼 줄 몰라서가 아니란 걸 그이가 몰랐던 겁니다.
그리고 도면을 보지 않아도 지금 하는 일이 뭐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어설프게 완장을 찬 이들의 작업능률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런 오만방자한 사람들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빈둥거리면서 놀아도 되고 아랫사람은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세상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회사 사장이 할 일은 따로 있고 부장이 할 일이 따로 있으며 공사과장이 할 일과 반장이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가다의 특성상 현장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누가 누구를 지시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공사과장이나 팀장이 지시를 하면 각자가 맡은 분야의 일을 반장과 조공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인데 반장은 뒷짐 지고 조공을 부려먹는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이런 이유로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힘들어한다 싶으면 쉬자고 합니다.
나는 일을 운동으로 삼고 일을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 생각하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또다시 말하지만 일은 나에게 훌륭한 운동입니다.
일반인들은 노동은 운동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만약 운동이라는 것이 정해진 것이라면 유도나 발레를 해서 골병이 들고 발톱이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방송매체를 통해 알다시피 유명운동선수들의 성공담을 들어보면 모두가 골병이 들고 발톱이 빠질 정도의 운동을 했다는 걸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그 사람들은 운동을 한걸까요 노동을 한걸까요.
심한 운동은 노동과 같고 즐기면서 하는 노동은 운동과 같다는 내말은 거짓이 아니며 내 고집에서 나온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서 본인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노동하면 그것은 운동인 것이고 운동을 노동처럼 하게 되면 그자체로 노동인겁니다.
한쪽은 물질적 성공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고 한쪽은 육신적으로 성공을 이루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인데 뭐가 다르다는 말인지요.
손발을 이용하는 방법을 달리하면 운동의 종목이 달라지고 손발을 이용해서 어떤 도구를 어떤 곳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직업이 달라집니다.
도대체 인간의 하는 일이 이러한 방식에서 달라지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자 합니다.
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Wherefore I perceive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than that a man should rejoice in his own works; for that is his portion: for who shall bring him to see what shall be after him?
지금 이 시간 멀리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옵니다.
학의천이 가까워서인지 까치의 울음소리도 간간히 들리고 여러 새들의 지저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습니다.
96년의 추운겨울 태백센터에서의 조용한 아침이 생각납니다.
새벽명상을 끝내고 센터 문을 열로 나오면 눈앞에 펼쳐지는 설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고 산새들의 울음소리는 천상의 음악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요일이라 사방이 조용해서 일겁니다.
우리가 평상시 듣지 못하는 내면의 소리는 이렇게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가끔씩 바쁘게 몰아쉬던 호흡을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을 합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호흡 가다듬기이며 내재한 신의 음성을 듣는 작업입니다.
내 영혼과 인연이 있는 사람은 신의음성을 들을 것이며 육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은 내말을 들을 것이니 신의 음성과 인간의 음성은 둘이 아닙니다.
천상의 빛에 음류(音流)를 볼 수 있는 귀는 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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